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세하러 산으로 -
국회의원이나 장관이 되고 많은 돈을 벌어 고급 승용차를 굴리면서 좋은 집에 살면 출세한 사람이라고 세인들은 말한다. 한껏 권력을 휘두르고 거드름을 피우면서 안하무인식(眼下無人式)의 행동거지를 하더라도 출세라는 단어 속에 그들의 부끄러운 행위들은 눈 녹듯 삭아들고 만다. 그래서 민초들은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하면서 힘없이 살아가다가 술이 거나하게 취하면 한때 유행했던 노래, 김용만의 ‘회전의자’ "~사람 없이 비워둔 의자는 없더라. 사랑도 젊음도 마음까지도 가는 길이 험하다고 밟아 버렸다. 아 억울하면 출세하라 출세를 하라~(중략)"를 부르면서 자신들의 처지를 위로한다.
노래를 부르는 것은 허탈감을 달래기 위함이지만 노래 속에는 사람치고 출세하고 싶지않는 사람이 없다는 내용이 구절구절 담겨있다. 그래서 민초들은 이런 노래를 통해 자신들의 신세를 한탄하기도 하고 노래에다 삶을 쓸어 넣기 때문에 “억울하면 출세하세요.”라고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 정작 자신들은 그런 노래를 부르지만 그런 소리를 들으면 가슴에 못을 박는 말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출세란 무엇이고 무엇이 진정한 출세란 말인가?. 원래 출세는 불교의 출세간(出世間)에서 유래한 것으로, 시끄럽고 복잡한 세속을 떠나 머리깍고 승려가 되어 산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산에 들어가 사는 것이 진정한 출세이다. 출(出)자를 뜯어보더라도 뫼산(山)자 위에 또 뫼 산자가 겹쳐 있는 모양이니 출자처럼 세속을 떠나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고 또 산으로 들어가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출세임이 명백해진다.
이처럼 모든 것을 훌훌 버리고 비운 채 떠나가는 나그네의 삶이 본래의 출세였다면, 이제는 한껏 채우고 가득 담는 삶이 출세로 변질되었으니 이는 분명 오도된 사회와 문화현상의 찌꺼기가 아닐 수 없다. 모두를 놓아버리고 마음을 비우는 불교적 맥락의 출세 개념이 조선시대의 유교를 맞자 유리알처럼 맑은 모습이 유교가 추구하는 가치인 입신양명(立身揚名)에 물들고 시들어 버린 것이다. ‘몸을 바로 세워 세상에 이름을 알리는 것’이라 설명풀이가 되니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인 출세와 아무런 다름이 없다.
고려시대에 승려가 되어 산으로 들어가는 길과는 달리 이조시대에 오늘날 사법고시나 행정고시에 해당하는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벼슬길을 걸어가는 입신양명은 세속에서 이루어지는 입세(入世)이지 어찌 출세라 부를 수 있겠는가?
지금도 행정고시 등에 합격해서 출세 길이 아닌 입세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다. 진정한 출세는 산으로 가는 것인데 우리는 이들을 보고 출세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이제 이들도 세인들도 출세가 무엇인지를 잘 알아야만 건강한 사회와 삶을 유지할 수 있고 세상도 더욱 밝아질 것이라 생각된다.
한창 여름이 익어가려는 지금, 가까운 산에라도 가 보자. 나는 진정한 출세를 하고 싶어 자주 산으로 간다. 이런 저런 푸른 잎들의 길이 열려 있는 산길을 가다 보면 어느 새 시인이 되어 시 한 수가 생각난다. 그래서 나는 산에 있을 때 자주 시인이 된다. 글로 쓰지 않는,마음으로 그리는 시인말이다. 가깝고 먼산 가릴 것 없이 산중의 풍경은 지금 온통 기이하기 짝이 없으니 더욱 쉽게 방랑시인이 되고 만다. 석양을 받으며 천천히 산길을 걷노라면 누구에게나 자신도 모르게 휘파람이 새어 나온다. 이 무한의 자유스러움과 행복감이라니...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내 몸은 아무런 중력을 느끼지 못하고 시냇물처럼 흘러 간다.
만산청엽(萬山靑葉)의 풍경에 들어서면 모든 것이 오묘한 빛갈로 바뀌고, 흐르는 물소리도, 새들의 지저귐도 초여름이 써 놓은 시를 풀이하는 소리로 들린다. 이처럼 이 멋진 계절은 산중의 모든 존재를 들뜨게 한다. 어느 누구도 그럴 것이고, 계곡물도 새들도 그렇고, 어떤 사물이든 풍만한 여름이 써 놓은 시를 벅찬 가슴을 안고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러면서 이를 바라보는 우리에겐 한없는 평안을 준다.
수줍게 핀 야생화들, 산뜻한 잎새들의 산길, 조잘거리는 계곡 물소리들이 친구가 되어 우리를 반기는 이 풍성한 초여름의 산으로 한번 가 머물러 보자.
입세가 아니라 진정코 멋진 출세를 위해 산으로 가 보자. 자주 출세하러 산으로 자주 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