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3주일 요한 2,13-25
겨울이 가고 봄이 된 듯 했는데, 다시 꽃샘 추위가 찾아왔습니다. 어제는 오봉산에 다섯 봉우리를 오르며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요즘 돈 많은 사람들은 웰빙이니 뭐니 하면서 공기 맑고 물 맑은 곳으로 가서 별장들을 짓고 그런다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저 해양생태공원 소래 습지에서 날라 오는 맑은 공기와 오봉산에서 슬금슬금 기어내려오는 좋은 기운! 하느님께서 저에게 너무나 많은 축복을 주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 논현동- 소래 신자들은 축복을 많이 받은 사람들입니다!
오늘 복음의 주제는 ‘참된 성전의 모습’ 을 바라시는 예수님의 뜨거운 열정과 사랑에 관련한 내용입니다. “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요한 2,19)
구약의 모세오경, 신명기의 내용을 살펴보면 요시아 왕의 종교개혁에 관련한 이야기들과 함께 성전의 개혁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요시아 개혁의 핵심적인 내용은 유일하신 하느님을 만나볼 수 있는 장소는 오직 예루살렘 성전뿐이라는 것이 주축입니다. 그러한 사고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만연하였고, 유대백성들은 죄의 용서와 새로운 출발을 위해 예루살렘 성전을 찾아가야만 했습니다. 이런 유다인들의 생각에 대해 예수님은 오늘 완전히 새로운 성전의 개념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역사적으로 예루살렘 성전은 세 차례 건축과 파괴를 되풀이했습니다.
첫 번째 건축은 기원전 961년 솔로몬 왕이 왕권강화와 백성간 일치를 위해 성전을 건축합니다. 해마다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3번 순례하였고, 이 성전은 타국에 나가 살고 있는 유다인들의 마음 속에도 살아 있었던 모든 이의 마음의 고향이었습니다. 이렇듯 중요한 성전, 그리고 그 거룩한 곳에서 바쳐지는 희생제사의 전통은 이스라엘 민족의 생활과 신앙의 바탕이었고 중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의 정신적 구심점이었던 예루살렘 성전은 기원전 587년 바빌로니아에 의해 나라가 멸망하면서 첫 번째로 파괴됩니다.
두 번째 건축은 유배지로 가서 한껏 고생을 다하고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여곡절 끝에 즈루빠벨에 의해 성전을 재건축 합니다. 하지만 성전은 다시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파괴되고 이교도들에게 더렵혀집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신전을 세우고, 돼지를 잡아 그 피를 뿌리며 이스라엘의 신앙의 뿌리를 뽑아버리려고 하였습니다.
세 번째 건축은 기원전 64년 헤로데 왕이 유다인들의 환심을 사기위해서 그리스 로마 양식으로 성전을 재 건축합니다. 하지만 이 성전도 결국 70년 로마에 의해 다시 폐허가 되고 맙니다. 세 번에 걸쳐 성전을 지었지만 세 번 모두 성전이 파괴되었고 2009년을 지나고 있는예루살렘에는 간신히 남은 성전 한 벽면만이 ‘통곡의 벽’이라 불리우며 남아있습니다. 유다인들의 간절한 소망은 그곳에 다시 성전을 세우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 자치구의 사람들과의 대립으로 여전히 긴장상태로 남아있을 뿐입니다.
예수님의 독설처럼 성전은 모두 허물어졌고 아직까지 재건의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이라는 말은 “평화의 도시”라는 의미인데, 예루살렘은 아직도 전쟁의 불씨가 꺼지지 않고, 때마다 테러와 폭력으로 여전히 불안한 도시로 남아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예루살렘에 성전을 허락하지 않고 계신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복음의 말씀은 예수님의 분노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분노하는 모습을 전하는 것은 성서에 몇 번 나오지 않는 특수한 경우에 해당합니다. 예수님은 분노를 터뜨렸습니다. 잘못을 책망하는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고 채찍을 휘두르며 폭력적인 행동을 보이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분노하신 이유는 정말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성전, 사람으로 사는 우리가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장소인 성전을 소홀히 대하는 자세에 대한 분노입니다. 너희들 가운데 이미 형편없는 것으로 전락해버린 성전을 허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 새로운 성전을 만들라는 요구였습니다. 성전은 하느님의 집입니다. 만남의 장소이며 나눔의 집입니다. 여기서 그 자녀들이 세례로 탄생되고, 병든 이들이 치료받는 병원이며, 주렸을 때 배불리는 식당입니다. 또한 이 세상을 하직할 때 거쳐 가는 성스러운 곳이기도 합니다. 이 집에서 하느님과 다정한 이야기를 나누고 하소연도 하며 투정도 부리고 감사도 드리면서 은혜를 빌고 또 받는 우리의 보금자리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여러분은 자신이 하느님의 성전이며 하느님의 성령께서 자기 안에 살아 계시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만일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느님께서도 그 삶을 멸망시키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은 거룩하며, 여러분 자신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Ⅰ고린 3,16-1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네 교회의 모습을 돌아봅니다. 과연 우리는 지금 하느님의 뜻에 맞는 성전을 짓고 있는가? 교회의 본질은 루가복음 4장 26절의 말씀처럼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사로잡힌 이들을 해방시키며, 눈 먼 이들에게 눈을 뜰 것을 선포하며 억눌린 이들을 풀어주며, 주님의 은혜로운 은총의 해를 선포하는 것”이 그 목적입니다. 하지만 교회는 그 본래의 꼴, 제 모습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교회는 내용 없이 외연만을 확장시켜나가는데 주력하며, 수백 수 천만원을 들여 화려하고 보기 좋은 모습의 성전만을 지으려고 하면서 가난한 이들의 소리를 듣지 않고, 온갖 사회적 불의로 신음하고 있는 이웃들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 논현 1동 신자들이 일어나야 할 때입니다. 진정한 교회의 모습, 사랑과 기쁨이 가득하고, 이해와 관용이 주를 이루며, 소박하고 우리에게 알맞은 성전을 짓고, 가난한 이들을 돌보고, 지역의 어려운 일들과 함께하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교회에 오면 활력이 생기고, 일주일의 피로가 싹 가시고, 마음의 평화가 가득하며, 가진 사람들은 조금 더 내려놓고, 없는 사람들도 기죽지 않고, 주눅 들지 않고 성당에 편안하게 올 수 있는 그런 공동체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진정한 마음으로 이 집이 우리 집이다! 라는 맘으로 떨어진 휴지 하나를 줍고, 겸손한 맘으로 진정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맘의 문을 열고, 처음 다가오는 신자분들을 환대하고, 안면이 있는 사람들뿐 아니라 모르는 분들에게도 친절하게 말을 건네고, 웃음을 건네고, 우리 모두가 이 집의 주인이고, 이 집은 내집이다! 라는 주인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들 맘에 진정한 성전을 지어야 합니다. 돈으로 교회 일을 하려는 생각을 떨쳐버리고, 형식과 율법에 얽매인 생활을 청산해야 합니다. 눈에 보여지는 것 말고 더 소중한 인간에 대한 배려와 사랑의 맘을 가지고, 서로에 대한 존경과 존중의 맘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평화가 여러분들의 가정에 가득하길 기도합니다. 오늘 특별히 이 미사 중에 새터민 가정이 하느님 앞에서 축복의 결연을 약속합니다. 다함께 이 가정의 축복을 기도해 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