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기부금은 제 주머니가 아니라 손님 주머니에서 나오는 거잖아요? 손님이 낸 돈을 가지고 제가 생색내는 것 같아 쑥스러워지더라고요. 저는 중간에서 대리기부를 하는 심부름꾼 역할이면 만족합니다."
서씨는 경상남도 함양군의 농가에서 태어났다. 4남1녀 중 셋째다. 집안이 어려워 1982년 중학교를 졸업한 뒤 곧바로 서울에 올라와 구로공단 인쇄공장에 취직했다.
"첫 월급이 3만원이었죠. 월급은 조금씩 올랐지만 생활비에 고향에 부치는 돈까지 감당할 수가 없었어요."
아침 7시에 일을 시작해 야근까지 마치면 밤 11시였다. 그는 그때부터 여관을 돌며 김밥, 찹쌀떡, 튀김을 팔았다. 일요일에는 동화책 외판원을 했다. 기를 쓰고 일해서 1985년 군대 가기 전까지 280만원을 모았다. 그는 "그 돈으로 고향 부모님께 집을 하나 사 드렸는데, 아직 그 집에 사신다"고 했다.
인쇄공장 시절, 그는 아등바등 저축하는 한편으로 봉사모임도 꼬박꼬박 참석했다. 고아원과 지체장애인 보호소 등을 돌며 목욕봉사를 했다. 월급을 쪼개 기부도 했다. 지금까지 50회 이상 헌혈을 해 대한적십자사로부터 헌혈 유공자 금장도 받았다.
“저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 뻔히 보였는걸요. ‘크게 도움이 못 되더라도 평소에 조금씩이라도 돕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이제는 꽃가게 주인이 된 서씨는 지난해 착한가게 캠페인에 참여하면서부터 또 다른 습관이 생겼다. 고객에게 기부 의사를 물어본 뒤 고객 이름과 구매액, 휴대전화 번호를 적는 것이다. 서씨는 매달 초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꽃을 사간 고객 이름으로 꽃 가격의 3%를 기부한다.
그러고 나서 고객들의 휴대전화로 일일이 기부 확인 문자를 보낸다. 1000원짜리 장미 한 송이를 사도 30원을 손님 이름으로 기부한다. 문자 보내는 비용은 서씨가 부담한다. 이와 별도로, 복지기관 등에서 경조사 등에 쓸 꽃을 사갈 때도 꽃값의 10%를 기부금 명목으로 되돌려 주고 있다.
“그냥 기부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세세하게 신경 써야 하니 일이 갑절로 늘어난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손님 이름으로 기부하면 손님도 이익, 나도 이익”이라고 했다.
“그래야 기부의 즐거움이 널리 퍼지죠.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한 손님의 1년 기부액수가 2만원을 넘으면 그 손님에게 연말정산용 소득공제 기부금 영수증을 보내줍니다.
그렇게 기부의 즐거움을 맛본 손님들은 제 가게 단골이 됩니다. 주위에 ‘착한화원에 가라’고 홍보도 해주시고요. 절대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은행 통장을 보여줬다. 지난 9월분 ‘착한화원 고객 기부금’으로 16만6900원이 찍혀 있었다. 그가 컴퓨터에 꼼꼼하게 기록하고 있는 ‘기부장부’에는 한 번에 한 사람 이름으로 1만1000원이 올라가 있는 경우도 있었다. 서씨는 “손님이 꽃을 30만원 이상 산 게 아니라, ‘좋은 일 한다’면서 1만원을 더 주고 간 것”이라고 했다.
“손님 열 분 중 한두 분은 꼭 500원, 1000원, 만원씩 더 내놓고 가세요. 거스름돈을 안 받는 분도 있고요. 그럴 때마다 세상 온정을 느낍니다.”
그의 가게는 착한화원 ‘1호점’이다. 그의 아이디어에 감탄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아예 프로그램으로 정착시킨 것이다. 현재 착한화원 ‘가맹점’은 23호까지 늘었다. 서씨처럼 일일이 손님이름으로 기부하는 가게는 5곳이다. 나머지 가게는 형편에 맞게 매달 1만~5만원씩 기부하고 있다. 그는 “착한화원처럼 착한음식점, 착한세탁소, 착한수퍼, 착한과일가게, 착한찜질방, 착한노래방도 계속 생겨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 달에 1만원은 별거 아닌 것 같죠? 하지만, 자영업자 10만명이 똑같이 기부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매달 10억원이 모입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은 기부에 딱 맞는 표현입니다.”
첫댓글 정말 자랑스런 함양인입니다.
산으로 둘러싼 함양 사람들 착한 사람이 많아서 좋은고장이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