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KPFL(Korean Professional Football League:한국프로축구연맹)에 소속된 프로축구팀으로 연고지는 울산광역시, 구단주는 김형벽, 단장은 권영철이다. 1983년 12월 6일 네번째 프로축구단으로 탄생하였으며, 출범 초기의 감독은 전 국가대표 감독이었던 문정식, 코치는 조중연·김호곤이었다.
1984년부터 계속 프로리그에 참가해왔으며, 모기업의 과감한 투자로 네덜란드에서 활약하던 허정무와 장신 렌스베르겐을 스카우트하여 첫 출전한 1984년 슈퍼리그에서 부산 대우 로얄즈(지금의 부산 아이콘스)와 우승을 다투다 패하여 준우승을 하였다.
1986년 제1회 프로축구 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저력을 발휘하였다. 1990년 변병주·강득수·정종수 등을 영입, 초호화진으로 팀을 구성함으로써 전력면에서 프로 6개구단 가운데 최상위권이라는 평가도 받는 등 가장 유력한 우승후보였다. 하지만 개막과 함께 변병주·윤덕여·정종수·최강희·최인영 등 주전 5명이 월드컵 대표팀에 선발되어 팀 전력이 크게 약화됨으로써 하위권에 머물렀다.
1991년 독일 분데스리가(Bundesliga)에서 쌓아온 경험 및 코치수업을 마친 차범근이 감독으로 영입되어 시즌 초에 템포축구 선풍을 일으키며 축구계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지만 2위에 머물고 말았다. 얕은 선수층으로 인해 대체요원을 수급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힘과 체력을 가장 기본으로 하는 압박축구를 중도에서 포기하는 결과를 낳았고, 오랜 투병생활로 인한 변병주 및 송주석 등 공격수의 부진과 골키퍼 최인영의 결장도 큰 부담으로 작용하였다.
1992년 시즌 초 무서운 기세로 돌풍을 일으키며 시즌 중반까지 계속 1위를 고수하였지만 10월 14일 포항 스틸러스와 벌어진 경기에서 또다시 뒷심부족으로 우승을 놓쳤다. 선수들의 대량 부상 등으로 위기에 몰리자 외국선수 조란과 고란을 등용하였지만, 정규리그 득점력에서 대우 로얄즈와 함께 최하위를 기록하였다.
1994년 말 고재욱이 감독으로 취임하여 통제를 중시하는 철저한 관리보다는 특유의 인화력을 바탕으로 한 ‘선수 끌어안기’를 시도함으로써 선수단 내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1995년의 통합성적은 1위, 아디다스컵대회에서는 우승하였지만 정규리그에서는 한번도 우승을 하지 못하였다. 대체로 소수정예주의를 표방, 변화가 별로 없는 멤버로 경기에 임했는데 이는 탄탄한 조직력을 다지는 데 한몫했지만 결과적으로 점차 성적이 떨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1996년에는 창단 13년 만에 전기리그 우승에 이어 한국프로축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였다. 비록 4강진출에 그쳤지만 팀 창단 이후 처음으로 타이틀이 걸린 국제대회인 제7회 아시안컵위너스컵대회에도 출전하기도 하였다. 1997년 성적은 대회 3위, 아디다스컵대회 3위, 프로스펙스컵대회 A조 4위로 중상위권을 유지하였다.
1998년에는 현대자동차에서 현대중공업으로 팀 소속이 바뀌었으며, 정규리그에서는 6위에 그쳤지만 아디다스 코리아컵대회에서는 우승을 차지하였고 한해 동안 4개 대회에서 득점왕을 독차지하였다. 1999년에는 대한화재컵대회 3위, 바이코리아컵대회 6위, FA컵대회 3위를 차지하였으며 2000년에는 코리안리그에서 최하위를 하였다. 2001년 한국 프로축구 코리안 리그에서 10개 팀 중에서 6위를 차지했다.
홈구장은 울산 문수 축구경기장이다. 마스코트는 ‘아기호랑이’로, 구단 심볼칼라인 황금색과 녹색으로 된 유니폼을 입고 축구공을 들고 있으며, 얼굴에는 자신감이 가득차 있다. 또한 파란 축구화는 힘차고 경쾌한 호랑이의 발걸음을 상징한다. 엠블렘은 대표적인 이미지인 포효하는 호랑이의 모습과 중앙의 축구공을 표현하여 국내 프로축구계를 평정하고 호령하는 강한 축구단의 이미지를 상징한다.
또한 전통 있는 축구명문가의 위상과 품격을 상징하는 전통문장 형태인 방패를 도입하였고, 로고는 다이내믹하면서 믿음직스러운 이미지를 나타낸다. 색상은 현대의 기본색상인 초록색과 노란색을 설정하여 현대그룹의 소속감과 자부심을 부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