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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대 (烽燧臺) <첨부파일: 경남의 봉수대(사진포함)>
1. 봉수(烽燧)
봉수는 횃불을 뜻하는 봉(烽)과 연기를 뜻하는 수(燧)를 말하는데, 대략 수십리의 간격으로 바라보고 살피기 좋은 산꼭대기 요지에 봉수대를 설치하여, 밤에는 횃불을 올리고 낮에는 연기를 피워 중앙 또는 변경 기지에 급보를 알리던 통신방법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에 이미 봉수를 나타내는 기록이 보이는데, 특히 수로왕이 다스리던 가락국에서 A.D.48년(수로왕7년) 7월 27일에 허 왕후가 타고 오는 배를 보고 횃불을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2. 봉수대종류
봉수대종류로는 경봉수(京烽燧)와 연변봉수(沿邊烽燧) 그리고 내지봉수(內地烽燧)의 세가지가 있는데, 경봉수는 서울의 목멱산(남산)에 설치된 것으로 전국의 모든 봉수가 집결되는 중앙 봉수를 말하는 것으로 다섯 개의 화덕이 있었다고 합니다.
연변봉수는 국경선이나 바닷가 근처에 설치한 봉수로 최일선에 배치된 봉수를 말하며, 내지봉수는 경봉수와 연변봉수를 연결하는 중간봉수로 직선봉수(직봉)와 간선봉수(간봉)가 있었다고 합니다.
내지봉수의 직선봉수로는 다섯 방향의 길이 있었다고 하는데,
제1로는 동북쪽 방향으로 함경도 경흥에서 강원도를 거쳐 경기도로 연결되며,
제2로는 동남쪽 방향으로 경남동래에서 경북을 거쳐 충북과 경기도로 연결되며,
제3로는 서북 내륙 방향으로 평안도 강계에서 황해도를 거쳐 경기도로 연결되며, 제4로는 서해안방향으로 평안도의주에서 황해도서해안을 거쳐 경기도로 연결되며,
제5로는 서남쪽 방향으로 전라도 순천해안에서 전남해안, 전북해안 및 충남을 거쳐 경기 강화도 해안에 이르는 길로 연결되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내지봉수의 간선봉수란 직선봉수의 보조선로로서 직봉과 직봉사이의 중간지역을 연락하는 것으로 부산, 경남 지역에는 간비오산봉수--기장의 남산봉수--아이봉수--이길봉수로 연결되는 간봉이 있었다고 합니다.
3. 봉수 홰(炬)의 수
중국에서는 봉화를 올릴 때 땔감이나 섶 속에 이리 똥을 섞어서 불을 피우면 연기가 똑바로 올라 갔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리 똥을 구하기 어려워 소똥이나 말똥을 구해서 사용사였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의 경우 신호 방법으로 홰의 수를 평시에는 한 개, 적이 나타나면 두 개, 적이 국경에 접근하면 세 개, 적이 국경을 침범하면 네 개, 적과 아군이 싸우기 시작하면 다섯 개를 올렸다고 합니다.
서울에서는 지방에서 전달되어 올라오는 봉수연락망을 병조(兵曹)에서 주관, 분석하여 다음날 일찍 승정원(承政院)에 보고하였으며, 이상이 있으면 밤이라도 즉시 보고하였다고 합니다. 함경북도 종성에서 서울까지 500km를 5-6시간 걸려 도달하였다고 하므로 시간당 100km를 전달한 셈으로 그 당시의 어느 통신 수단보다 신속한 전달 수단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4. 봉수대의 근무
봉수대에는 하급장교인 오장(伍長-監考)과 봉수군인 봉졸이 배치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봉수대 근처에 거주하는 사람들로서 다른 일에 종사할 수 없고 오직 망보는 일에만 전념하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오장은 봉수군과 같이 생활하면서 봉수대의 이상유무를 수령이나 진장(鎭將)에게 보고 하도록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그리고 각 봉수대에는 도별장(都別將) 1명을 두고 그 밑에 별장(別將), 감고(監考),봉군(烽軍)을 두었다고 합니다.
황령산과 계명산봉수대에는 각10명의 별장이, 응봉, 구봉, 간비오산 봉수대에는 각6명의 별장이 배치되었으며, 감고는 1명, 봉군은 100명이 각각 배치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연변봉수에는 봉수대마다 군사 10명과 2명의 감고(오장)가 배치되었고, 내지봉수에는 봉수대마다 군사 6명과 오장 2명을 배치하였는데 봉화를 올리되 구름이 덮여 어둡거나 바람이 세차서 연기나 불로 신호가 통할 수 없을 때에는 봉수군이 차례로 달려가서 보고 하였다고 합니다.
5.부산지역의 봉수
부산지역에는 계명산(금정산 북동쪽), 황령산(양정동 뒷산), 간비오산(장산 남쪽봉), 구봉(초량 뒷산), 오해야(용당동 뒷산, 구덕산?), 응봉(다대포 두송산), 석성(천마산?)등에 7개의 봉수대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중 황령산, 석성산, 간비오산봉수대는 이미 세종 7년(1461) 이전부터 있어 온 것이고, 계명산봉수대가 가장 늦은 영조 원년(1725)에 설치되었다고 합니다. 오해야봉수대는 성종 12년(1481) 이전에 설치되어 조선 영조 16년(1740) 이전 어느 때 폐지되고, 석성봉수대는 초량왜관과 거리가 가까워 영조 원년(1725) 동래부사 이중협(李重協)의 건의에 따라 조선 현종 때 구봉으로 이설되어 폐지되었으며, 나머지 다섯 곳이 영조 이후 계속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가덕도와 기장군이 부산에 편입되면서 가덕도 천성봉수대, 기장의 남산봉수대와 이길봉수대가 부산 지역의 봉수대 유적지에 포함되게 되었습니다.
◈황령산(荒嶺山)봉수대(비지정 문화재)
황령산봉수대(부산진구)는 고려시대부터 이용하여 온 중요한 통신시설로 세종7년에 설치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1898년(고종35년)까지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황령산 봉수대는 부산지방의 가장중심이 되는 봉수대로 동으로 해운대의 간비오산 봉수대, 서로 엄광산의 구봉 봉수대와 연결되어 있으며, 북으로 범어사 계명산 봉수대 등 동서남북의 봉수대와 연결하도록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부산에 있는 봉수대는 임진왜란당시 왜군의 침입시에 그 기능을 발휘한 바 있어 조상들의 향토 사랑과 국토수호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우리고장의 중요한 사적지입니다.
◈가덕도 천성 봉수대
소재지 : 강서구 천성동 산6-1
개 요 : 이 봉수대는 가덕도에서 가장 높은 해발 459m의 연대봉 정상에 설치되어 있었으며 설치연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고려 의종 때를 전후하여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1891년 광무원년에 전국 봉수대의 역할이 폐지될 때 형체가 거의 없어진 것을 1996년 4월 26일 강서구에서 다시 복원한 것입니다.
위치로 보아 일본의 대마도와 가장 가까운 해안 연변봉수대이며 동래직봉 소속의 간봉으로서 서쪽으로는 웅천의 사화랑 봉수대에 연결하여 진해, 창원, 창녕, 성주, 칠곡, 김천, 상주, 문경을 거쳐서 충주에서 동래직보선과 만나는 역할을 하고, 북쪽으로는 녹산동의 성화예산봉수대에 연결하여 김해 분산성, 진영, 수산, 밀양, 청도, 경산, 대구를 거쳐서 영천의 성황당봉수대에 닿아 동래직봉선에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고, 동으로는 다대포의 응봉봉수대와 교신하는 국토의 최첨단에 위치하여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고 합니다.
◈ 녹산 성화 예산 봉수대(菉山 省火禮山 烽燧臺)
소 재 지 : 강서구 생곡동 산61번지(봉화산 정상)
복원시기 : 1991년 9월
개 요 :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봉수대 중의 하나인 성화예산봉수대는 해발 329m의 봉화산정에 위치하고 있으며 가락국 수로왕이 허 황후를 맞을 때 망산도에서 봉화를 올렸다는 기록과 관련이 있는 곳으로 조선 성종 17년(1486년) 동국여지승람에 소개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 봉수대는 고종 광무원년(1897년) 전국 본수제도가 폐지됨에 따라 불이 꺼지게 되고 거의 폐허가 죈 것을 불꺼진지 근 백년만인 1991년 9월 강서구의 예산으로 단일연조 봉수대로 복원한 것입니다. 제2직봉 동래선 소속 간봉으로 남쪽의 천성봉수대로부터 소식을 받아 북쪽의 김해 분산성 봉수대로 연락하고 동으로는 다대포의 응봉 봉수대와 천마산의 석성 봉수대와 교신하였다고 합니다. 기록으로 보면 "1592년 임진왜란 당시 4월 13일 오후 4시경 응봉 봉수대(다대포)의 감고(監考:봉수대 책임자) 이등(李登), 서건(徐建)들이 적선 약 90척이 부산포로 향하고 있는 것을 보고 김해의 성화예산 봉수대에 전했는데 그것이 가덕도에 바로 전해졌다"라고 적혀있다고 합니다.
◈기장남산봉수대(機張 南山烽燧臺,부산시 문화재자료 제2호)
지정년월일: 1995년 12월 15일
소 재 지: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 산52 (28,165㎡)
이 유적은 나라의 변란이 일어났을 때 낮에는 연기, 밤에는 횃불로 신호하여 중앙으로 알리는 옛 통신시설의 하나로 서로가 잘 보이는 산정에 원봉과 간봉을 두고 있었다고 합니다. 남산봉수대는 경상도 지역봉수로 중 간봉 제8호로서 남으로 동래, 북으로 임랑 및 이길봉수대로 연락하였다고 합니다.
불빛과 연기의 숫자에 따라 위급한 정도가 정해져 있었고, 비나 궂은 날씨로 신호가 불가능하면 봉수대를 지키던 군사가 릴레이식으로 다음 봉수대에 알렸다고 합니다.
고려 성종 4년(985)에 설치하여 고종 31년(1894) 갑오경장 때 폐지되었지만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된 편으로 중앙의 봉돈은 지름 2.4m, 둘레 9m의 돌로 쌓여 있으며, 높이 1.5m, 너비 1.5m, 지름 30-40cm의 화로가 있었다고 합니다.
◈ 기장 이길봉수대(機張 爾吉烽燧臺,부산시지정 기념물 제38호)
지정년월일: 1995년 12월 15일
소 재 지: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효암리 산15-1번지 일원
이 유적은 서생포 방면의 군사 정보를 중앙으로 알리는 옛 통신시설의 하나로 낮에는 연기,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하되 일정하게 조직된 봉수망을 따라 전달되었다고 합니다. 불빛과 연기의 숫자에 따라 위급한 정도가 정해져 있었고 비나 궂은 날씨로 신호가 불가능하면 봉수대를 지키던 군사가 뛰어가서 다음 봉수대에 알렸다고 합니다.
전국의 봉수망은 크게 다섯갈래의 원봉이 있고, 원봉에 전달되는 간봉이 있었는데 간봉은 주요 봉수망으로 각처의 군사정보를 알리는 곳이었다고 합니다. 경상도 지역에는 원봉 34개소에 90개의 간봉이 있는데, 이중하나가 바로 이곳입니다.
동쪽으로 하산, 북쪽으로는 가리산의 봉화대가 연결되었으며, 경주지역을 거쳐 중앙으로 연결되었다고 합니다. 봉수망은 고려시대에 정비되고 조선 세종 때에 완비되었는데 이곳도 세종 때 봉화대를 만들던 규칙과 일치하고 있다고 합니다.
중앙의 봉돈은 높이 2.4m, 지름 9m의 돌로 쌓은 것으로 그 바깥으로 높이 1.5m, 너비 1.5m, 지름 30m쯤의 돌로쌓은 담장과 지름 40m쯤의 담장이 바깥과 구분하여 나타내고 있는데 각처에 남아있는 봉수대들 가운데 비교적 원래의 모습을 잘 알 수 있는 것 중 하나라고 합니다.
전국의 봉수대 현황 (문화재청에 등록된자료:60개소)
1. 기장이길봉수대 (幾張爾吉烽燧臺) -- 시도기념물 38호 부산 기장군
양산이길봉수대 (梁山爾吉烽燧臺) -- 시도기념물 84호 경남 양산시
2. 기장남산봉수대 (幾張南山烽燧臺) -- 문화재자료 2호 부산 기장군
기장남산봉수대 (機張南山烽燧臺) -- 시도기념물 130호 경남 양산시
3. 양산원적산봉수대(梁山圓寂山烽燧臺)-- 시도기념물 118호 경남 양산시
4. 주전봉수대 (주전烽燧臺) -- 시도기념물 3호(47호) 울산 동구
5. 우가산유포봉수대 (牛家山柳浦烽燧臺)- 시도기념물 13호 울산 북구
6. 화정천내봉수대 (華亭川內烽燧臺) -- 시도기념물 14호 울산 동구
7. 서생나사봉수대 (西生羅士烽燧臺) -- 시도기념물 15호 울산 울주군
8. 언양부로산봉수대 (彦陽夫老山烽燧臺)-- 시도기념물 16호 울산 울주군
9. 하산봉수대 (하산봉수대) -- 시도기념물 36호 울산 울주군
10.진해사화랑산봉수대(鎭海沙火郞山烽燧臺)-시도기념물 186호 경남 진해시
11.봉화산봉수대 (烽火山烽燧臺) -- 시도기념물 157호 경남 마산시 회원구
12.마산가을포봉수대 (馬山加乙浦烽燧臺)-- 시도기념물 169호 경남 마산시 합포구
13.함안파산봉수대 (咸安巴山烽燧臺) -- 시도기념물 220호 경남 함안군
14.밀양남산봉수대 (密陽南山烽燧臺) -- 시도기념물 227호 경남 밀양시
15.거제옥여봉봉수대 (巨濟玉女峰烽燧臺)-- 시도기념물 129호 경남 거제시
16.가라산봉수대 (加羅山烽燧臺) -- 시도기념물 147호 경남 거제시
17.강망산봉수대 (江望山烽燧臺) -- 시도기념물 202호 경남 거제시
18.통영미륵산봉수대 (統營彌肋山熢燧臺)-- 시도기념물 210호 경남 통영시
19.고성좌이산봉수대 (固城佐耳山烽燧臺)-- 시도기념물 138호 경남 고성군
20.고성천왕점봉수대 (固城天王점烽燧臺)-- 시도기념물 221호 경남 고성군
21.사천안점산봉수대 (泗川鞍岾山烽燧臺)-- 시도기념물 175호 경남 사천시
22.사천우산봉수대 (泗川牛山烽燧臺) -- 시도기념물 176호 경남 사천시
23.광제산봉수대 (廣濟山烽燧臺) -- 시도기념물 158호 경남 진주시
24.하동금오산봉수대 (河東金鰲山熢燧臺)-- 시도기념물 122호 경남 하동군
25.남해금산봉수대 (南海錦山烽燧臺) -- 시도기념물 87호 경남 남해군
26.합천금성산봉수대 (陜川錦城山烽燧臺)-- 시도기념물 219호 경남 합천군
27.의령가막산봉수대 (宜寧可莫山烽燧臺)-- 시도기념물 228호 경남 의령군
28.영덕대소산봉수대 (盈德大所山烽燧臺)-- 시도기념물 37호 경북 영덕군
29.무악동봉수대지 (毋岳洞烽燧臺址) -- 시도기념물 13호 서울 서대문구
30.남산봉수대지 (南山烽燧臺址) -- 시도기념물 14호 서울 중구
31.아차산봉수대지 (峨嵯山烽燧臺址) -- 시도기념물 15호 서울 중랑구
32.동해어달산봉수대 (東海於達山烽燧臺)-- 시도기념물 13호 강원 동해시
33.주정산봉수 (周井山熢燧) -- 시도기념물 113호 충북 충주시
34.것대산(거질대산)봉수지(것대산(巨叱大山)烽燧址)--문화재자료26호 충북 청주시 상당구
35.태평봉수대 (太平烽燧臺) -- 시도기념물 36호 전북 진안군
36.수근연대 (修根煙臺) -- 시도기념물 23-8호 제주 제주시
37.별도연대 (瞥刀煙臺) -- 시도기념물 23-9호 제주 제주시
38.연대 (煙臺) -- 시도기념물 23호 제주 북제주군
39.조천연대 (朝天煙臺) -- 시도기념물 23-5호 제주 북제주군
40.우지연대 (牛池煙臺) -- 시도기념물 23-6호 제주 북제주군
41.남두연대 (南頭煙臺) -- 시도기념물 23-7호 제주 북제주군
42.왜포(고포)연대 (倭浦(古浦)煙臺)- 시도기념물 23-13호 제주 북제주군
43.함덕연대 (咸德煙臺) -- 시도기념물 23-14호 제주 북제주군
44.좌가연대 (佐可煙臺) -- 시도기념물 23-15호 제주 북제주군
45.종달연대 (終達煙臺) -- 시도기념물 23-16호 제주 북제주군
46.애월연대 (涯月煙臺) -- 시도기념물 23-17호 제주 북제주군
47.귀덕연대 (歸德煙臺) -- 시도기념물 23-18호 제주 북제주군
48.배령연대 (盃令煙臺) -- 시도기념물 23-19호 제주 북제주군
49.두모연대 (頭毛煙臺) -- 시도기념물 23-20호 제주 북제주군
50.연동연대 (淵洞淵臺) -- 시도기념물 23-10호 제주 서귀포시
51.당포연대 (唐浦淵臺) -- 시도기념물 23-11호 제주 서귀포시
52.대포연대 (大浦煙臺) -- 시도기념물 23-12호 제주 서귀포시
53.대정성지 (大靜城址) -- 시도기념물 12호 제주 남제주군
54.말등포연대 (末等浦煙臺) -- 시도기념물 23-1호 제주 남제주군
55.협자연대 (俠子煙臺) -- 시도기념물 23-2호 제주 남제주군
56.천미연대 (川尾煙臺) -- 시도기념물 23-3호 제주 남제주군
57.소마로연대 (所마路煙臺) -- 시도기념물 23-4호 제주 남제주군
58.산방연대 (山房煙臺) -- 시도기념물 23-21호 제주 남제주군
59.서림연대 (西林煙臺) -- 시도기념물 23-22호 제주 남제주군
60.오소포연대 (吾召浦煙臺) -- 시도기념물 23-23호 제주 남제주군
1.부산:2, 2.울산:6, 3.경남:19(양산:1,진해:1,마산:2,함안:1,밀양:1,거제:3,통영:1,고성:2,사천:2,
진주:1,하동:1,남해:1,합천:1,의령:1) 4.경북:1, 5.서울:3, 6.강원:1, 7.충북:2, 8.전북:1, 9.제주: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