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때와 남을 때를 아는 사람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50여 년을 적십자와 인연을 맺으며 보다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봉사해온 서영훈 전 총재. ꡒ총재자리에서 물러났지만 마음은 항상 적십자를 간직하고 있다.ꡓ 는 서 전 총재는 오히려 지금이 더욱 바쁘다. 적십자를 떠나서도 다시금 수많은 사업회와 봉사단체를 통해 사랑과 봉사의 정신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지 발행인이기도 한 그를 만나 식지 않는 봉사의 열정을 들어봤다.
- 한적에서 퇴임한 이후 2개월 정도가 흘렀는데 현재는 어떤 활동을 주로 하고 있는가.
총재에서 퇴임한 이후 한달 정도 휴식의 시간을 가졌다. 그동안 피로가 조금 쌓였던 것 같다. 그래서 미국에 사는 딸도 보러 갔다오고 여러모로 재충전의 시간을 보냈다.
지금은 우선 신사회공동선운동연합의 사업으로 바쁘게 보내고 있다. 공동선운동이 올해로 10주년이 된다. 공동선은 생명존중 및 인간성회복 운동이고 선진문화 창조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도 많은 강좌와 강연을 했지만 현재 시민문화강좌, 아카데미 강좌 등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또한 내달부터는 월간잡지 형식으로 지금까지의 강좌 등을 엮어 낼 생각이다.
그리고 자원봉사단체협의회 상임대표로 자원봉사를 위한 여러 가지 일도 능력이 허락하는 한 돕고 있다.
그밖에 재외동포교육재단의 이사장으로서 작년에 이어 금년에도 재외동포 교육을 위한 학술회의를 개최하고 교육을 지원하는 사업을 준비위원회를 구성해서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 여러 기념사업회 회장직도 수행하고 있는데 주로 어떤 사업들인가.
손정도 목사 기념사업회 회장을 맡고 있다. 작년에는 북한의 역사연구소와 합동으로 평양에서 학술회의를 했고 금년에는 8~9월쯤 남한에서 학술대회를 개최하려고 준비중이다.
또한 도산 안창호 기념사업회도 맡고 있는데 작년에는 도산공원에 동상을 세웠다. 올해도 지난 10일 추모제를 개최했고 앞으로도 도산의 유훈과 유지를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학술회의와 자료 수집․발간에 힘쓸 생각이다. 그리고 세계 선린회 이사장으로 중국의 조선족 동포와 베트남의 한국과 인연이 있는 청년들, 그리고 가능하면 북한의 동포들을 도울 수 있는 여러 사업들을 구상하고 있다.
- 50여 년을 대한적십자와 함께 했는데 어떤 일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가.
정말 많은 일들이 떠오른다. 대한적십자에 몸담고 있던 모든 시간이 소중하다. 우선 제가 한국 청소년 적십자 운동을 처음 시작한 사람들 중에 하나였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기억에 남는다.
1953년에 적십자사에 청소년부장으로 입사해서 부산에서 청소년 적십자운동을 시작했던 일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1972년 남북 적십자 회담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대표로 활동했던 일, 사무총장으로 일할 당시 혈액사업을 기존의 매혈제도에서 헌혈제도로 전환하는 운동을 시작했던 일, 적십자사에서 추진하여 스승의 날을 제정했던 일, 1974년부터 환경보호 운동을 개척했던 일 등 이 모든 기억들이 나에겐 소중한 추억이자 보람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1980년 5․18 광주 사태 당시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던 광주에 의약품을 싣고 들어가 혈액과 의약품들을 나누어 주고 돌아온 뒤에도 산소통을 보내줬던 일들이 기억에 남는다.
- 대외적인 활동과 성과 면에서 큰 평가를 받고 있는데.
아마도 2005년 한적 창립 100주년을 맞아 국제적십자사연맹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연맹총회를 서울에서 유치할 수 있도록 애쓴 것을 두고 그런 평가를 해 주는 것 같다. 물론 혼자서 이룬 일은 절대 아니지만 총재로써 무한한 보람과 자부심을 느꼈다.
- 후임 이윤구 총재에 대한 평가를 한다면.
이윤구 총재는 인도주의 사업을 수 십년간 해온 경험이 많은 분이다. 제가 적십자 운동을 할 때 이 총재는 유니세프 운동을 많이 했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에서 함께 활동했고 알고 지낸지 30년 정도 된다. 한적에 맞는 인물이라 보고 앞으로 많은 활동과 성과를 이룰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국제적 활동을 많이 하신 분이라 한적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는 데에도 많은 역할을 해주리라 믿는다.
- 국가 원로 중 한 분으로서 현 탄핵 정국과 향후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분명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다. 노 대통령이 화합과 개혁을 모두 잘 이루어내 임기를 마칠 때까지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더욱 발전시키고 남북문제나 경제문제를 잘 풀어서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데 노력해주기를 바랬다.
그런데 여․야 관계가 원만치 못하고 서로 간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해 결국 탄핵이라는 상황까지 온 것 같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이제 헌재에서 법에 근거하여 공정하게 판단해주기 바라는 마음이다. 또한 국민들도 얼마남지 않은 선거에서 국가 장래를 위해 현명한 선택을 해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탄핵으로 인해 여야의 갈등이 더욱 증폭되고 국민들간에도 찬반 양론으로 나뉘어져 지나치게 적대관계로 발전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의사표시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당연히 존중되어야 하고 자유로워야 한다. 그렇지만 법과 질서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의사표시가 존중될 것이라고 믿는다.
과격한 좌우 대립이나 진보와 보수의 적대적 관계가 아닌 어디까지나 민주질서 속에서 선거를 통해 국민의 의사가 전달되어야 한다고 본다. 우리 국민들은 슬기롭고 강하기 때문에 지금의 어려운 상황도 극복하리라 믿는다.
- 한적 총재로 대북지원에 많은 성과를 거두었는데 인도적 지원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은 어떠한지 궁금하다.
인도적 대북지원은 총재로 일하기 전부터 주장해왔던 것이다. 아프리카의 빈국이나 이라크 등 국가들도 돕는데 같은 민족, 동포를 돕지 않는다면 그 얼마나 모순되는 일인가. 전 세계가 우리를 비웃을 것이다.
기본적인 식량, 의류, 약품을 지금까지 지원해 왔는데 이제는 기술을 가르치고 실질적인 북한의 회복을 위한 지원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민족화해는 서로 이해하고 돕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이다. 현재 남북은 분명히 두 개의 국가이다. 당분간은 서로를 부인하지 말고 상호 인정과 존중 하에서 점진적으로 통일을 논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한 과정에서 인도적 지원은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믿는다. 앞으로도 능력이 닿는 한 대북지원에 많은 노력을 기울일 생각이다.
- 통일정보신문의 발행인이기도 한데 본지를 비롯해 남북관계나 통일문제를 다루는 언론들이 추구해야 할 방향에 대해 조언을 부탁한다.
무엇보다 북한과 통일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북한의 사정이 실제로 어떠하고 남북관계는 어떠하며 남북한 통일에 관련되는 국제환경이 어떻게 조성되고 있는가를 가감없이 전달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남북이 서로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데 기여해야 할 것이다.
또한 될 수 있으면 서로 도울 수 있는 것은 돕고 화해하고 과거 적대적 관계에 있던 감정이 더 나빠지지 않고 민족통일의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하는데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통일을 너무 급하게 서두르면 남북간의 충돌이 발생할 수 있고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남북간이 서로 차근차근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가까워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바로 이런 면에서 통일정보신문을 비롯한 언론들이 기여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우선 현재 맡고 있는 사업회와 단체들이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나이가 들어도 계속 국가와 사회에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을 감사히 여기고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를 위한 보편적인 공동선을 추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남은 생을 보내려 한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인간의 존엄성과 그 가치를 회복하고 인간적 사명을 자각하는 운동, 생명 질서와 자연을 보존하는 운동, 지역간․문화간․종교간 갈등을 극복하고 상생과 복지의 생명공동체와 공동체 윤리를 세워가는 도덕성 부흥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경제 제일주의와 권위주의적 통치의 유산인 구조적 부조리․낙후된 정치 문화를 극복하기 위해서 새로운 공동선을 추구하는 선진 문화 창조를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력하나마 그 길에 모든 사람들과 함께 할 것이다. 아직 할 일이 너무나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