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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싸[拉薩]시 - 모주꽁카[墨竹工卡]현. 74.77km.
** 출발 전 뽀따라 꼼바 앞에서 찍어 놓은 기념사진. - 6차 기행은 자홍색으로 준비 하려 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결국엔 빨간색이 되었다. **
티벳(Tibet : 吐蕃)이라는 말은 몽골어로 "雪上의 居住地"라는 "Thubet으로 한자는 吐蕃" 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원래는 동(Kham), 중(U-Tsang), 북부지역 (Amdo)을 나눠져 있었으나, 중국에 의하여 공산화 된 이후 북부 전부와 동부 일부가 중국의 다른 지역(칭하이, 깐쑤, 쓰촨, 윈난)에 편입되고, 현재는 중부지역을 중심으로 한 티벳자치지구로 구획 정리되었다.
** 라싸에서 만난 칭다오 노인[老人] 자전거대[自行車隊]와 기념 합영. **
떠나기 전 준비로... 브래이크 패드는 문제가 없어 점검만 하였고, 거리계를 바퀴의 둘레가 206cm라고 셑팅이 되어 있던 것을 204cm로 조절하였고, 수건을 대고 꿰맸던 처쭤[車座 : 안장]가 해져서 12위엔을 주고 새 것으로 바꾸었으며, 후원차가 없으므로 휴대물품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하여 야영취사 장비 등 불필요한 물건과 라싸에서 산 선물 등은 짐을 꾸려 우체국을 찾아가 칭다오 집으로 보냈다.
[[ 돛을 올리고.. ]]
라싸를 떠나는 아침. 로인은 날이 더워도 위에 입던 퍼런 비닐 비옷이 없어 졌다면서 가지 않겠단다. - 얼어 죽을...
단 3명이 가도 문제는 있구나 !
어르고 달래고 뺨도 치고...
가다가 사자 나도 없다.
임시로 다른 것을 입으면 되지....
갈래면 가 ! 나 혼자라도 갈 꺼니까..... !
꾸린 짐을 부치려고 우체국을 찾고 어찌고...
우비를 산다고 돌고돌다 저쩌고 보니 갈 길은 먼데 점심 밥 때가 되었다 .
신경을 써서 그런가 머리가 '띵'하며 몸이 '붕'뜨는 고산증이 나타났다. 허름한 식당을 찾아 들어 식사를 하는데... 먹고 싶은 마음이 없어 억지로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이전에도 짐을 달고 가는 단거리 여행을 몇 차례 했었는데, 이번에는 자전거에 짐을 꾸린 꼴이 영 어설프다. 무게 중심이 뒤로 가니 핸들이 들리고 묶어 놓은 것이 시원치 않으니 자꾸 기울고...
** 라싸에서 부터는 318선 도로를 탔다. 쌍하이에서 여기까지 4,622km. 우리는 이 길을 타고 차마고도를 따라 망캉[芒康]까지 간다. **
차마고도[茶馬古道 Tea Horse Road] : 번마전(천)차[蕃馬滇(川)茶] 교역로 - 티벳의 말과 윈난과 쓰촨의 차를 교역하던 길.
티벳인들에게 피(血)요! 살(肉)이요! 목숨(生命)인 차! 티벳사람들이 야크나 말. 또는 노새를 몰고, 눈이 내리면 쌓이는 만년설에 덮인 험준한 산을 수 없이 넘어, 깍아지른 누, 란찬, 진싸강의 삼강 병류 협곡을 건너, '영혼의 차'를 마시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나서는 교역의 길.
이 길은... 세상에서 가장 높은 길이며 또한 험한 하늘 길이다. 또한 오늘날의 숱한 여행자들에게 있어 첫 손으로 꼽는 "로망[路漫]의 아름다운 길"이기도 하다. 높이가 5천 m가 넘어 흰 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고산준봉과 란찬, 누, 진싸강의 깊은 협곡 옆구리에 한 가닥 실과 같이 매달린 외로운 길을 타는 차마고도. 그 길을 노새와 야크를 몰고 세계의 지붕이라는 히말라야의 험난한 산들을 넘고 또 넘으며, 깍아지른 협곡 절벽을 다람쥐 같이 붙어 타면서... 푸른 초원을 요 삼고 파란 하늘을 이불삼아 잠을 자고, 밥(?)을 끓여 먹으며, 보이차를 넣은 쑤여우[酥油]차를 마시며 비바람을 견딘다.
이 차마고도는 당대[唐代]에 뚫려 번성하며 문명과 경제의 교역로가 되었다. 즉, 티벳에서 나는 말과 버섯, 약초 등을 차와 바꾸기 위하여 윈난의 남부(普洱, 思茅, 景洪)와 쓰촨의 청두(雅安)까지 이어진 무역로이다.
라싸에서 미라[米拉-5,013m], 써지라[色季拉-4,700m], 안지우라[安久拉-4,300], 애라[業拉-4,618m] 똥따[東達-5,008m] 줴빠[覺巴-3,908m], 라우[拉烏4,338m] 등등의 높은 고개를 넘으며, 동쪽으로 마캄(芒康)까지는 1,218km. 망캉에서 부터는 동남쪽으로 뻗어, 홍라[紅拉-3,780m], 메이리쉐산[梅里雪山 - 3,600m]전망대 고갯길, 바이마쉐산[白馬雪山 - 4,292m]고갯길과 이름을 모르는 샹그릴라와 리쟝으로 넘어 드는 두 개의 고갯길 등등을 넘는 이 길은 오늘날 일명 뗀짱[滇藏]선으로 불리며, 라싸에서 리쟝과 따리를 거쳐 푸얼[普洱]차의 주요 생산지인 씨쐉빤나(징홍)까지는 7천리 길[2,763km]에 이른다.
또 하나의 차마고도. 지금은 중국의 경제수도 쌍하이에서 출발하여 쩌쟝성의 북부와 안후이성 중부를 가로 지르고, 후베이성의 우한을 들려 총칭 직할시와 쓰촨성의 청두를 거친 후 촨짱[川藏]남로(청두에서 라싸까지 2,140km)라 불리며, 티벳의 수도 라싸에 닿는 318국도.(라싸 이후 계속 뻗어 네팔 국경까지 이어짐). 이 길 역시 차[茶]와 말[馬]의 교역이 이루어지던 또 하나의 차마고도이다.
티벳으로 이어지는 여덟 줄기의 길: http://cafe.naver.com/acebike/755
티벳의 가람[江]과 뫼[山] : http://cafe.naver.com/acebike/742
중국의 도로 http://cafe.naver.com/acebike/517
** 6차 기행은 모든 짐을 자전거에 싣고 가는 장거리 여행이었다. **
** 이유를 모르는 2 번 째 펑크!! - 아직은 웃고 있지만...**
** 고장 난 쐉타나 승용차 옆에서 3 번 째 펑크를 때우고 있다. - 세 번 째는 표정이 심각하다. 목적지까지 가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 혹은 왜 그런지?를 모르는 불안감 때문에... **
** 사람 잡는 하루 4 번 째 펑크가 발생. - 맥이 빠졌다. **
[[ 귀신이 곡을 하네? ]]
나도 전에 칭다오 근교 로산으로 봄 나들이를 나갔다가 하루 4번이나 속 바퀴가 터진 적이 있었다.
그 때의 이유는 겉 바퀴의 옆이 찢어져 모래가 들어 가니 견디지 못하고 계속하여 펑크가 났었는데... 라싸에 와서 첫 날 산책을 나갔다가 안 사장의 속 바퀴가 터져서 수리소를 찾다가 못 찾고 삼륜 자전거에 실려서 숙소로 돌아 왔었다.
힘주어 눌러도 들어 가지 않을 정도로 바람을 빵빵하게 넣은 안 사장의 밍팔[名牌: 유명 브랜드] 타이어는 무척이나 얇은 산악 전문용으로 길바닥에 깨진 유리조각이 많은 중국의 실정에는 맞지 않는데... 조각 유리는 보지 못하였는데 계속하여 4번이나 터진 것이다. 이유를 모르는 채로... 때우고 또 때우고 그 동안 자전거를 안다고 큰 소리 쳤던 나 자신도 고개를 갸우뚱 할 수 밖에 없었다.
포장한 과자 봉지가 터질 정도로 팽팽하게 불어 나는 기압차이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계속하여 튜브가 뚫어지는 것은 기압차이와는 관계가 없을 것인데... 이해 할 수가 없는 것은 계속하여 안 쪽이 뚫어지는 것이었다. 마침 준비해 간, 전기 절연용 비닐 테이프가 있어서 붙였지만, 또 뚫리고 또 붙이고 "이상하다"라는 말을 하기를 수 차례. 그 과제는 해결하지 못하였고, 비상용으로 준비한 종이 테이프까지 붙이고서야 겨우 목적지에 닿을 수 있었다.
** 티벳 최고의 군주 쏭첸캄포의 출생지 **
날씨, 식사, 여관, 경비 현황...
해발 고도및 이동거리표
이 기행문에서 말하는 해발고도의 표시는... 설명에 의하면, 미리 저장된 국제민간 항공기관[ICAO]이 정한 국제 표준 대기[ISA]값을 이용한다 함. 중국 공산당 정부에서 세운 해발 표시는[ ]안에 . 지역주민과 안내 책자에서 듣고 본 것은 ( )안에 넣었음.
[[ 여기까지 오면서... ]]
5차 기행의 참가자는 지난 6월 18일 칭다오에서 2명의 후원차 운전사와 미국인 친구 제이쓴. "친구 따라서 티벹에 가게 된..." 영국인 애쉬. 로인[老尹 : 尹相美를 부르는 존칭], 출발 전까지 제이쓴이 가는지 눈치를 보면서 참가를 유보하였던... 우룸치치까지 같이 달렸던 뚱땡이 씨위에[西越:黃凱], 버스를 타고라도 따라 가겠다고 떼를 쓴 할매[이후이윈:李揮雲], 내가 꾸민 까페의 회원으로 북경에 유학 중인 이쁜이 김소롱[金昭朧]양 등으로 구성되었다. 일명 "올림픽 맞이 기행단"은 한국,미국,영국,중국... 4개국 7인의 자전거 선수(?)와 2인의 운전사로 "男六女三"으로, 총 9명의 남녀노소 다국적군(?) 전사로 구성이 되었다.
꺼얼무에서 티벳으로의 자전거 여행은 외국인에게 허가가 되지 않는다 하여 두 서양친구는 칭다오로 기차를 타고 돌아 갔고, 제이쓴이 늘 코가 높아서 문제라고 하였는데, 납작코인 나와 중국어가 유창한 소롱양은 현지인들과 구별이 쉽지 않으므로 남은 중국인들과 함께 불법 잠입을 결정. 티벳으로 향하였다. 꺼얼무를 떠나자 마자 한 번 검문이 있었고... 해발 5,231m로 라싸로 넘어 가는 제일 높은 탕구라 고개 아랫마을인 엔쓰핑[雁石坪] 등등 중간에 두 번의 삼엄한 검문이 있었지만, 우리는 무사하게 라싸에 도착하였다.
고산증이 심하여 중간에 세 번이나 차에 앉아 가는 기록을 세웠는데... 첫 번 째는 여드레째인 우리민족 수난의 역사로 기억되는 6월 25일로 해발 3,817m의 샹피산을 넘고, 나서 차카진까지의 백여리 길이었고, 두 번 째는 꺼얼무를 지나서 떠난지 보름이 넘어가는 7월 4일에 쌀쌀한 가운데 비가 내리는 씨따탄에서 부터 죽음의 계곡 우도량[五道梁]을 지나, 다음날 최고 높은 지점인 탕구라[唐古拉]산 입구(해발 5,231m)를 지나서 티벳의 안둬까지 일천 육백리 길이며, 세 번째는 7월 7일로 그 때 까지도 고산 적응이 되지 않아서 해발4,600m쯤 되는 샤오모쭤모라[孝莫作莫拉]산 아래 자리 잡은 향마오[香茂]진에서 부터 땅쓩현까지 이백사십리 길이다.
라싸에 닿아서 5차를 마무리 하고 돌아 갈 사람은 돌아 갔다. 예정은 7월 16일에 도착을 하여 고국에서 오는 하오마루[haomaru21- 이하 안 사장]님을 만나서 19일에 윈난으로 6차 기행을 떠나기로 하였지만, 우리가 많은 구간을 차를 타고 이동을 하였기에 일주일이나 빠른 9일에 도착을 하였다.
일찍 도착하여 매일 자전거를 타고 라싸를 돌면서 안 사장을 기다렸다. 이 때 라싸를 돌면서 뽀따라 궁 뒤에 있는 종각록강[宗角 祿康 Zang Gyab Lhukang] 공원 안에서는 물론이요, 가깝고 먼곳, 높고 낮은 곳을 찾아 다니면서 여러 각도에서 뽀따라 꼼바를 찍어 보았다. 라싸에 머무는 8일 동안 시내에서 자전거 탄 거리가 78.66km.
칭다오에서 5월 초에 출발하여 모허[默河]로 불리는 중국땅 최북단 까지 갔다가, 기차를 타고 란저우로 이동을 하여, 씨닝에서 부터는 같이 라싸까지 달리자고 하였던 칭다오 노인대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라싸에서 만났고, 그들이 칭다오로 떠나던 날 배웅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막 사가지고 떠났던, 기능과 성능, 디자인 등등 모두 마음에 드는 세 번 째로 산 디지탈 사진기를 소매치기가 많다는 쪼꾸라캉 사원 쇼핑가인 빠쟈오지에[八角街]에서 잃어 버리는 불상사도 있었다.
라싸에 도착하던 날에 통화를 한 대로 안 사장은 15일에 라싸에 도착을 하였고, 15,16 양일간 관광을 하면서 고산 적응을 하였고 17일에 쿤밍을 향하여 동쪽으로 떠나게 되었다.
[[올림픽 맞이 활동]]
칭다오에서 떠날 때 각 언론사를 불러 성대한 출발식이 있었고, 란저우와 자전거 출발지인 씨닝에서 신문과 방송을 불러 우리의 여행 목적을 널리 홍보 하였다. 기행 중에는 몇 개의 소학교와 진 정부를 찾아 칭다오에서 열리는 올림픽 해양경기 홍보 책자와 CD등을 전달 하였다. 할매가 있어 어느 때보다 우리들의 활동은 왕성하였지만, 본래의 목적인 자전거 타는 일이 바쁨으로 하여 그 만큼이나마 많이 움직인것이리라.
[[ 라싸에서 만나 사람 ]]
라싸에서 특별한 인연이 있었으니... 라싸에서 묵고 있던 15일 오후. 밀리터리룩이라고 부르기는 쬐끔 미안한 복장을 한 건장한 청년이 안 사장이 막 도착하여 부산한 우리방으로 들어 왔다. 그는 우리들이 떠드는 "조선말"을 듣고 반가워서 찾아 들었다는데...
그는 인도에서 불화를 공부한다는 쑤아이꺼[帥哥:멋진 형] 이영주님인데, 말씀에 의하면 인도에서 파키스탄을 거쳐 단신으로 라싸에 이르렀듯이, 이번에도 혼자 버스를 타고 띠엔짱 선으로 불리는 윈난의 쿤밍[昆明]으로 빠지려고 나가다가 린즈[林芝]현의 빠이[八一]진에서 길을 묻기 위하여 파출소에 들어 갔다가 안내자 없이 "외국인 출입금지 구역"에 들어 왔다는 이유로 벌금을 6백위엔을 내라는 것을 공부하는 학생이 무슨 돈이 있느냐고 사정을 하여 2백위엔을 물고 "빠꾸"로 나왔다는데... 그 길은 바로 우리가 빠져 나가려는 길 "차마고도"인 것이다.
문제는 꺼얼무로 나가야 하는데, 미리 쭈투안[組團:Package 여행]으로 예약을 하고 온 사람들은 허가된 지역을 다오여우[導遊:Guide]를 따라 다니며, 먹고 자고 보고 준비된 차나 비행기로 돌아 가면 되는데... 이 양반은 혼자 돌아 다니는 싼커[散客:개인(배낭) 여행객]라서 알아서 빠쓰를 타고 나가야 하는데, 창투치처짠[長途汽車站;장거리 버스 터미널]을 찾아 갔으나, 그의 유창한 영어로는 통하지 않고, 더듬거리는 중국어로는 역부족이라서 차를 못 타고 묵었던 여관으로 되 돌아왔다가 우리를 만나게 된 것이다.
우리는 로인[老尹:인샹메이]을 앞세우고, 칭다오 로인[老人] 자전거대가 먼저 빠스를 타고 떠났던 쪼꾸라캉 사원 부근의 처짠[車站]으로 갔다. 그 곳의 버스는 꺼얼무는 물론 씨닝 란저우까지 운행을 하며 총칭[重慶] 등지로 연결이 된다는 곳인데... 전날에도 김소롱양을 태워 보내기도 하였던 곳이다. 나는 밖에서 이별을 하였고 로인만 들여 보내 성공적으로 좌석에 앉히고 나왔는데, 우리가 숙소에 이르기 전에 이영주는 이미 우리가 묵고 있는 빠랑쉐 여관에 와 있었다. 우리가 돌아온 후에 관계자들이 의심스러운 그에게 신분증 제시를 요구 하였고, 현지말(티벳어)은 물론 중국의 보통화가 않되니 이내 발각이 되어 돌아 온 것이다.
우리는 서둘러 2차 작전에 돌입하였다. 자전거를 타고 오고 가면서 뻬이징 동로에 있는 처짠을 보았기에 그 곳으로 갔는데, 몇 번이나 중국인이냐고 묻는 것을 나까지 나서서 그렇다고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하였고 빠쓰[巴士-Bus]에 앉는데 까지 성공을 하였다. 불안감이 남아서 밖에 나와서 빠스가 떠나기를 기다렸는데, 담배 한 대도 피울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 싱글벙글 만면에 웃음을 가득 띤 그가 또 나타난 것이다. 역시 신분증을 내 놓으라니 없는 신분증을 어떻게 내 놓는단 말씀인가? 자꾸 뭐라고 물으니 워쓰한궈런[我是韓國人:난 한국인이오]했다나...
의지의 한국인이 그쯤에서 포기 할 수는 없지 않은가?
3차 작전 돌입. 그 것은 마지막 희망을 걸고 서부 처짠으로 가는 것이었다. 두 군데를 다니느라 조금 늦은 시간 서부 처짠에 이르니 날이 어두워 가고 있었다. 당일의 차는 이미 모두 떠났는데, 그 들의 말에 의하면 정부에서 운영하는 공용 빠쓰는 없고 개인빠쓰는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지게에 얹으면 혼자도 질수 있어 보이는 조그만 용달차에 그 큼직한 육체를 밀어 넣고 불안해 하는 우리들을 남겨 놓고 여유있게 손을 흔들며 떠나갔다.
그러나 이번에도 자전거를 타고 돌아온 우리보다 먼저 빠랑쉐 여관에 그는 돌아와 있었다. 용달차를 타고 가보니 첫 번째 갔던 처짠이었단다. 그러나 문제는 해 결이 되었으니, 오로지 서부 처짠에서 만이 외국인이 빠쓰를 타고 티벳을 벗어 날 수가 있다는 말씀이었다. 그 날밤 이영주님한테 밤이 깊도록 흥미진진한 인디아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 불로면세 소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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