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8. 12. 25. 04:09
▲만주군 ‘예비소위’ 시절
▲5.16 군사정변 당시 군사혁명위원회 위원장 장도영(좌측)과 부위원장 박정희(우측)
▲5.16혁명 성공 후 구성된 국가재건최고회의 인사들. 앞줄 좌로부터 5번째가 박정희 의장이다.
4.19혁명 이후 장면 내각은 민주당의 분당으로 정국의 안정된 기반을 구축하지 못하고, 사회불안이 계속 심화되었다.
또 각종 데모사태가 계속되어 사회불안이 고조되자 이에 박정희 소장을 중심으로 한 일부 군인들이 구국의 명분을 내세워, 1961년 5월 16일 3,500여명의 군대를 동원하여 서울을 점령하고, 비상계엄을 선포하여 권력을 장악한 후, 민주당 정권을 무너뜨리고 군정을 실시하였다.
군정기간 동안 최고 권력기구는 국가재건최고회의 였으며, 혁명정부는 1961년 6월 10일 법률 제620호로 농어촌 고리채 정리, 1962년 1월 13일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발표, 그해 6월 9일에는 화폐계혁 등을 과감하게 실시하였다.
▲혁명정부 시절, 해병대사령부를 방문한 당시 박정희 의장(우측).
▲1962년 3.1절 기념식을 끝내고 김두한, 박정희 의장 기념촬영
5·16 군사정변이후 1962년 3월 1일 독립유공자들에게 건국훈장 수여식이 있었는데 김두한은 부친 김좌진을 대신해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받았다.
김좌진(1889~1930) 장군은 사후 1962년 3월 1일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중장(대한민국장으로 개정)을 추서 받게 되는데 위의 사진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훈장을 대리 수령하고 기념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때 박정희 대통령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고, 1962년 당시에의 대통령은 윤보선이고 박정희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었다.
박대통령은 1963년 12월 17일 제5대 대통령직에 취임하게 된다.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박정희
▲아들 박지만과 함께
출처>박사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