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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가기]/수필·감상문·기타
2007-03-21 11:11:23
춘천 마라톤을 다녀와서
2005. 10. 26. / 후라30 / 오경태
10월 22일 토요일 오후 2시, 집 앞에서 영수를 만나 차에 올랐다. 춘천으로...
여태까지의 연습부족, 마셔댄 술, 이제 어쩔 수도 없다.
대구를 지나 중앙 고속도로로 들어 서면서 주변의 색깔들은 붉게 아름답게 변해가는데, 시간은 일분 일초가 내일 오전 11시로 다가간다. 불안감, 두려움 애써 감추어 보려 하지만 마음 속에서는 쉽지가 않게 점점 커져 간다.
오후 6시 춘천 도착. 종합운동장 가까운 모텔을 찾으니 1박에 9만원 내라 한다. 춘천마라톤. 오늘이 춘천 모텔 업계의 대목인 모양이다. 옆 모텔 8만원에 방 잡아 놓고 밖으로 나와 밥 먹으러 경기 4일전부터는 탄수화물 열심히 섭취하라는 데 식당에 탄수화물로 된 식단이 잘 있나? 둘이서 추어탕 먹고, 고민... "술 한잔 할래"라는 말은 감히 꺼낼 수가 없다. 무수한 음주산행을 해왔지만, 음주마라톤은 상상 밖의 두려운 곳에 자리하고 있다.
무료한 저녁시간을 때우기 위해 택시 타고 주변 극장에 데려다 달라 하고 기사아저씨와 이런저런 얘기 나눈다. 춘천은 ‘멀티플렉스’ 같은 극장은 없어도, 산업시설 등이 없어 공기 좋은 호반 도시임을 은근히 자랑하네. 오늘은 좀 늦은 밤이면 시내 뿐 아니라 근교에서도 방 구하기가 힘들다고 일찌기 방 잘 구했다고...
피카디리극장, 아카데미극장, 이름은 그럴 듯한데 30년 전 우리 학교 다닐 때 수준의 극장이다. 초록색 영화표도 그렇고, 대기실, 좌석표도 없고… 가격은 6천원 똑 같네… 영화를 선택할 여지도 없이 그날 상영하는 "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사람들의 만남과 관계를 보여주는 코미디, 시간 때우기 적당한 영화…
영화 끝나고 나오니 11시다. 내일 거사를 위해 빨리 가서 자야지 하고 걸음을 서둔다. 토요일 밤, 휴가 나온 군바리 애인 손잡고 가는 모습, 거리에 껴안고 걷는 연인들 모습, 보기 좋다. 지금 약간 취하는 기분 좋지? 너거들 오늘 모텔 앞에 갔다, 실망 황당할 모습 그려 보니 괜히 고소하다.
10월 23일, 날은 밝아 오고 출발 3시간 전에 편한 밥 먹고 소화시키라는 지침대로, 7시 반에 나가서 어제 먹은 추어탕 또 먹고 모텔 방으로 돌아와 TV보며 뒹굴뒹굴... 불안감에 초조함까지 더해 시간 흘러감을 바라본다.
10시 출전이다. 체크아웃하고 운동장으로... 출전 선수가 2만을 넘으니 그 가족까지 6만이 참석한 운동장. 가로수 붉고 노란 게 더 분위기를 살리고 시끌벅적한 사람소리, 음악소리, ‘세계 8위의 마라톤 대회’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축제 분위기이다.
전혀 위축되지 않은 모습으로 보무도 당당하게 운동장 안으로... 오늘 우리의 비밀 작전은?? 1) 만약 택시 탈 것을 대비해 비상주머니에, 양말 속에 만원 한 장 넣어라.
2) 힘들어 걸을 때는 모자 벗고 - 영수는 흰 머리가 많으니까 - 어깨를 꾸부정하게 해서 걸어라. ‘저 노인 그래도 대단하네’라는 동정심 유발 작전이다.....
11시 출발 신호가 떨어지고, 진짜 선수들 우선 출발.
기록이 빠른 순으로 출발하다 보니, 우리 같은 처녀 출전자는 30분이 지나서도 출발 못했다. 달리기에 온도 적당, 컨디션도 괜찮다. 단지 연습 부족이 과연 42키로를 달릴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뿐. 2만 이라는 인간이 동시에 뛰니 초반에 오버페이스고 뭐고 없다. 그냥 파도에 휩쓸리듯이 인파에 묻혀 흘러간다.
그렇게 휩쓸려 10키로, 1시간3분. 아픈 곳도 힘든 것도 없다. 컨디션 양호. 호반이 나타나면서 가을 풍광이 아름답다. 우측으로 푸른 호수가, 좌측으로 아름답게 물든 단풍을 사이로 하여 달린다. 지금 이자리 이렇게 달릴 수 있음을 행복으로 느끼며...
20키로, 2시간 6분. 하프코스 같으면 달리기 끝내고 성취감 느끼며 쉬는 타임인데… 온 만큼 더 가야 한다. 돌아가라 해도 끔찍한 거리이다. 25키로를 지나면서 내 다리는 불평하기 시작한다. 왜 안 하던 짓을 하느냐 울부짖으며, 뒤꿈치, 발목에의 통증으로 반항한다. 점점 거리구간표시가 길어진다. 그래도 ‘아직은’으로... 자위하며 30키로에 이른다. 3시간15분.
점점 무거워 지는 다리, 완주에의 의지는 점점 가벼워 지고, 조금 걷고 다시 뛰자는 충동이 꿀떡 같다. 아... 마의 35키로 지점가면 걸을 테니 조금만 참아주라... 우와 힘들어... 35키로 지점, 물 마시고 한200미터 걸었을까? 아 그래도 걷지는 말자. 아주 천천히 뛰자 하고 천천히 뛴다.... 다리를 끌고 가는 듯한 느낌... 억지로, 억지로, 38키로 가서는 진짜 걷자 하고 다리를 끌며 뛴다.
38키로 지점, 잠깐 걷는다. 걷는 사이 뛰는 사람들 나를 앞서가고, 4시간40분 페이스메이커가 사람들 몰고 또 앞서간다. 위기, 이러다간 5시간도 위험... 뛰자, 내 다리야! 내 팔자야! 40키로, 시내로 들어오니 힘은 없지만 안 뛸 수도 없다. 편하게 뛰는 방법, 뒷모습 예쁜 여자 꽁무니에 붙어 그 여자 발에 맞추어 기계처럼 뛴다. 땅만, 앞 여자 다리만 쳐다보며 뛰다 보니 운동장이다.
운동장 들어서면 힘이 나야 하는데 힘도 없다. 트랙이 왜 그리도 긴지, 터벅터벅 뛴다. 골인지점 통과, 42.195키로, 4시간43분. 끝이 났다. 영수는 4시간34분으로 완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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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오십을 앞에 두고 새로운 역사의 한 기록을 썼다. 기록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무수히 되뇌었지만, 기분 좋고, 내 스스로가 대단하고, 자랑스럽다. 특히 2년 전 나의 모습을 생각해내고는 내가 정말 대견스럽다.
2년 전 나. 키 175, 무게 81키로, 허리 34. 이 나이에 적당한 중년 표준사이즈?
담배 하루 한 갑 정도, 술 마실 땐 모르겠고...
일주일에 반은 술, 그것도 필름이 오락가락 할 때까지...
내 주변의 친구들은 술을 왜 다들 잘 마실까? 접대할 일도 많고 - 와이프의 의문사항 중 하나?
중년의 위기감을 느끼고 건강을 위한 변신을 여러 번 시도했다. 수영도 해보고, 골프연습도 해보고, 새벽 단학선원에도 가보고, 집 앞 운동장에 뛰어도 봤다. 집 앞 운동장 10바퀴 돌고 나서 며칠 동안 계단 내려올 때마다의 통증… 포기. 큰맘 먹고 산에도 가보고, 동네 뒷산도 서너 번 쉬어야 겨우 갔다. 그래도 그 중 등산에 재미를 붙이자 마음 먹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같은 위기의식을 느낀 친구, 영수가 매주 토요일 마다 조깅하는 모임을 하자 하는 제안에, 같이 술 먹던 친구들 그러자 하여 "창조(창원조깅회)"가 술집에서 창조되었다.영수는 최거훈 친구가 마라톤 하는 것에 쇼크를 받고 달리기에 나보다 먼저 입문하여 고성마라톤 5키로도 뛰고, 그 후기도 쓰고 나름대로 의지를 갖고 시작해 왔다.
토욜 오후면 모여 운동하기 시작했다. 영수, 재수, 금석, 광희, 나...
나는 1바퀴 뛰고, 1바퀴 걷고.... 10바퀴 채우는 목표로 시작....
힘든 운동 마치고 나서 피우는 담배 1대, 피워 본 놈들은 다 알지?
힘든 등산 후 정상에서 피우는 담배 맛, 그것도 나는 알지.
그 때 그 시절 내가 마라톤 대회 나갈 꺼라곤 상상하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운동 - 달리기, 회사 다닐 때 사람들 등산가자 하면 하는 말 – 내려올 거 뭐 하러 힘들게 올라가나? 산은 밑에서 보라고 있는 거다.
처음 3개월까지는 몸무게 등 몸에 어떤 변화도 안보이고, 힘들기만 하고, 나는 역시 달리기 체질은 아니야 라고 단정도 해보고…. 에이, 그래도 친구와 같이 하는 거니 한다 하며 토요일 운동장으로 갔다. 사실은 운동보다도, 운동 후 모여 마시는 술에 이끌려 간 것 같다.
그러나 인체는 묘한 것.
재미 없어도 하는 둥 마는 둥 계속 하다 보니 재미가 조금씩 붙기 시작한다. 뛰고 난 후 근육통이 줄어들고, 운동 후 샤워가 즐겁고… 3개월이 지나면서 운동장 15바퀴를 가볍게 돌고 어떨 땐 20바퀴도 돌고… ‘아! 나도 뛸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기면서 밤이면 집 앞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뛰기 시작했다. 요는, 매일 조금씩이라도 계속한다는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그게 3개월이 지나면서 재미를 느끼기 시작하면, 새로운 역사는 이미 쓴 거나 다름없다 생각한다.
이제는 동네 뒷산도 힘들지마는 재미가 있다. 이전에 억지로 오르던 느낌과는 다른 그런 느낌. 가끔 멀리 나서는 이름있는 큰 산, 산 위에서 느끼는 새로운 감흥이 "역시 명산은 명산이구나!" 하는 새로운 느낌이 ‘다음에는 어느 명산을 찾을까?’ 하는 설레임이 일주일을 기다리게 만들기 시작하면서, 담배가 내가 달리는 데에, 산을 오르는 데에 큰 장애라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직도 뛰고 난 후, 산을 오르고 정상에서 맛있게 한대를 피워 대지만, 집 앞의 초등학교에서 밤에 뛸 때면 컴컴한 스탠드에서 불량학생 같은 얘들이 피는 담배 냄새. 가쁜 숨으로 뛰는 나에게는 멀리서도 아주 가깝게, 역겹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산을 오를 때도 힘겹게 오르는 중에는 옆에서 피는 담배냄새가 역겹게 느껴지면서 자연스럽게 담배는 줄이고, 끓고... 담배 끊는다고 바로 체력이 향상되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서, 정말 잘 끊었다는 자신감, 성취감이 달리기와 산행을 더욱 즐겁게 만들어 주었다.
운동에 즐거움과 자신감이 몸에 붙으면서 더 잘하고 싶은 사람의 욕심... 아직도 10키로 달리기도 벅차고, 큰 산을 오르기도 힘든 중에 그런 상태로 6개월이 흘렀다. 6개월이 지나면서 체중이 1키로, 2키로 줄기 시작한다. 6개월 후, 약 3개월 동안 체중이 10키로 줄었다. 그때 체중 71키로, 허리 32인치도 헐겁다. 이 사이즈가 2년 후인 지금도 변함 없다.
그리고 서울공대 교수가 쓴 "생활참선"이란 책을 읽고, 귀한 한 줄 발견 "복식호흡 하는 방법". 참선이나 명상할 때의 뇌파변화 등을 과학적으로 쉽게 얘기한 책인데 읽을 만하니 친구들에게도 한 번 읽어 보길 권한다. 산을 오를 때나, 달리다 힘들 때, 우리 몸은 많은 산소를 요구하는데 그때 호흡하는 법.
복식호흡은 알다시피 숨을 마실 때 배가 나오고, 내쉴 때 배를 밀어 넣는 호흡법인데, 배를 내어 숨을 많이 들여 마셔서 산소를 공급하기란 숨도 고르기 힘든 상황에서 쉽지가 않다. 그러나 내쉴 때 배를 등에 붙이는 기분으로 내쉬면, 자동으로 배가 원위치로 복원 하면서 깊은 숨이 쉬어진다.
물론 복식호흡을 해보지 않은 초보자는 이해가 잘 안될 수 도 있겠지만 자꾸 해보면 된다. 등산 시 오르막 힘든 구간을 오를 때 발걸음 한걸음에 맞춰 호흡 하다 보니 훨씬 힘이 덜 든다. 달릴 때는 두 걸음에 한 호흡, 이 호흡을 하고부터 산에 오르는 게 훨씬 재밌고, 뛰기도 훨씬 쉬어졌다. 그리고 중요한 변화는 뱃살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리고 나서 마라톤대회 10키로를 몇 번 뛰고, 욕심 내어 하프도 뛰어보고, 덕유산 종주 시 ‘공비’라는 얘기도 들으며 오늘까지 왔다. 운동시작 2년에 마라톤의 완결편 풀코스 42키로를 완주한 것이다.
두서 없는 경험담이지만 나에겐 아주 소중한 2년간의 변화이었고, 이런 변화를 갖게 해준 창조 회장 임영수 외 창조 친구들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아직도 할 줄 모르는 것, 술을 절제하며 마시는 묘안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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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마라톤 완주기
2005. 10. 26. / 후라30 / 임영수
마라톤이 아니라 울트라 마라톤, 철인 3종까지 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부끄럽지만 개인적인 기념으로 삼고자 올립니다.
춘천 마라톤대회 완주기
마라톤을 시작한지 벌써 3년째이다. 처음 친구의 마라톤 완주기를 보고 경쟁심의 발로로 바로 5 킬로미터 코스의 대회 (창원 통일 마라톤이던가)에 참석한 이후 벌써 3년째가 된 것이다. 그 동안 연습도 꾸준히 하지 못하였지만 절제되지 않는 음주 때문에 제대로 마라톤을 한다고 할 정도도 되지 못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도 올해 초 마라톤 완주의 목표를 세운 것은 새해 초에 연례 행사로 목표를 하나씩 손꼽아 보는 정도의 의미이기도 했다
그런데 춘천의 풀코스 마라톤에 등록한 것은 무슨 만용이었을까? 충분한 각오와 훈련의 의지도 없이 얼떨결에 등록한 것이 지난 8월 이었던가? 등록 후 또 다시 반쯤은 잊어버린 채 음주와 일상적인 일에 시간을 보내고 있다가, 9월에 들어서야 비로소 조바심이 일기 시작하였다. 경솔하게도 참가신청 자체가 무슨 의미인 양 주위 사람들에게 동네방네 소문까지 내었으니, 이제는 소문이 나를 끌고 가는 것처럼 절주하겠다고 결심한 9월부터 금주하겠다고 결심한 10 월중순까지 아무런 행동도 훈련도 뒷받침하지 않은 채 혼자 마음속에서 이래서는 안 되는데 하는 조바심만 커져가던 터였다.
급기야 대회 사흘 전 피할 수 없는 음주약속이 잡히고서는 거의 자포 자기의 마음이 되어 결국 내가 감히 마라톤 완주를 입에 올린 것이 잘못이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다 그 음주약속이 일행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약간의 음주로 그치게 되면서 어떻든 참가하는 수 밖에 없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토요일 아침, 일어나 우송되어온 유니폼에 번호표를 달았다. 완주 기록도 없는 우리는 하얀 번호표 뒤에는 비상시 연락처와 혈액형 기재란까지 있다. 아마도 훈련부족인 사람이 무리하다 사고가 날 경우를 대비한 것일 게다 생각하니 바로 내가 해당자인양 겁이 덜컥 났다. 과연 해 낼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할 수 없는 일. 토요일 일과를 마치고 친구와 함께 춘천으로 향하였다. 옛날에는 마라톤 완주는 우리와는 별개의 인종들이나 하는 줄 알았는데, 오죽하면 마라톤의 기원이 된 그리이스의 병사는 승전소식을 전하고는 쓰러져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친구도 자신감이 없기는 마찬가지인 듯 함께 가는 길은 이런 저런 이야기로 즐겁다가도 마라톤 이야기만 나오면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스스로 염려하는 말로 끝을 맺었다.
출발장소인 춘천 운동장 근처 모텔에 자리를 잡고 식사를 마치니 할 일이 없다. 술도 마시지 못하고 시간 보내기 용으로 근처의 극장을 찾았다. 아무 프로나 골라 들어가니 ‘생애 가장 빛나는 일주일’ 이든가? 5명의 소시민들의 일상적 애환을 담은 이야기 세련되지는 못하였으나 그런대로 볼 만 하였다. 영화를 보고 들어와 완주 경험이 있는 친구가 하루 전에 충분히 물을 먹어 두어야 한다고 가르쳐 준 대로 열심히 물을 마셨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잠을 청하니 그래도 장시간의 운전이 피곤하였는지 쉽사리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벌써 바깥은 사람들로 번잡하다. 우리도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운동장으로 향하였다.
전국규모의 마라톤 대회답게 운동장에는 수많은 플래카드와 인파들로 가득하다. 하늘에는 헬리콥터가 날고 장내에는 시끌벅적한 음악으로 분위기를 띄운다. 우리도 일단 사진이나 몇 장 찍고 대열 중에 섰다. 완주하지 못하면 써 먹지도 못할 사진이지만.
앞 주자들이 출발하는 것을 보면서 운동화의 끈을 다시 매었다. 이제 드디어 풀코스에 도전이라 생각하니 가슴에 묘한 긴장감과 설레임이 일어났다. 새로운 경험을 할 때면 언제든지 생기는 기분일 것이다.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 친구와 둘이서 손등을 포개고 파이팅을 외친 후 각기 따로 출발하였다.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출발하다 보니 출발하는데 만도 약 20분이 넘어 걸렸다. 순번에 따라 스타트 라인을 밟고 드디어 출발하였다. 함께 뛰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도 각양각색이다. 조그만 체구에 근육으로 뭉친 몸이 귀뚜라미의 뒷다리처럼 탄력 있게 보이는 다리가 부러운 모습, 키가 크고 체구가 커서 한걸음 디딜 때마다 보기에도 살이 덜렁거리는 것이 과연 완주할 수 있을까 걱정되는 모습, 예쁘장한 몸매에 날씬한 모습이 어디에 근육이 있어 풀코스를 완주할 수 있을까 생각되는 젊은 아줌마, 백발이 성성한 모습에도 근육을 자랑하는 노익장, 살도 처지고 허리도 구부정하여 노인임에 틀림없음에도 쉬엄쉬엄 지치지 않는 할머니, 달리는 모습이 껑충껑충 메뚜기 뛰는 듯이 하여 풀코스 완주까지 하기에는 엄청난 추가 에너지를 소비해야만 할 것 같은 청년, 등을 보면서 과연 나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생각하였다.
시가지를 돌아 춘천 의암호를 따라 도는 코스는 달리기에는 최적의 코스였다. 날씨도 화창하고 수시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 주어 땀이 나는 것을 느끼지 못하였다. 호수 주변을 돌면서 5킬로미터 지점 쯤 될까 반 터널의 도로를 지나치면서 사람들이 야- 하고 소리 지르니 지르는 소리가 메아리 쳐 기분을 더욱 고조시켜 준다. 하지만 기분에 이끌려 오버페이스를 범할까 스스로 경계하였다. 앞 사람의 뒷발만 본 채 초반에는 최대한 천천히 뛰자고 스스로 다짐하였다.
10 킬로미터 지점의 시간을 보니 정확히 59분을 가리키고 있다. 평상시의 속도보다는 느리지만 나중을 생각하면 적절한 시간이다. 사람들이 많다 보니 별 사람이 많다. 어떤 이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온갖 잡담과 함께 주위사람 간섭을 다하는 사람, 스스로 구령을 붙여 가며 뛰는 사람 등으로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나 같은 초보는 모든 게 신경 쓰여서 달리기만 생각하는 것도 바쁜데 능력만 되면 저런 사람들을 앞질러 본 때를 보여주고 싶지만 나의 능력에 넘치는 일이기에 타박타박 호흡조절과 함께 발에 충격이 덜 가는 주법을 지키고자 신경 쓰며 달린다.
20 킬로미터 까지는 많이 뛰어본 경험이 있기에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뛰면서 스스로 발 끝에서부터 발바닥, 발목, 장딴지, 허벅지, 허리 등의 근육의 움직임을 점검하니 아직까지는 큰 문제는 없다. 언제까지 견딜 지가 문제일 뿐, 20 킬로지점을 통과한 시간은 정확히 2시간, 나의 페이스 대로다 이제부터 30 킬로미터 까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 생각해 본다.
혹시나 나의 근육과 심장이 문제를 일으킬까 두려워 중간 중간의 급수대에서 빠짐없이 물을 마셨다. 분에 맞지 않는 운동을 하는 것이 자칫 잘못하면 커다란 문제를 일으킬지도 모르는 것이다. 옆으로 앰뷸런스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상당히 불안하게 한다. 최소한 저 앰뷸런스에 실려가는 신세는 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20 킬로미터 까지는 아무런 문제 없던 각 부위 근육이 30 킬로미터가 가까워 지자 서서히 피곤해 진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30 킬로미터 지점의 통과시간은 3시간 8분, 전반보다는 약간 늦어진 시간이다. 누군가 마라톤은 30 킬로미터를 대충 뛰고 나머지를 본격적으로 뛰는 것이라 하던데 지금까지는 하나의 연습이었고 이제 비로소 마라톤 다운 달리기가 시작된다고 생각하여 본다. 이제 각 관절에는 묵직한 통증이 오고 손 발에는 조금씩 감각이 둔해지는 것 같다. 심장도 약간은 평상시와 다른 느낌이 있는 듯하여 문득 겁이 난다. 조금 더 빨리 뛸 수는 있을 듯한데 혹시나 심장에 무리가 될까 스스로 두려운 마음에 35 킬로미터 지점인가 급수대에서 물을 마시며 조금만 걷기로 하였다. 뛰기 힘들어 걷는 것은 불명예이지만 스스로 페이스 조절을 위하여 걷는 것이라 위안 삼으며 약 5분 정도를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이쯤에선 모두들 워낙 느린 속도라 뛰는 거나 빠른 걸음으로 걷는 거나 별 차이가 없다. 단지 기분의 차이일 뿐 약 500 미터를 걷고 다시 뛰기 시작하니 다시 발은 천근만근이다. 이제 결승점이 멀지 않을 텐데 어떻든 완주는 할 수 있겠다 생각하니 마음은 그래도 가볍다.
출발에서 20 킬로미터 지점까지의 달리기와, 20킬로미터에서 30 킬로미터, 30 킬로미터에서 35킬로미터까지의 달리기의 고통은 거의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35 킬로미터에서 40 킬로미터까지는 그 이전 거리까지의 달리기와는 또 다른 차원의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 35 킬로미터 이후에는 손발은 뻣뻣하고 온 몸에는 힘이 빠져 한 걸음 한 걸음이 의지 없이는 진행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는 것이다.
이제 40 킬로미터의 지점 시가지에 들어섰다. 도로변에는 사람들로 줄을 이어 있다. 무언가 큰일을 해 낸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 사람이 이상한 것이 이때쯤에는 다리 아픈 것도 온 몸에 힘이 없는 것도 잊어버리는 것 같다. 개선장군인양 운동장에 들어서서 트랙을 한 바퀴 돈다. 이제 해냈구나 하는 안도감이 온 몸을 감싼다. 기다리는 이 아무도 없지만 피니시 라인을 밟으니 4시간 34분의 기록, 온 몸에 약간의 전율이 인다.
이제 또 하나의 고개를 넘은 것이다 내가 마라톤 풀코스를 뛰다니 스스로 대견스럽다. 어떤 이는 결승점에서 스스로 기쁨에 겨워 눈물이 난다든데 생각하니 약간 울컥하는 감정이 생기려는 것을 스스로 자제한다. 아픈 다리를 주무르며 휴대폰을 찾아 염려하여 준 이들에게 소식을 전하였다.
‘마라톤 완주보고: 4시간 34분, 성원에 감사 드립니다.’
무언가를 시작하여 하나의 끝을 보는 경험은 사람을 참으로 상쾌하게 만든다. 나는 춘천 마라톤에서 이런 경험을 또 한 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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