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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도시탈출
金昌一 作·演出 (김창일 작·연출)
막이 오르면 응접셍트 탁자위에서 장난감이 움직인다.
권사장은 장난감의 움직임을 드려다보고 있고, 옆에 운전기사 공달지가 거의 부동자세로 서있다.
[권사장] 공 기사! 자넨 이번제품이 어떻다고 생각하나? 내가 생각하기엔 좀 조잡스런 감도 있고, 어린이들의 호기심을 갖게할 새로운 아이디어가 없는데다 구볼트 건전지를 이용한다면 부모들은 일단 건전지소모에
부담을 갖게하는 결점이 있지 않겠나?
[공기사]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렇지만 이번제품은 움직임이 신기하다는 점에서 충분히 어린이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읍니다. 움직임이 신기하다는
것은 어린이들의 시선이 집중된다는 것이고 그 집중된
호기심이 건전지부담을 갖게하는 어른들의 판단을 깨뜨려 놓고 말것입니다.
[권사장] 요즘 아이들의 장난감 고르는 방법이 자네처럼 어리석진 않네. 흥미보다는 조작하고 변형시키려는
쪽이 더해. 부모들도 아이들의 구상력과 창조력을 배양하는데 도움 될것을 권하는 추세라고. 더구나 이건 값이 고가인데다 타제품에 비하여 어린이의 인기를 끌기엔 아이디어가 약한건 사실이야. (장난감 스위치를 끄며) 어제 김부장은 백화점을 돌아봤다던가?
[공기사] 네! 삼천개 정도 주문을 받았답니다.
[권사장] 신제품이 겨우 삼천개라니?
[공기사] 영업부장님께선 전 직원들에게 첫 판매량으론 천문학적인 숫자라고 환호성을 치시던데요?
[권사장] 열개만 팔렸드래도 영업부장 그 사람은 천문학적 숫자라고 할 사람이야. 전번 선거때 자기 외삼촌
친구의 형되는분이 출마했다고 선거 유세장에만 쫓아다니더니 숫자개념이 없어요 그사람. 소비자 신고쎈타에 고발들어온 건은 어떻게 되었나?
[공기사] 세발자전거 입니다. (세발자전거 있는곳으로
가서) 이부분이 약해서 고무 바퀴가 빠지거나 뒤틀린다는 겁니다.
[권사장] 그건 우리회사에서 유일하게 품질표시를 받은것이 아닌가.
[공기사] 네! 이년간은 쓸만 했는데 삼년째부턴 아예
탈수도 없는 형편이랍니다.
[권사장] 뭐야! 대대로 물려줄 생각이었나. 에잇! (일어나 담배를 입에물자 공기사 불을 붙여준다.)
[권사장] 어쨌든 우리회사에도 문제는 있어요. 자네 우리회사 사훈을 아는가?
[공기사] 우리 킹콩완구제작회사 사훈을 모르는 직원은 없읍니다. 동심으로 돌아가자 아닙니까. 우선 어려운 용어가 아니고 어느회사 사훈보다 깊은 뜻이 훌륭한
사훈으로 알고있읍니다.
[권사장] 그런데도 동심으로 돌아가자니까 모든 직원들은 어린애처럼 행동하자는 것으로 이해했는지 어리석고 엉뚱한 짓들만 늘어놓고 있다고.
[공기사] 그런 경향이 있읍니다.
[권사장] 자넨 회사 사훈의 뜻을 얼마나 알고있나?
[공기사] 네! 어린이 마음이되어 장난감 나라를 만들자는 사장님의 거대한 뜻으로 알고있읍니다.
[권사장] (기가막혀) 거대한 뜻?
[공기사] 거대한 포부라고나 할까?
[권사장] 내가 가슴을 텅 비우고 살아야지 로버트 장난감하고 이야기를 하는것 같애서--- (담배 연기와 함께
한숨을 내쉰다) 참새가 봉황의 뜻을 어찌 알겠나.
[공기사] 그러믄요.
[권사장] (화가나서) 뭐가 그러믄이야?
[공기사] 참새가 봉황의 뜻을 모르듯 봉황도 참새의 깊은 뜻을 모른다는 겁니다
[권사장] (혀를 차며) 철학에 뜻을 두지 어쩌다 운전기사가 됐나. 에잇! 못난사람. 회사에 전화를 걸어 김부장을 바꾸게. 오늘은 전직원들에게 교육을 다시 시켜야되겠어.
[공기사] 네!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네 공기삽니다
네 영업부 김부장님좀 부탁합니다 네 네? 아! 사장님께서 김부장님께 지시할 사항이 있으시답니다. 네 네? 경찰서요? 아니 경찰서는 왜요? 네 네 오늘 신문기사를
보라구요. 네 강도사건? 네 네 알았읍니다. 네 회사에
나가 뵙겠읍니다. (전화를 끊는다)
[권사장] 뭐래?
[공기사] 김부장님께선 출근하시자 경찰서에서 전화가
와 곧바로 경찰서로 가셨답니다.
[권사장] 경찰서는 왜?
[공기사] 강도사건이 난것 같읍니다.
[권사장] 회사에 강도가 들어왔다는 거야 뭐야?
[공기사] 아무려면 장난감을 훔치러 강도가 들어오겠읍니까? 참! 오늘신문을 보면 알거랍니다. (탁자위에
신문을 뒤적거린다)
[공기사] 여기 있읍니다.
[권사장] 어서 읽어봐.
[공기사] 네! (읽는다) 이십칠일낮 한시경 서울 강남구
강남동 고만호씨 집에 장난감 권총을 든 괴한 네명이
침입 고만호씨 집을 보던 가정부 이만순씨를 위협 금품을 요구하다 (권사장에게) 괴한들이 권총을 난사해 가정부가 부상이나 사망한 사건 같습니다.
[권사장] 장난감 권총이라고 하지 않았나?
[공기사] 참! 그렇군요.
[권사장] 계속 읽어봐!
[공기사] 네! (다시 읽는다) 이만순씨가 반항하자 장난감 권총을 버리고 괴한 네명은 도주. (다시 권사장에게)
읽으나 마나하는 기사거립니다.
[권사장] 계속읽어!
[공기사] 네! 도주하던 그중 한명이 지나던 경찰관에의해 붙잡혔다. 이번사건의 불상사나 피해는 없었으나 킹콩완구 제작회사 제품의 장난감 권총은 리버볼형 실제의
권총과 모형이 흡사하여 경찰관까지도 속기쉬운 문제점을 갖고 있다. (신문을 내려놓으며) 이상입니다.
[권사장] 그렇담 우리회사제품의 장난감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김부장이 불려갔구만. 공기사! 진짜권총과 그렇게 흡사하던가?
[공기사] 가져와 보겠읍니다. (진열된 곳에서 가져온다)
[권사장] (받아들고) 이게 끝까지 골치를 썩히는구만.
처음부터 팔리지가 않아서 재고가 창고에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문제까지 생겼으니 이걸 어떻게 처분하나?
[공기사] 너무 염려마십쇼 사장님. 그런일쯤 가지고 판매금지처분이야 받겠읍니까? 어린이 완구란 어린이들에게 위험이 없고 정의와 용기를 심어주는데 한몫을 하고 있읍니다. 다른면으로 사용하는 잘못된 일부 어른에
문제가 있을 뿐입니다.
[권사장] 고발쎈타에 신고가 되질않나 경찰서에 불려다니질 않나 모형만 똑같이 만들려고 생산비만 많이 먹혔지 아이디어는 역시 부족이야. 동심으로 돌아가자라는 우리회사 사훈이 곧 어린이가 원하는것 어린이가 불편한것을 터득하기위해선 어린이마음이 되어야만 한다는 거지 그러므로써 나사못 하나하나에도 어린이의 건강과 기능을 위해서 정성을 다하게 되고 어린이들이 원하는 완구를 제작함으로 제일의 완구 제작회사로 번영해 나간다는것 아닌가.
[공기사] 옳으신 말씀입니다.
[권사장] (일어서며) 곧장 회사로 가! 오늘은 전직원에게 내가 직접 교육을 시켜야 되겠어. (앞장서 나간다)
[공기사] 사장님! 윗옷을 입으셔야지요.
[권사장] (그때야 자신의 모습을 보고) 아니! 이사람은
내옷을 들고 어디로 갔어? (권사장은 안방문을 열어보더니)
[권사장] 괴산댁!
[권사장] 이사람 어디 갔어요?
[괴산댁]
사모님이유. 목욕탕에 들어가시던데유.
[권사장] 내참! (다시 안방으로 들어가려다 말고) 참!
괴산댁 요즘 권총강도가 날뛴다는데 항상 문단속에 신경 쓰세요.
[괴산댁] (질겁하며) 권총강도유? 아이구! 어쩐대유 겁이나서
[권사장] 그래서 시골에 계시던 공기사 아버님까지 모셔다 계시게 했지않아요. 문단속만 잘하시면 걱정없어요. (공기사에게) 곧 옷을 갈아입고 나갈테니 차 대기
시키게. (안방으로 들어간다)
[공기사] 네. (공기사도 밖으로 나가는데)
[괴산댁] 공기사 아버님이 권총든 강도를 어떻게 해치운데유?
[공기사] 장난감 권총인데요. (나간다)
[괴산댁] 장난감 권총이유! 장난감 권총으로 뭣하러 온데유? (공기사가 밖으로 나오자 공기사 아버지 공영감이 정문쪽에서 등장 마주친다)
[공기사] 아침에 어디 다녀오십니까?
[공영감] 아침바람 쐬이러 동네 한바꾸 돌아오는디 아주 괴팍스런 영감탱이 헌티 걸려서 혼줄을 뺐다.
[공기사] 그러니 밖에 나가지 마시라 하지 않았읍니까.
[공영감] 야 이놈아! 이 쩡쩡한 두다리는 왜 있는기여?
날아다니는 새를 가두어 봐 임마! 날개가 부러진줄도
모르고 퍼덜거릴테니. (벤치쪽으로 서서히 걸어오다 적은소리로) 야! 너 삼백원 있냐?
[공기사] 삼백원이요? (호주머니를 뒤적인다)
[공영감] 요아래 괴팍스런 영감탱이 돈삼백원 안갚아주었다간 그골목 지나치다 멱살잽힐거여.
[공기사] 여기있읍니다. (천원짜리 한장 준다)
[공영감] 이건 천원짜리 아니여?
[공기사] 앞으론 빌려쓰지 마시고 저한테
말씀하세요.
[공영감] 빌려쓰긴 누가써? 집으로 곱게 들어오는디
영감탱이 길바닥에 장기판을 깔아놓고 있지않것냐. 안그려도 고향에 장기쌈판 벌리던 최가놈 생각이 난 판인데 한판둡시다 했더니 내기장기 아니면 안된다는기여.
야! 그 영감탱이 무신장기를 그렇게 잘두냐! 몇수 놓으니께 외통수에 걸렸는디 한판만 무르자고 했더니 일수불퇴라고 소락질쳐 싸믄서 눈구멍을 뒤집어쓰고 달려드는디 삼백원이 없다고 했드니만 아 이 허리춤을 잡고
앙탈을 쓰기에 내팽겨치고 도망왔제. 외통수에 걸렸는디 안물릴놈 어딨어. 고향의 최가놈 어거지는 아무것도
아니드구먼
[공기사] 아침식사는 하셨읍니까?
[공영감] 이집에 와서 언제한번 아침식사허는것 못봤다. 아침은 으레 빵쪼가리로 때우더구먼, 그래서 더 부자되겠다는 거여 뭐여?
[공기사] 서울에선 아침식사는 대부분 가정에서 빵으로 간단히 한답니다.
[공영감] 그려도 그렇지 배는 채워야 사람이 힘을 쓸것
아니여. 새벽녘에 하두 배가 고파서 괴산댁헌티 어제지녁 남은 식은밥 달래서 한술먹고 나갔어. 논을 한바꾸
둘러보고 오는 버릇으로 동네 한바꾸 힝 돌아오다 죽을지경을 다 맞았네. (벤치에 앉으며) 야 그란디 우리논
말이여 쟁기질을 한번더 해서 모를 심었는가 모르것어.
[공기사] 논이래야 몇마지기 되서요 덕산네가 잘 하겠지요.
[공영감] 야! 너 나를 언제 보내줄것이냐?
[공기사] 어디를요?
[공영감] 야 이놈 딴청 부리는것 보소.
[공기사] 딴청을 부리다니요.
[공영감] 고향엔 언제 보내줄것이여?
[공기사] 아이참! 어제밤에 세세히 말씀드렸잖읍니까.
[공영감] 임마! 니놈이 은제 이 애비헌티
속 시원한 대답 해주었냐 이놈아!
[공기사] 저도 언제인가는 시골로 내려갈거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읍니까. 농사를 지으려면 경운기정도는 있어야 하고 기왕 농사꾼이 되려면 논도 더 있어야 될것
아닙니까. 지금까지 아버님이 지으신 농사는 원시적인
방법이기때문에 고생만 심하지 수확이 없다는 겁니다.
[공영감] 젊은놈이 원시적인 방법이 못마땅허다하여
서울에 올라와 그 로버트인간 행세를 허고 있는 거여?
[공기사] 그것이 살기위한 수단아닙니까.
[공영감] 거 살기위한 로버트행세는 니놈이 좋아서 헌짓이니께 이 애비만은 보내달란 말이여, 으쩌자고 이
애비꺼정 불러들여서 남의집 보초를 서게 하느냔 말이여.
[공기사] 진정하십쇼. 아버님!
[공영감] 언제 보내 줄것이여 약속을 히여. 이 애비 고향을 언제 보내줄 것인가
[공기사] ------
[공영감] (멱살을 잡으며) 말 안할티여?
[공기사] 아- 아버님!
[공영감] 말히여 말 나온김에 니놈허고 결판낼것이여.
서울에서 호강을 시켜주고 구경도 시켜준다는 이 사기꾼 같은놈아 어서 약속을 히여. 나는 고향으로 가고 싶단 말이여. (꼬집고 할키지만 공기사는 그대로 서있다)
(이때 응접실에서 방여사가 권사장의 윗저고리를 들고
허겁지겁 나온다)
[방여사] 공기사! (응접실 입구문을 열고) 공기사 없어?
[공기사] (아버지한테 풀려나며) 네 여기있읍니다.
(공기사는 응접실로 들어가고 공영감은 입구까지 따라
왔다가 별수없이 공기사방으로 들어간다)
[방여사] 사장님은요?
[공기사] 옷을 입으시러 방에
계십니다.
(권사장 방에서 다른옷으로 갈아입고 나온다)
[방여사] 다른옷으로 바꿔 입으셨군요. 원세상에 내정신좀 봐요. 당신 옷을 입혀 드린다고 옷장에서 옷을 꺼내는 순간 그 여편네가 안방전화로 전화질을 하지 않았우.
[권사장] 여편네라니? (쏘파에 앉는다)
[방여사] 아- 그 말많은 천사장 여편네요. 전화질 할때마다 어찌나 호들갑을 떠는지 시장가게가 어쩌고 동창회모임이 어떻고 카나다 이민간 친구가 어떻고 정신팔려서 원. 전화를 끈고나니 내가 무슨일을 하다 말았는지 도무지 기억을 할 수가 없지않우. 손에 타올을 들고
있는게 욕실에서 나왔나보다 하고 욕실로 들어가지 않았겠수. 욕실물을 틀어놓고 내가 왜 욕실에 들어왔나하고 곰곰히 생각하는데 아 글쎄 내손에 얹혀있는게 타올이 아니고 당신 윗옷이었지 뭐유 호호호 난 당신이 와이셔츠 바람으로 출근하시지나 않았나하고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호호호. 어마! 내정신좀봐 목욕탕 물을 틀어놓고 그냥 나왔네.
[공기사] 제가 가서 잠그겠읍니다. (재빨리 욕실쪽으로
간다)
[방여사] 그래 식사는 하셨우?
[권사장] 별 생각 없어서 안먹는다고 했어요.
[방여사] 거 보세요. 번번히 굶는 습관때문에 당신 건강이 그렇게 된거예요.
[권사장] 내건강이 어때서 그래.
[방여사] 겉만 번지르하지 속은 곯아서 멀쩡한 환자예요 당신.
[권사장] 내가 환자라니?
[방여사] 내가 모를줄 아세요? 당신 어제 골프장에서
쓰러지셨다면서요?
[권사장] 내가 쓰러져? 언제? (공기사가 나와 제자리에 선다)
[방여사] 아이구 그래도 남자체면이랍시고 숨기긴 천사장 여편네가
그럽디다. 천사장이 쫑알쫑알 집에가서 말 다 했겠지요. 남들부부는 집에들어가면 오손도손 남의 흉도보며
깔깔거리는데 당신은 남에게 흉이나 잡히고 다니는 주제에 여편네에게 속삭이는 맛도 없으니 정말 난 재미없이 사는 여자예요.
[권사장] 내참! 골프장에서 넘어진게 뭐가 신나는 일이라고 여편네한테까지 속삭여?
[방여사] (깜짝놀라) 어머머! 그여편네 거짓말을 밥먹듯이 해서 믿지도 않았는데 당신 쓰러진게 사실이군요.
[권사장] 그게 어디 쓰러진거요 넘어진거지.
[방여사] 공기산 사장님 쓰러지신걸 목격했을텐데 집에 들어와서도 시치미를 뚝 떼고 있어요? 공기산 사장님 건강에는 관심이 없다는 거야 뭐야?
[공기사] 그럴리가 있읍니까 사모님! 사장님께서 스윙하실땐 공보다 잔디를 후려갈기는 예가 종종 있으십니다. 그런데 어젠 컨디션의 문제로 공도 잔디도 아닌 헛스윙을 하시는 바람에 그만 몸 중심을 잃으시고 넘어지신걸로 알고 있읍니다.
[방여사] 그 컨디션이라는 게 의학적으론 곧 원기가 없어서이고 원기가 없다보니 쓰러지신거지.
[공기사] 예! 그게 그거 아닙니까
[권사장] 어째서 그게 그거야! 기본자세가 아직 서툴러서 스윙하다 좀 넘어질수도 있지.
[방여사] 세상에! 골프는 스윙하는 폼이 골프의 멋 남성의 멋이라는데 그래 그 멋있어야 할 순간에 넙적하게
쓰러지셨다니 무슨 챙피요 챙피가.
[권사장] 아니 누가 넙적하게 쓰러져?
[공기사] 넙적하게 넘어지신거지요.
[방여사] (혀를차며) 그래도 한편이라고
[권사장] 골프장엔 어제로 세번밖에 더갔오? 아직 배우는 입장에 그럴수도 있는 거지 뭐.
[
방여사] 듣기 싫으시겠지만 모두가 당신을 위해 말씀드리는거예요. 스윙 자세도 자세지만 몸이 약해지면 시야가 흐려진다든지 물체가 흔들거리게 보인다든지 하는 증상이 나타나는 거예요. 항상 당신은 대수롭지 않게 자신만만한 말씀만 하시지만 몸을 생각할 나이예요
당신.
[권사장] 의사 사위감을 구했다더니 당신 의사 다되었구만.
[방여사] 의사 사위감이라뇨?
[권사장] 당신 그러지 않았어.
[방여사] (생각난듯) 참! 우리 지숙이 사법고시 합격한
사내와 맞선 본다는 말 제가 안했지요?
[권사장] 뭐? 사법고시? 그럼 전문의 땃다는 의사가
사법고시까지 마저 합격했단 말이요? 허허허 그놈 미쳤구만 허허.
[방여사] (혀를차며) 그래도 사위욕심은.
[권사장] 그럼 아니야?
[방여사] 이번 맞선볼 사람이 사법고시에 합격한 사람이라구요.
[권사장] 그럼 그 전문의 땃다는 의사는 어디갔어?
[방여사] 그럴 제가 어떻게 알아요? 하나밖에 없는 딸애한테 당신은 어찌 그래 관심이 없우? 그일이 언제일인데.
[권사장] 언젠 언제야 당신 엊그제 그러지 않았어. 의사 사위감으로 정하자고 (신문을 뒤적인다) 그사람 안되었구만 내가 저녁한번 사기로 했는데.
[방여사] (신경질적으로) 의사도 의사나름이지.
[권사장] 그땐 그만하면 키꼴도 좋고 이마가 운동장만해서 너그럽고 부모덕도 있다데다 양귀밥이 덜렁 커서
큰일도 할수있는 인물감이라 하지않았오.
[방여사] (소리지른다) 그땐 그때 아니예요.
[권사장] 허기사 이마가 넓어도 한도가 있지 얼굴의 반을 차지하니 속없어 보이드라고.
[방여사] 글쎄 야근을 하면서 급한환자수술 두건이나
했다며 커피수에까지 나와서 하품을 늘어지게 하더니
눈물을 찔금거리고 있드래니까요? 세상에 장모될 사람앞에서 그런 무식한 행동이 어디있어요?
[권사장] 눈물을 흘릴정도의 슬픔이 있었겠지. 감정은
매우 풍부한 사람이구만
[방여사] 감정이요?
[권사장] 척 보면 즉흥적으로 오는게 있지않소. 그래
지숙이는 뭐랩디까?
[방여사] 그애가 언제는 남자얼굴 쳐다보는 애예요?
억지루 끌고 나가니까 마지못해 앉아있다가 그사람 하품하는걸 보더니 안녕히 주무세요 하고 나가버립디다.
[권사장] 무슨 얘긴줄 알겠오. 지숙이가 얼마나 어리게
보였으면 긴장 커녕은 하품이 나오고 지숙이는 어린속에 획 토라져서 뛰쳐 나갔겠지. 우리 지숙이는 아직 미성년자예요. 그런애를 데리고 선을 보러다닌다는 자체가 갓쓰고 양담배 피우는 격이라고.
[방여사] 아니 그 애가 왜 미성년자예요? 벌써 스물한살이예요. 대학졸업반.
[권사장] 스물한살이면 미성년자나 다름없지 뭐가 급해서 그 어린것을 어디로 시집보낸단 말이요. 어린 암송아지 끌고 다니는것 같애서 안스러워서 못보겠읍디다.
[방여사] 어머머! 내가 몇살에 당신과 결혼한 줄 아세요? 스무살에 시집 왔어요.
[권사장] 당신이야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나이에 비해서 지나치게 성숙한 편에다 격에 맞지 않게 얼마나 안달이었소.
[방여사] 누가? 제가요?
[권사장] 아직 대학생인 나보고 부모님한테 결혼승낙
받아오라고 얼마나 욱박질렀오. (주위를 힐끔보며) 누가 들을까 싶네.
[공기사] (주위를 살피고 나서) 아무도 듣는사람은 없읍니다.
(공기사의 목소리에 그
때야 두사람 공기사를 의식하고 돌아본다)
[권사장] 자네 여태 거기 서 있었나?
[공기사] 네
[방여사] 능청스럽긴
[권사장] 어서 나가세. (공기사 먼저나가고 권사장 뒤따른다)
[방여사] (붙든다) 마저 얘기를 긍내시고 나가셔야지요.
[권사장] 무슨 얘기가 또 있어?
[방여사] 지숙이 선보는 것 말이예요. 이번엔 당신도
같이 가셔서 결정해야해요.
[권사장] 언젠 내가 결정했나? 그리고 당신도 잘 알다싶이 저앤 남자를 보면 무슨 괴기영화에 나오는 괴물인것처럼 느끼는 판인데 괴물과 짝을 맞추어 주는일이 쉽겠오? 나이가 더들면 가지말라고 붙들어매도 저희들끼리 알아 뛰쳐 나갈건데.
[방여사] 남자가 왜 괴물이우?
[권사장] 당신이야 물론 모든남자가 동화속에 왕자로
보이겠지만 저앤 아직 어려요. (나가 버린다)
(나가버린 권사장의 뒷모습을 우둑커니 바라보던 방여사 돌아와 쏘파에 앉는다)
[방여사] 딸하나 있는것 나이 다먹어 급히 고르려면 남뒤치닥거리 하는 꼴 뵈기싫어 저 나이에 상대자를 미리
정해두자는데 그게 뭐가 잘못이야.
(이때 이층 계단에서 지숙이 내려온다)
[지숙] 엄마! 아빤 출근하셨우?
[방여사] 방금 나가셨다. 일찍 일찍 일어나야지 기집애가 늦잠은.
[지숙] 남의 속도 모르시면서 졸업논문때문에 골치아파 죽겠는데--- (하품을 하며) 아이! 졸려.
[방여사] 내앞에서 하품하지 마라. 그 꼴불견 보는것
같으다.
[지숙] 그 의사? 호호호 재밋어!
[방여사] 재미있긴? 내일쯤 구여사한테 연락올게다.
이번엔 사법고시 합격한 사람인데 눈이 부리부리하니
듬직하게 생겼다드라.
[지숙] 눈이 부리부리 하니 사법고시까지 합격한 사람이 따라다니는 여자도 없대요? 난 몰라요 정 보고싶거든 엄마 혼자 다녀오세요.
[방여사] 아니 얘가?
[지숙] 지금 졸업논문이 문제지 맞선보는게 문제예요?
[방여사] 너 시집 안갈거야?
[지숙] 내가 미쳤우? 결혼을 하게. 엄만 나 결혼시킬려고 나를 끌고 다니며 선을뵤우?
[방여사] (기겁하듯) 아니 그럼?
[지숙] (태연히) 난 재미로 그러는줄 알았지. 엄마 취미
아니예요.
[방여사] 뭐야?
[지숙] 커피 하셨어요?
[방여사] (곧 기절이라도 하듯 멍하니 쳐다만 본다)
[지숙] 아줌마! 아줌마!
[괴산댁] (안에서) 예.
[지숙] 커피 두잔이요.
[괴산댁] (안에서) 예.
[지숙] 엄마! 왜 그러고 계세요?
[방여사] 참! 기가 막혀서 나는 남편복도 자식복도 없는가보다.
[지숙] 엄마가 어때서 그래요? 엄마! 참. 공기사 아버지 말이예요 저분 계속 우리집에 계실거예요?
[방여사] 그 영감은 왜 또?
[지숙] 오늘 새벽 동도트기전인데 말예요, 괴산댁 보고
식은밥 남은것 있냐면서 반그릇 잡수시고 죄송해요 그러고 나가시더라니까요? 몹시 배가 고프셨든가 봐요.
[방여사] 시골에 사시던 노인네라 습관이 그리 되셨겠지. 너의 할머니도 우리집에
계실때 그러지 않았어. 컴컴한 밤중에 혼자 일어나셔서 마당을 쓸고 꽃밭손질을 하시고
[지숙] 저 할아버지 안되셨어.
[방여사] 안되다니?
[지숙] 하루종일 얼마나 적적하시겠어요. 저러다 병나시는 거 아니예요?
[방여사] 얘는? 외아들인 공기사가 서울로 떠나온 뒤론 시골에서 홀로 농사지며 지내셨다더라. 농사일이 보통일이냐? 갑자기 편해지시니까 당분간은 적적하시겠지만 그래도 시골보담야 몇배 낫지. 귀찮게 하는 어린애가 있냐 집에 일거리가 있냐? 집을 본댔자 텔레비젼이나 보시는 일이데.
[지숙] 할머니도 병나신걸 못 보았어요? 집에만 계시게 한데다 일거리마저 없으니 한숨만 푹푹 쉬시더니 병나셨지 않아요.
[방여사] 아- 그게 일거리가 없어 병나신거야?
[지숙] 그래도 시골 고모님댁에 가셔서는 과수원일도
하시면서 금방 건강이 좋아지셨지 않아요.
[방여사] 아니 넌 어쩌면 너의 아버지하고 한속이냐?
그럼 너의 할머니를 내가 잘모시지 못해서 병이 나시고
시골 너의 고모는 잘모시기 때문에 병이 나으셨단 말이냐?
[지숙] 아이참! 엄마두 엄만 왜 그런쪽으로만 생각해요
노인들은 재미있는 일거리도 있고 친구분과도 어울리고 구경도 다니시고 그래야지 집에만 꼭 계시게 하면
병이 나신다니까요.
[방여사] 그럼 집은 누가 보구?
[지숙] 노인네들이 집보는 사람이우?
(이때 괴산댁 커피 잔을 들고 나온다)
[괴산댁] 사모님! 사장님께서 문단속 잘하라고 하시면서 장난감 권총을 든 강도가 들어온데유. 장난감 권총은 왜 들고 들어온대유?
[방여사] 어휴- 염려도 많으시네.
[
괴산댁] 그러믄 염려가 안되유? 겁도 벌컥 난데유
[방여사] 그러니까 저 영감님도 모셔놨지 안아요.
[괴산댁] 저 영감님이 강도잡는 도사간디유? 요즘 저
영감님도 기분이 별로 안좋으신것 같어유.
[방여사] 왜요?
[괴산댁] 한숨만 푹푹 쉬시믄서유? 고향엘 가봐야헐텐디 하시며 먼산만 바라 본데니께유?
[지숙] 그것봐요! 할머니도 꼭 저리시드래니까.
[방여사] 넌 좀 시끄러워!
[지숙] 엄만 괜히 야단이야 (커피를 마신다)
[방여사] 괴산댁이 한가한시간에는 친구가 되드려요.
저 노인네 시골로 내려가시겠다면 어쩌겠우.
[괴산댁] 참말로 그라믄 이 괴산댁도 보따리 싸야 되것시유. 권총강도가 득실거린다는디 아녀자가 이 너은집을 워떻게 본데유. 사모님이래두 나가시면 일찍일찍 들어오시면 몰라도--- 생각만혀두 소름이 오싹하네유.
[방여사] (소리를 지른다) 소름이 오싹하긴 권총강도가
들어온다고 계약이라도 합디까? (괴산댁 시무룩해진다) 여러말 말고 괴산댁이 가서 영감님보고 좀 들어오시라고 그래요.
[괴산댁] 네! (밖으로 나간다)
[방여사] 너의 아빠가 문제야. 아침부터 엉뚱한 강도이야긴 꺼내가지고
[지숙] (쏘파에 권사장의 옷을보고) 그거 아빠옷이예요? 한번 입어볼까? (옷을 걸치고 한바퀴 돈다)
[지숙] 엄마! 어때 패션?
[방여사] 어이구! 혼란스러워! (생각하다) 얘! 그옷 저
노인네 입으시랄까?
[지숙] 아빠 옷을요?
[방여사] 집에 손님이 오시드래도 한집사는 사람이라고 소개할수 있겠니? 시골
에서 농사짓던 옷인지 원? 그 모자하며 누가 와서 보면
우리 체면이 뭐가되겠니?
[지숙] 아빠가 좋아 하실까?
[방여사] 입으실만큼 입은옷인데 어떠냐?
[지숙] 허기야 언젠 아빠 허락받고 무슨일을 하셨어요?
[방여사] 얘가 못하는 말이 없어.
[지숙] 엄마가 쩔쩔 매시는걸 보니 영감님이 가실까봐
겁이난 모양이죠?
(이때 괴산댁이 공영감을 데려온다)
[방여사] 영감님! 이리 앉으세요.
[공영감] 네! (앉으며) 왠일루---
[방여사] 지내시기 적적하시죠? 조금만 더 지내보시면
생활에 적응이 되시겠지요 뭐 (괴산댁에게) 괴산댁! 영감님 차한잔 가져와요.
[공영감] 아- 아니 차는 왠 차요.
[괴산댁] 영감님은 차는 좋아하시지 않해유? 가끔 술생각이 난다고 하시던디 양주한잔 가져올까유?
[방여사] 참! 그래요.
[공영감] 어이구 사모님! 그만두세요. 무슨술은
[방여사] 안주는 치즈로 가져와요.
[괴산댁] 시골 노인네는 치즈보다 깍두기를 더 좋아하시는 법이예유. (들어간다)
[공영감] 아무거나 됐어요.
[방여사] 참! 그리고 이옷한번 입어 보세요. 몇번이고
백화점에서 영감님 옷한벌 사다드린다 하면서 깜박잊고 지내내요. 다음엔 영감님 모자하고 꼭 사다 드릴께요.
[공영감] 어이구 무슨옷이요. 집에서 자빠져 노는 노인네가 이 옷이면 어쩠읍니다.
[방여사] 자- 어서요. (옷을 억지로 입히려 한다)
[공영감] 노인네가
구정물이 흐르니까 좀 보기 그러셨든 게지요.
[방여사] (웃으며) 그래요.
[공영감] (입던옷을 벗으며) 그러타믄 입어야지요
(권사장의 옷을 입는다. 그러나 어딘가 답답해 보이고
어울리지 않는다)
[방여사] 그 모자도 벗어버리세요 오늘 제가 나가면 좋은걸로 사다드릴테니. (공영감은 모자를 벗는다. 허지만 뭔가 서운한 맛이다) 애 아빠하고 칫수를 똑같이 입으신 모양이예요. 잘 맞는데요.
[공영감] (석연치 않으며) 그래요?
(괴산댁 양주를 가져온다)
[괴산댁] 얼래! 영감님 양복입고 양주한잔 쭉- 하시면
기분 나스것네유.
[방여사] 자- 드세요. (양주잔을 들어준다)
[공영감] 네 네 (받아 마신다)
[괴산댁] 호호호 쩨틀맨이 그럴싸 허네유.
- OUT -
(공영감은 벤치에 앉아 졸고 있는데 괴산댁이 양주한잔을 갖고 나온다)
[괴산댁] 영감님! 고향생각 허세유? (옆에 앉는다) 저
시장에 좀 다녀올테니께유 술한잔 허시고 계세유.
[공영감] 네
[괴산댁] 비싼술인가 보든디유 사장님만 쬐끔씩 드시데유
[공영감] 술생각 없읍니다.
[괴산댁] 왜 그러신데유?
[공영감] 뚝사발에 허연 막걸리람 몰라도.
[괴산댁] 서울에서는유 막걸리 마시믄 촌스럽다고 흉봐유.
[공영감] 촌놈이 촌시러워야제 촌놈이 양주마시믄 촌사람이 서울놈티낸다고 흉을 볼게 아니것소.
[괴산댁] 이 괴산댁도유 장보러나가믄
서울말을 기맥히게 써 버리니께 영락없이 서울 사람으로 알든디유 히히히 영감님께서도유 인제는 양주로 돌리세유 서울서 살믄서 촌사람 티내서 덕볼께 뭇 있데유.
[공영감] 덕이야 볼것 없것제만은 (한숨을 쉰다) 촌놈은 흙냄새를 잊어븐지믄 힘이 빠지고 사는것 같지가 않는것이어요.
[괴산댁] 영감님이 고론 말씀을 허시면 이 젊은것은 어쩐데유 (점점 우울해진다) 고향 싫은사람 있간디유 그란디 고향가긴 영 틀렸어유. 처음엔 빨래하다 한숨짓고
밥하다 한숨쉬고 했지유. (콧물을 닦는다) 어릴땐 충청도 괴산에서 컷지만 고향이라고 헐것도 없어유. 팔자가
사나와서 이집살이 저집살이 하며 살다가 용케도 서른한살때 남편을 만났는디유 (술을 한모금 마신다) 처녀때 고생이 많었것다고 지년을 고로케 위해 주시데유.
참 살기 편했시유 (콧물을 닦는다) 내 팔자가 고것밖에
안되야서 같이 산지 이년도 채 못되 그양반이 세상을
떠나블고 또다시 보따리 싸들고 남의집살이 하믄서 떠돌다 보니께 서울까지 오게 되얏구먼유. (반쯤 남은 술을 다 마신다) 영감님은 그려두 쩡쩡한 아들이 있으니께 언젠가는 고향으로 모셔가겠지유.
[공영감] (졸음이 온 소리로) 그 망할자식헌티 내가 속아쁜것 같어요. 서울에서 살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자식
사는것도 보고잡고 더 늙기전에 서울구경도 하고잡어서 올라 왔는디 남의집 문지기가 되얏구먼요.
(괴산댁은 그때야 비로소 술잔이 비워있는걸 알고)
[괴산댁] 얼래? 어쩐데유? 어르신 앞에서 실수를 저지렀네유. 아- 이놈에 고향생각만 해블면 요렇게 줏대가
없는년이 되야 분다니께유. 거 무신술이 달그작작허니
넘어간줄도 모르것구먼유. (공영감은 서서히 잠들기 시작했다) (괴산댁도 일어서는데 비틀한다) 얼래 삥아리
눈물만 헌것도 술이라고 내가 미쳤지 고걸 왜 마셨데유? 기왕지나 요렇게 되얏으니께유 시장바닥에 막걸리있으면 한대 사올 께유. 적적하시드래도 조
금만 기다리세유 (시장가방을 들고 총총 나선다)
(공영감이 벤치에 앉아 입을 쩍벌리고 졸고 있을 무렵,
대문 쪽에서 할머니가 백을들고 들어와 응접실로 들어간다. 나이에 비해 옷차림도 말끔하고 곱게 늙은 노인이다)
[할머니] (백을 내려 놓으며) 무슨일로 대문은 활짝 열어놨어? 지숙이 어미 없냐? (안방을 열어보고나서 부엌쪽으로 가며) 괴산댁? 아니 집을 텅 비우고들 어디갔어? (쏘파에 앉으며) 도둑을 안맞고 사는게 다행이지
도둑이래도 들어야 지숙이 어미 집비우는 행실이 잡어질텐데. 그렇지만 괴산댁까지 어디 갔을까? (다시 부른다) 괴산댁! 괴산댁! (이소리에 공영감은 벤치에서 깨어
응접실로 간다)
[할머니] (공영감을 보고) 누구요?
(공영감은 영문을 몰라 우둑커니 서있다)
[할머니] 영감은 누구냔 말이요?
[공영감] (얼떨떨해서) 나요?
[할머니] 방금들어오면서 대문을 잠궈놨는데 어디로
들어왔오? (벌컥 겁이난다) 빈집엔 뭐하러 들어왔냔 말이예요?
[공영감] 할므닌 누구세요?
[할머니] 뭐라구요? 영감탱이 얼마나 더 살거라고 할짓이없어 도둑질입니까?
[공영감] 어메? 멀쩡한 할망구가 도둑질을 하러 들어왔다가 들키니께 되려 뒤집어 씌울라고 허네. 그 가방은 진죽 가져가긴 틀렸으니 이리 내놓으시지요.
[할머니] 뭐라구요? 수법을 보아하니 늙도록 도둑질만
하며 살았구만.
[공영감] 이놈의 할망구 불쌍해서 그냥 쫑아내려 했드니만 매질로 버릇을 고쳐 놔야되것어.
(몽둥이를 찾는데 할머니는 겁이나서 안방으로 재빨리
들어가 문을 잠근다)
[공영감] (어이없이) 어이구! 꿩새끼 궁둥이
내놓고 대가리만 쳐박는 격일세. (생각한다) 요 못된 할망구 어떻게 한다?
(가방을 보고 쏘파에 앉아 열어 본다. 가방 안에서 사과가 나온다)
[공영감] 얼마나 배가 고프면 훔칠게 없어 먹을것을 훔쳐. 가만있자 옷차림은 멀쩡해도 불쌍한 노인같은디 오죽해야 사과를 훔쳤겠나 (일어나 방문을 열려고 하나
굳게 잠겼다) 여보쇼! 할망구! 내 용서해 줄테니 말이요
어여 나와요! 매질도 안할것이고 먹을것을 더주어 보내줄테니 빨리 나오시라고요. 여보쇼 할망구! 열번까지
쉬어서 안나오면 내 문을 쳐부시고 들어가서 매질을 파붓어 경찰서에 넘겨버릴테니께 그렇게 허드라고요. 자-쉽니다. 하나 둘 셋 넷----
(이때 대문초인종이 울리자 벽에 붙은 인터폰을 든다)
[공영감] 여보시요? 누구십니까? 예? 달지냐? 그래 너
잘왔다. (자동 스위치로 문을 열어준다) (지숙이 투덜대면서 먼저 들어오고 뒤를따라 공기사가 들어온다)
[지숙] (신경질을 내며) 그렇다고 학교까지 찾아오는
사람이 어디있어요?
[공기사] 사모님께서 회사로 열번쯤은 전화를 하셨읍니다. 어서 준비하십쇼.
[지숙] (큰소리로) 뭘 준비해요?
[공기사] 사모님께서 그러시던데요. 옷차림을 산뜻하게 차려입고 화장을 약간 하신 다음에 미장원에 들려서
나오시라고요.
[지숙] 난 안나갈테니 공기사나 가보세요.
(지숙과 공기사는 응접실로 들어온다.)
[공영감] 야! 너 잘왔다. 저 방에 도둑할망구를 잡아두었는데 방문을 꼭 잠그고 열어주질 않으니 방문좀 어떻게 열어봐라.
[공기사] 도둑이요?
[지숙] (놀래서) 도둑이면 경찰에 전화부터 해야지요
(
전화수화기를 든다)
[공영감] 아- 아니예요. 늙은 할망구 도둑이니 불쌍해서 경찰에 신고 할것도 없읍니다. 버릇이나 고쳐 보내지요.
[지숙] (수화기를 놓으며) 불쌍한 할머니요?
[공기사] 그럼 제가 열어보지요.
(공기사는 방문손잡이를 돌리려 애쓴다)
[지숙] (전화를 받으며) 여보세요? 예 아빠세요? 네 저는 방금 들어 왔는데요. 도둑할머니가 지금 들어왔어요
네? 네 네 할머니가 안방에 갖혀 계시다구요? 네 안방에서 회사로 전화가 걸려 왔어요. 네 네 알았어요 아빠
네. (전화를 끈고 지숙은 안방문을 두들긴다) 할머니!
저 지숙이예요 권지숙이요. 문을 여세요 할머니 염려마시고 문을 여세요.
(전혀 인기척이 없자 전화를 건다)
[공기사] 할머니시라면 경찰에 신고하실겁니까?
[지숙] (전화에다) 할머니! 저 지숙이예요. 네 문을 여세요. 아빠한테 얘기 다들었어요 네 네 (끈는다)
(이윽고 안방문이 슬그머니 열리며 할머니가 나온다)
[지숙] 할머니! (뛰어가 손을 잡는다)
[공기사] 안녕 하십니까?
[할머니] (아직도 겁에 질려) 저 영감쟁이는 누구냐?
[공기사] 저의 아버님이십니다. (공영감은 어색해 우물거리다 슬며시 사과를 백에 담기 시작한다)
[할머니] 자네 아버님이야? 저 영감이?
[공기사] 네!
[할머니] 호호호
[지숙] 아니 왜요?
[할머니] (웃으며) 난 말이다 저 영감쟁이가 도둑인지
알았지 뭐냐? 호호호
[공영감] (화가나
서) 아니! 뭐요?
[공기사] 아버님! 지숙씨 할머니 되십니다.
[공영감] 나는 도둑 할망구로 알고 매질 해 놓을려고
했제.
(공영감은 어색스런표정으로 밖으로 나가 벤치에 가 앉는다)
[지숙] 할머니 큰일나실뻔 했지았어요?
[할머니] 그래 내손녀딸이 아니었으면 큰일이 나고말고
[지숙] 할머니 언제 올라오셨어요?
[할머니] 조금전에 왔지. 너의 고모에겐 할머니 친구분한테 하루정도 쉬어 오겠다고 해 놓고선 우리 손녀딸이
보고싶어 올라왔단다. 너의 고모는 서울에 가면 할머니가 다시 병을 얻을까봐 못가게 하지 뭐냐. (이때 전화벨이 울린다. 공기사가 받는다)
[공기사] 네 (음성을 갑자기 올리며) 사장님이세요? 네
지숙씨 할머님이요? 무사하십니다. 네 네 염려하실것
없읍니다 네 전화 바꾸겠읍니다. (할머니에게) 사장님입니다 전화받으십쇼.
[할머니] 나 말인가? (전화를 받으며) 응 내다 그래 그렇지 아 나때문에 일찍 들어올것 없다. 일 다보고 천천히 들어오너라. 그래 그래 그럼 끈는다. (전화 끈는다)
[지숙] 할머니 올라오실땐 전화 연락하시고 올라오셔야지 그냥 오시면 어떻게 해요?
[할머니] 너의 할머니가 연락을 하고 오면 서울역으로
자동차를 가지고 나올것 아니겠나? 이 할머니는 자동차 싫어요. 집을 찾아오는 재미가 얼마나 신나는 일이라구..
[지숙] 할머니도! 피곤하실텐데 들어가세요.
[할머니] 아니다 피곤하긴 나 저 영감님한테 사과하고
와야지 내 잘못인데 (마당으로 간다)
[지숙이] (부엌쪽으로 들어가며) 괴산댁!
[공기사] (따라가며) 지숙씨 빨
리 준비하십쇼 시간이 없읍니다.
(벤치에 앉아있는 공영감에게 할머니는 다가간다)
[할머니] 여보세요 영감님!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으셨나요?
[공영감] 거 별스런할망구 보겠구먼 첨부텀 내가 권사장에미되는 사람이요 했드래면 될일 가지고.
[할머니] 죄송합니다. 그럴 여유가 없었지 않아요. 전화연락이래도 하고 왔어야 할텐데 아들녀석이 노인이라고 땅바닥에 발붙일틈없이 자동차에 실어오는게 싫어서 그랬든 거예요. 괴산댁은 어디 갔읍니까?
[공영감] 장보러 간다고 허데요.
[할머니] (벤치에 앉으며) 그래 영감님은 서울에 언제
올라오셨읍니까?
[공영감] (한숨을 쉬며) 한 달포쯤되나 봅니다. 잘못 생각하고 왔어요.
[할머니] 왜요?
[공영감] 공연스레 고론생각이 들더구먼요.
[할머니] 그러실겁니다. 집보는 일이 얼마나 힘든일이라고요. 내 누구보담도 영감님 마음을 잘 압니다. 나도
여기 아들집에서 죽- 살아왔읍니다. (공영감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할머니를 본다)
[공영감] 그야 아들집이니께 당연한 일 아니요? 그러나 나는 잡혀있어요.
[할머니] 잡혀 있다는 말씀이 맞읍니다.
[공영감] 예?
[할머니] 나도 서울이 싫어서 도망을 친거랍니다.
[공영감] 도망을 쳐요?
[할머니] 예! 나이가 다 되어서 그런지 흙냄새가 좋고
따가운 햇빛이 좋아서 과수원하는 딸아이한테 가서 살고 있죠.
[공영감] 그래 다시 아들집에 살러 온 거야요?
[할머니] 아니요. 이삼일 쉬다 내려 갈겁니다.
과수원일도 바쁜데 어디 오래 놀다 갈수가 있어야지요.
[공영감] 농촌 바쁘지 않는데가 어디 있겠요?
[할머니] 그러믄요.
[공영감] (벌떡 일어나) 저런 망할놈의 자식때문에!
[할머니] 아니? 누구말인가요?
[공영감] 저 자식이 나를 망쳐 놨어요. 농사일은 산더미같이 놔두고 이렇게 앉아있게만한 저놈 말이예요.
(주저 아으며) 허이고 저놈헌티 속아서
[할머니] 영감님! 참으십시요. 잘은 몰라도 조금 참고
계시면 고향으로 가실수 있겠지요.
[공영감] 그때가 언제냔 말이예요. 나도 도망을 치려
했지만 소판돈 은행에 몽땅 넣어두고 논 몇마지기 있는
거 저놈이 남에게 맺겨 버렸으니 저놈이 글쎄 내말을
들어줘야지요.
[할머니] 영감님 아드님은 일찍부터 내가 알지만 틀림없는 사람이예요. 잘 타협하세요.
[공영감] 타협하믄 뭣해요. 장난감 로버트 같은속셈인데
[할머니] 자- 들어가십시다. 내가 가져온 과일좀 깍아
드릴테니요.
[공영감] 할머니나 들어가 보세요. 답답증이 날땐 난
여기가 좋습니다.
[할머니] 그러면 여기서 기다리십시요. 내가 이리 가져오지요. 답답하고 화가 났을땐 먹는동안에 풀어지는수도 있답니다. (할머니 들어간다. 응접실 쏘파엔 지숙이가 앉아있고 공기사는 서있다.)
[할머니] 왜들그러고 있느냐?
[공기사] 예! 오늘 사모님께서 지숙씨를----
[지숙] (말을 막으며) 공기사!
[할머니] 지숙아! 너는 왜 그 쌀쌀맞은 버릇 못 고치느냐? 공기사! 말해봐요.
[공기사]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할머니] 이런 사람! 싱겁긴. 그래 이 할머니가 알일이
아닌게로군 (할머니 부엌쪽으로 간다)
[지숙] 할머니가 아시면 일판은 걷잡을수 없이 커질텐데 그렇게 눈치가 없어요?
[공기사] 죄송합니다.
[지숙] 아무리 공기사님이 그래도 난 안갈테니까 할머니가 눈치 채시기 전에 회사에 가서 일 보세요.
[공기사] (지숙이 옆에 앉으며) 지숙씨! 어차피 저쪽과
약속이 된 마당에 지숙씨가 안가시면 사모님 얼굴이 뭐가 되겠읍니까?
[지숙] (공기사가 옆에 앉자 저만치 물러나며) 사람이
멍청한듯 하면서 앙큼하긴.
[공기사] (일어서며) 그렇게 되군요.
[지숙] (싱긋 웃으며) 허 참! 공기사님! 그렇게 살수밖에 없어요?
[공기사] 뭘 말입니까?
[지숙] 장난감 로버트같은 행동 말이예요. 젊은이답게
발랄하고 용기있고 자존심도 있는 행동 그런거 생각 안해 봤어요?
[공기사] 장난감을 줄곧 대하다 보니 그런것 아닐까요?
[지숙] 흥! 아주 장난감 회사 직원답게 철저하시군요.
[공기사] 철저 하다는게 곧 자존심 아닙니까? 헤헤헤
[지숙] 어 엉! 웃을줄도 아시군요?
[공기사] 그점이 장난감과는 틀린점이죠. (이때 전화벨이 울린다)
(공기사가 재빨리 받는다)
[공기사] 네 권치혁 사장님 댁입니다. 네? 사모님이시군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귀가 따가운듯 수화기를 댄다. 저쪽에서 일방적인 통화) 네 곧 가겠읍니다.(저쪽에서 일방적으로 끈는다)
[지숙] 엄마예요?
[공기사] 네 (다시 지숙이 옆에 앉으며) 지숙씨!
[지숙] (벌떡 일어선다) 엉큼한거예요? 순진한거예요?
[공기사] 그게 문제 아닙니다. 지금 사모님께서 화가
잔뜻 나셔서 아마 그쪽 수화기가 깨졌을 겁니다. 오분내로 안오면 쫑아 오시겠다는 데요?
[지숙] 몇번 말해야 알아들어요?
[공기사] (용기를 내듯) 좋읍니다. 그렇담 지숙씨 할머님께 다 말씀----
(지숙이 다급한 나머지 공기사의 입을 틀어막는다)
[지숙이] (손을 떼며) 좋아요! 용기 있어 봐주는 거예요.
[공기사] 감사합니다.
[지숙] (소리친다) 그런식에 말좀 안할수 없어요?
[공기사] 죄송합니다.
[지숙] 어유! 로버트!
(지숙이 핸드백을 들고 나가고 공기사 뒤따라 나가는데
할머니 과일을 깎은 접시를 들고 나온다)
[할머니] 어디가느냐?
[지숙] 할머니 저 잠깐 갔다 올때가 있어요.
[할머니] 과일 깍아 왔는데
[지숙] 할머니 잡수세요. 금방올께요.
[공비서] 다녀 오겠읍니다. (두사람 대문쪽으로 사라지고 할머니는 벤치쪽으로 간다)
[할머니] 뭐가 그리 급해서---
(벤치에 공영감이 없자 공영감 방으로 간다)
[할머니] 영감님 왜 그냥 들어가셨어요? 마음이 답답하다고 드러누워 계시면 병납니다. 이리 나오세요 안나오실거예요? (공영감 천천히 나와 벤치로 간다)
[공영감] (가라앉은 목소리로) 할머니가 고마워서 나왔읍니다.
[할머니] 고맙기는요? 노인의 마음을 노인이 모르면
누가 알겠읍니까? 자- 어서 한조각 들어 보세요. 시원
할겁니다.
(과일꽂이로 꽂아준다)
[공영감] (어색해하며 받는다) 고맙게 막겠읍니다.
[할머니] 젊은 총각처럼 수줍어하는 거예요?
[공영감] 내가요? 젊은 처녀같이 말씀허시니께 그렇지요.
[공영감 할머니] 허허허
[할머니] 영감님! 우리 친구처럼 지내요
[공영감] 친구요? 영감탱이와 할망구가 친구는 무슨
친구요?
(이때 대문 초인종이 울린다)
[공영감] 괴산댁이 올 시간입니다. 내가 갔다 오리다.
[할머니] 아니예요. 제가 갖다 오지요.
(할머니 앞서 나간다)
[할머니] (소리만) 누구세요?
[괴산댁] (소리만) 할머니아니세유. 어쩐일로 오셨데유.
[할머니] (두사람 나오며) 그동안 괴산댁은 잘 계셨어요?
[괴산댁] 암유. 오랜만에 뵈니께유 할머니 더 젊어지신것 같네유.
[할머니] 그래요?
[괴산댁] 마침 요로케 장도 잘봐 왔는디 식사준비 허것시유. 참! 영감님 좋아허시는 막걸리도 사왔구먼유. 식사 허시믄서 드세유. 귀한손님 시장 허실텐데 내 금방으로 식사 준비 허것어유. (괴산댁 들어간다.)
[할머니] 영감님은 인복은 있는가봐요.
[공영감] 복이 없으니께 인덕이라도 있어야 헐께 아니요.
[할머니] 술을 많이씩 드세요?
[공영감] 이제 많이는 못 마셔요. 모판이나 들어갔다
나오면 두어잔은 하지만 그땐 시장끼가 오거든요.
[할머니] 지금 나이에도 모심을 수 있어요?
[공영감] 모도심고 쟁기질도 하고 흙밟는 일이믄 농사군이 다 하는것 아니겠우.
[할머니] 영감님 나이가 몇인데요?
[공영감] 할망구 별것을 다 묻는구먼. 예순 아홉이요.
[할머니] 허허허. 예순 아홉이요?
[공영감] 워째 웃어요?
[할머니] 웃는게 싫으세요?
[공영감] 할머니는 몇살 되셨는디요?
[할머니] 여자 나이 묻는것 아니예요.
[공영감] 뭐요? 헝! 허기사 할망구 나이 알아서 뭇허것어요 관두세요.
[할머니] 영감하고 동갑내기여서 웃었어요.
[공영감] 할머니가 나하고 갑장이란 말예요? 쪼그만
노인네가 그 많은 나이를 다 잡셨구먼요.
[할머니] 세월이 어찌나 쉽게 흘러가는지 몇번이나 나이를 있을뻔도 했는데요. 그런데 영감님은 애들이 늦읍니다.
[공영감] 어디 늦기만 했어요? 그것도 저놈 하나라서
저놈만 믿고 산답니다. 세상일이 어디 지맘같이 됩니까? 참고 사는게 세상이것지만 허는일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건 참기 어렵드군먼요. 논에서 허리굽어 일을 허다 허리좀 펼려고 논두렁에 기어 올라와 앉으면
그 틈을 타서 망할놈에 참새떼들이 새까맣게 몰려 옵니다 그려. 이 망할놈에 참새떼 훠이 훠이. (공영감은 끌끌끌 웃는다) 그 방정맞은 참새가 이 노인네를 한시도
못쉬게 했죠 (한숨을 길게 쉬며) 인제는 참새마저도 그리워 <<000>> <<지니께>> 간간히 집근처를 돌아보지만
참새떼 보기도 여간 쉬운일이 아닙데다.
[할머니] 얼마나 적적하셨으면 참새떼가 보고싶
었겠어요? 저 뒷쪽에 제가 가꾸던 화단도 손보시고 그러시지 그랬어요? 좋고 귀한 꽃만 심었는데.
[공영감] 무슨 꽃인진 몰라도 뻘겋게 꽃봉우리가 올라
옵디다. 그옆자리 빈틈에단 거름을 해서 호박씨를 심었더니 벌써 한뼘이나 자랐어요.
[할머니] 호박을요?
[공영감] 거 댓자나 자라야 꽃이 나올텐디 괴산댁은 호박국 끓일 생각부터 한답니다.
[할머니] 호 호 호 호
(무대 어두워진다)
(늦은 밤이다. 응접실에 방여사 팔장을 끼고 앉아서 시계를 본다)
[방여사] 아니 세상에 지금이 몇신데? (화가나서 일어섰다 앉았다 어쩔줄 모른다) 공기사 이자식을 그냥! (전화기 쪽으로 가서 전화를 들었다놓는다) 이밤중에 어디서 뭘 하는지 알수가 있어야지. 전화 할때도 없고----
(이때 공영감 잠옷바람으로 나와 응접실 문을 열고 내다본다)
[공영감] 우리 아들놈 아직 안들어 왔읍니까?
[방여사] (화가나서) 우리 딸에도 아직 안들어 왔어요.
[공영감] 거 여관같은데선 자는애가 아닌데---
[방여사] (깜짝놀래) 뭐요? 여관이요?
[공영감] 아 아니예요. (돌아서서 들어간다)
[방여사] 여관? (생각한다) 여보! (안방문을 열고) 여보! 좀 나와보세요!
(다시 쏘파에 가 앉는데 권사장 잠옷바람에 눈을 비벼대며 나온다)
[권사장] 당신 잠안자고 뭘하고 있어?
[방여사] (벌컥 화를 낸다) 지금 잠자게 되었어요? 지숙이가 아직 안들어 왔어요.
[권사장] 공기사는 들어왔오?
[방여사] 아 그자식이 안들어 왔으니까 문제지요.
[권사장] 혼자면 몰라도 공기사와 함께 있으니 별걱정
없어요.
[방여사] 뭐예요?
[권사장] (시계를 보며) 차가 고장이 났나?
[방여사] 차가 고장이면 전화라도 있어야 될거 아니예요?
[권사장] 공중전화가 없는데선 어쩔수 없는 거지.
[방여사] 공중전화없는데까지 그애가 뭣하러 가요?
[권사장] 차가 있는데 못가는데가 어딧어?
[방여사] 다섯시까지 시내 커피수으로 지숙이를 데려나오라 했는데 지금이 몇시예요. 그리고 시내 공중전화
없는데가 어딧어요?
[권사장] 공중전화가 고장인가?
[방여사] 아니! 공중전화가 한두군데예요?
[권사장] 어머니 잠깨우시면 어쩔려고 소리는 질러?
그렇잖아도 지숙이 신랑감은 내가 보아야 한다 하는분인데 맛선을 보면서 말씀드리지도 않았으니 아시면 날벼락날거야 당신.
[방여사] (그말에 소리를 죽인다) 여보! 혹 여관이나 가지 않았을까요?
[권사장] 여관엔 왜가? 미쳤어? 집놔두고---
[방여사] 그럴 누가 알아요?
[권사장] (하품을 길게 하고) 아- 이구 잡시다. 곧 들어오겠지. 통행금지가 있어 차가 없어?
[방여사] 이런판에 잠이와요?
[권사장] 그래 내가 뭐랬어? 선보기 싫다는 애를 끌고
다니니 이런일이 있는게 아니요? (또한번 하품을 한다)
아이- 졸려! (소파에 기댄다)
[방여사] 내가 오늘 어떤꼴을 당한줄 아세요? 다섯시에 그쪽과 약속을 해놓고 그앞 커피수으로 지숙이를 나오라고
했는데 다섯시 십분이 되도록 안나타나지요, 다섯시 이십분이 되어 너무늦어 안되겠다 싶어 나혼자 나갔더니
중매장이 김여사는 얼굴이 푸프락 붉으락 하지, 상대편에선 영감 할멍이 아들옆에 앉혀두고 턱 버티고 아아있는데 어이구 생각만해도 내 공기사 그자식 오기만 해봐요. (옆에 권사장은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방여사] 어이구! 어이구! 어쩌면 그 공기사 그 녀석하고 똑 (권사장 허벅를 꼬집는다.) 같우.
[권사장] 아얏! (벌떡 일어난다.)
[방여사] (손가락을 입에대며) 쉬- 조용히 못해요?
[권사장] 아니 뭘로 꼬집었는데 그렇게 아파?
[방여사] 이 손가락으로요 이 손가락! (또 꼬집는다.)
[권사장] 앗! (하고 입을 자신이 막는다.)
(어느새 층층대에서 할머니 내려온다.)
[할머니] 어쩌다 이 밤중에 손가락을 다쳤나?
[권사장] 아- 아닙니다. 어머님!
[방여사] 이 이가 쏘파에서 졸고 계시질 않어요. 그래
들어가 주무시라고 깨웠더니 그렇게 소리를 지르지 뭐예요.
[할머니] 깊이 잠들었던 모양이구나. 왜 쏘파에서 자.
방 놔두고.
[권사장] 왜 주무시다 말고 내려오세요.
[방여사] 잠자리가 불편하세요 어머님?
[할머니] 불편하긴 잠자리가 바뀌니까 깊은 잠이 오질
않고 깨는구나.
(쏘파에 가 앉는다.)
[방여사] 밤이 깊었는데 주무세요 어머님.
[할머니] 너희들이나 어서 자거라. 내 좀 앉았다 잘련다. 그리고 에미야!
[방여사] 예! 어머님! (앉는다.)
[할머니] 저 문간방에 영감님 말이다.
[방여사] 네!
[할머니] 너무 집만 보시게 해선 안된다. 가끔 시내 구경도 시켜드리고 그래야지. 무슨 낙이 있어 사시겠냐.
내 부모처럼 모셔야 한다.
[방여사] 네! 염려마세요.
[할머니] 그리고 애비 너도 공기사 너무 부려먹을 생각만 말고 일요일에라도 저의 아버지 모시고 구경도 나가게 하고 그래야지. 요즘 쉬는날 없는 일터가 어디 있다드냐.
[권사장] 네!
[할머니] 그 공기사가 우리집에 한 삼년 있었나?
[권사장] 햇수론 오년째고 사년좀 넘었읍니다.
[할머니] 거 세월봐라 벌써 오년째라니, 오년째 한 일터에 붙어있는 청년이 그리 많지 않다. 내 쭉- 보아오지만 젊은 사람이 화를 낼줄아나 경망스럽기를 하나 실수없이 꼬박 꼬박 어른한테 친절하고 겸손하기까지 흠이 없는 청년이야. 놓치지 말고 잘데리고 있거라. 내 생각좀 해봐야 되겠다.
[방여사] 무슨 생각을요?
[할머니] 아 내 딸 손자가 하나가 되었는데 그냥 두고만 있을텐가? 그냥 두고만 있을텐가?
(방여사 권사장 휘둥그레 한눈이 마주친다.)
[권사장] 어머님! 그 말씀 내일또 하시고 들어가 쉬십요. 그래야 저희들도 마음놓고 자지요.
[방여사] 그렇게 하세요.
[할머니] (일어나며) 그래 나 그럼 올라간다. 어서들 자거라. (계단으로 퇴장)
[방여사] (어이가 없다.) 아니 이게 무슨 날벼락이예요.
[권사장] 역사는 밤에 이루워진다지 않아요.
[방여사] 그럼 당신도 어머님 말씀에 환영하신단 말이예요
. 역사라니요?
[권사장] 역사? 국사 세계사 그런게 말이야.
(우물거리는데 대문 초인종이 울린다.)
[방여사] 지숙인가봐요.
(나가려한다.)
[권사장] 공기산가봐요.
(나가려한다.)
(두 사람 말이 동시에 나오자 방여사 권사장에게 눈을
흘기고 방여사가
나간다.)
(방여사 대문으로가서 문을 열자 공기사가 지숙을 업고
들어온다. 지숙의 몸엔 공기사의 윗저고리가 쉬워져 있다. 방여사 뒤따르며 공기사는 급히 응접실로 들어가
쏘파에 지숙이를 눕힌다.)
[권사장] (놀래서) 우리 지숙이가 어디 다쳤나?
[방여사] (흥분해서) 공기사 우리 지숙이를 이꼴로 만들어 논 놈이 누군가?
[공기사] 누구의 탓도 아닌 지숙씨의 히스테리 해소 같읍니다.
[방여사] 뭐야? 이 엉큼한 (옷자락을 잡아 흔든다.)
[권사장] (코를 실룩거리며) 어이구! 술드셨구먼.
[방여사] (놀래며) 술을 마셔요?
[권사장] (코를 씰룩거리며) 고량주하고---
[공기사] 예! 맞읍니다.
[권사장] (코를 씰룩하고 공기사에게) 그리고 맥준가?
[공기사] 마시는 순서까지 맞읍니다.
[방여사] (화가 나서) 퀴즈시간이에요 지금! (폭발된 감정을 억누르면서) 공기사! 솔직하게 말을 해요. 일곱시간동안을 어디어디가서 무슨무슨일을 했는지 숨김없이
낫낫히 말해요.
[공기사] 정확히 여덟시간 동안입니다.
[
방여사] 글쎄 여덟시간이건 아홉시간이건 집에서 출발할 때부터 들어올때까지!
[공기사] 제가 대문을 나서서 차 뒷도어를 열어 드렸더니 지숙씨께선 앞쪽으로 타셨읍니다. 제가 뒷쪽에 타셔야 안전하다고 했더니 지숙씨께선 앞 좌석이 편하다고
하시길래---
[방여사] (말을 가로지르며) 차 앞자석 뒷자석이 지금
문제야! 그래 출발을 해서?
[공기사] 지숙씨께서 어디로 가는거냐고 물으셨읍니다. 그래 명동으로 간다고 그랬읍니다. 지숙씨께서 명동 어디냐고 물으셨읍니다. 그래 쮸쮸 커피숍이라고 했더니 지숙씨께선--
[방여사] (참다못해) 공기사! 누구 혈압으로 넘어진 꼴
보려고 그래.
[권사장] 이 밤중에 혈압까지 올릴거 뭐있어. 무사히
돌아왔는데---
[방여사] 이게 무사한거예요? (공기사에게) 대충대충
본론부터 이야기해요. 그래 어디로 갔어요?
[공기사] 청평으로 갔읍니다.
[방여사] (놀라며) 아니? 청평은 왜 가?
[공기사] 글쎄요.
[방여사] 누가 갔는데 글쎄요 야?
[공기사] 그야 지숙씨와 제가 갔읍니다.
[방여사] 간 이유가 있을께 아니야?
[공기사] 청평으로 가지 않으면 지숙씨께선 차에서 뛰어 내리시겠다고 위협을 주셨읍니다.
[방여사] 그래 청평에 가서?
[공기사] 서울로 돌아왔읍니다.
[방여사] 아니? 청평에 갔다면서 어느새 서울에 왔어?
[권사장] 아- 당신이 방금 대충 대충 요점만 말하라 하지 않았어. 차 타고 다니는데 금방금방이지.
[방여사] 당신은 좀 시끄
러워요. (공기사에게) 지금 어디까지 왔다고 했지?
[공기사] 서울입니다.
[방여사] 그래서
[공기사] 지숙씨께서 배가 고프다고 하시면서 중국요리집에 가도 괜찮냐고 물으셨읍니다.
[방여사] (이상히 여기며) 중국 요리집에 가는길을 왜
자네한테 승락을 얻었지?
[권사장] 그거야 운전기사니까 물었겠지. 별걸가지고
따지네.
[방여사] 시끄러워요! (공기사에게) 그래, 중국집으로
가자고 했겠구만?
[공기사] 네 저도 배가 몹시 고팠거든요. 저보고 주문을 하라고 하시길래 짜장면이라고 했더니 지숙씨께선
팔보채와 고량주 한병을 주문했읍니다.
[방여사] 고량주를? (흥분을 누르며) 그래 두사람이 나누워 마셨겠지?
[공기사] 아닙니다.
[방여사] 그럼?
[공기사] 저한테 권하시길래 음주운전은 금물이라고
했더니 한병 다마셨읍니다.
[방여사] 누가?
[권사장] 누군 누구야! 지숙이가 술냄새 나는것보면 몰라?
[방여사] 어휴! 세상에 (머리를 감싸고 쏘파에 기댄다)
[공기사] 진정하십쇼 사모님!
[권사장] 술은 지숙이가 마셨는데 왜 당신이 취해?
[방여사] (기진맥진 되어) 계속 어서말해!
[공기사] 다음엔 고고 클럽으로 갔읍니다. 룸에 들어가서 맥주 세병에 안주 하나를 시켰읍니다.
[방여사] (벌떡 몸을 일으키며) 룸이라니?
[공기사] 조그만 칸막이로된 테이블 하나 있는 방입니다.
[방여사] (흥
분을 가라앉히고 공기사를 구슬리듯) 그래 여기서부턴
천천히 자세히 이야기 해요.
[공기사] 여기서부턴 말할수가 없읍니다.
[방여사] (놀래서) 뭐야? 이런 앙큼한!
[공기사] 지숙씨께서 비밀로 하자고 약속했읍니다.
[방여사] 비밀? 내 앞에서 비밀이 지켜질것 같애?
[지숙이] (꿈틀거리더니 술취한 소리로) 말해버려요
(방여사와 권사장 깜짝놀랜다)
[공기사] 그럼 다 말하겠읍니다. 지숙씨께서 맥주한잔을 쭉 마시고 나서 갑자기 저에게 달려들었읍니다.
[방여사] 술이 너무 취해서 제정신이 아니었구만.
[공기사] 아닙니다. 오히려 그땐 고량주 마셨던 술도
깨어있을 때였읍니다. 지숙씨께서 저를 껴안았는지 제가 지숙씨를 껴안았는지 좌우간 껴안고 있었읍니다. 그리고 지숙씨께서 저의 귀에다 속삭였읍니다.
[방여사] 뭐라고?
[공기사] 이제야 사랑이 뭔지 알것같다고 하셨읍니다.
[지숙] (눈을 뜨고 술취한 소리로) 그런말까지 다하는
사람이 어딨어?
(지숙은 다시 누워 버린다)
(권사장과 방여사 넋을 잃고 눈만 히둥그레 있다.)
(무대 어두워진다)
(벤치에 공영감과 할머니가 나란히 앉아있다.)
[할머니] 난 영감님께 자꾸 미안한 생각만듭니다. 제가
아들집에 남아 있었드래면 영감님께선 시골에 계실수
있었을께 아니예요.
[공영감] 이치야 따지고 보믄 그러는디 꼭 그런것도 아닙니다. 내 아들녀석 마음에 아직도 서울바닥에 미련이
남아있어 그렇답니다. 시골에 지놈 친구들이 서울로 학교를 가고 직장을 가고 모두 시골을 떠나는 바람에 저놈도 덩달아 서울에 올라와서 헌다는게 운전수예요.
[할머니] 운전수가 어때서요?
[공영감] 나쁠거야 없지만 서울엔 차도 많고 운전수는
더 많아요. 고것이 어디 직업이라고 서울에 붙어 있어야 할 이유가 없지 않어요. 지금은 시골도 젊은 사람들이 살기 좋습니다. 옛날 시골이지 지금은 없는게 없어요. 없다면 저기 빽빽히 들어선 시멘트 삘딩이것지요.
대신에 시골엔 넓은 벌판 흙밭이 있다는 걸 모른답니다.
[할머니] 맞읍니다. 우리같은 노인도 집에 앉아 밥이나
죽이고 있으라지만 시골은 우리 노인들이 할일도 많아요. 나는 서울에서 병이들어 병원에 하루에 한번 다니는것이 하루 일과였읍니다. 병원의사가 시골에가서 맑은 공기 마시고 한 일년 지내 보는것이 좋을거란 말에
아들이 딸네집으로 보내준거지요. 시골엔 일이 많아서
노인도 거들수 밖에 없고 일을 하고나니 밥맛도 좋아서
몸이 이렇게 건강해 졌답니다.
[공영감] 좋으시겠읍니다.
[할머니] 영감님도 곧 고향으로 돌아가시게 될텐데요.
[공영감] 어제밤에도 몇번이고 확답을 받았읍니다. 아들도 시골에 곧 갈것이라고 했지요.
[할머니] 잘 하셨읍니다.
[공영감] 할머니는 장기 둘지 알아요?
[할머니] 여자가
왠 장기예요.
[공영감] 그 최가놈 지금은 누구하고 장기를 둘까?
[할머니] 최가라니요?
[공영감] 고향에 억지 소리 잘허는 고향친구네다. 장기판에 들어붙어 앉기만 하면 쌈질부터 시작했지요.
[할머니] 쌈질하는 장긴 왜 두어요?
[공영감] 그 최가놈 고집꺾는 재미로 두곤했읍니다. 해도 고놈 억지소리는 이 공영감 고집엔 끝내 못당했어요.
[할머니] 영감님 고집 알만하겠어요.
[공영감] 할망구 고집도 어지간 허겠는데 뭐.
[할머니] 내가 언제 영감님앞에서 고집부리는걸 봤어요?
[공영감] 도둑으로 몰려 방구석에 들어가선 문고리를
잠구고 용서해준다고 사정을 해도 않던데요.
[할머니] 그거야 고약한 도둑 영감탱이 한테 엄하게 두들겨 맞을 판인데 왜 나가요.
[공영감] 도둑할망구 였드래믄 궁둥이에 불을 붙여놓을 판이었는데.
[할머니] 정말로 그때 두들기려고 했어요?
[공영감] 도둑인데 매로 버릇을 고쳐 놔야지요.
(두사람 끌끌끌 웃는다.)
[할머니] 영감님! 장기보다 더 재미있는거 할까요?
[공영감] 뭔데요?
[할머니] 이쪽으로 오세요. 나는 적적할땐 혼자서 많이
탓답니다.
(할머니는 세발 자전거 앞으로 간다.)
[공영감] 얘들 자전거 아니예요?
[할머니] 예! 한번타 보세요. 재미있어요.
[공영감] 어이구! 노인들이 망칙스럽게!
[할머니] 아무도 없는데 어때
요? 난 이걸로 하루를 보낼때도 있었읍니다.
[공영감] 아니! 괴산댁도 있을텐디 할망구가?
[할머니] 그러니까 괴산댁 없을때만 탓지요.
[공영감] 잘 타면 한번 타봐요.
[할머니] 괴산댁이 나오나 망을 보세요.
(할머니는 세발 자전거로 한바퀴 돈다.)
(공영감은 처음엔 넋이나가 보다가 마침내 웃음을 터뜨린다.)
[할머니] 어때요? 잘 타지요? 호호호. 자- 영감님 차례예요.
[공영감] 어이구! 난 탈줄 몰라요!
[할머니] 그럼 내가 뒤에서 밀어줄테니 타봐요. 어서요!
(할수없이 앞발을 쭉 펴고 타면 할머니는 뒤에서 민다.)
[할머니] 운전을 잘 하세요.
[공영감] 일종운전면허기사 아들을 둔 사람입니다.
(한바퀴를 뱅 도는데 세발자전거는 괴산댁 앞에와 멈춘다.)
(음악)
[괴산댁] (놀랜 표정으로) 뭣 하시느 거예요?
(두사람은 슬며시 일어나서 어색함을 어쩔줄 모른다.)
[괴산댁] 얼래? (드디어 웃음이 터진다.) 호호호.
[공영감] (큰소리로) 할망구 땜에 무슨 망신이여.
[할머니] 영감님도 재미 보셨지 않아요.
[공영감] 재민? 무슨 놈의 재미여! (돌아가 벤치에 앉는다.)
[괴산댁] 제가 여기에 불쑥 튀어 나올건 뭐래유- 죄송해요 할머니.
[할머니] (응접실로 가며) 저 영감 여태 재미있어 허허허 하더니 괜히 날보고 야단을 치네 그래.
[괴산댁] 지가 보면 어쩐데유. 저도 한번 타 보았는디유? 자전거가 삐거덕 허믄서 내려 앉을려고 허데유.
(이때 전화벨 소리 울린다.)
[괴산댁]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유? 사장님이세유?
예! 예! (수화기를 놓고) 할므님! 사장님께서 전화 하셨네유 어서 받아보세유.
[할머니] (전화받으며) 여보세요? 오 애비야. 그럼! 이제 나가려든 참이다. 과수원이 한참 바쁠것 같애서 마음 편치가 않해요. 그래! 내 내려가서 다시 전화하마.
차시간은 충분해요. 뭐? 공기사한테 차를 보냈다고?
아니! 왜 차를 보내? 나 자동차 타는거 싫어한줄 알면서. 알았다. 지숙이 애미? 웅 곧 좀 다녀오겠다고 하더니 곧 오겠지. 그래 그래 끈는다. (전화를 놓는다.)
[괴산댁] 할므님 오늘 가실려고유?
[할머니] 그럼 가야지요. 과수원이 바쁠텐데--- 놀아도 편치가 않읍니다.
[괴산댁] 그럼 어쩐대유! 지금 막 식사를 준비해야겠네유. (부엌으로 가려는데)
[할머니] 됐어요. 괴산댁! 밥 먹은지 한시간밖에 않되었는데 또 무슨 밥이예요. 공기사를 보냈다 하니 공기사 오는대로 갈겁니다. 가방을 갖어 와야겠구만.
[괴산댁] 가실 생각이었으면 미리 말씀을 해 주셔야지유.
[할머니] 미리 서두르면 저 영감탱이 서운해 할까봐 좀
놀아주다 가려 했어요. 내 상관말고 어서 일봐요.
(계단으로 올라간다.)
(괴산댁은 밖으로 나가 공영감에게 간다. 공영감 담배를 물고 먼산을 쳐다보고 있다.)
[괴산댁] 영감님! 제가 세발 자전거 타시는 거 봤다고
너무 속상해 하지 마세유.
[공영감] 저 할망구 오상스런짓만 허자구 해놓고 나를
골탕 먹일까요.
[괴산댁] 할므님 지금 시골에 내려가신데유. (공영감.
찔끔하다 태연한 척 한다.)
[괴산댁] 서운하시지유?
[공영감] 서운하긴. 어서 내려가라고 그려.
[괴산댁] 할므님이 그 말씀 들으시면 얼매나 서운하시것어유.
[
공영감] 서운할려믄 서운하래지!
(이때 초인종 소리 울린다.)
[괴산댁] 공기사가 왔나봐유. (뛰어 나간다.)
(괴산댁 문을 열면 지숙이 들어온다.)
[지숙이] 할머니 아직 안가셨지요? (시계를 보며 응접실로 들어 간다.)
[괴산댁] 지금 막 가신데유.
(계단에서 가방을 들고 내려오던 할머니와 지숙이 마주친다.)
[지숙이] 할머니 가시는데 배웅 나가려고 시간맞쳐 오느라 진땀뺐어요.
[할머니] 학교는 다 마치고 온 거야?
[지숙이] 그러믄요. 할머니 오늘 꼭 가셔야 해요?
[할머니] 그럼 가야지 우리 지숙이 보고 싶거든 내일이래도 올라 올거다.
[지숙이] 그래요. 할머니가 계시면 우리집에 사람사는
것 같은데--- (핸드백에서 내놓으며) 받으세요 할머니!
[할머니] 그게 뭔데?
[지숙] 할머니 선물!
[할머니] 선물? 호호호 그래 무슨 선물인데?
[지숙] 할머니 좋아하시는 쪼코려!
[할머니] 아이구! 호호호 할머니를 어린애로 보는거 아니지?
[지숙] 할머닌. 어린애들이 좋아하는건 다 좋아하시지
않어요? 사탕이나 장난감까지도요. 그래서 아빠도 장난감 회사를 시작하셨나봐요.
[할머니] 녀석두 호호호.
(밖에 초인종 소리 이번엔 공영감이 나간다. 공기사 들어온다.)
[공영감] 왠일로 들어 오기여?
[공기사] 지숙씨 할머님께서 오늘 시골로 내려가시는데 서울역까지 모셔다 드릴려고요.
[공영감] 그래 잘 모셔다 드려라.
(벤치로 돌아간다.)
[공기사] (응접실 문을 열고) 할머니 공기사 왔읍니다.
[할머니] 그래 고마워요. (가방들고 나온다.)
[괴산댁] 할므님 서운해서 어쩐데유.
[할머니] 아니 서운킨. 이젠 몸이 건강하니까 자주 왔다갔다 할 수 있어요. (밖으로 나가려다 할머니만 공영감한테 온다.)
[할머니] 영감님! 저 인제 내려갑니다. 아이! 뭐라고 말씀 좀 하세요.
[공영감] 내려 가실려면 어서 내려 가세요.
[공영감] (보지도 않고 담배 연기만 뿜는다.)
[할머니] 그럼 건강하세요. 또 놀러 오겠읍니다. (돌아선다.)
[공영감]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다.) 언제요?
[할머니] (다시 돌아보며) 녜?
[공영감] 아- 안녕히 가시라고요.
(모두들 퇴장하고 우뚝허니 서 있는데 전화벨울린다.
괴산댁이 밖에서 들어오며 응접실로 뛰어가 전화를 받는다.)
[괴산댁] 여보세유? 사모님이세유? 네! 방금 서울역으로 나가셨읍니다. 열한시 십분 치란것 같은데유! 네!
네? 할머님 모시고 모레 지숙아씨 선보는데 가셔야 한다구유? 그라믄 이제 출발 하셨으니께유. 사모님께서
택시를 타시고 서울역으로 가보시면 만나실수 있지 않겠어유! (전화기 이미 끈어져 있다.) 여보세유! 여보세유! (전화기를 놓는다.) (무대가 어두워진다.) (응접실에서 권사장이 전화를 받고 있고 방여사는 화가 난 모습으로 쏘파에 앉아있다.)
[권사장] (전화를 건다.) 그래 어제 밤 작업에서 몇개나
생산되었나? 좋아요. 뭐? 제품 케이스가 부족할것 같애? 그럼 김부장
나오는데로 인쇄를 더하라고 해요. 그래 내 곧 나갈테니. (전화 끈는다.) 허허허. 여보 역시 신문이란 무서운거야 진짜 권총과 흡사하다는 사건기사로 아이들한테
우리 제품권총이 대 힛트를 치고 있다고 됐어! 됐어!
[방여사] 돼긴 뭐가 돼요? 어떻게 하실거예요? 빨리
빨리 해결을 지웁시다.
[권사장] 빨리 해결하는건 좋은데. (말맺기가 곤란한듯)--- 핫! 나참!
[방여사] 뭐가 핫! 참이예요?
[권사장] 그래 어머님보고 올라오시라고 했다는 거야?
[방여사] 곧 도착시간이래니까요?
[권사장] 아니? 그럼 공기사를 역으로 보내야될 거 아냐?
[방여사] 공기사가 언제 우리집 기사예요? 지숙이를
아침에 역으로 보냈어요.
[권사장] 아니? 그럼 당신은 이미 공기사를 해직시켰다는 거야?
[방여사] 생각해보세요. 저번 밤에도 당신보셨지않아요. 지숙이와 사이가 점점 가까와 진데다 어머님 말씀하시는걸 당신도 들으셨지 않아요.
[권사장] 그런데 왜 노인장은 올라오시라고 해?
[방여사] 오늘 오후에 그 사법고시 합격한 쪽과 다시
약속을 했는데 지숙이 그애가 또 애를 먹일게 뻔한일
아니예요.
[권사장] 잘 아는구만.
[방여사] 잘 아니까 어머님을 올라오시라는 것 아니예요. 어머님이 계셔야 지숙이도 어쩔수 없고 오늘 어머님 앞에서 결정을 하기도 좋지요.
[권사장] 그런데 공기사까지 해고를 시켜?
[방여사] 어휴 답답하시네요. 왜 그렇게 한가지 밖에
모르세요. 어머님이 오셔서 만약 묘한 말씀이래도 하시면 당신 어떠실려고 그러세요? 세상에 우리 지숙이가
공기사와 어울리는
짝이래니 말이나 되우?
[권사장] 그렇잖아도 어머님께선 공기사를 훌륭히 보고 계신데다 해고 시켰다고 해봐요. 날벼락이 날터이니.
[방여사] 누가 해고 시켰다고 말씀드리나요. 잠시 회사일로 지방에 나갔다던지 얼버무리는 거죠.
[권사장] 저 영감님까지 회사일로 지방에 나가시나?
[방여사] 구더리 무서워서 장 못담군다더니 그런 옹졸한 분이 어떻게 회사는 운영하세요? 허기사 장난감 회사니 그렇지.
[권사장] (화가나서) 뭐야? 언젠당신이 내말 들었나?
난 모르겠어 당신이 알아서 하고 어머님한테 당하는 것은 당신이나 해요.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방여사] (곰곰히 생각한다) 괴산댁! 괴산댁!
[괴산댁] (안에서 나오며) 네 할머님이 또 오신다면서유?
[방여사] 공기사 좀 불러와요.
[괴산댁] 네! (괴산댁은 공기사 방앞에서 소리 지르고
방여사는 핸드백에서 봉투를 꺼낸다.)
[괴산댁] 공기사님! 사모님이 보시제유.
(공기사 나와서 괴산댁 뒤를 따라 응접실로 간다.)
[공기사] 부르셨읍니까 사모님!
[방여사] 오늘부터 사모님이란 말 않해도 되어요.
[공기사] 네?
[방여사] 시간이 없으니 여러말 않겠어요. 오늘로 새로운 운전기사가 들어와서 사장님 차를 운전하실거예요.
[공기사] 새로운 기사요?
[방여사] (봉투를 탁자위에 던지며) 일반직원보다 퇴직금을 더 넣었으니 즉시 다른 일자리를 일아봐요. 10분후면 새로운 기사가 그방으로 들어올 꺼예요. 공기사
아버님께도 잘 말씀드려서 빨리 방을 비우도록 해
요.
(어느새 나와 응접실 입구에서 공영감이 듣고 있다가
들어간다.)
[공영감] 사모님! 그 말씀 진정이십니까?
[방여사] 영감님한텐 죄송해요. 자식을 가진 부모 마음이라 영감님께서도 이해 하실줄 압니다. 우리 지숙이는
이미 다른 사람과 약속이된 사이나 다름이 없는데 공기사가 한집에 살면서 우리 지숙이에게 자꾸 질벅거리는
것 같애서 영감님께 도리는 아니지만 여기 있읍니다.
퇴직금!
[공영감] (빛난눈으로 꼼짝도 않고 서 있더니) 하하하.
(무릎을 꿇는다.) 고맙읍니다. 사모님! 고맙읍니다.
(방여사 어떨떨해 물러 앉는다.)
(코가 쑥 빠져 서 있는 아들의 등을 툭친다.)
[공영감] 임마! 너는 모가지야. 허허허.꾸물댈 시간이
어딧어?
(그는 봉투를 들고 고맙읍니다를 연거퍼 하며 자기 방으로 뛰어 들어간다.)
[방여사] 허 참! 해직을 시켰는데 신나는건 또 뭐야?
공기사! 나한테 뭐 할말있어요?
[공기사] 제가 여태 모시던 사장님께 인사드리고 가야되지 않겠읍니까.
[방여사] 됐어요. 몇년 데리고 있던 기산데 말씀드리기
그러시다고 나보고 말잘하라 했으니 그런줄 아세요.
[공영감] (응접실 입구에 들어와서) 이놈아! 꾸물댈 시간이 어딨어! 기차가 사람 지달리는 것 봤냐? 아 어서
나와! (하고 나간다)
[방여사] 내가 앉아 있어봐야 서로 입장 난처하고 시간만 길어지니 그만 들어가겠어요.
(방여사가 눈을 흘기며 안방으로 들어가고 허탈해진 공기사가 쇼파에 주저앉는다. 낌새가 이상했는지 괴산댁이 기다렸다는 듯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공기사한테 접근한다.)
[괴산댁
] 뭔 일로 집안 공기가 썰렁하데유? 오늘 지숙이 신랑감을 결정하기로 할머니까지 오신다는디 뭔 일이 잘못되얏시유? 이 괴산댁은 이집 식구 아니간디 공기사님까지 쉬쉬한데유?(공영감이 다시 응접실 안을 기웃거리다 괴산댁과 눈이 마주친다) 얼레 영감님 보따리를
보니께 영락없이 사변이 나긴 난 모양인디?
[공영감] 괴산댁! 지금 내 형편이 괴산댁한테 긴 인사를 못 놔누게 되얏어요. 틈나면 우리 옥천땅에 한 번 오시고, 제발 저 끈질긴 놈좀 쫓아내줘요.
[공기사] 별일 있어도 사장님은 뵙고 가겠습니다.
[공영감] 니놈 속셈을 잘 알지만 사지 멀쩡한 놈이 이집 처녀 아니면 여자가 없냐? 내려가선 당장 니놈 장가부터 보내줄거시이여.
[괴산댁] (어리둥절 하여) 얼레?
(이때 초인종 소리 요란하다. 괴산댁이 대분을 열고 할머니와 지숙이가 들어와서 공영감과 마주친다. 응접실에선 권사장과 방여사가 슬그머니 나와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할머니] 영감님! 저 또 왔습니다.!
[공영감] 거! 일이 잘되어가는 판인디...(허사가 될까
불안하다) 우리 인연이 질기게 늘어집니다요.
[할머니] 호호호 저도 예감은 했지만, 이렇게 급할 줄을 몰랐어요. 호호호(가방을 보고) 그런데 어디 나가시는 길인가요?
[공영감] (으쓱대며) 고향에 간다- 이겁니다.
[할머니] 아니? 하필 오늘같은 날 고향엘 가시다뇨?
[공영감] 고향가는데 날 받아서 갑니까? (작은 소리로)
우리 아들 녀석이 할머니(지숙을 가리키며) 손녀를 앙큼스리 자꾸 찔벅거린다고 요것!(목 자른 흉내) 당했어요! 허허허...
[할머니] 오면서 내 손녀한테 다 들었습니다. 영감님
아드님이 먼저 찔벅거린게 아니라 우리 손녀가 진
즉부터 맘에 두고 넥타이끈을 졸려맸데요. 호호호...
(듣고 있던 방여사는 이미 기절 상태이다. 지숙은 수줍은 표정인데 권사장, 괴산댁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구석에 서있던 공기사는 얼떨떨한 긴장 속에 열이 올라
눈만 휘둥그린다.)
[괴산댁] (갑자기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그러니께!
이 괴산댁을 완전히 무시해 버렸구만유!
[공영감] (당황하여) 아. 아니! 그. 그러니께 시방, 무.뭔...
[할머니] 왜? 저와 사돈되는거 싫으세요?
[공영감] 사돈?
[할머니] 요즘 세상에 어디 그렇습니까? 우리야 사돈되기 싫건말건 결정안 당사자들이 하는거지. 우리야 별
수 있어요? 호호호(공기사에게) 공기사! 우리 지숙이가
그렇게 좋던가? (모두들 긴장 속에 공기사에게 시선을
집중시키는데 공기사 당황해 있다가)
[공기사] (큰소리로) 네! 지숙씨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 순간 무대의 모든 움직임이 멈춰 서 버리며 암전된다)
막이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