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워싱턴 대통령의 퇴임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재선은 수락했으나 워싱턴은 3선은 파멸의 지름길이 될 수 있음을 직감으로 알고 있었다. 전혀 욕심 없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는 어느 선에서 욕망을 제어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왕이 되어달라는 국민의 성원이 있었을 때에도 그는 과감하게 욕심을 접었다. 임기가 6개월 남은 1796년 9월 17일, 워싱턴은 더 이상 대통령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고별연설’을 발표했다. 제목은 ‘고별 연설’이었지만, 연설로 행해진 것은 아니고 일간신문에 발표되었을 뿐이다. “조국에 대한 고마움과 수 세대에 걸친 선조들과 이 땅에 뜨거운 애정을 느끼면서, 나는 은퇴 후에 누리고자 스스로 다짐했던 생활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대해봅니다.”
1797년 3월 4일 워싱턴은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대통령직에서 내려왔다. 초대 대통령의 자발적인 선택에 따른 평화로운 정권교체였다. 그것은 후대의 모범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퇴임 후에 고향에 돌아갔지만 1798년 프랑스와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지자 워싱턴은 다시 총사령관에 임명되었다. “내 몸에 남아 있는 모든 피를 조국에 바치겠다”라며 수락했지만 다행히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1799년 2월 자필로 긴 유언장을 작성한 워싱턴은 그 해 12월 14일 “죽은 후 사흘이 되기 전에 묻어주오”라고 부탁한 후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언장에는 “개인 시중을 든 윌리엄을 노예 신분에서 즉각 해방하고 그에게 연금 30달러를 줄 것이며, 아내가 죽으면 나머지 노예들도 해방시켜달라”는 항목이 포함되어 있었다. 조지 워싱턴은 미국 독립을 일구어낸 독립운동가이자 첫 단추를 잘 꿴 미국의 초대 대통령으로서 남긴 업적도 훌륭하지만, 그것을 전혀 손상시키지 않은 아름다운 뒷마무리가 더욱 돋보인 인물이었다.
조지 워싱턴의 전기를 쓴 브래들리 T. 존슨의 다음과 같은 평가는 인간 워싱턴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워싱턴은 위대한 인물이다. 그는 감정이 격했지만 뛰어난 자제력을 발휘했다. 아무도 막을 수 없는 강한 의지력은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정신, 현명함, 관용, 정의감과 조화를 이루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천재성은 없었지만 그는 신속한 통찰력과 정확한 판단, 그리고 지식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열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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