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한번 꼭 가고싶었던 새벽답사
계절이 익어갈수록 환한 새벽보다는 어둔 새벽이 더 많아지고 있음을 실감하는 바
어서 참석을 재촉하지 않으면
그간 카페를 가득 메우며 보여주었던
맑고 청아한 신새벽의 사진들이 점점 더 아쉬워질 것 같아
쏟아지는 잠을 박차고 깜깜한 밤길 아파트를 나선다.
낯이 익은 산적
배낭을 멘 것으로 보아 나와 뜻이 같은 일행임을 직감.
안도감에 차에서 내릴 즈음
우리의 노란버스는 몇몇 새벽손님들을 안은 채
남문에 도착했다.
여러답사에 익숙한 듯 보이시는 신은주님
신은주님과 동행한 친구분과 그분의 5학년 딸.
아들이 못일어나서 아빠만 오신 오제환님
새벽답사가 이제야 처음이라시는 녹색연합 정기영간사님
그리고 아이를 계획적으로 남의 집에 재우고
남편 새벽출장땜에 혼자 나온 나.
아직도 깊은 잠에 빠져있는 도시
까만도시에 유난히 발광하는 여관글씨
한낮 침침한 속내를 보는 이 별로 없는 이 시간이나마
환하게 까발리고 있는 모습이 측은한 목척교 아래
별다른 느낌없는 잠속의 도시에 애써 흔적이라면 흔적.
지하철 1호선의 시발역인 판암동 대로를 달리다
세천유원지 쪽으로 우회전.
차는 임도를 따라 천천히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새천년 해맞이가 테마로 부상한 몇 년 전부터
식장산은 시민들에게 가까이서 진경관을 보여줄 수 있는
손쉬운 장소로 각광을 받게되었다.
짚차로나 오를 수 있었던 비포장도로와
방송송신과 군사시설 등의 민간인 경계시설 들의 존재로 인해
감추어졌던 식장산의 비경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자
이따금은
자동차와 사람이 또 정작 자동차와 사람들 때문에 고통을 받고 고통을 주고있는 산.
항상 생각하는 문제지만,
콘크리트로 깔리지 않아도 임도는 그 역할에 충실할 수 있었고,
땀내며 걷는 이에게도 산은 항상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건만,
우리는 콘크리트를 깔은 자를 통탄하면서도
우리는 그들로 인해 이렇게 편안하게
그 긴 산길을 10분만에 내오를 수 있음을
또 감사하는 아이러니를 범하고 있다.
깊은 숲속 중턱
우리는 산이 품은 위대한 생명들이 자고있는 현장에서
밤을 빌어 그들의 활기를 보여주는
또다른 밤의 무리들을 엿보기로 하고 차를 세웠다.
밤에 우는 풀벌레소리
밤에 우는 새소리
밤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의 소리
밤에만 보여줄 수 있는 정적소리...
우리는 이미 그 산에 하나가 되어있음을 깊은 침묵으로 느끼고 있었다.
달빛
늑대가 나타나는 배경으로 익히 보아왔던 그믐달(눈썹모양의 초승달과 반대모양)
누군가 수저로 한 입 뚝 떠먹어 자욱만 선연한 모양새.
거뭇거뭇 흔들리는 교목의 머리들 사이로 보는 달빛은 한결 멋스러웠고,
옷속 깊숙 파고드는 차가운 밤기운은 차가운 달빛에 더 을씨년스러웠더라.
부러 걸음걸음 정상까지 걷기를 자청.
아!
꼭대기에 이르는 한발짝마다 한 뼘씩 보여주는 별들의 잔치
눈앞에 쏟아진 별들의 도시호수에
패러글라이더들은 왜 밤에 날아 빠져들지 않을까...
활주로처럼 정열한 가로등이 대전의 척추와 동맥을 그리면서
이 즈음이 어딜까...저 즈음이 어딜까...
하늘의 별자리 만큼이나 땅의 별자리 찾기는 또 어렵더라...
시내가 흐른다.
구름의 강이 대청호 위에서부터 가오동 쪽으로 천천히 흘러가고 있다.
까만 밤에 하얀 강물이 고요히 흘러가고 그 뒤로는 도시의 별들이 쏟아지고 있다.
동이 터오는 기색.
동그란 해는 볼 수 없었지만, 구름에 혼을 빼고 있던 틈을 타 동은 서서이 터오고 있었다.
발 아래 펼쳐진 구름, 구름위에 뽕긋 올라앉은 식장산
옆구리에 끼고 있던 대청호 구름은 때지어 이제 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대장관.
구름이 살아있었다. 너 나 할 것없는 구름은 서둘러 산을 오르더니만
어떤 놈은 먼저 내려가서 용운동의 하늘에 진을 치고 있었고,
뒤쫒는 어떤놈들은 끼엉끼엉 힘들게 아직도 산에 오르고 있었고...
강한 생명력의 현장...
좀 더 좋은 그림을 보고자 우리는 헬기장으로 이동했다.
이제 우리의 시야는 대전에 머무르지 않고,
청주로, 옥천으로, 금강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산이 움직여서 외딴자리에 머무르고, 또 이동하여 뜬금없이 나타나고...
지금 우리앞에 펼쳐진 장대한 운무의 바다 속에
이따금씩 돌출했다 사라지고 또 생겨나는 작은 섬들...
꼭 그 느낌 그대로라 하신 신은주님의 마이산 이야기처럼...
맛난 국수가 다시 우리를 즐겁게 하는 시간.
사진으로만, 말로만 듣던 안여종선생님의 국수를 비로소 맛보는 역사적인 시간.
장모님이 담그신 아삭아삭 배추김치를 송송 썰어서
따끈하고, 구수한 멸치국물에 말아먹는 국수의 맛이란...
아무리 밥힘으로 사시는 정기영간사님이라지만,
안선생님은 국수 두뭉치를 그렇게 한꺼번에 담아주시면 국수를 먹으라는거요, 말라는 거요.
증말 너무 맛있는 것 넘 쪼끔 먹으면 신경질 나는 거 아시죠? 이~~~~~~~~잉
부여 고란사 밑에와 보문산 고촉사 옆 동굴 속에 산다는 고란초가
이 식장산 일원에도 산다는 안선생님의 말씀으로
고란초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사람들끼리 한번 찾아보자고 애초 예정은 했었건만,
유일한 우리 신성동 어린이를 지각하게 만드는 일은 우리 어른들이 절대 해서는 안될 일.
아쉽지만 일정을 여기서 마감하고 산길을 내려올 수 밖에 없었다.
이제 동이 터 환한 산길
깊은 산 만큼이나 우뚝우뚝 서 있는 교목들이 식장산 고유의 원시림을 잘 말해주고 있고,
임도는 식장산의 서쪽을 따라 나있는지라 나무에 옷을 입힌 이끼와
영글어가는 봄에게도 쉬이 눈길을 안내어줄 법한 응달지역이
아까의 까만길에서 보여주지않은 것들.
대전의 8경 가운데 왜 하필 식장산 생태림이었는지를 이 신새벽에 통감할 수 있었으니...
이제 아침을 달리는 대전천.
하루를 시작하는 새들의 모습에 온 정신을 다 빼앗겼다고나 할까...
트는 동과 함께 벌써 자리를 잡은 쇠백로와 중대백로, 왜가리들.
목척교 주변에 가족을 이루며 흩어져 보여주는 해오라기들.
제놈이 무슨 참새나 비둘기인가,
다리는 길다란 놈이 제비하고 키를 다르게 해
나란히 대전천을 가로지르는 전깃줄에 앉아있는 우수꽝스러운 쇠백로 한 마리.
때 이르게 올라 온 흰뺨검둥오리 놈들.
그리고 돌인지 새인지 구분 못하게 물에 깔려있는 쇠오리들.
대전천과 유등천이 만나는 삼천교 밑에 이르자
본격적으로 집단조회에 들어간 엄청난 무리의 백로떼들
아마도 겨울은 오고있고.
네들은 갈래 말래...편가르기 하는 전초전인지는 모르지만,
한갓 미물도 이렇게 계절을 준비하고, 분주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인간임에 오만하여 본연의 모습을 상실하고 살지나 않나 들여다볼 수 있게하는구나.
까만 산 침묵 속에서 산밤 떨어지는 소리를 들어보고,
멀리 지리산 새벽에 오르느라 미리 집 떠나있지 않아도 되고,
전선위에 앉은 쇠백로놈의 희안한 모습에 웃을 수 있고,
이른 아침 새들의 분주한 조회를 볼 수도 있었던
아주 특별한 새벽, 아주 특별한 아침
우리의 새벽답사는 이렇게 매번 별나고 귀한 경험으로
우리를 감동시키고 있었습니다.
정적과 운무를 함께하셨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좋은 경험을 제공해주신 안여종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12회 새벽답사에 참여하신 회원 여러분 감사합니다. 저도 곧 사진을 정리해서 글을 올리지요.. 오늘은 영상단 아이들과 백제를 느끼러 익산에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