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공동체를 꿈꾸는 청년 김지환
소년의 아버지는 폐병이었다. 전라도 작은 마을에서 이발소를 하셨던, 무뚝뚝하고 늘 밭은기침을 내뱉던 연약한 아버지였다. 반면에 소년의 어머니는 여장부였다. 커다란 꿈을 가슴에 안고 사는데, 사는 게 녹록치 않아서였을까 화병이 마음과 머리를 병들게 했다. 잠시 병원에 있기도 했다. 팍팍하고 어려운 가정환경을 지켜보면서 소년은 일찍이 자신의 삶을 자신이 책임지기로 했다. 이때까지도 강한 장남 콤플렉스가 자신의 마음에 새겨지고 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
피 묻은 발
대학에 와서는 블루칼라나 화이트칼라가 아닌 세상을 다스리는 1%, 블랙칼라가 되기로 결심했다. 굳이 정치외교학과를 골랐다. 외교가 자신의 관심분야였다. 그러나 인생사 뜻대로 되지 않는 법. 가난하고 힘겨웠던 어린 시절 따위는 멀리 던져 버리고 훌훌 자신의 야망을 좇아 날아갈 생각만 하던 찰나, 한국기독학생회(IVF)라는 선교단체를 만났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를 만났다. 마음속 깊이 아로새겨진 상처들을 다 덮어놓고 강하고 공격적으로 살던 뜀박질에 하나님 아버지의 뜨거운 사랑이 더 강하고 공격적인 태클로 들어왔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 철퍼덕 나자빠진 소년의 눈에 무능력하고 무뚝뚝하게만 보였던 아버지의 발이 보였다.
오랜 폐병으로 피를 토하는 기침을 하던 아버지는 아들이 걱정할까 봐 기침이 나올라치면 얼른 이발소 뒤편의 화장실로 가서 피를 토했다. 그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수습하고 나와 다시 일을 하셨다. 아버지의 피 묻은 발, 십자가의 길을 걸으시는 예수님의 피 묻은 발, 역사적인 도킹이 이루어졌다. 소년은 넘어진 그 자리에서 그냥 엎드려 울었다. 자식을 먹여 살리겠다고 피를 토하는 아버지의 피 묻은 발과 나의 영혼을 구원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피 묻은 발에서 더 이상 피할 수 없었다. 소년은 피 묻은 발의 족적을 따라 걷기로 결심했다. 소년은 맨발의 청년으로 다시 태어났다. 29살, 사회적 기업가를 꿈꾸는 고독한 청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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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영리 전북 청년 공동체 '별밭' 활동 당시 청년 김지환(우측에서 두 번째). 커뮤니티 중심, 지리 기반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하고 있다. (사진 제공 김지환) |
지역으로의 부르심
청년 지환은 그리스도의 피 묻은 족적을 반이라도 따라가기를 바랐지만, 현실은 코앞에 와 있었다. 국립대의 영어 교육 프로그램을 코칭하는 회사에서 일했지만 일 년 반 만에 문을 닫았다. 다시 재취업 준비를 하고 KT 계열 벤처기업에 합격했다. 출근까지 30일의 시간이 있었는데, 이 시간이 바로 청년의 꿈이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 부화를 기다리는 준비의 시간이 되었다. 그의 질긴 고민인 지역 청년에 관한 생각이 숙성되기 시작했다. 청년의 주변 사람들은 모두 지역을 떠나려고 했다. 아무도 지역을 지키거나 일구려 하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돈과 직장이었다. 일자리도, 돈을 벌 수도 없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로 큰 이유는 문화적인 욕구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일자리가 없어서 돈을 벌기 위해 청년들이 서울로 도시로 떠나 버리는데 당연히 청년들의 문화가 형성될 수 없었다. 악순환은 이어졌다.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문화가 풍요로워지면 이곳에 남아 있겠느냐고 물으니, 그래도 서울로 가겠다고 했다. 서울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네트워크가 있기 때문이란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이 지역의 청년들은 떠났다. 청년 지환은 지역 청년들이 이탈하는 이유에 공감했지만, ‘나 혼자 살겠다’고 이곳을 떠날 수는 없었다.
“일단은 내가 지역에 남아서 창직(스스로 일자리를 창출함)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역의 자원이 파악이 안 되니까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때 마침 비영리 지식 컨퍼런스 ‘TED(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X 전주’에서 함께 조직 지원자(organizer)로 일했던 친구가 ‘전북대 문화의 거리 조성’ 같은 프로젝트를 제안했어요.”
자발적인 합격 포기 후 ‘전북 발전을 위한 청년 공동체 별밭’의 활동을 시작했다. 서울시에서 했던 ‘희망 온돌 프로젝트’처럼 커뮤니티 맵핑 프로그램이다.
“일단 전북에서 해 보자 그랬어요. 전북대 안의 문화적 자원을 찾아보는 일도 하고, 장애인 보행 환경 개선을 위한 지도도 만들고. 그런데 점차 흐지부지됐어요. 뭔가 좀 미비했죠.”
찾는 이는 찾을 것이고, 구하는 이는 얻을 것이라는 진리대로, 방법을 모색하던 청년의 눈에 기회의 여신이 달려오고 있었다. 청년 실업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단체 ‘한국사회적기업 진흥원’에서 기금을 출연해서 매년 각 지방마다 위탁 사업을 주는데, 전북 경제통상진흥원에서 ‘청년 등 사회적 기업가 육성 사업’ 공고가 난 것이다. 일단은 친구가 함께했던 맵핑 프로그램으로 초안을 잡고 서류를 내서 합격했다. 그리고 사업 계획서를 수정하고 보완한 후에 발표해서 14팀 중 3등으로 합격했고, 최종 선정되어 2800만 원의 기금을 받았다.
“정부에서 돈을 받고 일을 하니까, 정부가 중간 중간에 계속 점검을 하고요, 사업계획서를 계속 수정 보완해서 내야 해요. 그리고 수익성을 너무 강조해서 스트레스도 받고요. 결국 중간에 보고서를 냈는데, 우리 안이 수익성이 없고, 지속성도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어요. 지금은 계속 수정 보완하면서 커뮤니티 맵핑 프로그램은 하나의 도구로만 사용하고 지역 온라인 플랫폼을 만들려고요. 지역 순환 경제도 만들고, 온라인 허브도 구축하려고 구체화하는 중이에요. 이렇게 거창하게 말해도 아직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어요. 3월에 공고가 떴고, 지금이 8월이니까 6개월도 안 됐죠. 다만 엄마가 그런 말을 하셨어요. 청년들이 지역사회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삐뚤어지니까 제가 이런 기반을 만드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저도 청년뿐만 아니라 파지 줍는 할아버지도 마음이 쓰이고…. 그래서 우리가 다 같이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먹기도 할 수 있는 그런 대안적인 일자리를 만들어 보자는 마음으로 여러 생각을 모으는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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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VF 전국학사수련회에서 지역공동체운동에 관해 강연하고 있는 청년 김지환 (사진 제공 김지환) |
한 발짝도 안 나가는 청춘의 맨발이라도
외롭지 않을까. 선한 마음과 좋은 아이디어지만 지역에서 같이 할 동역자들이 없다. 대부분 고학년이 되면 취업 준비에 바쁘다. 설령 지역에 비전이 있더라도 방향이 다르다. 정치 쪽이거나 선진 농업기술을 도입해서 농업 유통을 하고 싶거나 그렇다. 결국 구심력이냐 원심력이냐의 차이다. 지역을 기반으로 도시처럼 되느냐, 아니면 도시의 에너지를 지방에 끌어들이느냐의 차이. 작은 차이처럼 보이고, 어떻게 보면 이거나 저거나 다 같아 보일 수 있지만, 낼모레 마흔을 앞둔 인터뷰어인 내가 깨달은 건 이런 작은 차이가 생각보다 크다는 것이다.
청년 지환을 알게 되고, 만나서 인터뷰를 한 곳은 IVF전국학사수련회였다. 주강사였던 김형국 목사(나들목교회)는 되도 않는데 고생만 죽어라 하면서 어쨌든 물을 거스르겠다고 죽을 둥 살 둥 하는 이랑, 그냥 시류를 좇아 편하게 흘러가는 이 중에 하나님 보시기에 누가 더 마음이 가겠냐고 물었다. 그렇다. 이거나 저거나 다 지역 잘 되게 하면 좋은 거 아니겠냐고 하겠지만, 자본주의의 흐름을 좇아 지역에서 어떻게든 돈을 뽑아내고 자신이 출세할 궁리만 하는 사람이랑, 자본주의의 흐름을 거슬러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든 그 땅에서 이루어 보겠다고 아등바등하는 사람 중에 어떤 이가 하나님 보시기에 마음이 더 가겠느냐는 말이다. 이런 작은 방향의 차이가 사실 크다는 것. 그래서 나는 10살 어린 남동생을 따뜻이 격려해 주고 싶었다. 죽어라 움직여도 한 발짝도 앞으로 안 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청춘의 맨발이라도 네가 원하는 대로 그리스도의 피 묻은 족적을 따르고 있는 거라고. 이런 좋은 아이디어를 같이 논의할 동역자도 없이 혼자 맨땅에 헤딩하는 중이라 해도, 사회적 기업이라는 명분 아래 있는데도 실제로는 다들 정치적이고 돈 되는 것만 찾으면서 너를 비효율적이라 말해도, 지역민과 취약 계층과 함께하겠다고, 이 길이 맞다면 사회적 기업이든 지원이든 다 끊어져도 가겠다고 결심하고 한 발 한 발 걷는 한 그리스도의 길을 가고 있는 거라고. 토닥토닥. 나는 너를 응원한다.
“인간적으로 꿈꾸고 있는 것들이 이뤄지지 않아도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이루시겠지만 언제든 No! 하시면 그 자리에서 Stop!할 생각입니다. 제 진짜 꿈은 ‘오늘도 비록 어둠을 헤맬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발자국 반걸음이라도 따라가는 것, 그리고 그 빛의 무리에 속해 사는 것입니다.”
청년 지환은 스마트폰 어플인 ‘푸딩 얼굴 인식’을 사용하면 싸이와 24% 일치한다고 자기를 소개했다. 요즘 잘 나가는 싸이의 노래 ‘강남 스타일’이 떠올라 ‘전라도 스타일’이라고 맞받아쳤더니 안 그래도 자기 모토가 ‘당신을 통해 배우는 청년’이고 부제가 ‘옷을 시크하게 입어도 숨길 수 없는 시골 청년’이란다. 진정한 전라도 스타일 오빠를 소개하게 되어 영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