정형외과 106호(부제: 인생사 새옹지마)
지금부터 3년전...
군대를 전역한 아들 놈이 복학때까지
용돈을 벌겠다고 용산전자상기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물품 주문이 오면 자전거를 이용하여 시내에 배달하는 아르바이트 라고 한다.
하루는 저녁식사를 같이하면서 당부했다.
"서울은 차가 많아서 자전거 타기가 위험하니까
언제나 조심해서 살펴야 한다. 절대로 서두르지 말고..."
"아빠,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알아서 할께요."
그럭저럭 한 달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날 직장 전화로 걸려온 딸아이의 목소리가 다급하다.
"아빠, 오빠가 자전거 타다가 넘어졌는데 많이 다쳤대요.
119구급차에 실려서 을지로병원에 있다고 연락이 왔어요."
하늘이 노랗다.
허둥지둥 택시타고 달려가보니 오른쪽 발목이 심상치 않다.
짐을 싣고 달리다가 미끄러지면서 발이 자전거 밑에 깔려
발목 뼈와 인대에 손상을 입었다고 했다.
응급실에서 엑스레이 촬영결과
수술을 하고 상당기간 입원해야 한다고 한다.
집이 수유동이므로 을지로 병원에 장기 입원할 경우
환자나 보호자에게 불편함이 많을것 같아서 병원측과 상의하여
수유동 집 근처에 있는 강북연세정형외과에 입원시켰다.
거기에서 수술을 받고 한달간 치료를 받으면서
배정받은 입원실은 4인용 106호 병실이었다.
직장을 퇴근하면서
꽤나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그 병실 106호....
아들이 퇴원함과 동시에 병원의 이름은 물론
병실의 호수도 자연스럽게 기억에서 사라졌다.
그로 부터 3년 여의 세월이 흐른
2005년 2월 5일, 설명절을 앞두고 연휴가 시작된 첫 날이었다.
새벽 5시, 배낭에 빈 물통을 가득 챙겨넣고
생수를 받아올겸 북한산 등산을 결행했다.
정말 오랫만에 나서는 새벽산행은 상큼했다.
등에서 목줄기에서 땀이 솟아 흐른다.
샘 터에 도착하여 가득히 물통을 채우고
무거워진 배낭을 둘러멘 후 산행을 계속했다.
정말 땀이 비오듯 흐른다.
높이 올라갈수록 발아래 넓게 전개되는
서울시내의 불빛들이 깜빡 거리면서 졸고 있다.
하늘에서는 별들이 머리 위에 쏟아질듯 반짝이고....
목적지에서 간단하게 몸을 풀고
다시 하산 길을 서둘렀다.
이제는 손전등을 켜지 않아도 될 정도로 날이 밝아온다.
부지런히 걸음을 재촉하여 거의 다 내려오면
아카데미하우스 담장 밑으로 눈과 얼음이 번벅이된 쇠응달이 있다.
무심코 발을 내 딛는데
미끄러지면서 오른발이 접힌 상태에서 앞으로 넘어졌다.
발목에서 "우두둑" 하는 소리가 귓가에 들릴 정도로....
순간, '아, 큰 부상을 당하는구나.' 라고 느껴졌다.
200미터 정도 남은 산길을 절뚝 거리면서 걸어 내려와
택시를 타고 집에 와서 찬물에 발을 담구고 있는데
사정없이 부어 오른다. 약간의 통증을 수반하면서...
3년 전에 아들이 입원했던 그 정형외과를 찾았다.
엑스레이를 찍고,
원장의 진단이 내려졌다.
"뼈가 골절되었습니다.
당장 입원하시고 발을 움직이면 안됩니다.
며칠 경과를 보아서 상태가 호전되지 않으면
심을 박아 뼈를 고정시키는 수술을 해야 합니다.
발을 심장 보다 높게 유지해야 합니다."
의사의 처방대로 반깁스를 한 다음 입원실을 배정받았다.
건물 맨 끝에 있는 호실로서 창문이 많고 햇볓과 통풍이 잘 되는 병실 106호.
아들이 한 달간 입원 해 있어서 뻔질나게 드나 들었던 그 병실 그 침대에
내가 입원하게 되었다.
부자지간에 많이 닮으면 닮을수록 더 애정이 간다지만
똑같이 오른쪽 발목을 다쳐서
그병원 그병실 그 침대에 내가 눕고 아들이 문병을 오는 처지가 되었다.
정형외과 106호 입원실.
5일에 입원하여 10일까지 설명절 연휴동안
의사가 지시대로 발을 높이 올리고 누어서 천정을 응시했다.
그리고, 간절히 빌었다.
"수술은 하지 않게 하소서,
이대로 뼈가 아물게 하소서!" 라고.
11일, 오랫만에 의사의 얼굴을 본다.
골절된 부위를 검진하더니,
"부기도 빠지고 상태가 양호합니다.
수술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네요.
오늘 깁스를 하고 내일 중으로 퇴원하시지요."
아들이 한 달간 누어 있어서 볼적마다 안스러웠던
그 106호병실을 8일간 누웠다가 목발에 의지해 병원문을 나선다.
인생사 새옹지마.
돌도 도는 유전하는 인생...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우리이기에
늘 겸손하고 조심하고 어울리면서 살아가야한다.
설날 연휴가 모두 지나갔다.
이제 106호 병실을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야지.
2005년 02월 14일
부드러운 세상 가꾸는 부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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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자연스레 흐르는 글 에 취한 듯 합니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우리이기에 늘 겸손하고 조심하고 어울리면서 살아가야한다.,,,그럼에도 가끔씩 본분을 잊어서 저는 걱정입니다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애구 저런~~ 정말 부자지간에 너무도 닮은것 같아 글을 읽으면서도 웃음이 납니다(죄송) 정말 이제는 106호 병실을 잊고 일상으로 빨리 돌아 가셔야지요 빠른 쾌유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