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0. 8. 7. 00:55
별제공 이산복(別提公 李山福)
[생원진사시] 선조(宣祖) 18년(1585) 을유(乙酉) 식년시(式年試) 진사(進士) 2등(二等) 20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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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랑(宣敎郞) 행(行) 수성금화사별제(修城禁火司別提) 이공(李公)의 묘지.
백사 이항복 찬(白沙 李恒福 撰)
중씨(仲氏)의 휘(諱)는 산복(山福)이고 자는 중고(仲高)인데, 가정 을사년(1545년 인종 1)에 태어나서 만력 정해년(1587년 선조 21)에 작고하였다. 글공부를 하여 진사(進士)가 되었고, 벼슬은 별제(別提)에 그쳤다. 1남 1녀는 난리를 만나서 죽은 곳을 알 수 없게 되었고, 나머지 1녀는 봉사(奉事) 이천준(李天駿)에게 시집갔다.
측실(側失)에서 낳은 한 아들은 주남(宙男)이다. 중씨(中氏)가 작고한지 17년 뒤인 계묘년에 그 막내 모(某)가 비석을 세워서 묘(墓)를 표하고 인하여 그 유허(幽墟)에 몇 마디 말을 기록하여 묻어서 후인들로 하여금 그곳을 알게 하는 바이다.
자헌대부(資憲大夫) 의정부 우참찬(議政府右參贊) 휘(諱) 몽양(夢亮)은 우리 선군(先君)인데, 청렴하고 검소하고 관후하고 화락한 인품으로 중종(中宗)ㆍ명종(明宗)의 조정에서 이름이 있었고, 전주최씨(全州崔氏)인 결성현감(結城縣監) 모(륜 : 崙)의 딸로 우리 선비(先妣)인데, 정숙하고 유순하고 인자하기로 종당(宗黨) 사이에 추앙되었다.
성균관 진사(成均館進士) 휘 예신(禮臣)는 우리 선조(先祖)이고, 안동판관(安東判官) 휘 성무(成茂)는 우리 증조이다.
우리 이씨는 경주(慶州)에서 나왔는데, 신라의 처음에 휘 알평(謁平)이란 분이 있어 혁거세를 보좌하여 익대(翊戴)한 공훈이 있었고, 신라ㆍ고려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대대로 훌륭한 사람이 있었다.
중씨는 막 나서부터 뛰어나게 총명하여 7세에 서사(書史)를 읽었고 9세에는 글 지을 줄을 알아서, 입을 열고 말을 내놓기만 하면 광채가 사람을 경동시켰다.
그때에 안군 여경(安君汝敬)은 재물이 풍부함을 자부하였는데, 딸 하나를 대단히 사랑하여 배우자를 선택하는 데에 거드름을 떨며 태학의 제생(諸生) 가운데서 배우자를 고르다가, 공의 글을 보고는 대단히 기특하게 여기어 마침내 위금(委禽)을 하였다.
그러자 사대부들이 서로 하례하면서 이르기를, “공명(功名)을 조석 사이에 턱 밑의 수염 뽑듯이 쉽게 취할 것이다.”고 하였다.
그런데 공은 약관 시절에 비장(脾臟)을 상하여 다시 학문에 힘쓰지 못한 관계로, 누차 응시하였으나 끝내 급제하지 못하고, 늦게야 공거(公擧)에 의하여 벼슬길에 진출하였다.
공은 성품이 너그럽고 진솔하여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고, 그 효우(孝友)는 타고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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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주01]위금(委禽) : 혼례의 납채(納采)에 기러기를 주는 것을 이른 말로, 즉 청혼을 의미한다.
[주02]공명(功名)을---것이다: 매우 쉽게 과거 급제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한유(韓愈)의 기최립지시(寄崔立之詩)에 “달을 연해서 과제를
취하는 것이 마치 턱 밑의 수염 뽑기와 같도다[連月取科第 若摘頷底髭].” 한데서 온 말이다.
[자료문헌]백사집 제2권 >묘지(墓誌)
●수성금화사(修城禁火司)
조선시대 정사품아문(正四品衙門)으로 궁성과 도성의 수축(修築) 및 궁궐‧관청과 동리(洞里)의 각 민가(民家)의 화재에 대한 소방(消防) 등에 관한 일을 관장한다. 1426년(세종 8) 금화도감(禁火都監)과 성문도감(城門都監)을 합하여 수성금화도감이라 하였고, 1460년(세조 6) 관사(官司)의 기구 축소 때 이를 폐지하여, 수성(修城)은 공조(工曹)로, 금화(禁火)는 한성부로 이관하였다가 1481년(성종 12) 이전의 수성금화도감을 수성금화사(修城禁火司)로 고쳐 설치하였다.
수성금화사 관원으로는 도제조(都提調: 從一品) 1원, 제조(提調 : 正二品) 2원, 제검(提檢: 正四品) 4원, 별좌(別坐: 正‧從五品) 6원, 별제(別提: 正‧從六品) 3원으로 구성 되어 있다.
제검 4원 중 3인은 사복시(司僕寺)의 정, 군기시(軍器寺)의 정, 선공감(繕工監)의 정이 겸임하며, 별좌 4인은 의금부경력(義禁府經歷), 병조(兵曹)‧형조(刑曹)‧공조정랑(工曹正郞) 각 1인이 겸임한다. 별제는 1인은 한성부판관(漢城府判官)이 겸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