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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길 작가론
관후한 큰 날개 새의 망해록(望海錄) 펼치기
- 서부길 수필집 『순수, 저 너머의 기억』을 중심으로
한기홍
① 알바트로스(信天翁.albatross)론(論)
한국 수필문단에서 바다와 갯벌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작가는 그리 많지 않다. 수필가1) 서부길은 서해 바다의 중원이라 할 인천 연근해와 갯벌, 섬들과 평생 함께하면서, 그 기록과 생생한 체험담을 수필로 담아 문단의 주목을 받아 왔다. 인천 갯마을에서 태어난 작가는 유년시절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줄곧 인천을 사랑하고 알리며, 눈부신 현대의 가치범람 속에서도 인천 고유의 ‘짠맛’과 순수로 뭉쳐진 우직한 개항기(開港期) 어부(漁夫)의 정신을 이어받고 있다. 실로 문단에서 드문 바다, 갯벌 관련 문학 창작자로서의 존재가치가 큰 작가다.
서부길의 수필은 주로 그가 반평생을 바다와 벗하면서, 직접 체험한 에피소드와 뜻깊은 순간 마다 깊이 통찰한 삶의 ‘개안(開眼)’을 구수하고 유려한 필치로 그려내어 독자들의 공감을 극대화 시키고 있다. 작품 곳곳에서 바다와 갯벌이 품어내는 ‘노스탤지어 (鄕愁. nostalgia)’를 절제된 수사(修辭)로 기막히게 변용시키고, 일상의 소재들을 맛깔스럽게 수필에 녹여내는 연금술사적 운필(運筆)의 경지도 드러내고 있다.
특히 광대무변하고 망망한 창파가 늠실대는 바다의 변화막측이나 갯벌과 낙도(落島)의 애환, 그로 인해 피어오르는 서정을 작가 자신이 큰 새의 날개가 되어 날며 펼쳐 보이고 있다고 분석된다. 북태평양이나 남반구에 산다는 큰 새 알바트로스(albatross)는 문인들이 좋은 문학적 소재로 떠올리는 새다. 그 새는 예지를 가진 순수 그 자체의 새로 불린다. 덩치는 크지만 너무나 순수하고 태평스러워서 ‘바보새’로 불리기도 하는데, 서부길의 인간적 면모와 창작세계와 같이 조응한다.
알바트로스는 한자문화권인 동양에서는 신천옹(信天翁)으로도 불린다. 뱃사람들은 날고 있는 이 새를 목격하면 즉시 배를 돌렸다고 한다. 이 새는 바람이 불어야 날 수 있는 새라서 어선 근처에 나타났다는 건 풍랑이 임박했다는 징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천옹이라는 이름은 후손의 안위를 걱정한 조상이 보낸 새라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 새 중에서 날개가 가장 큰 종에 속하며, 성체에 이르면 날개가 2.5~3.5미터에 이르고 몸도 1미터에 달한다. 이른바 거조(巨鳥)로서 상승기류를 타고 이륙하면 시속 127킬로미터로 6일간을 날 수 있다. 남북한 관계가 악화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미국의 거대한 B⁃52 폭격기가 연상되는 새다.
알바트로스의 날개는 장거리 수평비행에 특성화되어 있는데, 자력으로는 날아오르는 것도 만만치 않아 상승기류를 타야 비행할 수 있기 때문에, 바닷가 절벽에서 하강하여 날갯짓을 하다 날아오르는 방식이다. 어린 개체들은 비행에 능숙하지 못해 벼랑 아래로 떨어져 뱀상어 같은 동물의 먹이가 되는 운명에 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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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부길(1949~). 인천출생. 인천광역시 서기관 역임. 월간 『수필문학』 천료 등단(2002). 한국수필가협회 이사. 인천문인협회 회원. 갯벌문학, 청라문학, 인문회장 역임. 수필집 『바다, 그 영원한 꿈』(2007. 교음사) 『파일을 열며』(2017. 교음사) 등이 있음
‘바보새’로 불린 이유도 유머러스하고 매력적이다.2) 어딘지 양순하고 댕청한 얼굴 모습에 날
개가 큰 탓에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 착륙할 때 바닥에 코를 박고 넘어지는 허술함에 성격도 성선설 실천조처럼 굉장히 유순해 사람을 경계하는 일이 없으며, 사람들이 눈앞에서 알을 가져가도 가만히 지켜보기만 할 뿐이라고 한다. 아마도 조물주는 영악한 포유류의 성악설을 순치시키기 위해 이 새를 보내 왔나 보다.
서부길의 수필정신과 인간적 면모는 바로 이 알바트로스 새와 닮아 있다. ‘옹진집’에서 서대탕에 소주를 넘기며 불콰해진 시야에 잡힌 그의 어깨는 교류 수 십년 세월의 두께마저 증발 시켜버린 듯 각지고 변함없었다. 과연 신천옹의 날개답다는 감탄과 더불어 ‘인천에서 태어나 인천을 지키고 있는 몇 안되는 지사적(志士的) 인물’로서 그간의 족적과 필력에 경의를 품을 수 밖에 없었다. 어쩌면 신천옹의 유전인자는 서부길의 강인하면서도 우직하며, 삶의 저변에서 에피소드로 승화되는 이런 저런 ‘바보같은’ 추억들과 로맨티스트적인 발자취에 기인했을지도 모른다. ‘바보새’의 순수한 품성이야말로 원초적 인간정신의 기저를 이루는 서부길식 우직한 인자(因子)들의 호환이 아닐까.
망팔의 연세에 그간의 기록과 소회를 담아내려 써내려 간 땀의 결정을 활자화하려는 『순수, 저 너머의 기억』은 그래서 각별하고 고귀하기에 한페이지도 허방일 수가 없다.
가족 봉안담의 명패에 넣을 제명(題名)을 구상해왔다. 진작부터 세 번째 수필집의 제호(題號)를 넣으리라 나름 결심은 하고 있었다. 세계 유명 인사들의 별난 묘비명을 기억하고 있던 터라 그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샤토브리앙’의 기념비적 작품 『무덤, 저 너머의 회상록』에 착안하여 『순수, 저 너머의 기억』으로 제명을 삼고 명패인 오석(烏石)에 새겨 넣었다. 봉안담(12인형)의 사용기간은 90년, 미래에 후손들은 특이하게 생각하며 동명(同名)의 내 작품집을 찾아보리라.
문학은 나의 삶에 힘듦을 위로하고 활력을 준다. 얼마나 다행인가. 이번 수필집은 창작의 애환을 담아 10년 만에 발표한다. 우연이지만 이제야 작품 수가 채워진 까닭이다. 고뇌와 사유의 진중(珍重)함이 모자란 연유인가?
지금껏 내가 살아온 것이 다 맞는 것은 아닐게다. 때문에 나이 들수록 수필쓰기가 녹록지 않다. 그러기에 이번 ‘또 하나의 결실’을 거두며 혼돈이 정리된 기분이다. 이쯤에서 마음의 여백을 채워가며 여유와 즐거움을 누리고자 한다. 더 나아가지 않고 신뢰와 예지 속에 삶의 고백서로 한참을 머무르고 싶다.
- ⌜책머리에⌟‘또 하나의 결실’ 중에서
서부길은 이번 수필집 『순수, 저 너머의 기억』 권두언에서 반 백년의 문사역정을 종합하는 의미에서, 또한 미래의 후손들에게도 한 선대의 인물 서부길의 귀거래사(歸去來辭)적 ‘존재의 의미’를 남기기 위해 가족 봉안담에 자신의 묘비명을 수필집 제명으로 넣었다는 사유를 밝히고 있다. 봉안담은 담장형식의 납골묘다. 작년 봄 무렵 윤년을 맞이하여 ‘손 없는 날’을 택하여 분주히 선대의 유골을 수습하고 화장하여 납골묘에 모시는 일로 동분서주했던 모습을 기억한다. 그는 샤토브리앙의 기념비적 작품 『무덤, 저 너머의 회상록』에 착안하여 수필집의 제명을 『순수, 저 너머의 기억』으로 정했다고 한다. 샤토브리앙의 회상록은 격변시대의 굴곡에서 일어난 한 인간의 치열한 발자취와 그 이후의 허무와 종언에 이르는 사유를 토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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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알바트로스는 '바보새'라고 불린다. 진짜로 지능이 낮아서 그런 건 아니고, 날개가 너무 커서 땅 위에서는 날개를 애써 구겨넣고 다녀서 뒤뚱뒤뚱하며 걸어 다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늘에서는 왕자였지만 땅에서는 비참한 신세'라고 노래한 시인도 있다. 원래 일본에서 이 새를 두고 바보새라는 뜻의 아호도리라고 불렀고, 이것이 일본의 공식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이 새의 날개가 거추장스러워 이착륙을 잘 하지 못하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기원을 밝히고 있다. 알바트로스의 번식지가 존재하는 일본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길을 잃어 찾아오지 않는 한 정말 보기 힘든 종이므로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생물도감 등을 그대로 직역하면서 '바보새가 별명이다'라는 인식과 일본에서 말하는 바보새의 기원이 그대로 퍼진 듯하다. 현재까지도 각종 어린이용 생물 교재에서 바보새라는 별명과 그 기원을 그대로 싣고 있다. - <인터넷 나무위키(2025) 인용>
소년기부터 습관화되고 정형화된 서부길의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생활신념은 가끔씩 주석이나 여타 대화의 자리에서 익히 들어왔다. 그래서 서부길의 문단 족적을 떠올리면 육사출신 장교의 의전행보와 같은 ‘진중하고 차분하며, 만보(晩步)로서 문장의 오의(奧義)에 접근하는’ 굳건한 의지의 토대를 느낀다.
서부길은 샤토브리앙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3)과 작가로서의 사명을 다한 회상록에 깊은 감명을 받았을 것이다. 근세 프랑스 대혁명기의 지사(志士)와 언론인으로서, 나폴레옹의 왕정복고를 따랐던 인물로서의 대장정이 있은 후, 귀천의 시기에 남긴 회고록이야말로 깊은 인상과 더불어 시대를 건너뛰어 맞이한 21세기 만년의 작가에게 공감이 컸을 것이다. 샤토브리앙의 만년은 처절한 삶의 역정 끝에 맞이한 안식의 허무함과 인간의 짧은 종착점을 아쉬워하며, 그 만년의 인생무상함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바로 알바트로스 신천옹이 그 웅장한 자태로 바다의 천공(天空)을 주유 압도하다가, 착륙 시점에서는 날개와 보폭이 어긋나서 나뒹구는 ‘바보새의 모양 빠지는’ 슬픈 미소가 데자뷰되는 듯한 심경이었을 것이다.
서부길 역시 봉안담의 오석에 자신의 묘비명을 새겨 넣으며 순수로 대변되는 ‘어리숙함(어쩌면 가장 근원적이며 자신의 본성의 자부심이 발현된)’을 – 완벽하지는 않지만 본령을 다한 결실을 - 미래의 혈연들에게 전수하는 신천옹으로서의 소견으로, ‘순수, 저 너머의 기억’이란 여덟 글자를 심안의 끌로 새겨 넣었을 것이다. 그 오석을 끌로 파내는 순수야말로 알바트로스의 부리요, 후세에 전하는 기억은 어느 한 시점, 번쩍였던 신천옹 서부길의 날갯짓이 될 것이 자명하다.
서부길의 문학역정은 이번에 상재하는 『순수, 저 너머의 기억』 권두언에 의하면, 그간의 집필활동을 결산하는 듯한 소회를 보이고 있으나 실린 작품들의 면면을 숙독해 본바, 또 다른 창작정신의 신들메임을 엿볼 수 있었다. 이전에 발표한 『바다, 그 영원한 꿈』(2007. 교음사) 『파일을 열며』(2017. 교음사) 수필집에 드러난 강건한 창작의욕과 진취적 물목(소재)탐구 심리는 여전히 진행형이며, 신천옹의 두터운 날갯짓은 여전히 창파 위를 날고 있다. 그에게 인천연안의 수산자원과 해양지리는 ‘원초적 망향의 손짓’으로 오늘도 매혹적인 추파를 던지고 있으며, 펜촉에 윤기를 불어 넣어주며 ‘어서 오라 구원한 증언자여, 우리의 나신(裸身)을 바치노라’ 는 묵언을 던지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권두언에~ 지금껏 내가 살아온 것이 다 맞는 것은 아닐 게다./ 때문에 나이 들수록 수필쓰기가 녹록지 않다./ 그러기에 이번 ‘또 하나의 결실’을 거두며 혼돈이 정리된 기분이다./ 라고 완숙을 향한 새로운 각오를 삼키고 있다.
알바트로스는 강건한 날개를 활용해서 미세한 에너지만으로도 장시간 하늘에 떠 있을 수 있다. 이때의 비행술(Dynamic Soaring)은 상승기류를 이용해서 자신의 에너지를 쓰지 않고 날아가는 방식이다. 이런 영리한 비행술 덕에 몇 년씩 바다에서 생활하다가 번식을 위해서만 땅에 오기도 한다. 서부길의 집필과 창작 정신은 알바트로스의 비행술을 동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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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여러분은 내가 태어나는 것, 나의 어린 시절, 콩부르 성에서 내가 만들어낸 기이한 감정에의 몰입, 베르사유 궁전에서의 알현, 그리고 파리에서 대혁명의 첫 현장에 내가 있었던 것을 보았다. 신세계에서는 워싱턴을 만난 후에 숲속으로 깊이 들어갔었으나, 난파선이 나를 브르타뉴로 다시 데려왔다. 나에게는 병사로서의 고통과 망명자로서의 비참함이 있었고, 프랑스에 돌아와서는 <그리스도교의 정수>의 저자가 되었다. 변화된 사회에서 친구들을 얻었고 또 잃었다. 보나파르트는 나를 멈추게 하고, 피가 흐르는 앙기앙 공작의 시체를 가지고 내 앞길로 뛰어들었으며, 나는 멈추어서 그 위대한 사람을 코르시카의 요람에서 세인트헬레나에 있는 묘지까지 소개하였다. 그리고 나는 왕정복고에 참여해서 그것이 끝나는 것을 보았다. 나는 마치 두 개의 강이 합류하는 곳처럼 두 세기 사이에 있었다. 내가 태어난 옛 강가에서 섭섭한 마음으로 멀어져가면서, 또 알지 못하는 강가를 향하여 희망을 갖고 헤엄치면서 나는 그 혼탁한 물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 샤토브리앙 『무덤, 저 너머의 회상록』 (639-641p.)
우리는 누구나 꿈을 지니고 살아간다. 그 꿈이 있어 삶을 지탱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꿈을 키우는 열정, 삶이 지치거나 좌절할 때 선수들의 성취감을 보며 기운을 차린다. 용기가 새삼 솟는다. 중단하는 자는 승리하지 못하며 승리하는 자는 중단하지 않는다. 그리고 끊임없이 시련을 이긴 자만이 승리할 수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프랭크 시나트라가 불러 히트시킨 ‘마이웨이(My Way)’에는 사람의 생애가 그려진다. 이 노래는 진작부터 내 휴대폰의 컬러링 소리로 저장되어 있다.
나는 나의 길을 달렸다네
몇 가지 후회되는 일도 있긴 했지만
그 모든 것을 극복했었지
(중 략)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 무엇보다도
나는 나의 길을 걸었다네…
나는 나의 길을 달렸다네
이처럼 아름다운 청년 안바울 선수는 우직하게 ‘나의 길’을 달려왔으리라.
그리고 태극기 앞에 당당하게 마주섰다. - ⌜나의 길⌟중에서
2024년도 파리 하계올림픽 유도 단체전에서 극적인 승리로 동메달을 조국에 안겨준 안바울 선수의 감동적인 투혼을 언급하며, 당시 받은 깊은 감흥을 서술하고 있다. 당시 안바울 선수는 자신보다 7키로그램이나 위인 체급의 강자를 기적적으로 꺾어 국민들을 열광케 했다. 그 누구보다도 애국심이 높고, 호협(豪俠)스러움을 따르는 서부길이기에 안바울 선수의 쾌거에 대한 기쁨을 수필로 그려냈다. 눈에 띄는 부분은 휴대폰의 컬러링 소리를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웨이(My Way)’로 저장해놓은 점이다. 그렇다. 필자가 보건대 ‘나의 길’을 묵묵히 지키며 매사에 충실하며 수행 하듯이 성심을 다해 지내온 그의 역정을 대변하는 부분이다. 알바트로스는 한번 솟구쳐 펼친 날개를 쉬이 접지 않는다. 대양의 태풍과 폭우속 난기류에서도 일심으로 비행하는 그 의연함이 바로 ‘마이웨이(My Way)’다.
필자가 그간 바라본 서부길의 풍모는 고전적 신사(紳士)의 이미지를 짙게 보이고 있다. 지금도 넓은 어깨 꼿꼿한 허리에 한국남성 중키 이상의 신장하며, 단정한 흰머리에 말쑥한 정장차림의 그가 등장하면 장내는 금세 ‘주빈(主賓)등장’의 분위기에 휩싸인다. 또한 관후한 성품과 그 너그러움에서 피어나는 은중(隱重)한 카리스마가 교류인들에게 경의심을 주고 있다. 마주한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하고, 화자와 화제에 대한 호오지심(好惡之心)이나 판단을 쉬이 드러내지 않는다. 이는 신중하고 사려깊은 소년기부터의 의기로운 신념으로부터 기인되고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너무 과묵하여 심사를 헤아리기 어려운 사람도 아니다. 청년기에는 특유의 바리톤 음색과 억양으로 아나운서를 꿈꾸기도 했으며, 중년 이후에는 굵직하고 매혹적인 저음의 시낭송가로도 문단에 알려져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상대방과의 소통에 능하다.
② 곡신불사(谷神不死), 그 희원(希願)의 길
서부길 수필문학의 본령은 누가 뭐래도 ‘바다를 향한 영원한 지향’에 있다. 이번까지 펴낸 3권의 수필집들은 모두 해양수산 관련 수필을 앞부분에 배치하여(1.2.3권 모두 15편이상) 그의 창작 주안점이 바다를 향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바다와 항구로 대표되는 모든 일들이 인천에 있다. 이 대한민국 근대사의 영욕과 운명을 짊어져온 국제적 개항도시 제물포에서 태어나, 유년시절부터 망팔(望八)의 오늘까지 인천을 지키고 품어온 그이기에 인천해안과 갯벌, 그리고 연안의 섬들은 모두 서부길의 수필이요, 문학적 안식처다. 공직에 투신한 반평생도 인천광역시 수산행정과 정책수립에 선도적 역할을 했다. 특히 송도국제도시 건설등 해안 매립과정에서의 집단민원 해소 과정에서 어촌과 어민을 위해 고군분투한 상황들은 여러 편의 수필로도 기록되고 있다.
가끔씩 필자와의 주석에서 대화 중에 하는 이야기가 ‘내항 밖 팔미도(八尾島)를 거쳐 올라오는 해저의 큰 수로(水路)’ 에 대한 것이 있는데, 그 수로를 타고 한국전쟁 때 맥아더가 올라와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였고, 지금도 저 남방 필리핀 해구에서 동지나해를 거쳐 농어와 장어등 탐스런 어류가 올라오는 계곡으로서, 그 해저 갯골의 신비한 심연(深淵)을 주석의 안주로 삼았었다. 그 해저수로는 비어수로4)(飛魚水路 Flying Fish Channel. 1909년 미 해군 수로국에서 발행한 책에 표기)로 불리는데, 필자는 그 비어수로의 신비한 해저 갯벌 계곡을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에 언술된 ‘곡신불사(谷神不死)’의 상징으로 느끼면서, 서부길의 심안에 중심기둥처럼 수립되어 있는 ‘바다를 향한 창작의지의 결정체’로 인식했다.
곡신불사(谷神不死)는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 제6장에서 ‘죽지 않는 골짜기의 신(谷神)’을 여성성으로 보고, 그것이 천지의 뿌리라고 본다. 노자는 도(道)를 신비한 ‘암컷’에 비유하고 여성적인 것을 자주 언급했다. 또한 물을 인용해 ‘부드럽고 유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라며 여성성을 찬미하고 ‘상선약수(上善若水)’로써 도의 작용을 설명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종국에는 바다에 이른다. 물이 흘러 모이는 곳은 마르지 않는다. 그곳에서 생명이 잉태하고 성장하는 것이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 봉우리는 양(陽)이요 골짜기는 마르지 않는 샘, 음(陰)이다. 그러나 만물이 만물로서 존재하려면 음양의 두 기운을 교화(交和)케 하는 충기(沖氣)가 필요하다.
이 충화(沖和)의 기(氣)야말로 만물을 만물답게 하는 근본 원기이며 생명인 것이다. ⌜도의 본체가 허무(虛無)인 것처럼 골짜기가 비어 있기 때문에, 암컷이 일체의 만물을 낳을 수 있고, 자연의 도는 무궁하게 이어진다」라는 것이 요지다. 이렇게 낮음과 높음의 현묘함을 표현한 말이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계곡의 신은 죽지 않는다'라는 뜻의 곡신불사(谷神不死)다. 가뭄으로 온 세상이 타들어 가도 마르지 않는 낮은 골짜기는 끈질긴 생명력과 강인한 정신력을 상징한다.
서부길은 문인들과의 회동 담화에서 종종 “가장 여성적인 것이 이 세계를 구원할 수 있다”라고 설파해 동석한 여성작가들에게 박수를 받곤 했다. 이 말은 괴테 『파우스트』 의 제2부 마지막 장면에서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인류를 구원한다’는 구절을 인용한 것 같다. 바로 곡신불사의 심오한 지향과 이미지에 합당하는 구원한 여성성의 발현이며, 또한 그가 추구하는 해양수산 문학의 영원한 모티브(motive)다. 아니, 그의 내면과 심리적 토대를 이루는 기둥이다.
서부길에게 인천해협의 모든 삼라만상은 이 곡신불사의 오의(奧義)를 통해, 드높은 애향의식으로 감싸며 가능한 문학적 역량으로 형상화하는 작업을 소명의식으로 삼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는 이미 첫 수필집 『바다, 그 영원한 꿈』(2007. 교음사)을 상재하며 한국 수필문단에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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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인천 앞바다는 크고 작은 섬들, 암초, 풀등, 해저에 산재해 있는 모래톱이나 갯벌로 항해하기가 쉽지 않다. 통상적으로 모든 외국 배들도 팔미도에서 인천항까지는 우리나라 도선사가 운행한다. 덕적도 영흥도 사이에 좁고 굴곡이 험한 동서 수로가 2개가 있다가 팔미도 전방에서 합류, 인천항 까지의 15km 구간은 단하나의 수로가 있다. 비어수로(飛魚水路 Flying Fish Channel)다. -1909년 미 해군 수로국에서 발행한 책에 표기. - (사) 해반문화 – 임유상 22.7.15 자유게시판 ‘인천상륙작전1’ 참고
양수산 전문작가라는 인식을 제고시켰고, 관련 수필들은 독특한 구성과 내용으로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이런 점은 여타 신변잡기의 서술이 범람하는 수필계에 자극을 주고, 새로운 수필 장르에의 모색등 신선감을 주고 있다.
바다를 터전 삼아 업무를 수행하던 1970〜80년대 팔미도 인근 바다에는 상벌천퇴(上伐淺堆)와 하벌천퇴라는 ‘풀등’같은 모래톱이 있었다. 어느 해인가 그곳에 상륙하여 자원 조사를 했지만 유용 생물은 발견할 수 없었고 모래벌판만 황량했던 생각이 난다. 인천항에 화물선이 들어오려면 ‘도크’에 직접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팔미 해역 정박지에 닻을 내리고 순서대로 대기한다. 갑문 관제탑에서 며칠, 몇 시, 입항 승락에 따라 지형을 잘 아는 ‘도선사’의 인도로 ‘도크’에 들어간다. 입항로를 서수로, 출항로를 동수로라고 하는데 그 폭이 2㎞가 된다. 큰 배가 오가는 항로이니까 수심이 깊고 어물이 많이 잡혀 어민들이 자꾸 침범하여 그물을 치곤했다. 항만청에서는 부득이 항계선(Harbour Limit Line)을 당초 팔미도에서 외해 쪽으로 확장하여 관리했지만 위법행위는 그치지 않았다.
‘에피소드’지만 해군부대에서 특히 고충이 많았다. 쾌속 경비정이 야간에 작전 중 ‘스크류’가 그물 로프에 걸리거나 빠져 버리는 사고가 잦았다. 때문에 군, 관, 합동으로 어망 철거가 주요 이슈가 되기도 했다. 언젠가 함정을 타고 그물을 띄운 튜브를 가라앉히기 위해 국산 M16 자동소총으로 사격을 했다. 처음 쏘아 보았지만 명중률이 거의 백발백중이었다. 나의 군 시절 기본화기가 낡은 ‘엠원(M1)’과 ‘칼빈’ 소총이었으니 격세지감을 말해 무엇 하랴.
- ⌜밤바다를 지켜온 팔미도 등대⌟ 중에서
현역 공무원 시절의 업무현장의 체험 기록이다. 예의 ‘곡신불사의 비어수로’ 팔미도 인근 상황을 맛갈나게 보여주고 있다. 조석간만의 차이가 높아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인천 앞바다의 정황이 상세하다. 인천항 출입 항행 선로(船路)로 중요한 비어수로에 어부들이 불법으로 설치한 그물을 수거하기 위해 그 부표(튜브)를 M16 자동소총으로 사격하는 상황도 흥미롭다. 이렇게 서부길의 바다수필들은 현장감이 넘치고, 생생한 묘사와 정황해설이 타 서정수필들과 확연히 구별된다. 그 역시 수산인(水産人) 출신으로서 해양수산 분야에 천착하는 애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오늘 날 인천 앞 바다의 모든 정황들이 천지개벽하듯 몽땅 바뀌어 있다한들, 서부길의 심안에 아로새겨진 바다와 인천의 존재는 가장 근원적인 ~‘모태사상(母胎思想) 연기(緣起)처럼‘ 어머니의 자궁 속 같은~ 구원한 형태로 남아있을 것이다. 바로 곡신불사의 비어수로를 보듬는 작가의 굳건한 얼굴이다.
내가 쓰는 수필에는 인천 바다 물결이 보이고 소금 냄새가 난다. 바다의 교향곡이 들리고 연안의 고기들과 갯벌 속 조개가 꿈틀거린다. 바다가 들려주는 자장가와 음률이 들리고 수평선과 다정한 섬들이 보인다. 그 속에 바다의 빛깔이 펼쳐지고 생명의 음성이 들린다. 어려서부터 바다를 품어왔고 연관된 직종에서 근무해온 까닭에 삶과 영감이 글감이 된 것이다. 앞으로도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인천 연안의 정감과 지식 정보를 융합하여 글을 쓰고자 한다.
흔히 글을 쓰는 것은 고생문이 훤히 열린다고 말한다. 그러나 내게는 버릴 수 없는 생리요, 유산이 되고 말았으니 이제는 감히 그 문으로 들어가 고행하는 수도자의 심정으로 글을 쓰려한다. 그리하여 내가 할 수 있다는 능력을 아버님께 전해드리고 싶다. -⌜수필을 쓰는 이유⌟ 중에서
작가의 수필창작 동기와 의도가 진심으로 드러나는 글이다. 그의 오감(五感)을 통하여 유년기부터 체화된 바다와 인천연안의 내재적(內在的) 감성은 청장년기의 바다관련 공직종사로 인해 만개되었고, 삶의 이정표로서 절대적이고 구조론적 관점으로 장착되었다고 해석된다. 아마도 그의 귓가에는 언제나 철~썩이는 파도소리가 들리고, 짭쪼름한 갯벌 냄새와 창파를 가르는 힘찬 선수(船首)의 돌진 속에서 왁자한 뱃사람들의 함성이 들려오고 있으리라. 그래서 ’인천 연안의 정감과 지식 정보를 융합하여 글을 쓰고자 한다‘ 와 ’고행하는 수도자의 심정으로 글을 쓰려한다‘는 심경을 간명하게 토로하는 것이다.
서부길에게 바다와 섬은 미지의 세계 혹은 망망한 고립의식을 떠나 인간증명의 현장임과 동시에 존재론적 휴머니즘이 명멸하는 아련한 노스텔쟈로도 기능한다. 이 점은 그가 발표한 3권의 수필집에서도 면면히 그 추억담들을 회고하고 있다.
저만치 비탈진 밭에서 누가 일을 하는데 딸이라고 했다. 손짓을 하니 까맣게 탄 얼굴에 쑥 들어간 눈이 사뭇 경계하는 눈초리로 다가온다. 그리곤 아무 말없이 샘물 한잔 마시더니 다시 밭으로 돌아간다. 청각과 언어 장애를 가진 농아(聾啞)였던 것이다. 부녀 단둘이 세상과 차단된 채 살고 있었다. 문득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집 한 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 있네’ 오래전 불러본 ‘클레멘타인’이 생각났다.
보이는 것은 출렁이는 바다, 가파른 산길, 바람이 드세어 숲이 없고 잡초뿐인 민둥산에서 어떻게 살아갈까. 왜, 이곳에서 사는 것일까. 궁금증이 더했지만 물어 무엇하랴. 가지고 간 과자 몇 봉지와 한 됫병짜리 소주를 건네주었다. 산 너머 반대편에는 유인등대가 있다는데 왕래를 할 수 없는 곳, 차라리 자유스러운 삶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중략)
1934년 등대가 처음 점등되었고 2003년 신축한 등탑은 19.4m로 37km 떨어진 바다에서도 불빛이 보인다. 223m의 절벽 위에 세워져 국내에서 가장 높은 등대다. 어선은 물론 인근을 항해하는 화물선들의 안내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백섬광 12초에 1섬광을 번쩍이며 오늘도 밤바다를 비춰준다. 홀로 떨어져 찾는 이 없는 섬, 하지만 거룩하고 아름다운 등대불이 있어 외롭지 않으리라. 나는 그 후 선미도에 가본 적이 없다.
풍문에 의하면 집터만 남았다니 부녀도 어디론가 떠났나보다. - ⌜선미도⌟ 중에서
오래 전에 업무차 다녀온 선미도에 관한 추억이다. 외딴 섬에 늙은 아비와 어린 벙어리 딸이 살아가는 낙도인생(落島人生)의 고달픔과 인정이 서정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작가는 ‘클레멘타인’ 노래를 생각하고, 이들이 어떻게 선미도까지 흘러 들어왔을까 하는 의문을 던지면서 상봉 선물로 과자 몇 봉지와 댓병짜리 소주를 건네주었다 한다. 어느 감동영화의 한 장면 같아서 깊은 페이소스(pathos)를 느낀다. G.바슐라르(G.Bachelard. 1884~1962)는 바다를 ‘어머니’에 비유하고, 바닷물을 ‘기적의 우유’로 상징했다. 바다와 인간은 긴밀한 감응체계로서 문학 – 철학적으로 조응한다는 것이다. 바다는 갑자기 거센 풍랑을 일으키다가도 어느새 자애로운 얼굴을 보이기도 한다. 이 변화막측함을 C.융(C.Jung. 1875~1961)은 ‘생명의 근원 혹은 영적인 신비함, 죽음과 재현을 순환하는 환경’으로, N.프라이(N.Frye. 1912~1991)는 ‘죽음의 승화로 새 생명이 태어나는 창조적 통로’로 바다를 해석했다.
서부길의 수필에는 이러한 낙도의 삶들이 여러 편 소개되고 있다. 인천연안에 아로새겨진 민초들의 희로애락이 곶감처럼 달게 스며있다. 바다와 육지의 풍진(風塵)이 무에 다를까 하지만, 그건 통시적인 심리적 접근일 뿐이다. 실제 체험으로 육화(肉化)되는 철저한 현실인식 아래에서는 또 다른 세상의 물리적 거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고기가 날아 다닌다는 ‘곡신불사의 해저 갯골 비어수로’ 와 연계된 인천항에서 50Km나 떨어진 낙도 선미도의 추억담이 짙은 감흥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어촌탐방 취재차 20년 만에 세어도를 찾았다. 섬에 내리니 송림이 울창해지고 둘레길도 잘 만들어 졌다. 갯벌 위로는 정오의 햇살이 반짝이고 쏴한 바람 또한 시원하다. 그러나 내가 알던 이들은 거의 보이지 않고 어촌계장 출신인 행정선의 C선장과 팔순 원로인 L선생 만이 반갑게 맞이한다. C선장집에 차려놓은 방금 잡았다는 깔대기(농어새끼)회 앞에 앉으니 옛 생각이 절로 난다.
이곳은 강화도와 김포 사이 염해로 흐르는 큰 물길을 따라 한 팔씩 하는 힘 좋은 농어가 많이 잡히던 곳이다. L선생은 신혼 때 멋모르고 새색시를 태우고 단둘이 낚시하던 얘기부터 꺼낸다. 낚시에 걸려 30여 분간 실랑이 끝에 물위로 떠오른 놈은 사람 얼굴 두 배나 되는 농어 대물이었다. 시뻘건 아가리를 잔뜩 벌리고 ‘꾹, 꾹’소리를 내는 농어를 본 색시는 뜰채로 도와주기는 커녕, 혼비백산하여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는 에피소드를 전한다. 이후 오늘날까지 그런 큰 놈은 본 적이 없단다. - ⌜세어도를 아시나요⌟ 중에서
세어도는 인천시와 경기도 김포시 경계지점의 자그마한 섬으로 작가가 취재차 방문했을 적에 필자도 동행했었다. 수필 속의 내용들이 마치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 섬의 통장(統長)이자 행정선의 C선장 집에서 농어회를 먹으며, 동행문인들과 허심탄회한 문학담론에 시내에서는 엄두도 못낼 흥에 겨운 고성방가의 추억도 있다. 주석에서 섬 노인의 바다에 대한 구수하고 맛깔스런 추억담은 좌중의 이목을 사로잡았고, 새색시와 대물 농어를 잡던 순간에 이르러서는 소주 몇 병이 한번에 바닥을 보였었다.
이 세어도 앞을 지나는 갯골 수로야말로 ‘곡신불사 비어수로’의 상류로서, 추억담의 주된 시절에는 꾹꾹 대며 새카맣게 올라가는 농어떼의 등짝과 실뱀장어의 은빛 유영을 바라봤을 터였다. 언제 다시 그런 정경을 볼 수 있을까. 그러나 자연은 언젠가 부활하여 풍요를 재현한다. 인천의 갯골과 해저 수로는 곡신불사의 소명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을 터이니 말이다.
이러한 바다를 향한 작가의 열망과 단심을 강석호(1937~2018. 수필가, 문학평론가)는 서부길의 첫 수필집 『바다, 그 영원한 꿈』(2007. 교음사)의 평론에서 적시하고 있는데, 필자의 본 졸고와 핵심이 맞닿아 있다.
그의 글은 우선 소재부터 특이하다. 40편의 글 중 거의가 바다와 또는 그와 관련된 작품이다. 그로 미루어 볼 때 그의 수필은 여느 신변수필과는 달리 바다를 소재로한 해양문학 내지 해양수필이란 장르로 명명해도 무방할 것 같다. 바다의 해류와 갯벌과 거기서 생산되는 생선과 어패류, 해초, 심지어는 소금에 이르기까지 모든 해산물에 대한 상태의 지식 정보를 어릴 적 바닷가에서 나서 자라면서 겪은 체험을 통해 창조적으로 재생하였을 뿐만 아니라, 바다가 주는 낭만과 서정, 그리고 바닷가 어민들의 애환을 적나라하게 그림으로써 바다문학을 시도하고 있다.
(중 략)
그의 문장은 지나친 수식이나 아는 체하는 사설이 없고 간결하며 보편적이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리얼하고 힘차게 표현하는 데서 진지함과 경쾌함을 맛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③ 서부길의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와 자산어보(慈山漁譜)
바다를 배경으로 한 최초의 해양시조는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1587~1671)의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가 대표적이다. 작가가 유배 생활을 한 후 섬마을 고향으로 돌아와 여생을 마칠 때까지 풍류와 벗하며 남긴 게 이 작품이다. ‘어부사시사’는 춘하추동의 각 장 10수로 구성되어 있다. 바다에서 풍류와 함께 생업을 일구는 어부들의 사계절을 뱃노래 가락으로 묘사함으로써 ‘어로요(漁撈謠)’로도 불려지던 시조이다. 이 어촌의 자연 정취를 형상화한 시조는 ‘해양시조 문학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자산어보(慈山漁譜)』는 조선 후기 정약전(丁若銓. 1758~1816)이 귀양 갔던 흑산도 연해의 수족(水族)을 취급한 책이다. 3권 1책 필사본으로 1814년에 저술하였다. 정약전은 자서에서 자산은 흑산을 일컫는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은 비늘이 있는 인류, 비늘이 없는 무인류 및 개류, 잡류 등 총 3권으로 되어 있다. 거기에 실제 견문한 것을 토대로 내용의 충실을 기하고 있다. 『자산어보』는 정약전의 실증적 학문 태도를 볼 수 있는 책이다.
서부길의 해양수산 수필들에는 윤선도의 ‘어부사시사’와 정약전의 ‘자산어보’가 그대로 녹아 있다. 그의 관련한 수필들이 위 고전들처럼 어느 한 방향성을 일관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장체험의 리얼리즘을 독특한 구어체 형식의 문장을 통하여 독자에게 전달하는 점과, 글감 소재에 대하여 축적된 전문지식으로 천착해 나간다는 점에서 증명될 수 있다.
어시장에 가면 언제나 횟감이 풍성하다.
양식 덕분이라 해도 수족관을 채우는 주역은 철마다 교체된다. 전해오는 말에 ‘오농육숭이요. 여름 병어, 복날 민어 안 먹으면 아쉽고 가을 전어’라고 했다. 5월에는 농어, 6월에는 숭어가 제철이고 여름에는 병어, 민어로 보양하고 추석 즈음에 전어란 뜻이다. 횟감용 큰 생선은 죽기 전에 피를 뽑는데 그대로 두면 살에 피멍이 들기 때문이다. 아가미 뒷부분과 꼬리에 칼집을 내어 피를 뽑은 것을 ‘찍어 바리’라고 한다. 농어, 숭어, 민어, 광어 같은 횟감용 생선에 적용되는 별칭이라 하겠다.
‘농어’는 5월, 식탁을 아름답게 하는 잘생긴 물고기다. 연한 녹색 바탕에 검은 점이 박힌 날씬한 것이 고급스럽다. 치어에서 어미가 되기까지 이름이 달라지는 출세어(出世漁)로써 새끼 때는 ‘깔대기’라고 부른다. 강과 바닷물이 만나는 하구를 좋아해서 인천 앞바다에서 ‘쏙’이라고 하는 가재 종류의 미끼를 달아 낚시로 잡는다. 아가미가 빨갛고 눈이 맑은 싱싱한 놈을 회를 치면 살점에서 무지갯빛 색깔이 선명하고 달콤하게 녹아드는 맛이 아까울 정도다.
철분이 많아 빈혈 예방에 도움이 된다. 때문에 철분 흡수를 위해 무채 같은 야채를 곁들이는 게 좋고 레몬즙을 뿌리는 것도 효과적이다. 무르익는 봄 한철 진객이라 하겠다.
‘숭어’는 10㎝ 미만을 ‘동어’라 하고 20㎝ 정도를 ‘모치’그것보다 큰 것이 숭어다. 보리 필 무렵에 기름지고 많이 잡히는 게 보리 숭어다. 살이 튼실하고 붉고 흰색이 교차되어 보기에도 좋고 담백한 것이 쫄깃하다. 특히 내장 속 주판알 같은 창자는 한 마리 다 줘도 바꾸지 않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인기가 있다. 참기름 소금에 찍어 입에 넣으면 해조향이 물씬 풍기며 고소하여 일미라 할 수 있다. 숭어 맑은 국은 노르스름한 기름이 동동 뜨고 쑥갓과 후추를 넣고 소금으로 간만해도 시원한 게 그만이다.
인천공항이 들어서기 전 영종도 송산마을의 너른 갯벌에 1~2㎞씩 매어 놓은 건강망에는 팔뚝 만한 숭어들이 그득했다. 밀물로 미쳐 가져 나오지 못한 놈은 개흙을 파고 묻어두었다가 간조 때 갖고 나올 정도였으니 집집마다 숭어 갈무리에 바빴다. 배를 갈라 잘 말려 보관했다. 정성껏 제사상에도 올렸다.
여름 ‘병어’는 비릿하지 않다. 고소하고 달콤하다. 병어는 크기에 따라 이름이 다르다. 어린애 손바닥만 한 게 자랭이, 어른 손바닥만 한 게 병치다, 조금 큰 게 병어인데 30㎝는 돼야 제사상에 올린다. 50㎝짜리가 ‘돗병어’이고 더 큰 놈은 ‘덕대’ 혹은 ‘덕자’라고 부른다. 버릴 것 없이 알뜰하게 먹을 수 있어 덕(德)이 많은 생선이라 대접을 받는 모양이다. 병어는 등살, 날개살, 뱃살, 가슴살로 나누는데 부위마다 맛이 다르다. 날개살은 홍어살처럼 오독오독하다. 가슴살은 광어처럼 쫄깃하고 뱃살은 두툼한 게 고소하다. 육질이 대부분 단단하고 식감도 좋다. 병어회에는 초장이나 고추냉이 소스보다는 된장이 좋다. 된장에 고추장을 살짝 넣고 다진 마늘과 고추, 참기름만 넣으면 된다.
대무의도 하나개 해변에서 그물에서 건진 놈을 엇비슷 썰어 게 눈 감추듯 먹던 생각이 난다. 간장 무 조림의 단맛도 잊을 수 없다.
‘민어’(民魚)는 이름처럼 국민 물고기다. 소래포구 어선에서 막 내린 큰 놈 한 마리를 지인 다섯이 추렴(出斂) 하여 복달임 한 적이 있다. 작은 것은 ‘통방망이’라고 맛이 덜하여 큰 것이 가성비가 높은 까닭이다. 노인이나 병후 원기회복에 좋아 여름철 보신탕은 삼품, 민어는 일품이라고 할 정도로 알아준다. 부레는 참기름 소금에 찍어 먹는데 기름기가 많고 쫄깃하여 회살보다 인기가 많다. 민어 건어포를 ‘암치’라 불렀고 말린 어란(魚卵)은 도시락 반찬으로 어른들 술안주로 요긴하게 쓰이곤 했다.
9월의 웰빙 어류는 ‘전어’다.
봄 ‘도다리’라면 가을에는 단연 전어다. 옛말에 ‘가을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 돌아온다’라고 했고 ‘며느리 친정 간 사이에 문 걸어 잠그고 먹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전어는 가을에 몸길이가 20㎝ 정도 자라 지방이 많고 뼈도 부드러워 고소함이 깊어진다. 가을 전어의 지방 성분이 봄보다 최고 3배나 높아져 가을 전어 머리에는 ‘깨가 서 말’이란 속설도 있다. 예부터 전어는 기름지고 맛이 좋아 염장해서 파는데 귀천(貴賤)이 모두 좋아했으며 사는 사람이 돈을 생각지 않기 때문에 전어(錢魚)라고 했단다.
최근에는 양식산이 많아 ‘세꼬시’로 먹기 좋고 영양가도 높다고 한다. 어서 가을이 되어 지인들과 둘러앉아 지글지글 구운 전어구이에 흠뻑 취해 봤으면 하는 생각 간절하다. (2020. 6) - ⌜오농육송에 찍어바리⌟ 중에서
*필자 주 ~ 평론배열의 효율화를 위해 위 수필 원문의 행과 단락을 다소 조정했음
이쯤이면 거의 ‘자산어보’를 겸한 ‘어류포식사전(?)’이랄 수도 있겠다. 물고기의 사계(四季)를 담고 그에 따른 인간의 – 요즘 유행어로 - ‘찰진 먹방’을 안내하고 있는데, 그야말로 위 열거한 두 고전에서 전하는 웅변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지 않은가. ‘오농육송에 찍어바리’란 제명도 기상천외한 단축어로서 수필의 참맛을 돋우고 있다. 어류별로 구수하고 기막힌 맛 체험 미각 유발 수식어는 읽는 것 만으로도 침이 고인다.
농어는 “싱싱한 놈을 회를 치면 살점에서 무지갯빛 색깔이 선명하고 달콤하게 녹아드는 맛이 아까울 정도다.”라며 미식가들을 유인하고, 숭어는 “특히 내장 속 주판알 같은 창자는 한 마리 다 줘도 바꾸지 않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인기가 있으며, 참기름 소금에 찍어 입에 넣으면 해조향이 물씬 풍기며 고소하여 일미라 할 수 있다.”며 주당들에게 천혜의 안주를 소개하는가 하면, 병어는 “등살, 날개살, 뱃살, 가슴살로 나누는데 부위마다 맛이 다르고, 날개살은 홍어살처럼 오독오독하다. 가슴살은 광어처럼 쫄깃하고 뱃살은 두툼한 게 고소하며 육질이 대부분 단단하고 식감도 좋다.”라며 어종별 독특한 미각의 정수를 토속적 어감과 정서로 소개하고 있다. 또한 ‘국민 물고기’ 민어와 가을 전어의 기막힌 명성 소개와 더불어 고기들을 시기별로 열거하여 ‘어부사시사’적인 사계절 풍요와 풍류를 제시하고 있다.
서부길이 펴낸 수필집 3권의 공통점은 수록된 작품들 중 약 50% 정도가 바다와 섬, 수산생물, 그리고 갯벌과 포구(浦口)등을 그리고 있다. 바다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 대한 그의 애정어린 접근과 선험적 경륜은 창작의 기폭제와 자양분으로 작동되고 있으며, 그의 역량은 우리 수필문단의 큰 자산임이 분명하다.
소금은 짠맛이 특징이고 음식 맛을 내는 기본이다. 많이 넣거나 모자라면 짜거나 싱거워 먹을 수가 없게 된다. 그 비결은 절묘한 균형감에서 오는데 맨밥에도 적당히 가미하면 고소하고 단맛이 나는 게 신기할 정도다. 우리들 점심 끼니는 거의 깨소금을 약간 묻힌 주먹밥뿐이었으니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논어의 ‘일단사 일표음’(一簞食 一瓢飮)을 진작부터 실행했다고나 할까.
(중 략)
개흙바다는 염전 저수지보다 훨씬 재미있다. 싱싱한 개흙 속 '맛살조개'잡이와 ‘망둥이'낚시는 생산적인 놀이였으니까. 토인처럼 온몸에 개흙을 바르며 갯바닥을 50cm 정도 파고 그 속에 앉으면 물이 솟아 나와 땡볕에서도 엉덩이가 시원했다. 그러고는 앞에서부터 호미로 살살 개흙을 무너뜨리면 맛살조개가 수직으로 이동하는 길이 보인다. 그 길에 정지하고 물을 쏘아대는 놈을 줍기만 하면 된다. 웅덩이 파는 게 힘들지, 그 후론 손쉽게 맛살조개를 잡아낼 수가 있었다.
(중 략)
언젠가 형들과 함께 갔을 때다. 나한테는 벗어 놓은 옷을 지키게 하고 저들만 바다에 들어가 버려 축대 돌 틈에 옷을 숨기고 쫓아 들어갔다가 몽땅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땀에 전 그 하잘것없는 애들 샤쓰와 반바지마저 집어가던 궁핍한 시절이었으니… 요즘 아파트 재활용함에 넘쳐나는 ‘메이커’옷을 보며 격세지감을 느끼곤 한다.
해가 저물 때쯤 집에 돌아와서는 '시치미'를 떼보지만 눈치 백단이신 어머니는 위험한 갯가에 갔다고 야단을 치곤했다. 거짓말은 금세 탄로가 났으니 허술하게도 귓바퀴의 덜 씻은 개흙과 목덜미에 허연 소금기를 감추지 못했던 것이다.
-⌜주안에 염전이 있었네⌟ 중에서
묘사된 개개의 바다 대상물들은 그 속성이 인간들의 요긴한 활용에 의해 세속화된다. 그 활용법을 승화시켜 인간이기에 가능한 미적탐구와 사물의 특장에서 맛과 멋의 백미(白眉)를 추출해낸 서부길의 수필은 가히 체험문학의 극치를 보이고 있다. 요즘 현대의 과학적 가공에 의해 맛이 번다해진 소금의 경우, 염전에서 막 긁어모은 천일염의 원초적 순수성과 잊혀져가는 천연의 맛을, 풍족하지 못했지만 그리운 옛 시절의 맨밥에 비벼먹던 기억을 소환한다. “깨소금을 약간 묻힌 주먹밥뿐이었으니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논어의 ‘일단사 일표음’(一簞食 一瓢飮)을 진작부터 실행했다고나 할까.”라며 그 시절 체험자들인 만년의 독자들에게 뭉클한 추억을 소환해 주고 있다.
갯벌 속의 무진장한 수산생물들을 포획하는 경험들도 감탄과 더불어 빙그레 미소를 짓게한다. 개흙을 바르고 갯바닥을 파고 들어가 땡볕을 피하면서 맛살조개를 채취하는 장면은 소년기의 장난스러움을 초월한 지혜롭고 인상 깊은 장면이다. 또한 형들과 함께한 에피소드도 그 정경이 생생히 그려진다. “땀에 전 그 하잘것없는 애들 샤쓰와 반바지마저 집어가던 궁핍한 시절이었으니… 요즘 아파트 재활용함에 넘쳐나는 ‘메이커’옷을 보며 격세지감을 느끼곤 한다.”는 씁쓸한 소회는 풍족한 요즘 세태의 방만에 대한 반성을 일깨우고 있다.
못섬 뒤편에는 망부석 같은 세 개의 암초가 있다. 그곳 수심 50m쯤에 낚시를 드리우면 덥석 물던 팔뚝 만한 시커먼 개우럭, 첫 미끼는 부식으로 먹던 ‘꼴뚜기’ 젓갈이지만 이후로는 ‘우럭’ 살을 썰어 미끼로 쓴다. ‘자두’ 알만한 납뽕을 묶어 내려도 물살에 저만치 떠내려가고 바위틈에 걸렸는지 꼼짝 않는다. 노련한 선원에게 건네주니 대물 ‘우럭’이라고 알려준다. 작살(자갈)밭인 데다 큰놈은 미끼를 물고도 가만히 있어 느낌이 그만큼 떨어진다. 간조에서 밀물이 드는 ‘참’이라고 하는 30분간이 낚시 최적의 시간이다. 뱃전, 이곳저곳에서 끌어올리는 ‘우럭’과 ‘놀래미’, 순식간에 함지박에 가득하다.
아침 해가 찬란히 떠오르는 배 위에서 인절미 크기로 회치고, 백숙으로 끓인 탕을 안주 삼아 양재기에 부어 마시던 됫병짜리 소주맛. 미련하지만 부러울 것이 없다. 요즘 TV에서 인기리에 방영하는 ‘도시어부’의 낚시와는 차원이 다른 순수 자연 맛이라고 할까?
전체 인구는 다섯 가구에 십여 명, 주민들은 낚시로 잡은 우럭을 잘 말려 가끔 오는 수집상에게 넘겨주는데 주 수입원이라고 했다. 나도 지인 부탁을 들어줄 겸 몇 차례 염가로 구입한 적이 있었다. 찬물에 밥 말아 꾸득꾸득말린 살 한 점을 죽 찢어 고추장에 찍어 먹는 맛,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쫄깃한 게 그만이다. 일식집에서 녹차 물에 밥 말아먹는 ‘보리굴비’는 쫓아올 수 없는 맛이다. 섬에는 소나무 군락과 해안 암벽 따라 ‘소사나무’가 자생한다. 극심한 가뭄에도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소사나무’는 오지의 섬사람들 기질을 닮은 듯 강인하게 살아간다.
-⌜못섬⌟ 중에서
서부길의 낙도방문기 중 ‘못섬’에 대한 추억이다. 팔뚝 만한 개우럭을 잡아 선상에서 소주와 더불어 횟감을 즐기며 유유자적하는 지난 시절의 풍류도가 일품이다. 수필의 멋과 맛이 넘쳐흐르는 장면이다. 역동적인 장면의 리얼리티(reality)와 서사에 대한 해박한 묘사가 작품의 성공은 물론 독자의 흡인력을 고조시킨다. A4용지 2장 분량의 정형수필을 고수한다면 서부길의 이 원고작성 함축미와 핵심 서사를 기막히게 행간에 넣는 정치필법(精致筆法)을 눈여겨 봐야 할 터이다. 이러한 바다관련 수필들(기발간 1.2.3권)을 뽑아 또 하나의 훌륭한 해양수필 단행본으로 발간해도 좋을 만큼 수작으로 선(選)하고 싶은 수필들이 넉넉하다.
인천연안 도서의 해변에 자생하는 ‘소사나무5)’는 회갈색을 띄며 독특한 품위를 자랑한다. 분재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좋은 수종이다. 해풍을 잘 견디고 온갖 공해에 강하다. 그래서인가. 작가는 못섬의 소사나무를 바라보고 있다. 바로 꿋꿋하고 심지가 깊은 서부길의 창작정신과 일맥상통하는 나무와 마주 선 모습이다. 이외에도 ‘어부사시사와 자산어보’격인 바다와 해양생물 관련 수필은 본서에서 여러 편 그 진가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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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소사나무는 서어나무보다 작다는 뜻으로 소서목이 소서나무로 변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높이 10m까지 크며, 나무 둘레는 그리 굵게 자라지 않는다. 경기도 해안과 남쪽 섬에서 높이 3~10m 정도로 자라는 낙엽활엽 소교목이다. 소사나무는 희귀한 나무는 아니지만 크기가 작으면서 줄기가 구불구불 운치있게 자라기 때문에 분재용으로 많이 쓰여 분재인에게는 '분재를 위해 태어난 나무'라는 말을 듣는다. 갈색으로 물든 낙엽이 아름답기 때문에 정원수나 공원수로도 쓰인다. 자작나무는 공해에 약하지만 소사나무는 공해와 추위에 잘 견디기 때문에 도시에서도 잘 자랄 수 있다.인천 옹진군 영흥도 ‘십리포해수욕장’에 150년 된 '소사나무 숲'이 있다. 방풍림 목적으로 만들어진 인공 숲이다. - 인터넷 - 나무위키 사전(2025) ‘소사나무’
서부길의 바다관련 체험기와 뇌리에 입력되어 있는 창작 소재는 만선(滿船)의 어창(魚艙) 만큼이나 충일하다. 그의 펜에서 토해지는 글들은 소년이 훅 불어내는 비눗방울처럼 금세 꺼지는 일별 수필이 아니다. 평생을 바다와 어깨동무하고, 그 파도에 휩쓸리며 울기도하고 서로를 사랑했으며, 수평선의 여명과 낙조를 함께 짊어졌던 대장정(大長程)의 훈장이다.
서부길의 제2 수필집 『파일을 열며』(2017. 교음사)의 작품평에서 정목일(1945~ 수필가)은 이렇게 작가의 창작자세와 의지에 대하여 평가하고 있다.
서부길 수필가는 처녀 수필집 상재 이후 10년 만에 선보이는 제2 수필집엔 ‘푸른 심연’이 보인다. ‘인생의 심연’은 관조, 평온, 자각이 자리 잡고 있다. 흔들리지 않는 삶의 깊이와 인생관을 펼쳐낸다. 체험에 대한 감성만이 아니라, 인생에 대한 발견과 깨달음을 보여주고 있어 성숙과 여운을 안겨준다. 저자는 서문에서 ‘타인 앞에서 단정하고 젊게 보일 위장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이고자 함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중략)~ (또한)‘삶의 편린’인 이 글모음을 바다 깊이와 견주자면 겨우 표층에서 수온약층(수심 10~20미터)정도에 다다른 모양새다‘라고 토로한다. 자신의 수필세계에 대한 자평(自評)이다. 자신의 작품세계를 인지하고 있음은 삶의 성찰과 인생의 깊이를 보여주는 일이다.
④ ‘낭만신사(浪漫紳士)’의 옛 편린과 로맨티시즘(romanticism)
서부길의 바다현장 천착 수필들에서 전문가적 심미안(審美眼)이 보였다면, 누구나 소싯적 있었을 기억들 속에서 ‘아련한 공감’을 선사하는 게 그의 청춘시절의 로맨틱한 추억들이다. 전술한 바도 있듯이 서부길의 전체적인 이미지는 ‘관후한 신사 같으며, 진중하지만 섬세하고 두터운 포용력이 풍겨나는’ 기도를 보이고 있다 하겠다. 그래서 필자는 그를 ‘낭만신사’로 부르고 싶다. 교류 문인들의 그에 대한 인물평이나 세평들도 이구동성이다. 그의 삶의 괘적을 보면, 비운의 가족사가 있는가 하면 비교적 이른 중년의 나이에 상처(喪妻)의 슬픔을 겪기도 했다. 이러한 내면의 아픔을 추억 속의 연애담으로 토로했는지 여러 편의 수필에 청춘시기의 아련한 추억으로 간직되어 있는 풋사랑의 기억들을 소환하고 있다.
인용하는 수필은 예나 지금이나 통속적인 청춘의 만남과 헤어짐이 있는 내용이지만, 작가의 바른 성품과 이성적 고뇌를 진솔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고, 그 뜨거움의 열흔(熱痕)을 순수한 서경(敍景)으로서 평생동안 간직하고 있음에 주목되는 작품들이다.
수십 년 전, 업무적으로 알게 된 K가 있다. 그녀와의 인연은 내가 군에 입대하면서 펜팔을 청했고 훈련병 시절 보상받는 심정으로 열심히 편지를 썼다. 그녀 또한 자주 답장을 보내왔다. 아는 처지다 보니 금세 친숙해졌고 육체적인 고통을 잊게 해주는 달콤한 기다림이었다.
(중 략)
점차 허물없이 얘깃거리가 많아지면서 편지 왕래는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시간이 흐르자 핑크빛이거나 푸른색, 노랑 등 편지지에 깨알 같은 글씨로 쓴 연서(戀書)도 읽게 되었다. 한때 풋사랑 한 번쯤 안 해 본 사람 없으련만 군대 시절 외로움을 달래던 장난기에 비해 그녀는 너무 순수하고 진지했던 것 같다. 생각컨대 그녀도 처음에는 나처럼 생각했을 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방향이 달라져 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휴가를 나오면 맛난 음식을 먹거나 얼음판에서 스케이트를 배우고 독항아리 속에서 구운 '야끼모'라고 부르던 군고구마를 사 먹으며 눈길을 걷기도 했다. 열정의 젊음이 흔들릴 때면 따뜻한 가슴으로 감싸주던 포근함도 잊을 수 없다. 그녀는 나의 고뇌와 고달픔을 위로해주는 수호천사였던 것이다. 어느 귀대하던 날 '차표'까지 사주었건만 늦어버려 부대 앞 캄캄한 흙탕길을 무겁게 걸어갔던 생각도 난다.
(중 략)
군 생활을 반쯤 했을 때였을까. 휴가의 마지막 밤, 막걸리를 함께 마신 친구의 충고를 듣고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진실과 그 반대의 공방이었다. 혼란 속 긴 터널을 벗어나는 듯 뭔가 느낌이 왔다.
허황된 나와 현실적 그녀의 성향이 자꾸만 부딪친다는 것, 그녀를 진심으로 대하고 있는가에 대한 회의감이었다. 당시 나는 일본 작가 다자이 오사무(太宰治)에 심취하고 있었다. 다섯 번의 시도 끝에 죽음에 성공한 사람, 그는 자전적 소설 『인간실격』에서 자신의 내면 괴로움은 접어두고 언제나 타인을 즐겁게 해주는 ‘피에로’였다. 본심과 겉마음이 달라야만 했던 그의 아픔에 공감하던 터였다. 결국 K에게 서로 가야 할 길을 고하는 편지를 부치고 도망치듯 귀대하고 말았다. 내용은 대충 이랬다.
--- 우린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젊음이 있다. 수많은 사람 중에 만나 이제 떠나야 할 시간, 해가 뜰 때 출발하리라. 그대는 동갑내기 친구, K의 잘못은 하나도 없다. 나는 즐거움을 버린 외롭고 쓸쓸한 이방인, 텅 빈 가슴속 설할 수 없는 겨울 나그네, 불확실한 미래에 그대를 담보할 자신이 없다. 그리고 가식에서 벗어나고 싶다. 헤어짐은 기약 없이 떨어지는 한 가닥 유성(流星)…. 깊은 정 잊지 않으리. ---
그 후 그녀에게서 몇 통의 편지가 왔지만 몹시 춥던 그해 겨울, 바닷가에 하얀 얼음덩이가 밀려온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오지 않았다. - ⌜머물다 가는 것⌟ 중에서
‘낭만신사’ 서부길에게 지금도 또렷히 기억되는 반 백년도 넘는 추억이다. 상황묘사의 정확성과 심리의 변천과정, 이성률(理性律)의 귀결 등이 수필의 간결과 함축미를 배가 시킨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의 젊은 날의 심리적 방황과 애정의 행로를 다자이 오사무(太宰治)의 『인간실격』에 피력된 이타행(利他行)적 노정과 병치 시키는 지고한 감성과 태도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K여인과의 인연이 지속될 수 없음을 통감하고 석별의 결심을 담은 서신도 꽤나 상징적이다. 이별통지 편지 종장의 “한가닥 유성(流星)”과 ~ “깊은 정 잊지 않으리”는 ~ 반어법을 통하여 깊숙이 각인된 ‘청춘시절의 고뇌’를 아프게 토로하고 있어 심금을 울린다. 아울러 철없던 학창시절의 낭만도 소환하여 서부길 특유의 ‘밉지 않은 악동시절’을 추억하고 있다.
K와 나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서로가 일흔 후반에 접어들었으니 꽤 오래된 우정이다. 그지없이 먼 옛날, 자잘하고 아련한 감정이 솟아오른다. 과거에 대한 회상, 잊히지 않는 '에피소드'가 스쳐간다. 윤양도 우리와 동급생이었다. K는 그녀를 '신비한 여자'라고 지칭했고 우리도 덩달아 그렇게 불렀다.
(중 략)
그녀의 졸업식 전날 밤, 깡통에 밀가루 풀을 쑤고, 축하 포스터 댓 장을 들고 둘이서 여고 담을 넘었다. 이곳저곳에 포스터를 붙이곤 도망치듯 나왔다. 며칠 후 모범생인 그녀에게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 고양이란 소문이 돌았고, 창피하고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했다. 우리는 시침을 뗐지만 몹시 분노한 윤양은 만남을 거절했다.
(중 략)
K군의 별명은 ‘통뼈’다. 골격이 굵은 탓도 있지만 대도무문(大道無門)처럼 모든 일에 거침이 없어 붙은 이유다. 나는 ‘부시기’(당시 담배의 은어)였는데 열 개비들이 ‘희망’ 담배로 같이 ‘뻐끔뻐끔’ 배울 때 붙여진 것 같다. 나는 그 후 30여 년 만에 어렵사리 금연에 성공했고 K는 처의 성화에 일찌감치 끊었다. 배우기는 쉽지만 끊기는 어려운 게 끽연이 아닌가 싶다. - ⌜K군과 나⌟ 중에서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소년기에 담임 여선생님에게 품었던 존경과 사모의 스토리도 눈길을 끈다. 발달심리학(發達心理學)에서는 신체적인 성숙이나 정신적인 발달 등 심신양면에 걸쳐 급격히 변화하는 시기를 13~14세에서 부터라고 한다. 13세 소년 서부길의 풍부한 감성과 성숙함을 인식하면서 그 시절의 담임선생님 모습을 지금도 앞에 선 듯 또렷이 기억하고 있을만큼, 그의 심혼에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은사의 표상으로 자리하고 있는 듯 하다.
4학년 때 담임이신 K선생님이 생각난다. 소년 시절 내 정신건강을 살찌워주신 분으로 그 시절이 지워지지 않는 것은 그만큼 마음속 깊이 각인되어 있는 까닭이리라. 지금도 보관하고 있는 생활통지표(단기4291년도)의 가정통신란에는 잉크로 깨알 같은 글씨가 또박또박 써져있다.
‘무뚝뚝한 인상을 주는 말이 없는 아동입니다. 그리고 열심히 자기의 할 일은 완수하는 진실한 어린이입니다. 학업에도 성의가 있고 성적이 매우 우수한 편입니다.’ 선생님의 필체다.
초등학교 3학년까지 내 학업성적은 미와 양뿐인 열등생이었다. 그러나 4학년이 되면서 상위권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사범학교를 갓나온 선생님의 격려를 받으며 어이없게도 ‘선생님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자’며 정진하여 공부에 재미를 붙이고 발전상도 받았다. 특히 작문 시간에는 우수작을 뽑아 직접 읽게 하시고 칭찬을 하셨는데 몇 차례 읽을 기회를 얻으며 관심을 받으니 자신감을 얻은 때문이리라.
지금 생각해도 웃는 듯 마는 듯 잔잔한 미소와 화장기 없는 청순한 얼굴, 검은 치마와 흰색 저고리가 어울리던 조신(操身)한 모습, 조그만 입으로 나직하게 국어책을 읽으면 그 입을 정신없이 바라보다 눈이 마주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순간 죄지은 듯 부끄럽고 두근거리던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 ⌜창영학교⌟ 중에서
그런가하면 오늘을 살아가는 작가의 근황은 어떨까. 역시 묵중한 행동양식 속에서도 섬세하고 단아한 아취(雅趣)로 생활 속의 즐거움을 영위하고 있는데, 요즘 유행어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명징한 실천이다.
지난 봄 상추밭에서 달팽이 한 마리를 잡아왔다. 토종 ‘명주 달팽이’인 듯 1㎝가 채 못 되는 작은 몸체다. 코코피트(코코넛 껍질에서 섬유질을 제거한 뒤 가공하여 만든 유기물질)를 구입하여 바닥에 깔고 잠자리 채집통(26㎝×16㎝)에 넣었다. 먹이는 상추 한 잎과 오이 그리고 작은‘종지’에 물을 함께 주었다.
며칠 후 딸애가 사무실에서 기르겠다고 가져갔다. 그리고 여름휴가가 되자 먹이를 주지 못한다며 집에 가져온 후 도로 가져갈 생각을 아니한다. 부득이 집에 있는 내가 청소와 먹이 공급을 담당하게 된 지 2개월쯤 지났다. 그러다 보니 반려 곤충 기르는 형국이 되었고 그 사이 흉각(胸殼)이 2㎝쯤 되어 제법 성체가 된 듯하다.
장마의 끝쯤 되었을까. 비슷한 놈 한 마리를 다시 잡아와 함께 넣어 주었더니 반가운 동족을 만난 기쁨인가? 서로 붙어서 꼼짝 않기를 두어 시간, 오랜만에 외로움을 푸는 것 같아 미물(微物)이나마 흡족한 생각이 들었다. 딸애는 ‘달수’와 ‘달봉’이라고 이름까지 지어주었는데 이성인지 동성인지 알 길 없고 다만 함께 있으니 덜 외롭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며칠 후 궁합이 맞았는지 흙 속에 30여 개의 알덩이가 보인다. 아하! 이놈들이 암, 수였구나. 이튿날 알을 조그만 플라스틱 통(16㎝×10㎝)에 흙을 깔고 분가를 시켰다. - ⌜달팽이 그 후⌟ 중에서
잔잔한 하루의 평화로운 일상이 수채화처럼 펼쳐지는 수필이다. 서부길의 위풍당당 ‘상남자’ 이미지의 이면에는 이렇게 차분하고 정서적이며 디테일한 취향들이 자리한다. 달팽이를 자연에서 초대(?)하여 그 성장을 지켜보는 따뜻한 시선이 독자의 심금에 안온한 구들방 같은 흡인력을 제공한다. 작가 특유의 순탄한 문체가 상황정리를 더욱 매끄럽게 유도한다. 이런 점은 너무 질박하거나 서술이 긴 난해한 문장가들에게 시달려온 독자들에게 한 여름날 한 모금의 생명수를 들이킨 감각을 선사한다. 서부길의 수필문체는 구수하면서도 간명(簡明)하며 사건과 사물의 정확한 지명(指名)과 서술로 문학성을 증폭시키고, 자칫 만연체로 흐를 서사를 적시적소에 마감한다. 탁월한 문학적 소양이 응축된 내단(內丹)으로 ~ 혹은 다져진 내공(內功)으로 ~ 수필문단의 한 영역에 자리하고 있다.
‘오랜만에 외로움을 푸는 것 같아 미물(微物)이나마 흡족한 생각이 들었다.’는 달팽이에 대한 소회는 우월한 인류의 카타르시스의 발로보다는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한 본성이 바로 인간의 성품 – ’중용(中庸) 1장 1절’ 과 연계된 가없는 연민과 긍휼로 낮은 곳을 응시하는 작가의 톨레랑스(tolérance)적 사유의 발단으로 볼 수 있다. 수필 ‘추억 속의 여운’에서는 더욱 낭만적인 그의 모습과 취향을 엿볼 수 있다.
이런 밤에는 가끔 ‘스탠드’불을 끄고 음악을 들을 때가 있다. 내일모레쯤 새로 들어올 ‘턴테이블’에 앞서 LP 판 3장을 먼저 샀다. 비틀스와 아바, 그리고 사이먼 앤 가펑클이다. 두 장을 더 사자면 ‘올리비아 뉴튼 존’과 ‘정태춘, 박은옥’ 부부의 LP 판이다. 그걸 들으며 추억 속 ‘카타르시스’를 느껴보려 한다. 그리고 『좁은 문』의 순애, 『테스』의 가련한 사랑, 『안나 카레니나』의 허무를 찾아 다시 탐독하며 이 희망의 계절을 맞고 싶다.
- ⌜추억 속의 여운⌟ 중에서
⑤ 순수, 저 너머의 기억
서부길의 가족사에서 단장(斷腸)의 슬픈 사건은 수필로 기록된 그의 형님부부의 죽음일 것이다. 섬마을 젊은 부부교사로서 낙도 어린이 교육에 헌신하던 중, 안타까운 죽음으로 당시 세간에 충격과 슬픔을 안겼던 특종 사건이었다. 필자를 비롯한 교류문인들도 이 옛 비보를 듣고는 눈시울을 붉혔었다. 박계주의 소설 『순애보(殉愛譜)』를 울먹이며 읽었던 젊은 날을 떠올리면서도, 염량세태의 이 시대에 “과연 순애보는 존재할까?”라는 의문은 작가 형님부부의 예로서 단연코 소멸되었다. 그렇다. 애틋하고 숭고한 형수의 죽음은 그 가이없는 사랑의 순결함을 영원히 증명할 것이다. 서부길의 관후한 톨레랑스(tolérance)적 언행일치의 이면에는 그가 자주 언급하는 파우스트의 “가장 여성적인 것이 이 세계를 구원할 수 있다”라는 잠언(箴言)의 그림자가 깃들어 있는 듯하다. 타계한 형님부부의 비극에 대한 혈연의 모진 슬픔의 투영이다.
『역사 속의 인천 여성』(여성 단체 협의회, 2008년 발간) 초판과 『인천의 지지(地誌)』 (인천광역시, 2015년 발간) 속 교육 분야와 열녀 편을 읽었다. 보완하여 재발간하기를 고대하며 형수의 일대기를 기록하여 보관하고 있다. 바이올린을 잘 켜는 섬마을 교사로서 경력 10년에 32살의 가녀린 몸이다. 더구나 동절기 3개월 동안 굴을 따는 아동들을 쫓아 더 작은 바위섬으로 학교가 이동하였다.
야간에 등잔불 밑에서 공부하고 의료시설이 전혀 없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형님은 겨울바다 찬바람 속에 과로와 감기가 지병이 되어 돌아가셨고, 그 열흘 후 따라가신 형수의 애틋한 순애보를 남기고자 함이다.
비교할 수는 없지만 일본 ‘데카당스’ 문학의 대표 작가로 ‘다자이 오사무’가 있다. 그의 자전적 소설 『인간실격』에서 주인공은 그토록 열망하던 순수를 찾아 헤맨다. 실제로 그는 다섯 번째 자살기도에서 강물에 투신하여 39살 나이로 ‘죽음의 미학’에 성공했다.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 그런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어떤 이유로든 자살은 미학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이 세상을 떠나는 이별의 순간만큼은 모두 고귀한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형수는 이런 글을 남겼다. 경찰에서 속필로 베껴온 거다.
여보! 역시 당신은 절 사랑하셨습니다.
저 또한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당신의 조용한 부름을 받고
(중 략)
당신의 품 안에 영원히 잠들고자
예까지 왔습니다. 이 잠이 깨지 않게 영원히…
당신과 난 행복하게 잠들고 있습니다.
아주 영원히.
오랜 세월이 지났건만 그 통절함은 조금도 낡지 않았다. 부부의 애절함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해 4월, 봄이 한참 가도록 나는 겨울 가죽점퍼를 입고 있었다. 연이은 상(喪)을 치르고 턱수염이 더부룩한 채 ‘소소리바람’ 타고 품으로 파고드는 냉기에 지친 몸을 떨었다. 이후 부모님께서는 세간에 알려지기를 원치 않아 사진을 없애고 흔적을 지우시며 조용히 손자, 손녀를 키우셨다. 때문에 남겨진 것이 없어 이번 ‘봉안담’사진도 누이 결혼식 하객 속에서 겨우 건져 개인 명패에 사용하였다. - ⌜순수, 저 너머의 기억⌟ 중에서
수필작가 서부길을 보면 그 관후(寬厚)한 기도(氣度) 속에서 은연중 빛나는 은어의 비늘 같은 짙은 우수가 담긴 눈빛을 본다. 그것은 상현(上弦)달이 미묘하게 흘리는 한 줄기 빛 같기도 하고, 저 파미르 고원의 어느 초원을 넘어 시공을 격해 중세의 북해(北海)를 항해하고 온 여행자의 깊은 사유 같기도 하다. 그의 수필들은 바다와 사람과 휴머니티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고, 끊임없는 망해록(望海錄)의 후렴구를 뇌까리며, 그로 인해 줄기줄기 뻗어간 ‘서부길류(流)’의 기호와 상징의 날개들을 해명해 나가고 있다. 그의 해양수산 분야 전문성에서 우러나오는 질박하고 구수한 문체와 주제에 대한 절묘한 수식과 인용은, 통속적인 풍류만필(風流漫筆)을 압도하는 간결미와 수미일관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의 작품 속에는 문사로서의 반 백년 서정과 서사가 해송처럼 굳건히 뿌리 내리고 있다. 그 솔가지에는 그의 삶에 아롱진 희로애락의 역사들이 늠실거리고 있다. 서부길의 창작세계를 통칭한다면 ‘진솔한 사무사(思毋邪)의 필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한 맥아더 원수가 상륙정을 타고 들어온 뱃길이 인천항 앞바다 해저 갯골 비어수로(飛魚水路)다. 오늘도 내일도 그곳 인천 바다 위를 나는 큰 새, 신천옹(信天翁. albatross) 서부길 작가의 건필을 기원한다.
[2026년 正初에]
[참고-문헌자료]
1. 샤토브리앙 『무덤, 저 너머의 회상록』 (639-641p.)
2. 인터넷 - 나무위키 사전(2025) - ‘알바트로스’ ‘소사나무’
3. 한시어사전(2007) 전관수(국학자료원) - ‘곡신(谷神)’
4. (사) 해반문화(2022) – 자유게시판 (임유상 2022.7.15)~ ‘인천상륙작전1’
5. 노창수(2023. 펜문학11-12호) ‘한국 남도의 해양 소재에 대한 시적 형상화 고찰’
6. 인터넷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2026) ‘어부사시사’ ‘자산어보’
7. 서부길 『바다, 그 영원한 꿈』(2007. 교음사) . 『파일을 열며』(2017. 교음사)
[한 기 홍]
국제펜 이사(인천지역위원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회원. 인천문인협회 회원. 갯벌문학회 상임고문(제4대회장 역임). 시집 ‘가을하늘 고흐의 캔버스’. 수필집 ‘은빛 매미의 눈망울’ . 시산문집 ‘출항기’ . 포토에세이집 ‘풍경수필’ 등
[주소 ․ 연락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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