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막골일기[613] 서설[瑞雪]이 내리다
<무라니고개 넘어오다가>
겨울들어서 춥지 않은 날은 다섯 손가락도 다 꼽지 못할 만큼 적었다.
감기에 걸려 콧물과 기침, 가래가 나왔다.
약방에서 구입한 약으로 콧물은 금방 그쳤다.
기침과 가래가 약간의 차도는 있으나 거기서 더 효과가 안났다.
결국 외출한 김에 26일,
집사람 재촉에 못이겨 치과에 들러 그동안 미루고 있던 충치로 파인 곳을 공구리하고,
내과에도 가서 주사 한 대를 엉덩이에 맞고 5일치 약 처방전을 받았다.
추위는 영하 17도까지 떨어지며 맹위를 떨친다.
<역시 무라니고개....근데 무라니고개라는 이름이 맞는지..^^;;>
집사람이 쉬는 날이어서 가는 곳마다 동행을 했고,
강추위에 산막골 수도가 얼었을까 걱정되어 오후에 집사람과 산막골 들어왔다.
다행히 별 이상은 없었다.
문제는 다음 날 시내로 나오기 직전에 내 방 방문의 경첩 세 개가 갑자기 끊어지며 문짝이 떨어진 거다.
강훈씨한데 연락해 조언을 듣고 집사람과 양구로 가서 경첩을 구입하고,
외바퀴 수레의 바퀴가 빵꾸나 못쓰고 있기에 새 바퀴를 물어보니 만원이란다.
도끼와 바퀴도 하나 구입해 돌아왔다.
강훈씨와 돌담집 주인장의 도움으로 새 경첩 다는 것을 해결했다.
문제는 저녁 6시 반에 있는 문소회 송년 부부모임에 시간이 늦어,
수고로움에 대한 대접을 못하고 나와야 하는 미안함이었다.
조금 늦었지만 문소회에 참석했다. 3개월 만이다.
애막골 일식집에서 화기애애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 배 안에서 바라 본 산막골>
29일 눈이 내렸다.
30일, 남춘천역 앞 버스정류장에서 11번 버스를 타고 소양댐에 올랐고 오후 3시 배로 산막골 들어왔다.
소양댐 오르는 길은 어쩐 일인지 눈이 치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차가 다니느라 거북이 걸음 같았다.
선착장에서 뜻밖에 용화당의 전화를 아주 오랜만에 받았다.
여간 반가운게 아니었다.
눈 때문에 배타고 나와 교회를 다녀온 김선생부부와 강훈이도 같은 배로 들어올 수 있었다.
동네 트렉터가 눈을 치운 흔적이 보였다.
이미 전 날 선운재 김선생께 부탁해 산방 큰 방 심야전기 보일러 가동을 부탁해 놨었다.
김선생이 절반 정도 온도로 맞춰 놓은 걸 다시 최고치로 올려놨다.
<조기 저 길에서 기다리면 배를 탈 수 있다..^^>
31일, 오후 1시 반경 학강모 카페 엠티 선발대 3명이 승용차로 도착했고,
오후 3시 배로 4명이 와 뱃터로 나가 마중을 했다.
<소양호를 둘러 싼 산들 >
배로 들어온 선생님 가운데 남자 3명이 철봉 옆에 쌓아놓은 나무토막을 눈치운 곳으로 옮겨 장작을 팼고
처음 해본다는데 시범을 보이며 요령을 일러주니 금방 잘 했다.
그걸 화실로 옮겨 난로를 덥힐 수 있었다.
밤 늦게 3명이 더 승용차로 와서 모두 10명이 모였다.
번개모임이어서 대부분 닉은 알지만 초대면인 선생님들이다.
남,녀가 반반이었다.
국어, 수학, 영어, 과학 등 가르치는 과목이 달랐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 답지않게 금방 잘들 어울렸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3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까지인데 8명이 미혼이란다.
한 분만 유부남이다. (우상이만...유부남)
역시 대화의 수준이 높았다.
< 돌담집 사거리에서 바라 본..>
12시가 넘자 새해, 서로 건강과 행운을 기원하며 덕담을 나눴다.
모두 방으로 들어가고 1시경 잠깐 조용한 틈을 이용해 신년휘호를 했다.
'바위를 뚫고 솟는 샘물처럼' 이다.
내 정신이 닮긴 글이고,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 음미하는 것이어서 새해맞이 마음가짐으로 마땅하다 싶었다.
바위를 뚫고 나온 샘물이란 계절이나 기후에 상관없이 수량이 일정하고 물맛이야 무엇과 비교를 하랴.
왕가뭄에도, 장마가 져도 변함이 없으며 겨울엔 모락모락 김이 나고 삼복더위에는 이가 시리도록 차다.
저 깊은 땅 속에서 두터운 바위를 뚫고 나오기까지 천년이 걸렸을까 만년이 걸렸을 것인가.
누가 알 것이냐.
힘들 때, 감로수가 따로 없을 천금같은 물맛과 바위를 뚫고 나오는 한결같은 끈기를 생각할 일이다.
<승호대를 등 뒤에 두고 본 산 >
방으로 옮겨 밤참으로 골뱅이무침 비빔국수를 먹으며 이야기는 이어졌고
6시경에야 눈을 붙일 수 있었다.
10시경 일어나 굴떡국으로 아침을 먹었다.
식사 후 상도 치우지 않은 채 이야기판이 벌어지고 시간은 어떻게 갔는지 오후 배를 타야할 시간이 됐다.
다행히 다들 만족스러운 표정들이었다.
<부귀리 어드메쯤>
다음을 기약하고 뱃터로 내려갔다.
설국에서 1박2일이 계사년 새해에 상서로운 기운으로 좋은 일만 생기기를 바라게 된다.
서설을 맞이했다는 것이 그리 흔한 일이랄 수는 없으니까.
산방도 첫 손님들을 좋은 분들로 맞아서 흐뭇한 마음이다.
강추위가 맹위를 떨치며 오래간다니 서설도 금방 녹지는 않으리라.
신현락, 「고요의 입구」
개심사 가는 길
문득 한 소식 하려는가
나무들 서둘러 흰 옷으로 갈아입는다
추위를 털면서 숲 속으로 사라지는
길도 금세 눈으로 소복하다
여기에 오기까지 길에서 나는
몇 번이나 개심(改心)하였을까
한 송이 눈이 도달할 수 있는 평심(平心)의 바닥
그것을 고요라고 부를까 하다가
산문에 서서 다시 생각해 본다
어느 자리, 어느 체위이건 눈은 불평하지 않는다
불평(不平)마저 부드러운 곡선이다
설경이 고요한 듯 보이는 건 그 때문이다
허지만 송송 뚫린 저 오줌구멍을 무엇이라고 해야 하나
마을의 개구쟁이들이 저지른 저 고요의 영역 표시
경계 앞에서도 어쩔 수 없는 방심(放心) 뒤에 진저리치던
나의 불평이란 기실 작은 구멍에 불과한 것
하물며 개심(開心)이라니!
그 구멍의 뿌리 모두 바닥에 닿아 있으므로
길은 불평의 바닥이다
불평하지 않으며 길을 다 갈 수는 없다
그러니 애써 한 소식 들은 척 하지 말자
눈이 내렸을 뿐 나는 아직 고요의 입구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