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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화 시에서의 용전(用典)의 묘미(妙味)” 관련 시작품
김삿갓아저씨 디스코 추신다
1
야! 야! 야!—
외쳐대는 바람에
헤이! 헤이! 헤이!—
굴러대는 바람에
쿵! 쿵! 쿵! 쿵!—
흔들리는 바람에
백오십년 멋진 꿈을 슬슬 펼쳐가시던
김삿갓아저씨
마침내 일어서다
발밑이 움찔해서
머리가 어찔해지고
눈뿌리 아찔해진
김삿갓아저씨
백오십년 쪼박쪼박 시쪼박을 무어오던
어느 성긴 쑥밭에서
상투밑을 찌르는 노기에
풀쩍풀쩍 뛰시다
풀쩍풀쩍 뛰시니
벌판이 흔들흔들
언덕이 흔들흔들
산발이 흔들흔들
강물이 흔들흔들
구름이 흔들흔들
하늘이 흔들흔들
내가 흔들흔들하니 네가 흔들흔들하지
네가 흔들흔들하니 내가 흔들흔들하지
네가 내가 누가 흔들흔들하는지 통 모르겠다
에라 몽땅 흔들흔들해라 쾅! 쾅! 쾅!
오른발을 구르니 흔들흔들
왼발을 구르니 흔들흔들
흔들흔들 흔들흔들
김삿갓아저씨 디스코를 추신다
2
김삿갓아저씨 디스코를 추신다
아! 아! 외쳐대며
하! 하! 굴러대니
삿갓끈이 풀려서 흔들흔들하다가
삿갓끈이 벗겨져 디굴디굴 구르니
멋지다
백오십년 꿍져온 상투머리 풀려서
사자식 파도식 폭포식으로 날린다
멋지다
긴 머릿발 날리며
김삿갓아저씨 디스코를 추신다
헤! 헤! 웨쳐대며
하! 하! 굴러대니
해님이 쟁글쟁글
달님이 방글방글
동그란 등불되고
네모난 등불되어
하아얀 불빛 파아란 불빛
노오란 불빛 빠알간 불빛 뿌우연 불빛
서로서로 헷갈려서
희망 갈망 실망 절망
우정 애정 순정 치정
리상 명상 공상 망상
신념 리념 관념 개념
이것 저것 요것 저것
한데 엉켜 뒹군다
3
한데 엉켜 뒹군다
빨간 노란 파란 색깔에 어울려
요런 조런 이런 저런 것들에 뭉개져
김삿갓아저씨 디스코를 추신다
길죽한 것이 동그래지고
동그란 것이 네모나지고
네모난 것이 밋밋해지고
밋밋한 것이 컬컬해지고
짭짭한 것이 질척해지고
질척한 것이 꽉꽉해지고
꽉꽉한 것이 짜릿해지고
짜릿한 것이 알알해지고
여우가 렵총으로 사냥꾼을 쏴눕히듯
개미가 곰을 안고 자장자장 달래듯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듯
물고기가 왜가리를 꿀꺽 삼켜버리듯
토끼가 승낭이를 뒤쫓아가 덮치듯
이렇게 뛰고 저렇게 뛰고
요렇게 돌고 조렇게 돌며
비쭉비쭉 비쭉삐쭉
김삿갓아저씨 디스코를 추신다
4
김삿갓아저씨 디스코를 추신다
하, 헤이! 호, 헤이! 팔을 내저어라
하! 하! 호! 하! 발을 굴러대라
챠! 챠챠! 챠챠! 엉뎅이 휘둘러대라
하! 하! 하! 하!
삿갓이 벗겨지니 상투머리 풀렸다
하! 하! 멋지다
긴 머릿발이 파도식으로 날린다
헤! 하! 좋구나
마고자 두루마기 벗어던져라
번쩍이는 가죽잠바 바꿔입어라
축 처지는 망태바지 벗어던져라
착 들어붙는 홀태바지 바꿔 입어라
하! 하! 하! 하!
아! 야! 야! 야!
백오십 자래워온 다리가 늘씬하게
백오십년 길러온 허리가 시큰하게
백오십년 트여온 숨통이 시원하게
야! 야! 야! 야! 외쳐대면서
헤! 헤! 헤! 헤! 굴러대면서
김삿갓아저씨 디스코를 추신다
김삿갓아저씨 디스코를 추신다
가슴이 넓어지고
숨결이 높아지고
얼굴이 붉어져서
한결 젊어지고
한결 싱싱해지고
한결 씩씩해저서
김삿갓아저씨 디스코를 추신다
아! 야! 야! 야!
하! 하! 하! 하!
나의 장례식
나는 나를 위해 구슬픈 장송곡 목메게 부르며
나는 나의 무덤을 판다
나는 나의 흙 묻은 괭이를 던지고
나는 나의 안식처 나의 무덤에 드러눕는다
시커먼 구덩이는 구슬픈 기도 읊조리고
서리찬 기운은 쓰다듬어 안아준다
그러면 내가 무져놓은 흙더미 내 몸을 묻어주고
그러면 무덤은 둥그런 언덕이 된다
그러면 파묻히운 내 몸에선 심장만이 살아
아, 그러면 심장만이 살아서 싹터오른다
심장은 한그루의 나무되어 하늘 찌르며 자란다
그 나무에선 주렁주렁 새 심장들이 가득 열린다
1982. 4. 20.
저 누런 황소를 바라보며
《애비 없이는 살아도 소 없이는 못 산다.》
- 속담
저 누런 황소를 바라보며
나는 아버지를 생각한다
두가닥 억센 뿔을
머리에 이였건만
눈망울은 어찌하여 저처럼 커서
어진 눈물이 항상 그득할것 무엇인지
코뚜레를 꿸 때는 아이였겠는데
그때는 몹시 아파겠지
늘찬 허리에 짐도 많이 지고서
터벅터벅 걸어온 길 얼만지 누가 알랴만
기뻐도 슬퍼도 다만 그 한마디
《엄마》를 부르는 마음은 무엇일가
애비 대신으로 섬겨 오건만
언제나 섬돌아래에서 설 자리 찾아도는
그것이 미덕인지 아닌지는 다 몰라도
《속담 그른데 없다》는 말만은 다 못 믿겠다.
1986. 12. 3.
벽세우기
하남다리를 건너가다가 마주오는 서양사람 하나 보았다. 무엇이 신기해서인지 자꾸만 사방을 이리저리 디룩거리는 파란 눈알보다 커다란 구멍이 벌룩거리는 툭 삐여나온 주먹코가 퍽 부럽다고 생각하면서 무심결에 손을 들어 나의 코를 만져 보았다. 나의 코는 납작하였다
왜 이렇게 낯판대기에 착 들어 붙어버린듯이 납작할가하고 궁리를 더듬다가 언제인가 조카애의 묻는 말에 《벽에 부딪쳐 깨어졌지 뭐》하고 웃으며 대답하던 어느 《맏아바이》의 말씀을 찾아내고나서 나의 코는 어느 벽에 부딪쳤던가고 그 벽을 찾기 시작하였다
그리 미인은 아니지만 웃음은 퍽 인상적이였던 야마구찌 모모에가 젖가슴 웃부분으로만 붙어 서서 웃고 있는 웃방벽을 세워보기도 하고 어느 장난꾸러기가 부지깽인지 쇠꼬챙인지를 휘둘러 추상파인지 야수파인지 결구주의인지를 피카소처럼 락서해 놓은 앞집 바람벽을 세워보기도 하고 지난번 유람길에 찾아본 뻘건 뼁끼칠을 새로 올린 어느 황릉대문안의 천년이끼 오른 옛무덤속의 이슬 돋은 찬벽을 세워보기도 하고 잔장한 꽃무늬가 보라색바탕에 찍혀있는 질좋은 천으로 벽을 바른 봉황호텔 특등객실의 우아하고 멋스러운 벽을 세워보기도 하고…
그밖에도 수많은 벽들을 세워보았지만 나의 코를 박산내어 이렇게 납작하게 만든 그 벽만은 끝내 찾아내지 못한 채 하남다리를 건너갔다
나의 코를 요 모양으로 부셔놓은 그 벽이 어디엔가 꼭 그대로 서있을 텐데 말이다.
1987. 12. 17.
우리는 개인가
- 나와 나의 동갑들에게
우리는 개인가
자,축,인,묘,지,사,오,미에 신,유,술,해라 뱅글뱅글 돌아가는 열두고리 중에서도 산중대왕 호랑이나 동해바다 룡왕님이 되지 못하고 우리는 왜 꼭 개가 되어 걸려나와야 하는가?
두귀가 발쭉하고 등허리 늘씬해서 승냥이 비슷하나 흉악하지 못하고 여우와 비슷하나 요사하지 못하고 염소와 비슷하나 두뿔이 돋지 못해 두루두루 축에 빠지는 것이 많은 우리는 왜 개여야 하는가?
저기 바다 건너 어디에는 질좋은 천으로 만든 밑밭치개 차고 금방울을 목에 걸고 호의호식하다가 록음방초 우거진 공원속에 묻히여도 키크고 멋진 비석이 한나절 동무해준다는 운수 좋은 치들이 두루있다 하지만 종래로 그런걸 부러워하지 않았는데 우리는 왜 개여야 하는가?
허다한 전설속에 널려있는 수많은 무훈담과 영웅담들이 위훈과 영예를 자랑해주지만 따뜻한 아래목은 고양이에게 넘겨주고 찬봉당에 누워서도 울타리밖의 어둠에 귀를 기울이는 개로 우리는 되여야 하는가?
솟는 힘 뻗치는 기운을 가눌 줄 몰라 비가 오면 비발속에서 눈이 오면 눈발속에서 환락의 군무를 곧잘 벌이는 개 씩씩한 가슴마다 충성은 피로 끓어번지고 용맹은 담덩이로 커져만 가서 하늘의 해도 삼켜버리고 희멀쑥한 달덩이도 쫓아버리는 해를 먹는 개, 달을 짖는 개가 정말 우리들인가?
서라
서라
일어서라
아득한 하늘가에서 들리여오는 석쉼한 저 부름소리에 저절로 두 귀가 쭝긋해지고 저절로 허리가 꼿꼿이 펴지고 저절로 두 다리에 불끈 힘줄이 솟아 두 발로 땅을 딛고 우쭐 일어서려는 우리는 틀림없이 개란 말인가?
우리는 개인가
강
님아, 가람 건느지 마소.
- 《공후인》
내 기어이 이 강을 건너야만 하겠소
발아래 파도는 사납지 않은 적 없고
뒤설레는 물결은 멈추어선 적이 없으니
이렇게 강물에 들어선 이 몸을
《돌아오소서, 돌아오소서》부르지 말아주오
내 기어니 이 강을 건너야만 하겠소
미치지 않고서야 들어설 수 있냐지만
이 손에 쥐여 이 손에 쥐여 있는 청주 한 병이
흐르는 물결 우에 나를 띄워 실어주고
파도 딛고 춤춘다고 당신이 사설해도
그대가 언덕 우에 나를 보기 때문이오
내 기어니 이 강을 건너야만 하겠소
당신이 덥혀주는 아랫목이 따스해도
강 건너 푸른 잔디 이내 마음 손짓하오
천성이 나그네라 떠나가는 이 몸이
눈물을랑 거두고서 노래 한곡 불러주오
나 없고 당신 또한 이 강변에 없었더면
《공후인》 한 가락이 어찌 세상에 남았겠소
내 기어이 이 강을 건너야만 하겠소
사과를 먹자
사과를 먹자
껍질을 살살 벗겨버리고
속살만 사각사각 씹어 먹자
새하얗게 드러나는 속살
단물이 배여 나는 속살
사과를 먹자
향긋한 속살
싱싱한 속살
단물이 배여나
더욱 목마른 속살
새하얗게 드러나
한결 부드러운 속살
사과를 먹자
해 아래서
달 아래서
하나의 동산을
다 넘겨줘 버리고
한 알의 사과를 바꾸어먹자
사과를 먹자
후회는 없다
망설임도 없다.
이렇게 속살이 이쁘고 탐스러운데
이렇게 속살이 향그럽고 싱싱한데
이렇게 너와 나
아름다운 줄 알았는데
사과를 먹자
그 모습 다 벗고 포도들은 포도주가 된다
벗으라 한다
벗어야 한다
벗어라
벗자
마지막 한 장의 그 …
마저도
속살과 속살끼리만 만나
만지고 부비고 삼키고 무너지자
맑은 그 빛깔
달콤한 그 맛
감미로운 그 향기
네가 나 되고
나는 너로 된다
그 모습
다 벗고
비로소
포도들은 포도주가
된다
생각하는 사람
“생각하는 사람”이 된다
매일 아침 화장실에 들어가
쭈크리고 앉으면
틀림없는 로댕의 그 자세다
어제 하루 들이켰던 온갖 잡동사니와
온밤 꿈자리 어수선하게 만들었던 끄나풀
끙끙 아래로 힘을 줄 때마다
눈앞에 불이 번쩍 번쩍 켜지고
한줄기 도통한 기가 숫구멍으로 뻗친다
《생각하는 사람》
매일 아침마다 그 자세를 하고나면
시원하다
후련하다
오늘 또 그 비여낸 것만큼
무엇이 가득 차겠지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작품 36
- 가감승제와 방정식
철근+세멘트+타일+…+땅=벽체
벽체×유리×페인트×…×하늘=빌딩
√빌딩 ? 3√빈병 ? 4√소음? …? ⁿ√물=도시
도시÷문패÷전화번호÷…÷공기=사람
사람-사랑-진정-…-달나라=X
작품 39
- 협박 (1996.11.10)
1,2,3,4,5,6,7,8,9,10이 차례로 나와서
《너는 수자다》라고 한다
나는 《아니다》라고 했다
《22401580704061이 네가 아니냐》라고 한다
《0433-256-2191이 네가 아니냐》라고 한다
《78.2와 173이 네가 아니냐》라고 한다
계속 아니라고 한다면
78.2에서 한 10쯤 덜어내겠다고 한다
그래도 괜찮다고 한다면
173에서 한 10쯤 낮추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문제가 완전히 달라지는데 허참
10,9,8,7,6,5,4,3,2,1이 꺼꾸로 나와서
《너는 수자다》라고 한다
이제는 《아니다》라고 못하겠다
그러면 영영 지워버리겠다고 했기때문이다
0.0…
작품58
- 책장
《론어》 공씨네 둘째의 코가
야마구찌 모모에의
봉긋한 앞가슴에 밀착되여있고
포스트모더니즘학설우에 포개져있는
《조선어문법》과《성지식》,《료리만들기》
《세계명인전》의 주인들과 나란히
그랑데와 고리오와 아Q가 버티고 서있어도
목소리와 이발과 칼날 따위 모든것은
자기네들 뚜껑안에서 잠자고 있을뿐
《우리는 개인가 개가 아닌가》라고 지껄이는
얼빤한 잠꼬대 한마디가
다 쓴 전지약의 진물처럼
어느 구석에선가 흘러나오고…
작품 85
― 동물원에서
어느 굽이돌이에서
발을 빗겨 디디였기에
인제는 서로가
두 눈빛 마주쳐도
그저 씁쓸할수밖에 없는가
하늘이 내려 주신
습성과, 취미와, 사랑을 고이 지켜
오늘에 온 너와
늘쌍 눈치를 보며
더 잘나기에 몸살이 나서
그 숱많던 털도 몇군데 남지않은
나와
이렇게 여기서
두 눈빛이 마주쳐도
이젠 그저 덤덤할수밖에 없는가
가슴을 다 헤쳐 찾아봐도
제일 구석진 곳에서조차
가늘게 쨍- 맺혀올
눈물 한방울 없는가
거울을 닦습니다
당신 닮은 모습으로
저희를 만드셨다 하셨기에
당신을 보고지고
거울을 닦습니다
호오호 입김불고
빠악빡 소매깃으로 문대며
알른알른 빤들빤들
잘 닦아진 거울 한 장
들고 보고 놓고 봐도
이리보고 저리봐도
당신같은 모습은
어데도 없습니다
아직도 정성이
모자라서일가요
당신대신 나타난
꾀죄죄한 저 모양
거울에 비춰진 볼꼴 없는 저모양이
거룩하고 성스러운 당신일순 없는데
당신과 닯은 모습
저희들이라 하셨기에
당신을 보고지고
그래도 열심히
거울을 닦습니다.
한 배를 타고
물우엔
제갈공명 같은 안개가 낮고
안개너머 대안에선
조승상 같은 배고동 소리 길다
대륙을 가로지르는 긴 강 - 장강
이강을 건너기 위해 우리는
관광뻐스 안에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아있다
저기 한창 시공 중인 대교가
반공중에 신기루처럼 떠있고
문뜩 나타나서 입을 벌린 뚜룬(渡輪)
십여대의 관광뻐스를
차례차례 삼킨다
북방사람은 돌아가는 길
강남사람들은 떠나가는 길
사람들은 버스를 타고
버스는 배를 타고
이제 모두 저쪽 기슭으로 건너가려 한다
이게 무슨 인연일까
시간 전만 해도 동서남북 각지에서
그들은 저 각각의 방언으로 나는 또 조선말로
자기 삶을 사느라고 떠들었거니
지금 모두 입을 다물고 앉아있다
앞뒤 그리고 옆의 좌석에서 차례차례
적벽지전(赤壁之戰) 나가는 삼국군사들 얼굴을 하고 있다
안개는 사방에 짙게 깔리고
강물은 철썩철썩 배전을 두드리고
그리고 우리는 모두 한 배를 타고
연변 ‧ 25
-젊음에게
추락하는 것의 날개여!
곧게 편 날개는
비상을 위하여 준비된 것
돌멩이처럼 땅바닥에 떨어지려고
공중에서 퍼덕인 것이 아니였다
추락하는 것의 날개여!
저 높은 곳에 태양이
빛과 열의 덩어리가 불타고 있다.
다가가지 말아, 가까이 말아
애절한 부르짖음이 허망하다
추락하는 것의 날개여!
환희롭고
찬란한
젊음 그 웃음
이카로스의 얼굴 누가 보았는가
추락하는 것의 날개여!
연변 ‧ 4
-연변은 간다
연변이 연길에 있다는 사람도 있고
구로공단이나 수원 쪽에 있다는 사람도 있다.
그건 모르는 사람들의 말이고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연변은 원래 쪽바가지에 담겨
황소등짝에 실려 왔는데
문화혁명 때 주아바이랑 한번 덜컥 했다
후에 서시장바닥에서 달래랑 풋배추처럼
파릇파릇 다시 살아났다가
장춘역전 앞골목에서 무짠지랑 함께
약간 소문이 났다
다음에는 북경이고 상해고
랭면발처럼 쫙쫙 뻗어나갔는데
전국적으로 대도시에 없는 곳이 없는게
연변이였다
요즘은 배타고 비행기 타고 한국 가서
식당이나 공사판에서 기별이 조금 들리지만
그야 소규모이고
동쪽으로 도꾜, 북쪽으로 하바롭스크
그리고 싸이판, 샌프랜시스코에 빠리런던까지
이 지구상 어느 구석엔들 연변이 없을 소냐
그런데 근래 아폴로인지 신주(神舟)인지
뜬다는 소문에
가짜여권이든 위장결혼이든 가릴 것 없이
보따리 싸안고 떠날 준비만 단단히 하고 있으니
이젠 달나라 별나라에 가서 찾을 수밖에
연변이 연길인지 연길이 연변인지 헛갈리지만
연길공항 가는 택시요금이
10원에서 15원으로 올랐다는 말만은 확실하다
연변 ‧ 23
- 쌀은 내게로 와서 살이 되는데
햅쌀 밥맛을 보라고
시골 사는 농부시인 김일량씨가
쌀 한주머니 보내왔다
알알이 윤기 흐르는 쌀알들
친구시인 구슬진 땀방울 아니랴
두 손 모아 쥐여보니 손바닥이 매끄럽다
앞벌에 펼쳐진 그 검은 흙에서
그 흙을 적시던 도랑물에서
이처럼 새하얀 입쌀 이뤄내다니
봄, 여름, 가으내 철철의 신고가
알알이 맺혀서 반짝이는가
쌀알 한 알 한 알 모두가 소중하다
친구가 보내온 쌀이 내게로 와서
한 그릇 밥이 되여 내게로 와서
이제 내 살이 될 것이지만
나의 무엇이 그대에게로 가서
쌀이 되고 살이 될 것인가
그저 송구하고 미안하고 또 그리고
고맙다
연변 ‧ 20
-사랑
옆구리가 결린다
갈비대 한 가닥 빠져나간 자리
그 빈자리만큼 다시 채워지는
인연이라는 낱말-
미끈하게 잘 빠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단단하게 옥 맺힌 것도 아닌
두루 그저 그렇게 생겨나서
길이로도 무게로도 모자라는 것이 많은
내 갈비뼈 한 가닥
오가는 세월에 닳아
윤기도 많이 사라지고
넘치던 오기도 한참을 잠재워
이제는 그저 서로 물끄러미 바라만 보아도
눈물이 핑- 도는
나의 갈비뼈 한 가닥
부부란 이름 하나로
나보다 먼저 자기가 아파하면서
살아온 그날과 날들
내 빈 옆구리만큼
허전해하며
오늘도 나의 그림자를 즈려밟고
저만치서 따라온다.
연변 ‧ 12
-아침에 부르는 처용가
아침 일어나 보니
머리카락 서너 오리 베개 위에 떨어져 있다
이젠 내 두피와 영영 작별한 저 것들을
지금도 내 것이라고 우길 수 있을까
지난겨울 둘러보았던 충남 부여의
고란사와 낙화암과 백마강이 떠오르고
삼천궁녀 꽃 같은 치맛자락이 베개 위에 얼른거린다
백제는 이미 망해 간 곳이 없고
그를 이긴 신라도 사라졌으니
고구려의 높고 낮은 무덤들조차
북국의 차디찬 적설에 묻혀있을 뿐이다
어제까지 내 머리에 붙어 있던 저 것들
지난 밤 어수선하던 꿈의 조각들처럼
떨어져가고 흩어져가고 지워져가고
그리고 이제는 모두 잊혀져 갈 것인가
《원래는 내 해인데
앗아가니 어찌 하리요.》
체조하는 달밤도 아닌데
《처용가》 한 가락이 저절로 흥얼거려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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