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찬송가가 탄생하는데는 벤야민 슈몰크 목사의 피눈물어린 고통의 삶이 있었다.
너무나 맘이 찡하여 옮겨 보았습니다.
뜻을 생각하며 찬송을 불러 보시고 은혜를 받으시길.....
30년 종교 전쟁으로 여러 나라의 싸움터가 되었던 독일은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흑사병으로 인해
1600만 인구가 600만으로 줄었고 산업 시설은 잿더미로 변했다.
슈몰크 목사가 시무하던 실레지아는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로서 전쟁후 거의가 카톨릭 교회로 돌아가고
그 넓은 지역에 유일한 통나무 움막이요 종탑도 없는 흙벽의 교회 하나만 허락이 되었다.
도심지에는 교회를 세울수도 없고 카톨릭 신부의 허락 없이는 장례식도 치룰수가 없었다.
슈몰크 목사는 조사 2명과 더불어 36개 마을이나 되는 넓은 교구를 카톨릭 교회의 신부들의 눈치를 살피며 돌봐야 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과로로 쓰러졌고 중풍병과 백내장으로 보이지 않는 눈으로 절룩거리며
널리 흩어져 있는 양들을 충실히 돌보고 있었다.
카톨릭 교회와 루터 교회 사이를 방황하던 교인들도 목사의 뜨거운 사랑에 녹아져 돌아 오게 되었고,
서로 부둥켜 안고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슈몰크 목사는 그 먼곳까지 찾아가 양을 위하여 기도했고, 양들은 목사의 건강이 어서 회복 되기만을 위해 기도했다.
사랑으로 얽힌 교회는 크게 부흥하였다.
그러던중 1704년 어느날. 병약한 슈몰크 목사 부부는 그 먼지역을 심방하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살던 집이 불에 타서 잿더미가 되어 있었다.
아들 형제를 두고 심방을 다닌 것인데 ...당황한 목사님 부부는 잿더미 속을 파 헤치기 시작했다.
잿더미 속에서는 두 아들이 서로 꼮 껴안고 불에 타 죽어 있었다.
두 아들의 시체를 앞에 놓고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울부 짖은 찬송이 바로 이 * 내주여 뜻대로 행하시 옵소서 *다
우리의 일생에서 이보다 더 한 고통이 있으랴.
하나님의 종을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는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을까?
나에게 닦친 고난이 원망과 불평이 아닌 내 주께 맡기는 한차원 높아지는 믿음이 된다면...어떨까?
1. 내주여 뜻대로 행하시 옵소서
온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이세상 고락간 주 인도 하시고
날 주관 하셔서 뜻대로 합소서
2. 내주여 뜻대로 행하시 옵소서
큰 근심 중에도 낙심케 마소서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날 주관 하셔서 뜻대로 합소서
3. 내주여 뜻대로 행하시 옵소서
내 모든 일들을 다 주께 맡기고
저 천성 향하여 고요히 가리니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합소서......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