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 흰돌모임 2009년 3월 7일
▲ 돈화문은 조선시대 5대 궁의 하나인 창덕궁의 정문이다. 조선 태종 12년(1412)에 세웠으며 임진왜란 때 불 타 버린 것을
광해군 즉위년(1608)에 창덕궁을 다시 지으면서 문도 함께 세웠다. 돈화문은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과 함께 조선시대 궁의 위엄을
살리기 위해 세운 문루의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건축물이다.
창덕궁
진선문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을 지나 금천교를 건너면 나오는 중문(中門)이다. 창덕궁 창건 무렵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1908년 인정전 개수공사 때 헐렸다가 1999년 복원공사를 완료하였다. 진선문을 들어서면 직사각형의 넓은 마당이 펼쳐져 있으며
마당에는 어로(御路)가 나 있다. 마당 둘레에는 인정전으로 통하는 인정문과 호위청·상서원 등의 행각이 있다.
백성의 억울함을 알리는 신문고 혹은 등문고라 불리는 북을 태종 때 진선문에 설치했고, 중간에 유명무실해졌다가
영조 때 다시 설치했다고 한다.
인정전은 창덕궁의 중심 건물로 조정의 각종 의식과 외국 사신 접견 장소로 사용하였으며,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릴 때에도
이곳을 이용하였다. 또한 왕세자나 세자빈을 결정하였을 때나 국가의 커다란 경사가 있을 때에도 왕이 인정전으로 나아가
신하들의 축하를 받았다. 태종 5년(1405)에 창덕궁을 세우면서 함께 지었는데, 그 뒤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쳤다.
지금 있는 건물은 순조 4년(1804)에 다시 지은 것이다.
인정전 건물 좌우에는 복도(행각)가 있고, 마당에는 신하들의 지위를 표시하는 품계석이 놓여 있다. 내부 천장 가운데는 한 단을 높여
구름 사이로 봉황 두 마리를 채색하여 그려 넣었다. 뒷면의 높은 기둥 사이에 임금이 앉는 의자가 마련되어 있고 그 뒤에는 해와 달,
5개의 봉우리를 그린 일월오악도 병풍이 있다. 인정전은 경복궁의 근정전, 창경궁의 명정전, 덕수궁의 중화전과 함께
조선왕조 궁궐의 정전다운 격식과 장식을 잘 갖추고 있는 건물이다.
대조전 일원
성정각 일원
현재 후원으로 가는 넓은 길에 큰 건물인 중희당이 있었고, 이 일대가 왕세자의 거처인 동궁이었다.
순조의 장남인 효명세자가 대리청정 떄 주로 기거하면서 정궁으로 쓰던 곳이기도 했다. 동궁에는 많은
건물들이 있었는데, 육각누각인 삼삼와, 그 옆의 칠분서 그리고 승화루는 복도로
연결되어 서고와 도서실로 사용되었다. 성정각은 세자의 공부방이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왕가의
내의원으로 쓰였으며, 단층의 몸채에 중층의 날개채가 직각으로 붙은 독특한 모습이다.
낙선재 일원
창덕궁 후원(또는 궁원, 금원, 후원)은 창덕궁의 뒤쪽에 위치한 곳이다. 한때 창덕궁 전체를 아우르는 의미로 쓰였으나
현재는 비원과 창덕궁을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다. 임진왜란 때 대부분의 정자가 불타 버리고, 1623년 인조 때부터 역대 왕들에 의하여
개수 - 증축되어 현재의 모습을 이루었다. 창덕궁 후원은 자연 지형을 그대로 살리면서 골짜기마다 인공적인 정원을 삽입시켜,
최소의 인위적인 손질을 더해서 자연을 더 크게 완성시킨 절묘한 솜씨를 자랑한다. 4개의 골짜기에 각각 부용지, 애련지, 관람지, 옥류천
정원이 펼쳐진다. 4개의 정원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크고 개방된 곳에서 작고 은밀한 곳으로, 인공적인 곳에서 자연적인 곳으로
점진적으로 변화하여 결국은 큰 자연인 뒷산 매봉으로 연결된다. 세계 대부분의 궁궐 정원은 보고 즐기기 위한 관람용인데 비해, 창덕궁
후원은 여러 능선과 골짜기를 오르내리며 온몸으로 느끼는 체험 정원이었다. 또한 여러 복합적인 기능을 수용한 장소이기도 했다.
시를 짓고 학문을 논하며 사색에 잠기던 곳이었고 때로 연회를 열고 활쏘기 놀이를 즐기던 곳이었다. 왕이 참관한 가운데
군사훈련도 행해졌고, 왕과 왕비가 백성들의 생업인 농사를 짓고 누에를 치기도 했다.
부용지와 주합루
해시계
불로문 - 왕의 장수를 기원하는 뜻에서 세워진 문으로 창덕궁 연경당으로 들어가는 길에 세워진 돌문이다.
세로판석에 돌쩌귀 자국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는 나무문짝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이 문을 지나가는 사람은 무병장수한다고 전해진다.
애련지와 의두합
존덕정과 폄우사
옥류천
창덕궁 다래나무 - 지금까지 알려진 우리나라의 다래나무 중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
후원의 깊은 숲 속에 위치한 이 다래나무는 약 650년 나이를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나무는 높이 20m, 굵은 줄기 둘레 72cm이며,
6개 정도의 굵은 줄기가 사방으로 서로 엉키면서 뻗어있다. 창덕궁의 다래나무는 수나무여서 다래가 열리지 않는다.
창덕궁의 향나무 - 천연기념물
창덕궁 관람을 하고 나니 창경원이 생각난다.
내 어릴 적 앨범을 보면 부모님과 창경원에 구경 간 사진이 있다. 너무 어려(4살) 아무 기억도 나지 않지만
그 사진을 바라보노라면 왠지 모를 행복에 젖는다. 그리고 초등학교 때 다시 찾았던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뤘던 벚꽃놀이 풍경이
아직도 삼삼하게 남아있다. 케이블카가 날고 놀이기구가 공중에 떠 있고 가장 신나게 했던 동물원에 김밥과 사이다.
당시로선 우리나라 유일한 놀이시설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모두 사라진 옛 추억...
대신 과천대공원이 있고, 어린이대공원이 있고, 롯데월드가 있고... 벗꽃은 여의도 윤중로...
첫댓글 앉아서 이렇게 멋진 고궁 구경을 편안하게 합니다. 설명도 시간 품이 좀 들지 않았을 터인데 ... 즐감 하였습니다.
전쟁같은 점심시간이 지나고,잠시 휴식을 취하는 시간.만보님 덕분에 고궁 풍경 즐감 하였습니다.
그야말로 구중궁궐의 풍경이네요.
고등학교때 가보고 안 가봤네.. ㅇㅇ 오리지널 촌년이당~ 흑~ 석 리포터님 감사해용~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