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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왕성에서 온 편지
새로운 태양계, 명왕성이 왜성으로 표시되어 있다. 출처: 미항공우주국 싸이트
‘수, 금, 지, 화, 목, 토, 천, 해, 명’의 순으로 알고 있던 태양계의 아홉 행성에서 이제 명왕성은 추방되었다. 1930년 2월, 미국의 천문학자 클라이드 톰보(Clyde W. Tombaugh)에 의해 발견된 이 행성에는 저승신 플루토의 이름이 부쳐졌었다. 애초부터 태양계의 행성 자격을 놓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명왕성은 안타깝게도 체코 플라하에서 열린 국제천문연명((IAU) 총회의 판결에 따라, 결국 태양계의 행성 자격을 박탈당하고, 소행성 ‘134340’으로 격하되었다.
태양에서 명왕성까지의 실제 거리는 5,913,520,000km(39.5AU - 1AU란 지구와 태양 사이 거리인 약 1억 5,000만 km를 의미한다. 즉, 태양을 중심으로 보았을 때, 명왕성까지의 거리는 지구까지의 거리의 39.5배에 해당된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분은 자릿수를 세어봐야 그 거리감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태양과 지구사이의 거리를 1미터라고 했을 때, 명왕성까지의 거리는 39.5미터이다. 이토록 먼 명왕성까지 이글거리는 태양빛이 닿기는 제법 무리가 있는지, 명왕성은 플로투란 이름에 걸맞게 극저온의 메탄대기로 덮여 있다. 명왕성의 표면온도는 -230에서 -210도 라고 하니, 설령 인류가 명왕성 근처까지 우주선을 타고 갈 수 있다고 해도, 우주선 출구를 열고 대기권에 진입하려는 순간, 급냉처리될 것이다.(물론 저온을 견디는 우주복으로 인해 활동에 지장없겠지만!)
태양계의 소행성들 ( 출처:미항공우주국 홈페이지)
한편 명왕성은 태양계를 돌고 있는 아홉 행성 중에서 크기가 가장 작아 반경이 지구의 1/5에 불과하고, 질량은 달의 1/6에 불과하다고 한다. 또한 명왕성은 해왕성보다 평균 1.3배 먼 거리에서 황도면에 대해 17도나 기울어진 궤도를 돌고 있으므로 찾기에도 쉽지 않다고 한다. 그렇지만 1978년, 미국 로웰 천문대의 크리스티란 사람은 미국 해군 천문대에서 촬영한 사진 분석을 통해, 명왕성에도 위성이 있음을 발견했다. 카론(저승의 강을 건네다주는 뱃사공의 이름이다)은 명왕성에서 약 1만 9천 km 떨어진 위치에서 6.387일을 주기로 명왕성 주위를 공전한다. 위성 치고는 명왕성 지름의 반이나 되는 크기 때문에, 발견 당시에도 명왕성의 태양계 행성 자격을 놓고 전문가들 사이에서 시비를 불러일으켰다고 전한다. 그런데 2003년, 명왕성 주위를 도는 또 다른 위성 ‘제나’가 발견됨으로서(지금은 UB313이라고 한다) 공전 주기도 기울어져 있고, 중력도 충분하지 못한 지옥의 행성인 플루토 탄핵준비위원회(국제천문연맹)에 그럴싸한 근거가 더해지게 되었다. 아홉 개의 형성이 태양을 중심으로 빙빙 돌고 있는 내 머리 속 천체도가 다시 그려져야 하는 번거로움보다, 형들만 못하다고 손가락질 당하다 문중에서 이름까지 지워진 막내처럼 명왕성이 측은하게 여겨지는 까닭은, 내가 자비심이 많은 사람이라서 일까? 아무래도 내게는 힘없이 내쫓긴 명왕성의 신세가 처자식 있는 말단 사원으로 자꾸만 비유된다. 참 쓸쓸한 일이다.
아래쪽이 명왕성이고 위쪽은 카론이다. 명왕성 표면은 질소, 메탄, 암모니아, 일산화탄소 등이 서리가 되어 쌓여 있다. 한편 카론은 물이 언 얼음으로 뒤덮여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출처: 미항공우주국) 좀 귀찮은 일이지만, 책을 다시 편집해야 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내가 걱정해야 할 일이 아니니, 이런 나를 두고 오지랖이 넓다고 핀잔을 주는 사람도 있을 게다. 하지만, ‘명왕성’에 대한 애석한 마음을 마음 한 켠에 갖고 있던 나를 한 순간에 사로잡은 제목의 그림책이 있다. 로렌 리디가 글, 그림 작업을 한 ??명왕성에서 온 편지??이다. 물론 이 그림책은 명왕성이 행성 자격을 박탈당하기 전에 만들어졌으니, 당연히 여기에서는 태양계에서 가장 큰 공전 주기(무려 247.80년)를 갖고 여덟 다른 행성들과 마찬가지로 태양의 주위를 돌던 행성으로 등장한다. 어린 시절의 내 꿈처럼 이 그림책 속 아이들은 ‘우주로 여행사’가 마련한 아홉 행성 탐사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이들은 수성부터 차례로 행성들을 방문해, 짤막한 엽서를 지구 집으로 보낸다. 가람이라는 여자 아이가 마라도 끝마을 9번째 집에 사는 할아버지에게 보낸 엽서는 내 마음을 진공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우주적 시간의 그 무궁함 속에서도 인류의 우주 탐사의 역사가 이룬 업적과 진보를 보면서, 광활한 우주를 인류가 언제나 개척할 수 있을까 싶었던 내 어린 시절 걱정 하나가 막상 인생 절반 정도 살아온 내게 이제는 한갓 작은 우려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명왕성이 태양계의 공식 행성이든 왜성(dwarf planet)이든 간에, 명왕성에서 엽서를 부치려면, 다소 고전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우표가 필요하다. 이와 관련된 실제 있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소개할까 한다. 1991년 10월 1일 흥분한 전세계의 우표 수집가들과 아마추어 항공관측사들이 JPL(Jet Propulsio Laboratory)의 폰 카르맨 오디토리움(Von Karmen auditorium)에 모여 미우편국에게 항의를 했다. 태양계 우표 시리즈 중에서 유독 명왕성만 빠진 상태에서 우표 10종이 발행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미항공우주국은 인류가 이룩한 태양계 여덟 행성 탐험을 기념하기 위한 일환으로 화가 론 밀러(Ron Miller)에게 태양과 지구의 달을 포함한 8개 행성의 모양을 담은 10개의 우표에 그림을 그려줄 것을 부탁했다. 그렇다면 유독 명왕성을 빠뜨린 이유는? 유감스럽게도 명왕성은 ‘아직 제대로 탐색되지 않았다(Pluto Not Yet Explored)'고 JPL의 태양계 및 외계 행성 관측 프로젝트 대리인 로버트 스태(Robert Staeh)가 변론했다.(출처: http://www.newforcecomics.com/trekref/pluto 중에서) 사실 보이저 2호의 명왕성 관측 실패 이후, 미국항공우주국은 2001년에 명왕성 특급(Pluteo Express)를 발사하여 2013년에 명왕성 15,000km까지 접근하여 탐사할 계획을 세웠지만, 이 역시 천문학적인 예산에 질려 취소된 바 있다. 아무래도 지옥의 행성이라 알려진 명왕성은 제대로 대접을 받은 일이 거의 없는 듯하다. 그런데 그 후, 말리공화국에서는 명왕성의 발견자 크라이드 톰보우와 명왕성을 담은 우표를 발행했다. 그나마 약간 위안이 된다고 할까?
그럼 내가 어쩌다 명왕성 퇴출 문제를 놓고 심각한 표정을 짓게 되었는지, 그 개인적 동기가 무엇이었는지 내 개인사를 추적해 옛 시절로 돌아가 보도록 하자. 아주 오래 전, 내가 영어를 전혀 모를 때 아버지는 ‘내쇼날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지’를 우리 형제들을 위해 정기구독 신청하셨다. 처음 받은 그 잡지 표지에는 행성 하나가 모델로 둥근 배를 내밀고 있었다. 그리고 부록으로 따려온 태양계(Solar System)의 컬러 브로마이드는 내 방 한 쪽 벽에 붙여졌다. 아마도 그 때 나는 초등학교 5학년 정도였을 것으로 기억이 된다. 어림짐작으로 행성들 대강의 영어 이름을 익히면서 나는 막연하게나마 태양계의 아홉 행성들의 특징들을 익혔다. 또 어느 날, 어머니는 1996년 작고한 칼 세이건이 쓴 ??코스모스??를 사주셨다. 두툼하고 큰 판형의 그 책을 당시 읽을 수 없었지만, 이제 생각해보니 아버지나 어머니가 우리 형제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당신들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우주의 신비였을 것 같다. 어쨌거나 태양을 포함해서 꽉 찬 숫자 십(10)을 통해 완성의 의미를 갖고 있던 태양계로부터 명왕성이 함량 미달의 이유로 퇴출된 사연은 미래에 대한 동경을 품게 해준 옛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을 내게서 앗아간 슬픈 일이 되어 버렸다.
축소된 태양계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 작가 중에는 해리 포터와 이름이 비슷한 지젤 포터(Gigelle Potter)가 있다. 지젤 포터의 주인공들은 납작하다. 얼굴이 넙대대하고 팔 다리가 가느다란 것이 손놀림이 유연하지 못한 어린애가 그린 인물들 같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정이 간다. 지젤 포터를 조금 아는 독자들이라면, 그녀의 그림책에는 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내용이 많음을 눈치챘을 것이다. 우리나라 초등학교보다 좀 더 낫은 교육환경을 제공하는 미국 학교의 초등 교과 과정에는 과목 간의 연결 학습이 많다. 예컨대 지금 소개하고자 하는, ??부끄럼쟁이 바이올렛??이란 제목의 그림책에서는 연극을 통해 아이들이 태양계의 행성을 공부하는 모습이 다루어진다. 맥그로힐(McGrawHill) 출판사의 초등 4학년 교과서를 보니, ‘태양계(Solar System)’ 단원이 있다. 그렇다면, 아마도 ??부끄럼쟁이 바이올렛??에 등장하는 바이올렛은 초등 4학년일 확률이 높다.
이 그림책에서 ‘태양계 행성 연극’은 하나의 소재로 제시된다. 이 책에서는 소심하기 짝이 없는 한 여자 어린이가 연극을 통해 자신의 성격을 바꾸게 되는 심리적인 면에 주제의식을 두고 있다. 그런데 내 관심은 오히려 무대 위에서 아이들이 맡은 행성 연기에 더 쏠린다. 학생 하나하나에 더욱 세심한 관심을 보일 수 있는 미국 학교 환경에서, 바이올렛의 선생님은 연극을 올릴 때, 부끄럼쟁이 바이올렛이 무리 없이 자신이 맡은 배역을 소화하면서도 연극에 참여하는 연대의식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 커튼 뒤에서 연극 전체를 이끄는 나래이터의 역할을 맡긴다. 소심한 바이올렛의 성격을 이용해 툭하면 놀래대던 해리엇이란 소년이 정작 무대 위에서 자신이 맡은 역의 대사를 잊고 헤매이는 동안, 무대 위에서 목소리 연기에 열중하던 바이올렛이 재치있는 말을 통해 평소 해리엇에 대한 억울함을 풀게 되었다는 것이 줄거리이다. 그런데 무대 위에서 각 행성의 역을 담당한 아이들은 대사 처리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이 제대로 위치를 잡는 일이다. ‘수,금,지,화,목,토,천,해,명(여기에서는 명왕성이 있다. 명왕성 퇴출 발표 이전에 책이 만들어졌다)’의 순서로 지구 둘레에 서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지, 아이들은 제대로 무대 위 자기 위치를 잡지 못한다. 이 때 재치 만점의 선생님이 무대 위에서 헤매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멋진 큐를 날린다. 한 번 들어보자.(우리말로 옮겼을 때는 본래의 의도가 해쳐지므로, 영문 그대로 옮기겠다)
“My Very Excellent Mother Just Served Us Nine Pizzas."
Mercury Venus Earth Mars Jupiter Saturn Uranus Neptune Pluto
어떤가? 초등 4학년 아이들에게 문법적으로도 오류 없고 의미론적으로도 팍 마음에 꽂힐 저 한 문장의 어휘 배열을 잘 들여다보자. 영어로 수성,금성,지구,화성,목성,토성,천왕성,해왕성,명왕성에 해당되는 저 단어의 첫 글자들, 정말 재미있고도 기발하다. 이 큐 덕분에 아이들은 자신의 무대 위 좌표를 잡지만, 일단 연극이 정식으로 시작되고 집중 조명이 켜지고, 무대 밖에는 자신을 쳐다보는 무수히 많은 눈들이 반짝거리면 배짱 좋던 아이들 중에서도 일부는 더러 시커멓게 자신이 처리해야할 대사를 잊게 된다. 해리엇? 말썽꾸러기 해리엇이 바로 무대공포증이 있을 줄, 소심쟁이 바이올렛이 어떻게 눈치라도 챌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다른 아이들의 대사까지 통째로 외우고 있던 바이올렛은 대사를 까먹고 머뭇거리는 해리엇의 침묵의 틈을 타서, 해리엇이 맡은 화성에 대한 자식을 비꼬아 정작 해리엇을 말로서 공격한다. 그 재치에 감탄한 관중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음은 물론이거니와, 수줍음을 극복한 선생의 칭찬까지 받게 되었으니, 이를 두고 일석삼조라 하든가?
아무튼 소심쟁이 바이올렛의 성격개조에는 성공을 거두었으나, 지젤 포터에게는 귀찮은 일이 생겼다. 위에 옮겨 적은 문장에서 피자(pizzas)를 빼고, 그림에서 명왕성도 지워야 한다. 명왕성 없는 태양계 여덟 개의 행성으로도 맛깔 나는 암기 보조용 문장을 만들어야 한다. 다행히 말썽꾸러기 해리엇이 맡은 역이 화성이었으니 덜 귀찮지, 만약 명왕성이었더라면, 개정판 작업은 훨씬 더 복잡해졌을 것이다. 어쩌면 중반부 이후부터는 완전히 새로운 내용이 되어야 했으리라.
지젤 포터의 이 그림책이 태양계를 소재로 삼고 있는데 반해, 로렌 리디의 ??명왕성에서 온 편지??는 지식 전달에 주력하고 있다. 픽션과 논픽션의 균형 잡힌 읽기 학습이 새롭게 조명되는 이 시점에서 이왕이면 어른들부터 이 두 권의 그림책을 접해보길 권장하는 바이다. 나는 최근 KBS 아나운서인 태의경씨의 ??우주콘서트??를 야금야금 읽고 있다. 더불어 울프 다니엘손이 지은 ??시인을 위한 물리학??과 방민호,박현수, 허혜정 공저의 ??시를 써야 시가 되느니라??를 읽는다. 과학적 지식이 바탕이 되어야, 창의성의 영역도 무한대로 확장될 수 있으리라는 나름대로의 전제하에서 스스로 내 전제를 증명하려고 애쓰고 있는 셈이다.
명왕성 복귀를 기다리며
구스타프 홀스트
홀스트의 <행성>은 지구와 명왕성을 제외한 일곱 개의 행성들의 이름을 부친 곡들의 모음으로 되어있다. 태양계 행성의 나열 순서에 따라 곡 배열이 되어 있지 않지만, 마지막 곡 타이틀에 해왕성이 부쳐있다. 홀스트가 이 모음곡을 작곡하고 발표한 해가 1914년이라고 하니, 1930년에 발견된 명왕성이 전체에서 빠져있는 것이야 당연한 일일 수 있다. 게다가 홀스트는 당시 인도 철학과 점성술에 관심을 갖고 이에 착안해서 각각의 곡에 ‘화성: 전쟁의 신’, ‘목성: 기쁨의 신’, ‘토성: ‘늙은이의 신’ 천왕성: ‘신비의 신’ 등의 부제를 붙였지만, 정작 본인은 표제 음악이 아니라 주장했다. 훗날 명왕성이 발견된 다음, 콜린 매튜스라는 작곡가가 ‘명왕성’을 작곡해 홀스트의 <행성> 마지막 곡인 ‘해왕성’에 덧붙여 2006 이전까지 우리별 지구를 제외한 태양계의 행성들을 모음곡 속에 갖추게 하였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콜린 매튜스의 ‘명왕성’이 무용지물이 되는 것일까?
모음곡 <행성>은 상당히 다채롭다. 4관 편성에, 수많은 타악기, 2대의 하프와 첼리스타, 오르간에 여성합창까지 포함되어 있어 그야말로 다양한 행성의 모습을 허블망원경으로 바라볼 때의 신비감과 엄청난 공간감을 공감각적으로 느끼게 해준다. 어떤 곡인지 내가 아무리 설명해도 생판 들어본 것 같지 않은 듯 낯설게 느끼시겠지만, 정작 이 중 가장 대중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목성’을 들려드리면, 10명 중 9명은 ‘아하, 이 곡이구나’하며 자신의 무릎을 치게 될 정도로 익숙한 곡임을 알게 될 것이다. 워낙 구성적 변화도 크고, 축제적 분위기가 녹아 들어가 있어서 행사 사전 행사에서 자주 연주가 되니 귀머거리로 지내지 않았다면 그간의 자신의 음악 분야에 대해 무지가 게으름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치게 될 것이다.
‘목성’이 가장 유명한 것은 무려 6개의 혼으로 시작되는 동기부의 장대한 스케일 때문이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트럼펫과 트롬본 연주로 시작되어, 바순으로 바통을 넘겨주다 현악기와 호른이 이어받는 2주제로 전개되는 웅숭깊은 ‘천왕성’을 더 좋아한다. 특히 도입부에서 금관 악기의 쩌렁쩌렁한 울림 뒤의 큰 북을 ‘타다다닥’ 내리 칠 때 바짝 긴장하게 된다. 하지만 간지럽게 전개되는 1주제 이하부터는 장난스럽기도 하고 신비롭기도 하다. 실로폰까지 등장하는 3주제까지 이르러서는, 이런 청각적 감상이 절정에 달하지만, 긴장감의 밀도를 높여주는 목관과 금관 악기의 붕붕거림과 지속되는 북소리와 더불어 물과 기름을 섞는 마술을 경험하게 된다. 홀스트 자신도 이 곡이 제일 잘 된 것 같다고 자평한 바 있다고 하니, 나 역시 음악적 감각이 영 없는 것은 아닌 듯싶다.
아무도 홀스트의 <행성>을 구스타브 말러의 교향곡들과 비교하는 이가 없으니, 내가 여기에서 인성이 등장하는 말러의 교향곡들을 들먹이며 ‘해왕성’을 이야기하면 참으로 생뚱맞은 짓이 될 듯도 싶다. 하지만, a,e.i.o.u의 모음만을 사용해서 발성하는 ‘모음창법’이 곁들여진 마지막 곡 ‘해왕성’에 첼리스타와 하프에 의해 뿌려지는 화음들은 무중력 상태의 우주를 우영하는 신비감을 더해준다. 바로 이 느낌 때문에, 나는 말러의 교향곡 2번 <부활>에서 ‘딩동딩동’ 어린이들의 합창으로 시작해 천상의 세계로 비상하는 대합창의 장엄함에 비교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데, 어째 나만 이렇게 느끼는 것일까? 아무튼 꼭 ‘해왕성’ 마지막 부분을 들어보시라. 첼리스타가 유리구슬처럼 맑은 천구를 청각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라고 할 때, 여성 합창단의 나긋한 보컬은 진공의 공간에 흐르는 시간의 분자들 같다고나 할까?
베를린 필하모니 연주회장을 뒤로 하고 있는 사이먼 래틀
그 증거로 그는 베를린 소재의 필하모닉홀에서 2006년 3월에 있었던 ‘별들을 향하여(Ad Astra)’라는 제목 하여 진행된 연주회에서 <행성>을 연주했다. 관악기와 타악기, 현악기 그 어느 악기군 할 것 없이 발굴의 실력자들이 연주하는 <행성>은 당연히 별들의 전쟁을 연상케 한다. 물론 직접 그 현장에 가있지 못했으니, 시각적으로 그 이미지를 옮길 수는 없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 영상이 EMI에서 출시되었으니, 직접 보신다면 내가 힘들게 입으로 옮기는 수고를 할 이유가 없다. 타악기와 관악기의 특출한 기교가 각별히 요구되는 모음곡을 연주한 베를린 필과 래틀과의 음반에 쏟아진 찬사는 가히 폭발적이다. “엄청난 공간감, 우주세계의 스케일”, “폭발해버리는 금관의 향연” 등등......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콜린 데미스가 작곡해 덧붙인 ‘명왕성‘’도 연주되었다는 것이다. 조용히 소멸되는 ‘해왕성’의 여운을 이어 등장한 후배 작곡가의 곡 ‘명왕성’은 지옥의 수호신 플루토(Pluto: 명왕성의 영어 이름)에 걸맞게 ‘죽음을 통한 부활’을 외친다. 자, 일단락 지어진 듯 보이는 명왕성의 지위 문제, 과연 명왕성은 행성으로 복귀될 수 있을까? 나로서는 도무지 모르겠는데, 여러분 생각은 어떠한가?
첫댓글 아주 재미있네요. 제 생각엔 명왕성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성격상 행성이 되어도 또는 왜성이 되어도 별 상관은 없을 거 같습니다. 어차피 하계잖아요. 글고 저 위에 행성이름 첫 번째는 Mercury가 아닐까 싶은데요. Mars가 두 번 나오거든요. 글고 첫 번째는 수성이라서.^^ 스펠링 맞나, 근데?
엇,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첫 행성도 Mars로 나와있네요. 수정할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