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임시정부 자료 전시관 관람을 마치고 중경여행의 마지막 코스인 츠치커우로 향한다.
자기구(磁器口츠치커우) 옛날 마을은 원래 이름이 룡은진(龙隐镇)이었으며, 지금은 국가AAAA급 관광지로서 중국의 유명한 역사문화거리이다.
청나라 초에는 이곳의 도자기 산업이 매우 발달했었는데, 도자기의 품종도 많았었을뿐더러 사업장이 70여 곳이나 될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은 대부분 중경 지역의 특색 음식인 먹거리 위주의 미식가로 바뀌었다.
중경 지하철[전철] 노선도.
2번 역인 림강문에서 타고 제법 한참을 간다.
중경 지하철 내부 풍경.
지하철이 교외로 가면서 지상철로 변하고 도착한 역에서 내려 조금 걸어가니 드디어 자기구 입구가 나온다.
자기구 고진(磁器口古镇)은 宋代에 건립되었으며, 하나의 강과 두 개의 시내, 세 개의 산과 네 개의 거리(“一江两溪三山四街”)를 포함하고 있는 독특한 지형으로서, 가릉강(嘉陵江)의 중요한 나루터였었다.
우리가 들어간 입구는 주 입구는 아닌 듯, 좁은 골목에 사람들이 넘쳐난다.
중경 하면 훠궈와 매운 음식으로 유명한데
고추를 바삭하게 구운 음식이다. 한 근, 즉 500그램에 25원. 시식은 무제한.
훠궈 재료를 만들기 위한 고추 빻기.
훠궈 육수를 궈디(锅底)라 하는데, 수공으로 만든 궈디 10봉지에 100원.
좀 큰 것은 100원 7봉지. 무료 택배 가능.
전국으로 택배될 상품들.
즉석 가공, 무료 시식.
이 츠치커우 각 가게들의 특징은 하나같이 관광객들이 사든 안사든 이처럼 마음껏 시식하게 해놓았다는 것.
먹거리 위주 골목 중간중간에 이러한 공예품 가게도 보인다.
중경 강정.
마라와 오향의 고기.
마음껏 맛보세요~
호두?
매운 냄새가 코를 심히 자극한다.
매운 량펀.
요런 골목도 있고.
진흙으로 싸서 구운 거지닭.
이 골목은 조금 넓다.
사이비 땅콩ㅎ.
여기가 츠치커우의 중심 쯤 되려나.
손대지 마세요~
김치와 향주머니도 팔고.
문어포.
주출입구가 저기 였구나.
자기야, 같이 가~
저팔계의 수제 솬라펀 만드는 모습 시연.
맞은편에서는 손오공이 손님을 부르고.
사장 특명: 손님의 이목을 끌어라. 판다와 경극복장.
여기도 수제 솬라펀.
경극 배우의 복장.
경극배우의 분장과 소도구들 하나하나가 모두 상징이라고 하는데,
그중 깃발은 많을 수록 지위가 높다고.
좀 전의 사진 거지닭의 확대 모습.
저 안에 잘 익은 닭이 들어있겠지.
외래 먹거리도 있다.
인도의 나르는 전병은 줄을 설 정도로 인기.
공예품 가게.
중국어로는 마화라고 하는 꽈배기.
우리 입에도 거부감 없는 맛이다.
이제 어디로 가 볼까?
오른쪽 두번째 표지판 보륜사 방향을 가리킨다.
그래 저 절에 한 번 가보자.
보륜사 입구.
자기구의 최초의 지명은 백암장(白岩场)이었으며, 송나라 진종(真宗) 함평(咸平) 연간(998—1003)에 이곳에 백암사(白岩寺)라는 절이 있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었다.
명나라 건문제 4년에 건문제(建文帝)가 넷째 숙부였던 주체(朱棣훗날 성조 영락제)에게 왕위를 찬탈당한 후 황궁을 도망나와 삭발하고 중이 되었는데, 마침 이 일대를 유랑할 때 일찍이 백암산(白岩山)의 보륜사(宝轮寺)에서 4-5년 은거하였다고 한다. 사람들이 사정을 알고 난 후 진정한 황제인 용이 이곳에 은거했었다고 해서 보륜사(宝轮寺)란 절 이름을 용은사(龙隐寺)라고 고쳤다고 하며, 백암장(白岩场)이란 이름도 용은진(龙隐镇)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보륜사(宝轮寺)는 서위(西魏) 때 서위의 대도독(大都督)이었던 울지형(尉迟炯)이 건립했으며, 원래 이름은 백애사(白崖寺)였다.
대웅보전.
전설에 의하면 명나라 건문제(建文帝)가 일찍이 여기에 은거한 적이 있으며, 대웅보전(大雄宝殿)이란 네 글자가 힘이 있는데, 중국불교협회 주석인 조박초(赵朴初)가 썼다고 한다. 대웅전의 웅장한 건축물은 쇠못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전망이 좋다.
절에서 나와 삼촌 영락제에게 제위를 뺏기고 도망간 건문제의 동상이 있다는 곳으로 찾아가는데,
입구의 주민이 말하길, 철거되고 없어졌다고 한다. 실망~
자기구를 빠져나가기 위해 다시 골목으로 돌아와 주출입구쪽으로 향하는데,
긴 줄이 길을 방해한다.
마화, 즉 꽈배기집 앞이다.
여기가 주출입구.
빠져 나와 숙소로 돌아갈 때는 길 건너편에 대기하고 있는 중경투어시내버스를 탔다.
보너스: 조카(건문제)의 왕위를 뺏은 영락제는 후환을 없애기 위해 도망간 건문제를 끝까지 추격했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고 한다. 일설에는 외국으로 도망갔다는 소문을 듣고 유명한 정화(鄭和)의 함대를 수차례나 파견했다고도.
영락제는 형님(명태조 주원장)이 수도로 정한 남경에서 북방 이민족을 막기 위해 북경으로 수도를 천도하니, 명 태조의 릉은 남경에 있고, 이후 영락제부터는 북경에 릉이 있어 명십삼릉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