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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롤의 기록일지 (소설)
장은지
산의 초입부터 피해목 제거 작업이 한창이었다. 산림관리청 직원들과 패트롤 팀의 임시 사무실은 화재 현장인 안마산과 이어지는 언덕에 마련해두었다. 사무실이라고 해보았자 회백색의 컨테이너 하나가 전부였다. 소나무가 타들어 간 자리를 빼앗았다. 아무리 보아도 썩은 산처럼 보였다. 나무껍질이 바스러지고 허여멀건 한 속살이 드러나 있다. 몇 안 되는 창백한 가지 뒤에 자리 잡은 회색 컨테이너는 또 어떻고. 불타버린 산의 사망 선고에 일조한 기분이다.
“우리 팀은 아파트 단지와 맞닿은 경사면부터 시작해서, 저 도로 주변까지 싹 다 치울 거야.”
산림조합 사람이 말했다. 고목이 많은 깊숙한 산속이나, 낭떠러지와 맞닿은 위험한 경사면은 경력자들의 몫이었다. 하룻밤 사이 서남풍을 타고 크게 번진 산불 탓에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강원도 지방 산림 관서의 모든 직원이 투입되었다. 한 해에 다섯 명 밖에 뽑지 않는 패트롤 팀이나, 숲 가꾸기 팀원들도 급하게 소집되었다. 먼저 베테랑 둘과 실전 경험이 전무한 초짜 셋을 묶었다. 나는 전자에 속했다. 춘천 산림 관서로 발령을 받자마자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인천에 다녀와야 했다. 관서 업무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지만, 나무를 오르는 일은 그나마 자신이 있었다. 스무 살이 되자마자 돈만 내면 등록할 수 있는 온라인 대학에서 토목공학 수업을 들었다. 수업 과정을 따라가는 2년 동안 낮에는 패트롤팀에서 일했다. 그렇지만 산업기사 시험에 합격하고 몇 달 동안은 전기톱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나는 뒤늦게 산림조합 사람이 던져준 작업화와 전기톱을 챙겨 들었다. 옆면이 헤진 작업화는 할아버지의 것과 닮았다. 할아버지는 나무를 탈 때, 승족기 위에서 발바닥이 아닌 측면으로 버티는 습관이 있었다. 남들보다 다리가 바깥으로 휘어 있는 탓이었다.
산등성이 컨테이너로부터 사람들이 한둘씩 걸어 나왔다. 조명이 달린 헬멧과 고글을 쓰고, 허리춤엔 전기톱을 매달았다.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화재가 겨우 진압된 안마산의 풍경을 보면서 다시금 모두가 탄식했다. 북한강 줄기와 인접한 향로산에서 시작된 불길이 북동풍을 타고 인제군까지 옮겨 갔다. 불똥을 피해 간 양구군에서 봐도, 화염에 휩싸인 지역의 하늘이 붉었다. 밤새 관서 직원들의 단체 채팅방이 시끄러웠다. 낮보다 밝은 하늘 탓에 모두가 잠을 설쳤을 것이다.
나와 같은 패트롤 팀 동료였던 재형이 앞장을 섰고, 초짜 직원들이 뒤따라 내려왔다. 산의 바로 앞에 아파트 단지가 있었다. 그을린 창문도 여럿 보였다. 불길은 신기한 구석이 있다. 직접 닿지 않아도 그을음이 옮는다. 뜨거운 기운이 흘리고 간 발자국은 쉬이 지워질 것 같지 않았다. 나는 한 소나무 앞에서 멈춰 섰다. 토양 유실이 빠르게 진행되는 가파른 경사면에 자리한 나무였다. 반쯤 드러나 있던 뿌리는 불타 있었다. 설치류들이 갉아먹은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둥글게 패인 구멍이 토끼굴처럼 보이기도 했다.
내가 먼저 전기톱의 등으로 나무 기둥을 쳤다. 속이 썩은 나무를 등반할 수는 없다. 한 사람이 매달려도 될 만큼 단단한 몸집을 가졌는지 확인을 해야 한다. 나는 긍정의 사인을 날렸다. 재형은 이미 승족기를 차고 준비하고 있었다. 재형은 승족기만 신고서도 단숨에 나무를 타고 올라갔다. 이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여간 베테랑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두터운 가지 위에 걸터앉았다. 가지에 검은 로프를 단단히 묶고, 땅바닥으로 남은 줄을 던졌다. 이제 지상에 남은 사람들의 차례였다. 그때였다. 재형이 타고 올라간 나무 쪽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뼛속 깊이 스며드는 추위지만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다. 긴장하고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동상처럼 움직임 없이 서 있었다. 낙엽 더미 사이로 흰 꼬리가 보였다. 산속에서 토끼만큼 보기 힘든 동물이 없다. 산의 절반이 홀랑 타버린 예외의 상황에서는 다른가 보다. 본래 피해목을 다듬지 않은 장소를 터전으로 잡는 설치류들이 많다. 정돈되지 않은 장소에 인적이 드물다는 전제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토끼는 설치류과가 아니지만 비슷한 심산일 것이다.
네 명이 하나의 줄에 매달렸다. 단단해 보이는 주변 나무들에 로프를 묶어두고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톱밥이 사방으로 휘날렸다. 톱날이 가지 중앙으로 파고들었다. 모두 각자가 서 있는 나무 기둥 앞에서 로프를 잡아당겼다. 가지가 떨어질 방향을 잡는 것이었다. 줄에 휘감겨 있는 가지가 천천히 땅에 안착했다. 그 이후로는 같은 행위의 반복이었다. 톱날이 죽은 가지를 쳐내고, 줄을 잡아당기고. 새까만 가지 무덤이 쌓여 있었다. 그 봉분 위로 나무 기둥을 쓰러트려야 했다. 재형이 줄을 타고 내려왔다. 작업화 밑바닥의 스파이크가 몸통을 거칠게 긁었다. 송족기의 뾰족한 날이 나무껍질을 파고들 때는 무감했다. 잔가지뿐만 아니라 거대한 기둥까지 운구의 행렬을 따라야 했다. 하강하기 위한 발길질에 쓰러져주면 더 좋다는 듯이, 그는 힘차게 뛰어내렸다.
재형의 허리춤에 둘러두었던 줄이 기둥으로 옮겨갔다. 가지를 전부 잘라낸 나무는 얼굴 없는 정승 같다. 표정을 가질 수 없어서 다행이다. 나는 기둥이 엎어지며 눈을 질끈 감는 순간을 목격하고 싶지 않았다. 재형은 나무가 안착할 땅의 반대편에 섰다. 전기톱이 웽웽 울리며 밑동을 파고 들어간다. 톱날이 나무 지름의 3분의 1 정도를 베었을 때 멈추었다. 전기톱은 톱날이 만든 틈새로부터 한 뼘 위에서 경사를 타고 들어갔다. 방향 베기다. 나무는 내 기준으로 세시 방향을 향해 떨어져야 했다. 부채꼴 모양을 한 나무의 살점이 떨어졌다. 남은 반쪽으로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나무는 위태로워 보였다. 재형이 남은 반 틈을 베어내기 시작했다. 나는 팽팽해진 로프를 오른쪽으로 잡아당겼다. 있는 힘껏 잡아당겨도, 오늘따라 내 힘은 무용했다. 나무는 스스로 마지막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래도 손을 놓을 수 없었다. 곁눈질로 얼굴이 뻘게져서 안간힘을 쓰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굵은 기둥이 곤두박질치며 내는 소리는 굉장했다. 아궁이 속에서 바싹 익은 고구마의 껍질이 바스러지는 소리를 예상했다. 기둥을 뒤덮고 있던 껍질이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으므로. 흙먼지와 버석한 낙엽이 풀풀 날렸다. 입안에서 흙 비린내가 났다. 할아버지 옷장을 메우고 있던 익숙한 내음이 풍겼다. 옷장 구석에서 점점 쭈그러들며, 존재감을 지워가고 있는 나프탈렌 덩어리를 무시하고 퍼지는 내음이었다. 모두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훔쳐내며, 기둥 앞으로 모여들었다. 가까이서 보니 승족기의 날이 파고 들어간 흔적이 눈에 띄었다. 나무의 세월은 지름에 저장된다. 그렇지만 나무의 유년기부터 성년까지 기록한 키의 흔적같이 보였다.
휴대폰 화면이 깜박거렸다. 부동산 쪽에서 온 연락이었다. 이번 주 토요일에 짐을 뺄 예정이었다. 그 집은 셀프 인테리어를 취미로 하는 신혼부부에게 팔렸다. 화장실 타일부터 방음벽까지 부부 둘이서 리모델링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부가 처음 집을 방문한 날, 낡은 문짝의 상태부터 확인했다. 상태가 좋지 못한 문은 할아버지 방의 문이었다. 경첩이 녹슬어 약간 기울어져 있을 뿐이었다. MDF 합판으로 만들어진 문짝은 쉽게 변색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정감 없는 새집 냄새가 이런 목재들로부터 온다며 싫어했다. 하지만 그 창백한 색의 문에는 흔적이 담겨 있었다. 연필로 여러 번 덧대어 그린 비뚜름한 선 몇 개가 있었다. 날짜와 띄엄띄엄 기록되어 있지만, 가끔 줄자로 잰 신장도 적혀 있었다. 할아버지를 닮아 많이 크지는 못했다. 그래도 나무는 잘 탈 거다. 짧은 팔과 다리는 뱃심으로부터 나오는 힘을 전달하기에 딱 좋았다. 할아버지의 근거 없는 말이었지만, 나는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만큼 나무를 잘 타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방금 재형의 동물적인 몸놀림에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젊은 피가 끓어 넘치던 시절의 할아버지를 이길 재간이 없을 거다. 싱싱한 떡갈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할아버지와 재형의 등판을 떠올렸다가 금세 지워버렸다. 재형은 나무줄기를 거침없이 타고 올라가는데, 할아버지의 정수리는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당연한 섭리였다.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는 상상 속에도 침투했다. 재형이 도달한 가장 높은 곳의 가지와 할아버지의 앉은키 사이의 간격은 상당할 것이다. 지긋한 나이에 희한한 병까지 걸린 노인네와 젊은이. 흙바닥과 맞닿아 있는 노인의 발바닥은 긴장해야 한다. 흙을 얕보면 안 된다. 장정 몇 명이 삽질해도 걷어낼 수 없는 뿌리를 집어삼키는 입이다. 경사면을 따라 저항 없이 넘어질 일만 남은 할아버지에게 승족기도 로프도 주어지지 않는다. 할아버지에게는 피부 가죽 같은 것인데.
재형은 “급하게 먹지 말고, 빨리 이동합시다”라고 말했다. 관서 신입 직원들은 행간을 두고 대답했다. 관서 공무원들은 산업 기사 시험을 준비할 때나 전기톱을 만진다. 검지가 간헐적으로 눌린 자국도 없고, 말랑해 보인다. 나는 도시락을 먹기 위해 장갑을 벗었다. 관서에 속하게 된 지 얼마나 되었다고 굳은살로 이루어진 굴곡이 사라진 상태였다.
“이제 산사람 아니네?”
재형은 산림조합에 들어가서도 톱을 놓지 않았나보다. 그는 투박한 손바닥을 눈앞에서 흔들어댔다. 산일로부터 도망쳤다는 사실이 새삼 부끄러웠다. 도시락은 조양동 내에 있는 M 백화점으로부터 공급받았다. 패트롤들은 칠만 원 언저리의 일급을 받았다. 식비는 매달 초에 정산해주었다. 최고참 패트롤에게 영수증을 수거하라 시켰는데, 월말만 되면 영수증을 잃어버리는 팀원들이 대부분이었다. 원래 딸내미들은 꼼꼼하잖아. 매달 한 장도 빠짐없이 카드 명세를 제출하는 나에게 돌아오는 말이었다.
하루 팔천 원. 우리에게 허락된 점심값은 그 정도였다. 위험목 발견 장소가 산골이면 꼼짝없이 편의점 도시락 행이었다. 편의점 도시락의 쌀밥에서는 푹푹 찌는 여름 날씨에 실온에 꺼내둔 백설기 냄새가 났다. 질척거리는 식감도 비슷했다. 나는 본래 도시락을 먹는 분류였다. 온라인 대학 2년 차 과정을 수료할 즈음부터 팔천 원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할아버지의 양다리가 고목처럼 변해버린 시점이었을 것이다. 하얗게 센 다리털이 우수수 빠지는 광경은 처음 보았다. 할아버지의 병증은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처음 보는 경향이 있었지만, 그 고요한 신호탄이 가장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밥에서 쉰내가 올라왔다. 작은 감자 크로켓에서도, 닭튀김에서도, 볶은 김치에서도 똑같았다. 본래는 신물이 올라와도 그냥 먹었다. 모든 패트롤들은 일회용 용기 냄새에 이골이 났지만 아무도 내색하지 않는다. 호들갑을 떨 힘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상했나?’라고 중얼거리고, ‘뱃속에 들어가면 똑같아’하고 스스로 답한다. 나는 음식물을 삼키기도 전에 미리 가슴을 두들기며 길을 텄다. 아직 아파트와 인접한 안마산 경사면의 초입이다. 갑작스레 파고드는 겨울 산의 한기에 버티기 위해서는, 몸에 열을 낼 장작이 필요하다.
나무를 실은 트럭과 빈 트럭이 몰려 들어왔다. 아파트와 산의 경사면 사이에 조그만 주차 공간이 있다. 승용차 열몇 대가 들어갈 수 있는 자리를 트럭 두 대가 차지했다. 그마저도 잘라낸 피해목을 수거해갈 빈 트럭들이었다. 나무를 실은 거대한 트럭은 아파트 앞에 소방차 전용 주차 공간을 이용했다. 짐칸에 소나무와 자작나무 그리고 백합나무 묘목들이 섞여 있었다. 성장이 빠른 나무들로 피해목의 빈자리를 채워야 했다. 빠른 피복을 해야 산사태를 막을 수 있기 때문에 신속함과 생산성이 중요하다. 숲은 회사보다도 세대교체가 빠르게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하루살이 꽃도 있으니 말이다. 물레나물꽃이랬나. 인화력이 강해 가장 큰 피해를 본 소나무가 대체목으로 심어지는 일은 아이러니했다. 다시 불쏘시개로 쓰이지 않으리란 믿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혹한의 추위를 버티기에 소나무만큼 적합한 개체도 없었다.
안마산의 피해목은 전력자원개발을 하는 공기업에서 수거해가기로 했다. 피해목은 요긴한 자재다. 화재 피해를 보아도 발전 연료로 쓰일 수 있었다. 지름이 크거나, 낙엽송같이 활용 가치가 있는 우량 목재를 훔쳐 가는 사람도 있었다. 할아버지가 벌목 일을 하던 때는 늘 있는 일이었다. 실은 할아버지도 불법 반출을 시도한 적이 있는 나무 도둑이었다. ‘잡목이나 부지깽이 실은 트럭들은 파쇄장으로 가고, 실한 장딴지만 골라 실은 아저씨들은 다 흩어진다니까. 좋은 걸 물어가니까 그걸로 마당 의자도 만들고, 책상도 만들고, 개밥그릇도 만들겠지. 그래서 나도 물어 왔다!’라고 말했다. 때밀이 의자를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자작나무 기둥을 들고 왔다. 궁둥이를 붙일 부분만 사포로 갈아서 베란다에 내놓았다. 할아버지는 그 위에 앉아서 운치를 즐겼다. 쪼그려 앉았다 일어설 때 무릎이 아프다면서도, 굳이 자작나무 의자를 찾았다.
나이테가 보이는 의자의 윗면에는 검은 반점과 얼룩이 있었다. 할아버지 손때와 담뱃재가 묻은 줄 알았다. 곱씹어보니 산불 현장 복원 사업을 하는 곳에 다시금 불이 난 사고가 있었던 것 같다. 그곳은 할아버지네 팀이 관할하던 구역이었다. 사람들은 어느새 피해목의 마지막 유해를 옮기고 있었다. 소나무의 잘린 단면도 검게 물든 부분이 있었다. 장작으로 쓸 요량이겠지만, 죽부인을 끌어안은 듯한 모양새가 웃겼다.
“이동! 이동!”
재형은 목장갑을 끼고 손뼉을 쳤다. 호탕한 목소리 뒤에 소심한 마찰음이 이어졌다. 그는 예전 버릇을 버리지 못했다. 허리에 감긴 로프가 땅바닥에 질질 끌리도록 놔두었다. 재형의 허리 줄을 보고 뱀이라고 나자빠진 일도 있었다. 나는 줄을 감아 재형의 왼팔에 끼워 넣었다.
“트럭 하나 빌려줘? 서쪽 끝부터 동쪽 끝까지 피난 오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닐 텐데? 조합에 트럭 많아.”
“피난은 무슨. 이삿짐센터 부르면 돼. 그리고 조합 트럭을 어떻게 빼돌려?”
“명절 선물도 빼돌리는데, 트럭이라고 못 빼돌리겠어?”
나와 재형은 패트롤 팀에서뿐만 아니라 노량진 학원에서도 동지였다. 산림조합중앙회에 들어간 재형은 조합장에게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조합에서는 일정 금액 이상을 예치한 조합원에게 명절마다 선물 세트를 보내야 했다. 새로 온 조합장은 직원들에게 돌아갈 설 선물을 빼돌렸다는 죄목으로 조사를 받고 있었다. 지금은 춘천시와 인제군 전체를 덮친 화재 사건으로 잠잠해진 분위기였다. 재형은 열을 내며 돌부리를 걷어찼다. 명절 선물을 주고받을 가족조차 없는 소년 가장 출신에게 이 무슨 악질적인 범죄를 저질렀냐는 말이다. 명절 선물 센트만큼 가족적인 것도 없다.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이벤트가 무산되었다. 직원들에게 돌아갈 선물은 조합장의 친척과 친구들에게 돌아갔다. 혈육이라고는 할아버지뿐이었던 나도 재형과 처지가 같았다.
가끔 소속감을 느끼고 싶을 때가 있다. 패트롤 팀원들과 빼곡한 나무 기둥 사이에서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던 때는 좋았다. 각기 다른 지점에 서서 같은 로프를 잡아당길 때도 결속력이 느껴졌다. 이어져 있다. 내 힘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나는 분명 손바닥으로 전해진 고통으로부터 끈끈한 유대를 느낄 줄 알았다.
최초로 화재가 발생한 구역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단지를 지나쳐왔다. 밑동까지 제거하는 큰 작업을 할 일이 거의 없어졌다. 민가와 맞닿은 경사면보다 깊게 들어가서, 그을린 가지를 쳐내는 자잘한 일이 남았다. 아파트까지도 불길이 닿은 안쪽 단지가 가장 붐볐다. 우리 피해목 제거팀과 발전기업 직원들 그리고 구호물자를 나르는 자원봉사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산으로 가는 길목에서 심심치 않게 불에 탄 고라니나 다람쥐 사체를 볼 수 있었다. 근처에서 탄식 소리가 들려오면 일부러 모르는 척을 했다. 물가나 사람이 사는 마을을 찾았다고 하더라도, 호흡기가 상한 짐승이 태반이다. 연기는 귀신같다. 두루뭉술한 형태를 해놓고서 빈틈이 보이면 매섭게 달려든다.
나무에 올라서 볼 때 탄 나뭇가지를 구별하기 어렵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까맣게 변색한 경계선까지 볼 수 있다. 나와 재형이 나무를 타기로 했다. 나머지 셋이 떨어진 나뭇가지를 주워 다발을 만드는 역할이다. 1년 만에 승족기를 찼다. 승족기에 달린 벨트만으로도 발을 고정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할아버지의 방법을 고수했다. 발과 받침대를 묶고 있는 벨트 위로, 탄력 있는 손목 아대를 덧씌웠다. 나무 위에서는 승족기의 받침대가 땅이다. 중력이 받침대에만 존재한다고 믿어야 한다. 발 디딜 땅이 한참이나 밑에 있다는 사실은 공포로 다가온다. 그래서 처음 나무를 타는 초심자에게 절대로 밑을 내려다보지 말라고 한다.
이미 기둥을 타고 올라간 재형은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나는 부산스럽게 구는 재형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정상을 보고 기둥을 올랐다. 허리춤에서 흔들리는 전기톱, 단번에 나무껍질을 뚫지 못하는 승족기의 날, 후들거리는 팔. 재형과 비등비등하던 나무타기 실력은 온데간데없었다. 가장 가까이에 있지만, 부실한 가지를 지나치고 한참을 올라갔다. 몇 발자국 더 내딛는 순간이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완전히 초짜 때로 돌아간 것이나 다름없다. 온종일 걸리겠다는 재형의 말에 울컥했다. 신입 패트롤로 돌아가도, 승족기 버클을 채우는 방법부터 전기톱 날을 관리하는 법을 알려줄 사람이 없다.
발밑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등허리에 소름이 끼쳤다. 나는 이성을 잡을 새도 없이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멀어진 땅이 요동쳤다. 양팔을 벌려 나무 기둥을 부여잡았다. 가지가 뻗어 나오는 부분에 사타구니를 붙이고, 벌름거리는 가슴을 가라앉혔다. 토끼를 보았다. 오늘로 두 번째였다. 길조일까. 흉조일까. 나무타기를 하면서 생긴 나의 버릇 중의 하나이다. 알고 있는 미신은 모조리 끌고 와서 사소한 일에 의미를 부여했다. 위험천만한 일을 하면서, 죽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산재보험에 위안을 얻을 수는 없다. 손에 앉은 거미를 죽이지 않고 양지바른 땅에 놓아 주었으니 오늘은 괜찮다. 거미는 반가운 손님이니까. 음기가 넘친다는 북쪽으로 자란 나무를 일부러 재형의 몫으로 떠넘기기도 했다.
방금 본 토끼는 집토끼가 분명했다. 집토끼는 멧토끼와 실루엣부터가 다르다. 안 그래도 작은 덩치이지만, 웅크리고 있는 흰 토끼는 비쩍 마른 태도 났다. 미세한 움직임을 보이던 토끼가 튀어 올랐다. 바싹 마른 낙엽을 부산스레 흩트리며 뛰어가는데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모두가 검게 탄 가지를 찾느라 바빴다. 아래에서 세 번째 가지요. 아니, 거기보다 위요. 사람들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쪽으로 톱의 머리를 가져갔다. 왼손으로 나무 기둥을 붙잡고, 허리를 두 시 방향으로 꺾었다. 이 위태로운 자세로 가지를 쳐내야 했다. 그을린 가지는 흐물흐물한 톱밥을 휘날리며 아래로 떨어졌다. 껍질에 수분감이 있을 때, 더욱더 날카롭고 두꺼운 톱밥이 나왔다. 오래 불린 각질처럼 휘날리는 잔여물이 얼굴에 달라붙었다. 점차 한 손으로 몸을 지탱하고 얼굴을 닦아 낼 여유가 생겼다. 너저분하게 흩어진 가지들이 빠르게 정리되었다. 열댓 개의 가지를 노끈으로 묶어 하나의 다발을 만들었다. 까만 다발을 한 줄로 정렬했다. 수거해가는 사람들을 위해서였다.
아파트 단지의 경계가 되는 울타리가 끝나는 시점부터 도로가 시작되었다. 발전기업의 직원들은 패트롤 팀을 따라서 차를 몰고 왔다. 짐칸에 검은 천막을 씌운 트럭 몇 대가 정차되어 있었다. 칙칙한 색의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천막으로 들어갔다가 나오기를 반복했다. 호스피스 병동의 주차장에서 볼 수 있는 익숙한 풍경이다. 근조화환을 실어 나르는 트럭도 짐칸에 차광막을 씌운다.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근조화환을 배달하는 차량을 본 적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고속도로 위에서 마주친 배달 차량은 나와 향하는 목적지가 다를 확률이 높다. 동요할 필요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다르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일부러 할아버지의 병실을 주차장 반대편으로 옮기기도 했다.
호스피스 병동과 병원 본관 사이에 장례식장이 있었다. 그쪽으로 이어진 통로와 병동 로비 오른편에 위치한 정신과 전문의의 진료실이 가장 붐볐다. 본관에서 쫓겨나듯 이전하여 급하게 마련한 진료실이었다. 의사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어서 다행이라 말했다. 요새 대학병원에서 정신병동을 내쫓는 트렌드가 있다고 했다. 울적한 이야기를 해서 미안하다고도 덧붙였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겠지만, 나는 한 번 울적함을 깨달으면 모든 것을 울적하게 만들고자 노력하게 되었다. 지치는 상황 속에서 튀어나오는 웃음은 모순적이다. 고목처럼 굳어가는 할아버지 앞에서 온갖 희망적인 말을 하며, 미소짓는 일은 어려웠다. 할아버지는 돌려 눕히는 대로 누워 미동이 없었다. 그 앞에서 절망 이외의 감정을 표출하는 무정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재형은 낙하하듯이 줄을 타고 내려갔다. 하강은 쉬웠다. 나무가 나를 지탱해 줄 만큼 튼튼하다는 신용이 생겼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패트롤 팀이 맡은 구역의 경계까지 걸어갔다. 산의 중턱에 들어서기 시작하는 길목으로 1km가량 전나무 숲이 펼쳐져 있었다. 전나무들은 지금까지 봤던 나무들에 비해 확연히 키가 컸다. 겉보기에도 오래 살은 나무가 죽어 있었다. 양팔을 벌려 지름을 가늠해 보았다. 유도 벌목 장치를 써야 했다. 이런 경우 방향 베기만으로 안전한 장소에 나무를 쓰러트릴 수 없다. 다른 피해목을 제거할 때와 마찬가지로 로프를 단단하게 감고 윈치라는 기계를 이용해야 한다. 사람 대신 줄다리기를 해주는 기계라고 보면 된다.
나무 꼭대기에서 재형이 내려준 로프를 기둥에 감았다. 보통 근처에 있는 나무 다섯 그루에 줄을 이어 감았다. 장수한 전나무를 쓰러트리기엔 턱도 없었다. 주변에 굵어 보이는 전나무 모두 줄에 묶였다. 무게를 여러 곳으로 분산시켜야 나무가 다치지 않는다. 재형의 톱날이 커다란 조각을 냈다. 소나무를 벌목할 때 보다 큰 부채꼴의 조각이 떨어져나왔다. 재형이 기둥을 퉁퉁 두들기며 ‘어이!’하고 소리쳤다. 각자 자리에서 윈치의 손잡이를 빠르게 돌렸다. 발뒤꿈치에 무게 중심을 싣고, 윈치에 매달려 뒤로 누워야 했다. 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면서 우지끈 소리가 났다. 양손으로 손잡이를 붙잡고 더욱 빠르게 회전시켰다. 전나무 이파리가 하늘을 뒤덮고 있다. 그 앞으로 진동하는 로프가 보였다. 기다란 선. 그래, 저 까만 실선이 지난 몇 달간 나를 얼마나 괴롭혔는지 모른다.
의사가 건넨 검사지는 여백이 많았다. 비어있는 문장을 마음대로 완성 시키면 되었다. 문장은 대부분 첫머리로 ‘나’를 달고 있었다. ‘나는’ 바로 뒤에 실선이 이어진 문항도, ‘나에게 이상한 일이 생겼을 때’ 뒤에 실선이 이어진 문항도 있었다. 나의 이야기를 요구했다. 나는 빈칸을 끝내 채우지 못했다. 다소 충격적이었다. 예전이라면 산에 대해 적었을 텐데. 지금이라면 ‘나는 입산자가 싫다. 입산자가 달고 오는 담뱃불은 더 싫다.’라고 적었을 것이다. 다음번에 뭐라도 채워오라는 재촉에 더욱 머뭇거렸다. 나는 할아버지 진료를 위해 의료진이 왕진을 오는 시간보다도, 상담 시간을 기다렸다. 할아버지 앞에서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쳐주기를 바랐다. 사람이 죽음에 가까워지면 갓 태어났을 적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나는 되레 내가 목가누기도 못하는 아이로 돌아간 것 같았다.
전나무가 넘어지며 굉음을 냈다. 땅이 울리는 소리가 산의 초입까지 퍼져나갈 수도 있었다. 모두가 식은땀을 훔치며 주저앉았다. 남은 뿌리는 묘목을 옮겨심기에 방해가 될 만큼 컸다. 굴착기를 몰고 올라올 수 없는 위치였다. 온종일 땅을 파는 일에 매진해야 했다. 잘려 나간 전나무 뿌리의 몫을 하려면, 묘목 세 그루를 심어야 했다. 여백을 메워야 흙이 유실되지 않았다.
하산할 시간이 다가왔다. 춘천시와 가까운 곳에 거처가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모두 근처 초등학교로 이동해야 했다. 초등학교 강당의 딱딱한 바닥은 떠올리기도 싫었다. 내 방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매트릭스가 그리웠다. 매트릭스는 프레임이 따로 없어서 제멋대로 움직였다. 이사할 때 버리려고 벼르고 있던 것이었다. 그렇지만 씻지도 않고 그 위에 누워 잠들고 싶었다.
묘목 옮겨심기를 할 때는 민간단체가 많이 참여한다. 사람들은 숲을 조성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묘목을 옮겨 심을 땅이 그냥 생기는 줄 안다. 불에 타서 다시 잎이 자랄 수 없는 나무에게 붙여진 이름이 피해목이다. 새로운 숲을 만드는데 피해를 주는 나무라는 의미인지, 피해를 보아 죽음을 선고받게 되었다는 의미인지 헷갈릴 때가 있었다. 내 생각엔 전자가 맞았다. 제거되는 피해목들의 죽음에 사람들은 잠시 씁쓸함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피해목이 있었던 자리의 위치도 잊어버릴 터였다. 죽은 나무를 위해 봉분을 쌓아주는 것도, 비석을 세워주는 것도 아니다.당분간 관서로 돌아가지 못하고, 현장 업무를 봐야 하는 것은 확실했다. 그래도 내일부터 다른 지역의 패트롤 팀도 투입되었다.
장비 반납을 하고 이삿짐센터와 연락을 해야 했다. 짐을 싸러 가는 김에 호스피스 병동에도 들러야 했다. 할아버지의 속옷과 겉옷 한 벌을 챙겨오지 않은 탓이었다. 할아버지가 쓰던 휠체어도 의료기기 대여센터에 반납해야 했다. 미루어 둔 일이 떠오르자, 발걸음이 분주해졌다. 아무도 할아버지의 남은 옷가지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터였다. 낡은 속옷과 손때가 타서 반질반질해진 산림청 점퍼나. 할아버지가 있어야 쓰임새 있는 물건이다. 무용하게 옷장의 자리만 차지하고 있어야 할 물건들과 낡은 옷장, 가끔 모래 알갱이가 밟히는 오래된 이불, 어릴 적부터 키를 기록해온 문짝. 치우고 새로 채워 넣어야 할 것들이 산더미이다. 해결해야 할 일이 연달아 이어져서 다행이었다.
싸라기눈이 날리기 시작했다. 얼어붙은 빗방울이 톱밥처럼 휘날렸다. 처음에는 나무 꼭대기에서 떨어지지 못한 잿가루가 날리는 줄 알았다. 뿌옇게 변한 하늘이 밝았다. 우리가 오른 산지보다 높이 있는 봉우리로부터 그림자가 내려왔다. 산그림자가 뒤덮인 숲에 비해, 하늘은 조명을 켜둔 듯이 밝았다. 어깨에 걸친 승족기를 붙들어 매고 걸음을 재촉했다. 손과 발이 얼어붙을지 몰랐다. 동상에 걸리면 겨우내 가려움에 시달려야 했다. 화재가 일어난 당시, 특수진화대가 급하게 벌목한 나무와 우리가 쓰러트린 피해목이 널브러져 있었다. 패트롤 팀원들이 걷고 있는 등산로의 층계에만 장막이 씌워진 것 같았다. 우리가 내는 소음을 제외하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무가 숨 쉬며 나는 껍질 갈라지는 소리. 무리를 지어 다니는 덩치 큰 산쥐들이 내는 소리. 숲이 내는 생활 소음이 없다.
“성묘객 같지? 성묘객 맞댄다.”
등산로로 진입하니 데이터가 터졌다. 재형은 휴대폰 화면만 들여다보면서, 발을 헛디디지 않고 잘만 걸었다. 나는 재형의 말이 우리를 지칭하는 줄 알았다. 고요함 탓에 무덤 속을 걷는 것 같았다. 성묘객이 향을 피우기 위해 썼던 성냥개비의 잔해가 1,400ha의 산림을 잿더미로 만든 불씨를 퍼뜨렸다.
회백색의 컨테이너 앞에 인파가 몰려 있었다. 대형 드럼통에 불을 피워놓고 손발을 녹이고 있겠거니 했다. 정돈되지 않은 언덕의 흙이 사람들 발에 밟혀 말끔해졌다. 화분토처럼 부드러운 부분이 있어서 발을 내딛기 힘들었는데 오르기 훨씬 쉬워졌다. 내려갈 때는 작업화의 스파이크 덕에 미끄러지지 않은 것이었다. 중심 산맥의 끝자락에 겨우 포함된 언덕이었기 때문에 산지라고 부르기도 애매했다. 점심까지만 해도 남아있던 몇 그루의 소나무도 사라진 상태였다. 완전히 민둥산이 되어버린 언덕에서는 불을 피워도 된다. 한 차례 화염이 휩쓸고 가서, 더는 태울 유기질도 남아있지 않았다.
컨테이너 앞에 헤드라이트가 달린 헬멧을 쓰고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소나무를 걷어내고 보니, 땅속에 묻혀있던 환삼덩굴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인적 드문 언덕이 우거진 숲을 가질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환삼덩굴은 수목을 고사 시킨다. 햇빛이 닿는 곳이라면 어디로든 몸집을 불린다. 언덕의 정상에서 양분을 실컷 먹고 자랐을 것이다. 삽이 닿는 범위가 점점 넓어지면서, 삽을 집어 던지고 주저앉는 사람들이 나왔다. 고된 노동 이후에 빨리 치워버리려고 했던 잔업이 예상외의 복병이 되었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과 바통 터치를 하며 작업이 이어졌지만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왜 안 되느냐. 내버려 두고 가면 찜찜해서 꿈에 나오겠다. 모두 같은 마음으로 중얼거렸다. 대답을 원하고 하는 말은 아니다. 입을 열고 무어라 말하는 사람들은 헤드라이트가 비추고 있는 흙바닥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재형이 “내일 예초기 들고 와서 합시다. 이거 완전히 갈아버려야 해. 굴착기로 우물 하나 파야 할 수도 있어요. 이러다 누구 하나 골로 가겠네.”라고 외쳤다. 사람들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도 힘든 상황에 웃을 힘이 남아 있는 게 신기했다.
작업복을 벗어 던졌다. 안에 입고 있던 내의와 트레이닝복이 땀범벅이었다. 작업복은 방한복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었다. 사무실 안에 비치된 난로 앞에서 벗어나자 오한이 돌았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패딩을 걸치고 바깥으로 나갔다. 팀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 동안 함께한 패트롤 팀끼리 무리 짓는 경우가 많았다. 안마산 초입에 있는 대형 주차장에 단체 버스가 대기 중이었다. 오늘로 세 번째, 토끼를 보았다. 토끼라기보다 토끼 더미였지만 말이다. 안마산 안내판 밑을 쓰레기 수거 장소로 만든 모양이다. 가지런하게 쌓인 도시락 용기 옆에 엎어진 잔반통이 보였다. 내가 제대로 본 것이 맞았다. 멧토끼보다 확연히 작은 몸집을 가지고 있는 집토끼 무리였다. 패트롤 팀에서 일할 때, 간혹가다 집토끼를 산에 버리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집토끼가 본래 살던 자연으로 돌려 보내주겠다는 취지의 유기였다. 집토끼는 산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할아버지도 애처롭게 울어대는 집토끼를 데려온 적이 있다. 투박하게 목덜미를 붙잡은 채로 토끼와 함께 귀가했다. 토끼를 버린 사람은 초등학교 앞에서 염색한 병아리를 갖다 팔 듯이, 사료를 조절해서 몸집을 작게 유지한 토끼를 갖다 팔려고 했던 것 같다. 대담하다. 산을 오가는 사람이 몇인데, 열댓 마리를 전부 버리고 가다니.
새끼 때부터 사람 손을 타고 자랐지만, 굴을 파는 습성은 그대로였다. 토끼들은 얕게 판 굴에 몸집을 욱여넣고 있었다. 윤기를 잃은 털에 서로의 배변물을 묻히고 뒤엉켜 있다. 대부분 움직임이 없었다. 그 냄새 나는 덩어리 속에서 한 마리가 움찔했다. 전나무 위에서 보았던 새하얀 토끼와 닮았다. 같은 녀석일지도 몰랐다. 토끼 울음소리는 잘 들을 수 없다. 울지 않는 동물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산속의 최약체는 소리를 낼 줄 알아도 숨겨야 한다. 움직임을 보인 토끼가 괴상한 소리를 냈다. 녹슨 경첩이라도 삼킨 줄 알았다. ‘께겍’소리를 내는 녀석의 뒷덜미를 잡아 들었다. 미세한 온기가 느껴지는 것이 묘했지만, 맥박이 규칙적으로 손바닥을 두들기는 리듬감이 좋다. 충동적인 결정이다. 나는 토끼를 안고 버스에 올랐다. 누구 하나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
불타버린 산지가 본래의 모습을 찾기까지 25년에서 30년이 걸린다고 했다. 놀라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이테가 두어 개 생기는 세월’이라 생각하면 그리 길지도 않다. 나는 이삿짐을 싸러 가기 위해 고속도로를 타고 있었다. 새로 입주할 신혼부부는 텔레비전 장식장 제작을 위해 거실 면적을 재러 온다고 했다. 온 김에 이삿짐 싸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붙임성 있게 말했다. 나와 할아버지가 남긴 사소한 흔적이라도 다 지우겠다는 요량이다. 새로이 꾸며질 집이 궁금하긴 했다. 일단 사람들 틈바구니에 섞이고 싶다. 자꾸만 혼자서 짊어진 슬픔의 타격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려 들었다. 잊어야 했다. 여건이 되지 않아 내버려 두고 온 환삼덩굴의 줄기처럼 내버려 둬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