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진 콘서트
“엄마 콘서트 두 장 예매 했으니 애인하고 다녀 오세요”
아들의 능청 스러운 전화 였다.
요즘 들어 전화도 뜸 하고 지난번 생일 선물이 마음에 안 들어 삐 진걸 눈치 챘는지
며느리와 둘이서의 작전임이 틀림없다. 메이커 신발이니 거액을 주고 샀겠지만
왠지 똑같은 사이즈의 신발 인데도 불편했다.
마당발 과 칼 발 의 차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이미 한번 씩 신어서 바꾸지도 못하고 신발장에 고이고이 넣어 두었다.
그것도 두 켤레씩이나,,,
의정부 콘서트 날자를 보니 근무 날이라 여러모로 생각해보니
시간 없어 못 간다고 하면 엄마는 늘 바쁘니까 하며 다음에도
구경을 안 시켜 줄것갇아서 서운했던 마음은 접어 버리고 가겠다고
약속을 하고 다른 근무자를 대치하고 떠났다.
콘서트장 앞에는 60 대에서 80 대 노년의 팬 들이 끝없이 줄 을 서 있었고
그 넓은 좌석이 점점 메워지고 있었다, 조용필 콘서트 장 엔 젊은 팬들이더니
남진은 모두 할머니들이 많다. 쑈는 시작되고 화려한 불빛속에서
혜성처럼 나타난 남진은 그 옛날 핸섬하고 풋풋한 그 오빤 어디로가고
뚱뚱하고 배도 나오고 턱 밑에 느러진 주름하며 춤 추는 동작도 둔하고
많이도 변했지만 목소리는 여전했다. 오 십년이 지났으니 그럴법도 하지
나도 이렇게 늙어가고 있지 않는가.
이십 대 의 힛트 했던 곡에서 최근에 이르기까지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청중을 매료 시키며 진행하는데 뒤에서 앞에서 할머니 펜들은
함성을 지르며 난리가 났다.
ㅡ오빠는 나의 첫사랑 이 였어요. 오빠 아프지마, 오빠 사랑해. ㅡ
오빠는 들은 채도 안하고 노래만 신나게 부르는데 아ㅡ이구 가관이 아니다
TV에서 보던 극성맞은 펜들과 학생들이 학교도 안가고 떼를지어
연예인을 따라다니는 것을 보고 나무랬는데
노인들도 이러니 아이들을 나무랄수있을까!?
바로 앞 자리에 노년의 남녀가 앉아 아까부터 뽀뽀를 자꾸만 한다.
하다 말겠지 하였으나 볼에다 입에다 또 한다.
눈에 거슬리고 민망해서 더 참을수가 없어
입구에서 하나씩 나누어 준 불 빚나는 등으로 여자의 등을 꾹 찔렀다.
그녀는 놀라서 획 돌아다 보는데 옆자리 앉아있던 내 동생이 내 허벅지를 꾹 찌르며
그러지 말라고 싸인을 보냈다.
“여보세요 장난 좀그만 하시죠.
뽀뽀는 안방에서나 하지 여긴 공공장소 아니예요.”
거액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왔는데 공연에 집중이 안 되고 코 앞에서
신경쓰게 하니 화가나 쏘아 붙였다.
애들이 그러면 귀엽게나 봐주지 늙은이 들이 주책인지 망령인지 꼴불견이었다.
혹시나 두 사람이 와락 덤벼 들까봐 조금은 겁도 났지만
나의 머리 속 에선 꼼짝못할 말을 찾아 헤메고 있는데
돌아보며 움찔 하더니 조용하다. 만약에 남이야 뽀뽀를 하든 말든 무슨 참견이냐고
대들면 나도 할말은 없겠지만 조금 있더니 자리를 뜨고 어디론가
어둠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속이 시원했다.
나는 열심히 노래에 맞추어 등을 흔들며 옛 추억에 빠져 버렸다.
남진의 애창곡이며 우리 아들의 세 살때 지정곡이였던 님과 함께 가
마즈막 휘날래를 장식하며 무대에 불이 꺼지자
앵콜 ㅡ앵콜 ㅡ앵콜 하니
두 곡을 더 부르고 60년도 여자들의 마음을 송두리째 앗아갔던
남진 오빠는 허무하게 무대 뒤로 안개처럼 사라졌다.
한국에 앨비스 프래슬리 라고 하던 남진도 그도
세월엔 장사 없다고 많이 늙어 있었고 그래도 두시간 공연을 혼자
매끄럽게 진행하니 73세 나이에 아직도 건강하시고 역시 프로는 멋 있었다.
남진 과 의 두 시간의 추억의 음악 여행도 끝이나 줄지어 나오는 관객들에게
떠밀려 나오며 아직도 흥이 가시질 않았는지
ㅡ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고싶어 ㅡ
한때는 나의 로망이 였던 님과 함께 가사를 흥얼 거리며 님 도 떠나고
꿈 도 떠나고 오빠 도 떠난 쓸쓸함 을 어둠속을 걸으며 스치는
초 겨울의 찬 바람을 쏘이며 나는 환상속에서 깨고 있었다.
2018 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