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 삼대 (문학과 지성사)
저자: 염상섭
장소: 여성회관 (2층 봉황로 작은 도서관)
일시: 2023년. 8월 25일. 금요일 저녁 7시.
“︎나는 나를 위하여 눈물을 예비한자들을 위하여, 울어주고 싶으나, 그들의 눈물을 받고자는 아니한다. 만일 그들의 눈물이 나의 시체 위에 떨어진다 하면, 나의 언 살은 잿물에 들어간 손같이 공축恐縮에 졸아들거나 썩은 물에 잠긴 가랑잎같이 오탁汚濁에 썩을 것이다.”︎
-저수하樗樹下에서<1921> 중에서
횡보橫步는 '옆으로 걷는다'는 뜻입니다. 소설가 염상섭<1897-1963>의 호이기도 하지요. 걸음이거나 생각이거나 많이 비틀거렸나 보네요. 염상섭은「︎저수하에서」︎라는 단편에서 위와 같은 자기 고백을 합니다. 1921년의 작품이니 작가의 나이는 25살입니다. 약관 스물의 중반 쯤의 고백에 객기, 치기, 오기, 용기가 다 서려있습니다. 모름지기 작가라면 저만한 그릇들을 담을 수 있는 대야 정도는 소유하고 있어야 되나 봅니다. 당연합니다. 작가의 생명력은 그릇을 담는 대야의 크기에서 지속성이 연결되니까요.
「︎저수하에서」︎ 저수樗樹는 가죽나무를 뜻합니다. 풀이하면 '가죽나무 아래에서'라는 뜻이지요. 횡보는 왜 굳이 흔하지 않은 가죽나무를 제목으로 정한 것일까요. 가죽나무의 기원은 장자의 내편 <제물론>에 나옵니다.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다.
"우리 집에 큰 나무가 있는데 사람들은 이것을 가죽나무라 부르더군. 그 나무의 몸통은 썩어 파였고, 울퉁불퉁하니 혹이 나서 먹줄로 잴 수 없으며, 작은 가지는 오그라지고 꼬여서 원이나 네모를 그리는 잣대에도 맞지 않는다네. 그래서 길가에 있어도 목수들은 거들떠보지 않지. 지금 자네의 말은 크기만 할 뿐 쓸데가 없어. 그래서 뭇사람이 자네 곁을 떠나가는 거라네."
장자가 대꾸했다.
"자네는 살쾡이나 족제비를 보지 못했는가? 몸을 낮추고서는 놀러 나오는 먹잇감을 기다리기도 하고, 이리 달리고 저리 뛰어오르면서 높은 곳이나 낮은 곳을 가리지 않다가 결국에는 덮치기 장치에 걸리기도 하고, 그물에 걸려 죽기도 하지. 그런데 저 모우라는 소는 하늘에 떠있는 구름만큼이나 크지. 이 녀석은 크기는 크지만, 쥐도 잡을 수 없어. 그런데 자네는 큰 나무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이 쓸데없다고만 탓하는군. 자네는 왜 그것을 아무것도 없는 마을의 텅 빈 들판에 심어놓고, 그 곁을 아무것도 안 하면서 그저 왔다갔다 하거나 그 아래 누워 뒹굴거리거나 하지 않는가? 그렇게 하면 도끼날에 찍혀 일찍 베어지는 일도 없고, 아무도 해를 끼치려 하지 않을텐데, 쓸모없음이 무슨 근심거리가 되겠는가."
-장자, 내편. 5 <제물론>중에서
장자를 읽어 보셨다면 누구나 아는 무용론입니다. 쓸모없는 나무가 오래 살아남는다는 말이지요. 횡보도 이러했으려나요. 일제치하, 조국이 흔들리는 동선에 맞추어 자신도 비틀거려야 중심을 잡을 수 있었겠지요. 왜 일까요?
8월 독서토론회는 횡보 염상섭의「︎삼대」︎라는 저수입니다. 무더위를 가려주는 그늘이 아주 큰 나무이기도 하지요. 하루 걸러 묻지마 사건 사고가 터집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만남의 정의가 '옷깃만 스쳐도 살인'이라는 살벌한 각자도생의 시대가 되었네요. 쓸모없는 나무들로 재목材木이 만들어지는 시대의 어처구니에 몸이 비틀거립니다.
가만히 있으면 넘어집니다. 휘청거리는 세상의 중심점을 찾으려면 방향에 따라 휘청거려야지요. 가만히 있어도 덥습니다. 가죽나무 아래로 오시라. 횡보하면서.
많은 참여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