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 들어가 코로 나온다는 우스겟 소리로 일컬어지는 코로나바이러스19 때문에
며칠동안 두문불출이라는 말처럼 집에 갇혀있기가 답답해서 어제 양주시 덕계동에
소재한 도락산에 올랐다가 하산길에 지장사와 양주시 청소년수련원을 들러서 담아온
사진들을 게시(揭示)합니다.
도락산(道樂山)과 지장사(地藏寺)를 다녀와서!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방성리와 덕계동,
은현면 도하리·용암리, 광적면 석우리·가납리 등지에 걸쳐 있는 산.
명칭 유래
도락산(道樂山)은 두락산(頭落山), 돌압산(突壓山), 돌압산(突押山), 돌앞산,
노락산으로도 불리었다. 이처럼 여러 이름으로 불린 배경에는 몇 가지 전설이
전해 온다. 옛날 모든 산들이 서울 남산을 향해 가는데 불곡산이 가로막고 길을
내주지 않았다. 그래서 화가 나서 덕계리 동쪽 방향으로 돌아앉아서 이로부터
돌악산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돌악산이라는 이름은 도락산
정상에 있는 바위와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즉, 돌이 많은 악산
이란 뜻으로 돌악산으로 부르다가 도락산으로 변하는 과정에서 돌압산, 도락산,
두락산, 노락산과 같은 이름이 나오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 다른 전설도 있다. 고려 건국 후 지관(地官)을 시켜 송도(松都) 근처
500리 이내의 산천을 돌아보게 했는데 도락산만 송도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
고 예를 드리는 모양이라고 해서 고려 시대에는 충신산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이 한양에서 건국되고 다시 한양 근처 500리 이내의 모든 산을
답사하도록 하였는데 오로지 도락산만 한양을 배반하고 있다 해서 조정에서
산의 머리[山頭]를 치게 했고 그로 인해 산의 머리가 떨어져 두락산이 되었
다고 한다. 이런 전설이 전혀 근거가 없지는 않다. 고려 건국을 지지하고 조선
의 건국을 반대한 세력들이 바로 이 도락산 주변 지역에 많이 살았음을 반영
하는 이야기일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부터 약 200여 년 전에 두락산이라는 이름이 상서롭지 못하다 하여
두락산과 음이 비슷한 도락산으로 개명하여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도락산
이란 이름은 18세기 중반의 기록에서부터 등장하며, 『해동지도(海東地圖)』
[1760]에는 돌압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팔도군현지도(八道郡縣地圖)』
[1767~1776], 『동국여도(東國輿圖)』[1801~1822]에도 돌압산(突壓山)
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1861], 『대동지지
(大東地志)』[1864]에는 돌압산(突押山)으로 한 글자만 다르게 적혀 있다.
그러다가 20세기 초부터 다시 도락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1924년에 간행
된 『신편조선지지(新編朝鮮地誌)』부터 도락산으로 나와 있다. 이런 전통에
따라 현재 국토지리정보원[구 국립지리원]이 발행하는 5만분의 1
지형도에도 도락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자연 환경
북쪽 양주시 은현면 지역으로부터 시계 방향으로 회정동·덕계동·산북동,
백석읍, 광적면이 에워싸고 있어 실제로 은현면과 백석읍은 물론 양주시의
진산(鎭山)이라 할 수 있다. 소요산과 감악산 줄기가 남쪽으로 뻗어 내리다
가 양주시 일대의 분지에서 하나의 낙맥(落脈)을 이뤄 서울 북쪽의 명당을
만들어 낸 곳이 양주시 백석읍과 은현면이다. 이 지역은 북으로 신천과 한탄
강을 두르고 있으며 연천군의 산악 지대와 서울특별시를
잇는 중간 거점이기도 하다.
현황
도락산의 높이는 439.8m이며, 산세가 대단히 크다. 불곡산과 함께 양주시
와 수도권 등산객들에게 꽤나 알려져 있다. 도락산의 북쪽 지역에서 광범위
하게 채석 작업이 이루어져 산세의 많은 부분이 훼손되었으나 여전히 웅장
하고 수목이 울창하며 빼어나다. 도락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불곡산이 건너다
보이며 현재 정상에 송전탑이 있다.
도락산의 서북쪽인 양주시 광적면 가납리 새낭골과 흔덕골, 백석읍 방성5리
에서 산 정상으로 오를 수 있다. 양주시 회천2동에서는 저수지 옆으로 관음사
(觀音寺)를 끼고 올라간다. 포장도로를 따라가다가 중간에 도락산으로 오르
거나 여기서 조금 더 가서 지장사(地藏寺)를 기점으로 산을 오르면 단거리로
정상에 다다를 수 있다. 주로 도락산 북편에 대장암(大藏岩)·선경암(仙敬岩)
·사모암(紗帽岩)·깃대봉[旗臺峰] 등과 같은 아름다운 봉우리가 있다.
참고문헌
『양주군의 역사와 문화유적』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양주군, 1998)
『양주 땅이름의 역사』(양주군·양주문화원, 2001)
출처:(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만물이 소생할 봄은 오는데 산정(山頂)과 가까운 곳에 봉분이 외로워 보입니다!!
▼육군의 방공호시설
지장사(地藏寺)
경기도 양주시 덕계동 도락산에 위치한 지장사
(반야보탑)는 회주 月仁 大雲 큰스님께서 40여년 전에,
지금의 도량을 보시고 연꽃이 피어날 자리임을
직감하시어 인연을 맺으셨습니다.
그 후부터 불사에 전념하시어
지금의 반야보탑을 인도의 전통양식인 산치대탑을
모본으로 한 돔 형식으로 완공하셨습니다,
법의 실다운 이치에 계합한 최상의 지혜이며,
보배스러운 탑이라 해서 반야보탑이라 하였으며,
국내에서 큰 대불이라 할 수 있는 아미타 부처님을 조성하였고
포교, 수도, 기도도량으로서의 모습을 아름답게 가꾸고 있습니다.
지장사는 누구나 편안하게 오실 수 있고,
가족을 만난 듯한 따뜻함이 있으며,
믿음과 실천을 행할 수 있는 안식처가 될 수
있도록 수행정진에 매진 중입니다.
도락산의 풍광과 승가의 조화 속에,
수행과 기도도량으로 그 연륜을 더해가며,
부처님의 가르침인 만고불변의 진리를 탐구하고,
불교문화 창달에 앞장서는 큰 가람으로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
지장사의 동아리 거사림회, 합창단, 사경반, 우담바라회,
육법공양팀, 선혜불기반, 지장방아회 등의
많은 신도님들께 항상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출처:http://cafe.daum.net/ssg1888
보현보살
보현보살은 문수보살과 함께 일체보살의 으뜸이 되어서
언제나 여래께서 중생을 제도한 일을 돕는 보살이다. 또 중생들의
목숨을 길게하는 덕행을 가졌으므로 보현 연명보살 이라고도 한다
권선문
법화경에 어린아이가 장난으로부처님 형상을 모래로 만들어도
그 공덕으로 미래에 꼭 성불한다고 하였는데 하물며 이처럼(삼존대불)
부처님과 보살님께 옷을 입햐드리는 개금불사에 동참하시면 그 공덕이야
무어라 말 할수 있겠습니까? 뜻 있는 불자님께서는 수히 동참하여 주시기
간원드립니다.
2018년7월8일 양주시 덕계동 지장사 주지 성공, 회주 月仁 大雲
문수보살
문수보살은 석가여래의 협시 보살로 지혜와 덕상을 상징하는
보살이다. 석가여래의 중상교화를 돕기 위하여 일시적으로 몸을
바꾸어 보살의 주위에 머물고 계신다. (영험 행적은 우리나라
오대산 상원사 문수도량의 영험을 비롯 각지에 많은 영험을 보이셨다.
김용대:작사 김용대:작곡
김용만:노래
2020-03-06 작성자 청해명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