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기행
2016년7월14일
발제자 김연희
작가 소개 :
1941년 12월 23일 일본 오사카에서 출생. 1945년 귀국하여 전남 순천에서 성장하였다. 순천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불문학과를 졸업하였다. 특히 4‧19혁명이 일어나던 해인 1960년에 대학에 입학, 4‧19세대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샘터사 편집장을 거쳐 한때 세종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나 2003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교수직을 사임하고 오랜 기간 투병생활을 하기도 했다.
1962년 단편 「생명연습」이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하였으며, 같은 해 김현‧최하림 등과 더불어 동인지 『산문시대』를 창간하고 이 동인지에 「건」, 「환상수첩」 등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문단활동을 시작하였다.
1964년 「역사」, 「무진기행」 등을 발표하며 전후세대 작가를 넘어선 것으로 인정받기 시작했으며, 1965년 미시적인 사물에 광적으로 탐닉하는 인물들을 통하여 거대한 문명사회로부터 소외되고 꿈과 생명력을 상실한 현대인의 삶을 조망한 「서울, 1964년 겨울」로 1960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인정받았다.
이후 에로스적 측면에서 인간의 생명력 회복을 염원하는 소설인 「60년대식」, 「다산성」, 「야행」, 「강변부인」 등을 발표하였고, 1977년 현대인의 충일한 삶을 불가능하게 하는 소통불능의 상태를 에로스로 넘어서고자 하는 소설인 「서울의 달빛 0장」을 발표한 후 절필 상태에 빠졌다.
김승옥의 소설은 대체로 개인의 꿈과 낭만을 용인하지 않는 관념체계, 사회조직, 일상성, 질서 등에 대한 비판의식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기성의 관념체계, 허구화된 제도, 내용없는 윤리감각이라는 일상적인 질서로부터 일탈하려는 열망, 곧 아웃사이더를 향한 열정이 김승옥 소설의 중심적이고 일관된 내용인 것이다.
김승옥의 소설은 크게 두 시기로 나누어볼 수 있다. 김승옥의 초기소설에서는 아웃사이더를 향한 열정이 현실을 압도하는 바, 낭만주의적 색채를 강하게 띤다. 「환상수첩」, 「확인해 본 열다섯 개의 고정관념」, 「생명 연습」 등의 초기소설은 환각이나 환상을 좇는 삶 혹은 현실을 초월한 삶에 대한 강렬한 동경이 두드러진다.
그의 소설은 「무진기행」 이후 현실의 엄정한 법칙성을 인정하면서 변화하기 시작하며, 후기 소설은 초기의 아웃사이더를 향한 열정 대신에 꿈이나 환상을 잃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삶에 대한 환멸과 허무의지로 가득 찬다. 「서울, 1964년 겨울」, 「야행」, 「차나 한잔」, 「염소는 힘이 세다」, 「1960년대식」, 「서울의 달빛 0장」 등 후기 소설은 그로 인해 산업사회의 한 기호로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상실감을 주로 형상화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에로스적 열정으로 기성의 질서를 넘어서려는 시도를 보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의도를 담은 「보통여자」, 「강변부인」 등에서는 김승옥 소설이 지녔던 문제적인 성격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한 김승옥의 소설은 감각적인 문체, 언어의 조응력, 배경과 인물의 적절한 배치, 소설적 완결성 등 소설의 구성원리 면에서 새로운 기원을 열었다고 할 수 있으며, 또한 4‧19혁명의 열광적인 분위기를 문학적 언어로 환치시키면서 전후세대 문학의 무기력증을 뛰어넘었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가 높다.
1966년 창문사에서 창작집 『서울, 1964년 겨울』을 발간하였고, 1976년 서음출판사에서 장편소설 「60년대식」과 1977년 한진출판사에서 장편소설 「강변부인」을 간행하였다. 2004년 김승옥 문학을 총정리하는 『김승옥소설전집(전5권)』을 문학동네에서 발간했다. 1965년 「서울, 1964년 겨울」로 제10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하였고, 1977년 「서울의 달빛 0장」으로 제1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하였다. 2012년 대한민국 예술원상을 받았다. 고향인 전남 순천에 김승옥문학관이 건립되었으며, 매년 김승옥문학상을 시상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김승옥 [金承鈺]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줄거리 소개 :
서술자로 등장하는 '나'는 서른 셋의 나이로 제약회사 중역이다. 4년 전, 미망인이 된 지금의 아내와 결혼했으며, 며칠 후면 그 아내와 장인의 도움으로 제약회사 전무가 될 몸이다. 그는 어머니의 묘가 있고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무진으로 내려간다. 잠시 동안의 휴가인 셈이다. 그에게 무진의 의미는 특별하다. 그곳은 참담했던 과거의 기억으로 얼룩져 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그는 이미 돈 많은 아내를 얻어 출세 가도에 올라 있다. 그는 무진에서 사람들을 만난다. 그를 존경하는 후배인 박, 중학 동창이며 고등고시에 합격해 무진의 세무서장으로 있는 조, 그리고 음악교사인 발랄한 처녀 하인숙 등이다. 문학소년이었던 박은 그를 우러러보고, 출세한 속물인 조는 갑자기 출세한 그를 동류로 취급한다. 하인숙은 그에게서 풍기는 서울 냄새를 즐기며 그를 유혹한다. 그는 하인숙의 유혹에 몸을 맡기며, 그가 폐병으로 요양했던 바닷가 옛집에서 정사를 나눈다. 무진을 탈출하고 싶어하고 그와 일주일 동안만 멋진 연애를 경험하고 싶다는 하인숙에게서, 그는 자신의 옛 모습을 발견하고 사랑을 느낀다. 그녀를 서울로 데려가겠다고 말한다.
다음날 그는 상경을 요구하는 아내의 전보를 받고는 갈등한다. 서울로 가겠다고 작정한 후, 그는 하인숙에게 사랑한다는 편지를 쓴다. 그리고 찢어버린다. 부끄러움을 느끼며 그는 서울로 간다.
《무진기행》에는 선명하게 구분되는 두 개의 공간이 있다. 하나는 서울로 표상되는 일상의 공간이고, 다른 하나는 무진이라는 탈일상의 공간이다. 아내와 제약회사 상무 자리가 있는 서울은 세속적이지만 현실적인 가치의 중심이다. 이에 비해 안개와 바다, 자살한 여인의 시체와 하인숙의 노래가 있는 무진은 몽환적이고 탈속적인 공간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우며, 아름다우나 머물러 있을 수는 없는 곳이기도 하다. '나'에게 무진은 2박 3일로 족한 것이다. '나'는 이미 전쟁과 실직과 실연의 쓰라림을 맛본 30대의 성년이기 때문이다. 그는 무진과 하인숙의 아름다움을 알면서도 서울과 아내에게로 가야 한다. 무진은 꿈이지만 서울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가 하인숙을 택한다면 그것은 이내 소설이 아닌 동화의 수준으로 물러설 것이다. 말하자면 이 두 개의 이질적인 공간은 '나'의 내면에서 팽팽하게 대립되어 있는 것이다.
《무진기행》이 지니는 또 하나의 독특함은 문체에 있다. 그것은 작가 김승옥의 독특함이지만 《무진기행》에서 더욱 빛난다. 아내의 전보를 받고 갈등하는 부분인, '모든 것이 세월에 의하여 내 마음 속에서 잊혀질 수 있다고 전보는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상처가 남는다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오랫동안 우리는 다투었다'와 같은 대목이나, '세월이 그 집과 그 사람들만은 피해서 지나갔던 모양이다. 주인들은 나를 옛날의 나로 대해주었고, 그러자 나는 옛날의 내가 되었다'와 같은 부분에서 그의 문체는 더욱 빛이 난다. 그것은 섬세하고 치밀한 언어의식의 산물이며, 무진을 무진답게 만들어주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무진기행 [霧津紀行] (두산백과)
블로그 발췌-
우리는 지나간 것들에 대해 ‘만만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지나간 꿈들, 지나간 유행들, 지나간 시대들에 대하여.
그건 어쩌면 뉴튼이 사과가 떨어지는 걸 보고 어떠한 인류사적인 법칙을 발견한 것은 무시하고, 사과가 떨어지는 건 당연한데 그걸 갖고 왜 야단법석이지?, 하는 식과 비슷하다고 할까.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을 단숨에 읽었다.
신경숙이 작가수업을 위해 필사하고, 공지영이 필사했던 그 작품.
신경숙은 베껴쓰는 방식으로 문학수업을 하다가 그렇게... 처참하게 되었고, 공지영은 <도가니>에서 오마주 기법으로 허공의 도시 ‘무진시’를 등장시켰다지.
공지영은 건재하다.
<무진기행>과 김승옥 작가가 한국문학에 끼친 문학사적 영향을 뭐라 표현해야 할지 사실 나로써는 잘 모른다.
다만, 2016년에 1960년대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어떤 ‘감동 같은 것’보다도 역시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가 아니라면 사실 너무 고루하고, 이미 너무 만연되어 있거나 지나간 소재들이고, 다른 스토리들에서 지나치게 많이 반복되어 왔기 때문에 지루한 이야기일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나이대는 비슷해도 무라카미 하루키(사실은 8년 젊지만, 김승옥은 1941년생 하루키는 1949년생)의 그 모던성이랄까 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니..
하지만 그는 제 1회 이상문학상 수상자이고, 어쩌면 식민지 시대의 일본 문학의 그림자를 툴툴 털어내고 우뚝,선 첫 번째 세대의 선두주자라고 할까(진정한 한글 세대의 작가라는 표현도 있음).
그의 동기들 - 이청준,김현(문학평론가)이 그렇듯이.
바야흐로 ‘자아’에 눈을 뜬 인물들이 등장하는 소설이 그에 의해 완성되었다라는 평과 함께 모두가 <무진기행>을 ‘한국 단편문학의 금자탑’이라 형용하길 아끼지 않는다.
작품의 시대사적 가치라는 것은 그 정도로 정리해 주고, 사실 한 번 더 차근히 읽어봐야 하기는 하겠지만 나 개인적으로는, 너무 늦게 읽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미 그 영향을 받은 많은 좋은 소설들을 읽어서 정작 이 작품에는 그닥 감동을 느낄 수가 없었다.
뉴튼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게 너무 오래 전일이라 두 말하면 잔소리이듯이.
그러나 만유인력의 법칙이 위대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는 것처럼.
다만 여성이 그런 식으로 묘사되는 걸 좋아하지 않고, 그런 식으로 사용되는 것도 싫어한다.
주체적이지 못하고 이성은 배제되고 감정만으로 살아가는 동물처럼 묘사되어 있었다.
화자도, 주인공도 남성이니, 시대도 시대니만큼 어쩔 수 없다고는 하더라도.
딱 한 명 등장하는 무진의 분교 초등학교 여자 선생이 주인공 ‘나’에게 ‘서울로 데려가달라’고 집요하게 요구하는 장면은 <설국>에서 주인공 시마무라에게 도쿄로 데려가 달라는 코마코를 연상시켰다.
뭐, 아무튼 어림잡아도 50년 전 이야기다. 그냥 그러려니 하는 수밖에.
이야기는 흐름과는 관계없지만 1960년대 중반은 사뮤엘 베케트, 사르트느, 오에 겐자부로, 구소련의 솔제니침 등이 작품을 냈던 시기.
시대가, 역사가 진보했느냐?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어쩌면 세상은 이미 완벽한 상태에서 조금씩 조금씩 마모되어 온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그게 확실한 것 같다.
-해처럼
- 작가 인터뷰 -
1964년 사상계 10월 호에 발표, ‘감수성의 혁명’이라는 극찬과 함께 문학사의 한 장을 연 작품이 <무진기행>입니다. 소설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건 무엇인가요?
저는 이 때 한 살 연상의 여성을 사랑했지요. <무진기행>은 그 여성과 결별한 뒤 제 첫사랑의 느낌을 모티브로 쓴 소설입니다. 제 고향인 순천이 배경이라면 배경이지요. 순천 지역의 공간을 재구성했다고 보면 돼요. ‘순천과 순천만 연안 대대포 앞 바다와 그 갯벌’에서의 체험을 창작 모티브로 삼았어요. 소설 속의 '희'(姬)라는 여인에 관해 얘기하면, 그녀와는 결혼까지 생각했지요. 하지만 제 부친의 좌익 전력 때문에 무산되고 말았어요. 그리고 1964년 6월 순천에서 여인의 시체를 본 경험이 있는데, 이는 <무진기행> 창작의 기폭제로 작용했습니다.
작품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은, 서울에서의 경쟁적 삶을 구가하기보다는 한 번쯤 무진과 서울을 왕복하면서 좀더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세상을 경험하는 자아를 찾아야 한다는 점이에요. <무진기행>의 주인공 ‘나’는 현실에 가장 잘 적응한, 또 더럽혀진 사람이에요. 작품 무대 무진, 즉 순천 고향을 떠나 출세한 사람. 하지만 ‘똑똑한’ 그는 고단한 서울에서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 무진에 내려와 ‘지상에서 세운 모든 것들이 햇볕에 의해 몽롱하게 풀리는’ 경험을 하게 되죠. 중년의 남자가 앞만 향해 내달렸던 허망함을 무진에서 위로 받고자 한 거죠. 어쩌면 순천은 도처에 널려 있는 도시이고, 일상에 밀려 변방으로 쫓겨난 아득한 도시인 셈이죠.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무진이 있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