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9. 9. 25. 13:30
PRESSian 정치 칼럼
이승만과 이명박…'농지개혁'과 '종부세 대못 뽑기'
기자의 눈]'건국의 아버지'의 사유재산 침해사
2008-09-25 오후 4:41:09 / 윤태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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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15를 전후해 격화됐던 건국절 논란, 전면적 교과서 개편 움직임 등을 관통하는 기조는 '대한민국의 건국세력의 재평가'다.
해방 직후 좌익과의 경쟁 과정에서 우익 세력이 미국과 손을 잡고 남한 단독정부를 '결단'했고 '6.25 남침'에서 누란의 위기에 처한 국가를 구해냈다는 게 골자다. 소위 '10년 좌파 정권' 동안 <월간조선>을 필두로 박정희를 재평가하고 우남 이승만을 재조명해 온 노력이 비로소 빛을 발한 셈이다.
그런데 건국세력의 적자를 자임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가 과연 이승만 정부 수준을 뛰어넘고 있는지 갸우뚱해진다.
1공화국과 이승만 정부의 문제점은 따로 열거할 필요가 없겠지만 이들의 성과도 없지 않다.
특히 '경자유전'이라는 대원칙 하에 실시된 토지개혁은 근대국가 대한민국 건립의 물적 기반으로 작용했다.
6.25 전쟁이 겹쳐지면서 전근대 국가의 지주계급을 혁파하는 효과를 가져오며 숙명과 같았던 소작농의 비율을 급격히 줄여버린 것.
이에 비해 종부세 개편안에 대해 "잘못된 세금 체계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는 이 대통령의 발언이나 "고소득층에 대못을 박는 것은 괜찮냐. 부당하고 과격하게 단 한 명의 국민에게도 손해를 입혀선 안 된다는 것이 헌법정신"이라는 강만수 장관의 궤변에는 '건국우파'들이 갖췄던 최소한의 양심과 전략적 사고도 찾아보기 어렵다.
한나라당 일각의 종부세 완화 반대 움직임에 대해서마저 "포퓰리즘에 굴복하면 안 된다"고 쌍심지를 켜는 일부 언론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공산당 출신 조봉암을 앞세워 지주를 혁파한 이승만
소작농이 불쌍해서든, 체제유지를 위한 전략적 사고였든 어쨌든 이승만은 농지개혁을 단행했다 | 뉴라이트 등이 극찬해 마지않는 1948년 제헌 헌법은 실제로 농지개혁,근로자와 기업가의 이익균점권, 친일청산 등 신생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헌법으로 손색없는 진보적 요소들을 담고 있었다. 물론 "농지개혁이야말로 공산당을 막는 최량(最良)의 길"이라는 헌법 기초위원 유진오의 말마따나 북한과의 체제경쟁이 가장 큰 동력이었고, 동경 맥아더 사령부가 이미 1945년 12월 '농민해방에 관한 지령'을 내려놓은 영향이 컸다. 하지만 1949년 6월 "헌법에 의거하여 농지를 농민에게 적절히 분배함으로써 농가경제의 자립과 농업생산력의 증진으로 인한 농민생활의 향상 내지 국민경제의 균형과 발전을 기함을 목적"으로 농지개혁법이 제정됐고, 1950년 4월 지가증권이 발행되며 농지개혁이 실시됐다.
1950년 4월 지주들에게 지가증권을 발행하며 실제 농지개혁이 실시됐다. 한국전쟁 동안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지가증권은 휴지조각이 돼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이승만 정권은 농지개혁을 전면 후퇴시키려는 시도를 감행치 않았다.
농지개혁을 전후한 시기 지주들의 농지투매, 한국전쟁으로 인한 인플레 등으로 인해 소작농들은 큰 부담 없이 자작농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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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전체 농지의 92.4%가 자작지가 됐다. 이 과정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자신의 지지층인 친일지주 중심의 한민당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았고 오히려 조선공산당 출신 조봉암을 농림부 장관으로 임명해 농지개혁의 선두에 세우는 노련한 정치력을 발휘했다.
정적으로 떠오른 조봉암에게 1959년 간첩 누명을 씌워 사형시켰을지언정, 이승만은 '빨갱이가 앞장 선 정책' 등의 가당찮은 이유로 농지개혁을 손보지는 않았다.
"집 크면 세금 많이 내야 하냐"는 이명박 정권
'세상 바뀐 걸 모르냐'며 지난 10년을 지워버리려는 현 집권세력과 비교해면 이승만이 확실히 커보인다. '억울한 부자를 구제하라'는 이명박 정부의 인식은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선 토지 문제만은 해결해야 한다'는 원조 우파 이승만의 철학과는 격이 달라 보인다. 하긴 박정희를 모델로 집권한 현 정부는 '근대화의 아버지 박정희'가 만든 그린벨트마저 거침없이 허물고 있는 판 아닌가.
"집이 크다고 해서 과격한 세금을 내선 안 된다는 것이 대한민국 헌법정신"이라는 현 정부가 이승만 정부의 농지개혁은 어떻게 평가할 지 알 수 없다.
"농지개혁은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에 의해 지주ㆍ소작 제도가 아니라 농민이 그 땅을 소유한다는 원칙 하에 이루어졌다"(1공화국 당시 부흥부 장관, 재무부 장관 등을 역임한 송인상 한국능률협회 명예회장의 회고) 같은 이야기는 이들에게는 '부끄러운 역사'가 아닐런지.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내년 1학기에 바꾼다는 중고교 역사 교과서에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이 조선공산당 중앙위원 출신이자 국가보안법으로 사형당한 조봉암과 손을 잡고 사유재산권을 침해해가며 농지개혁을 단행했다'는 내용을 포함시키면 어떨까? 모르긴 몰라도 '대한민국 건국세력'에 대한 학생들의 자긍심이 한 뼘은 높아지지 않을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