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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고인이 되신 아버지 항열의 5형제의 자제들이 매년 11월 첫주 토요일에 돌아가면서
문중 소유의 산에 있는 낙골당 제단에 시제를 올리는데 금년엔 내가 담당이여서 목포에 소재한
제사음식전문점에 주문을 하여 배달까지 해주기로 계약을 하고 당일 참석할 객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인척들에게 참석해달라는 연락을 해두고는 나는 안사람과 함께 시제 당일을 4일 앞서가면서
관광을 하기위해 11월3일 수요일 오전 아홉시에 집에서 출발하여 전라북도 순창군에 소재한 용궐산
행을하고서 현지 펜션에서 1박을 하고 4일 아침 출발하여 채여산 정상과 채계산 출렁다리를 왕복
하고선 고창군에 소재한 선운사와 전라남도 장성군에 소재한 백양사로 이동하여 해가 져서 어두워
질 때까지 아름다운 단풍과 가람(伽藍)을 관광하고서 산채비빔밥과 뜨거운 된장국으로 저녁식사를
하고선 여관에서 자고는 5일 아침엔 백양사 아래에서 단풍촬영을 하고선 그곳을 이동하여 영암군
월출산 아레 기찬랜드에서 진행중인 국화(菊花)전시회에 가서 규모가 큰 전시회 관람을 하고선 오후
세시경 전시장안에 있는 식당에서 상을 가득 체운 진수성찬으로 늦은 점심식사를 마치고 내일 제사
참석을 하기위해 완도군 신지면 명사십리 사촌 형님댁에서 자고는 시제 당일인 6일 아홉시 30분경에
시제음식 배달차를 만나 산소 낙골당에 가서 예상보다 양이 충분하고 정성들여 해온 시제음식을 수령하고
810,000원을 건네주고 제사를 진행하여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간에 제사일정을 완료하고 귀가길을 오다가
강진군 마량항에 들러 미항의 면면들을 사진촬영을 하고선 휴게소에서 졸음을 해소하면서 먼 길을 달려
집에 돌아오니 초저녁 일곱시 50분이었습니다...
정안알밤휴게소(正安알밤休憩所)
[0Jeongan Albam Service area]
정안알밤휴게소(正安알밤休憩所, Jeongan Albam Service area)는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장원리, 전평리에 위치한 논산천안고속도로의 휴게소다. 2011년 10월 31일에 고속버스 호남권 노선의 환승 휴게소로 지정되었다. 2016년 8월 8일부터 정안휴게소에서 정안알밤휴게소로 변경
용궐산(龍闕山)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어치리에 있는 산.
높이 645m이다. 금남정맥의 영취산에서 갈라져 나온 산줄기가 장수군 팔공산(1,151m)에서 원통산(603m)까지 벋은 뒤 북쪽의 갈담천에 막혀 방향을 남쪽으로 돌려 섬진강 기슭 어치리에 솟은 산이다. 과거 용골산(龍骨山)으로 불렸으나, 2009년 용이 거처하는 산이라는 의미의 ‘용궐산(龍闕山)’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3면이 섬진강에 에워싸여 있고 기암괴석이 많아 경관이 빼어나다. 산행은 어치리 장구목에 있는 요강바위에서 시작하여 장구목재와 삼형제바위를 지나 정상에 오른 뒤 남릉을 지나 북서쪽 도로를 타고 내룡리로 내려선다. 산행 시간은 4시간 정도 걸린다.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산 정상에는 바둑판이 새겨진 너럭바위가 있다. 주민들이 신선바둑판이라 부르는 이 바위에는, 옛날 이 산에서 수도하던 스님이 바둑을 두자는 내용의 서신을 호랑이 입에 물려 무량산에 있는 스님에게 보낸 뒤 이 바위에서 만나 바둑을 두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정상에 오르면 동남쪽으로 지리산의 제2봉인 반야봉(1,751m)이 아스라히 보이고 북쪽으로는 원통산과 섬진강의 지류인 갈담천 너머 백련산(759m)이 보인다. 남쪽으로는 무량산(586m)과 섬진강 상류가 내려다보이며, 남서쪽으로는 멀리 강천산(584m)과 내장산국립공원의 연봉들이 희미하게 보인다. 주변 마을에 전하는 바로는, 내룡마을에서 장구목재 못 미처 오른쪽에 옹씨들이 살던 집터가 3백여 호 있었는데 섬진강의 '두무쏘'에서 잉어를 잡아먹고 모두 죽었다고 한다.
(두산백과)
채계산(釵笄山)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괴정리와 남원시 대강면 입암리·옥택리 경계에 있는 산.
명칭 유래
채계산처럼 많은 전설과 수식어가 붙은 산도 드물다. 예컨대 비녀를 꽂은 여인을 닮아서 채계산(釵笄山), 수만 권의 책을 쌓아 놓은 형상이어서 책여산(冊如山), 적성강을 품고 있어 적성산(赤城山), 화산 옹바위 전설을 간직하고 있어서 화산(華山) 등으로 불린다. 하지만 고시된 지명은 화산이다. 채계산은 적성강변 임동의 매미 터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마치 비녀를 꽂은 여인이 누워서 달을 보며 창을 읊는 모습인 월하미인(月下美人)의 형상을 하였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그곳에서는 동편제와 서편제를 아우르는 소리꾼들이 많이 나왔으며 적성강에 배를 띄우고 풍류를 즐겼다. 순창의 3대 명산으로 일컫는 책여산은 섬진강 변에 마치 수만 권의 책을 켜켜이 쌓아 놓은 형상을 닮아 붙은 이름이다. 지도상의 화산[송대봉: 341m]은 순창 책여산, 북쪽의 361봉은 남원 책여산으로 구분했다.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나 「지형도 1:25,000」에 나와 있는 화산은 산의 들머리인 산기슭에 백발노인이 우뚝 서 있는 30m의 화산 옹바위 전설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유등면 체육공원에서 보면 서우유천(犀牛遊川), 즉 물소가 강가에서 한가로이 노는 형상을 하고 있다. 화산(花山)은 이 산의 기묘한 바위들을 꽃으로 비유해 붙인 이름이다.
자연환경
채계산은 순창군의 동북쪽에 솟아 있는 산이다. 백두 대간 장수 영취산에서 분기된 금남 호남 정맥의 산줄기가 북서쪽으로 뻗어가다 팔공산을 지나면 곧바로 천황산 산줄기를 나누어 놓는다. 이 지맥이 남으로 내달리며 비행기재[지방도 718호선], 묘복산, 만행산 천황봉, 갈치[지방도 721호선], 밤재[국도 17호선]를 지나서 다시 두 갈래로 나누어진다. 좌측으로 교룡산과 노적봉을 지나서 풍악산, 응봉을 거쳐 문덕봉으로 가기 전에 남쪽으로 뻗어나간 곳이 채계산이다. 적성면은 순창의 동쪽에 위치해 있으며, 북쪽으로 동계면과 임실군 덕치면, 동쪽으로 동계면과 남원시 대강면, 남쪽으로 유등면, 서쪽으로는 인계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순창군과 남원시의 경계에 있는 풍악산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비홍산에서 서쪽으로 뻗어온 산줄기가 섬진강 상류인 적성강에 가로막혀 멈춘 곳에 채계산이 자리하고 있다. 예로부터 채계산은 회문산, 강천산과 함께 순창의 3대 명산으로 불려왔다. 채계산의 북동쪽으로 교룡산, 동쪽으로 문덕봉·삿갓봉·고리봉 능선, 북쪽으로는 용궐산[지명 변경 전 명칭: 용골산]·무량산 그리고 적성강과 적성 들녘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아슬아슬한 칼바위와 송림이 한데 어우러진 암릉이 매우 아름답다. 용아 장성(龍牙長城)의 축소판을 방불케 하는 기이한 형상의 바위가 많다. 채계산의 물줄기는 섬진강의 원류인 적성강에 합류되어 광양만에서 남해로 흘러든다. 채계산을 휘돌아가는 섬진강 상류인 적성강에는 조선 시대에 중국 상선들이 복흥의 도자기, 적성의 옥 등을 실어 나르기 위해 많이 드나들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들이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서 채계산에 쇠말뚝을 박기도 하였다.
현황
해발 342m의 채계산 정상은 조망이 훌륭하다. 채계산 산행은 광주 대구 고속 도로 변 유촌교[책암]에서 시작해 무수재~금돼지굴봉~당재~송대봉~칼날 능선~괴정교까지 3시간 30분쯤 걸린다. 금돼지굴봉을 지나 300봉부터는 송림과 암릉을 밧줄에 의지해서 330봉과 정상인 송대봉에 올라야 한다. 채계산 산행의 하이라이트는 송대봉을 지나 바위가 칼날처럼 이어지는 칼날 능선이다. 경험이 많은 산꾼들도 오금이 저리는 코스이다. 1986~1989년에 삼영 광업이 채계산에서 규석 채취를 하면서 자연 경관을 많이 훼손하였다. 이를 보다 못한 순창군의 28개 사회단체, 200명의 군민들이 책여산 살리기 보호회를 결성하여 채계산의 자연환경 훼손을 막는 범군민 운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신경준, 『산경표(山經表)』(1769)
『순창 군정사지(淳昌郡政史誌)』(순창군, 1988)
『한국 지명 총람』(한글 학회, 1988)
이형석, 『한국의 강』(홍익재, 1997)
전북 전통 문화 연구소, 『순창 문화유산 탐구』Ⅰ(순창 문화원, 1999)
조석필, 『산경표를 위하여』(산악 문화, 1999)
현진상, 『한글 산경표』(풀빛, 2000)
김정길, 『전북의 백대 명산을 가다』(신아 출판사, 2001)
전북 전통 문화 연구소, 『순창의 역사와 문화』(신아 출판사, 2002)
김정길, 『전북 명산과 문화유산』(영광 인쇄사, 2012)
「지형도 1:50,000」(국토지리정보원, 2009)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선운사(禪雲寺)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24교구 본사.
개설
선운산 북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선운사는 김제의 금산사와 함께 전라북도의 2대 본사이며, 고창 지역의 대표적인 산사이다. 선운사는 고창 지역 작가를 비롯하여 많은 문인들에게 작품 창작의 모태를 제공하였으며 상사화와 동백꽃으로 유명하다. 선운사를 배경으로 하는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서정주의 「선운사 동구」, 송기숙의 『녹두장군』, 김용택의 「선운사 동백꽃」, 최영미의 「선운사에서」 등이 있다.
건립경위 및 변천
선운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신라 진흥왕이 창건했다는 설과 577년(위덕왕 24)에 고승 검단선사가 창건했다는 두 가지 설이 전하고 있다. 첫 번째 설은 신라의 진흥왕[540~576]이 만년에 왕위를 내주고 도솔산의 어느 굴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이때 미륵 삼존불이 바위를 가르고 나오는 꿈을 꾸고 크게 감응하여 중애사(重愛寺)를 창건함으로써 이 절의 시초를 열었다는 것이다. 검단선사의 창건과 관련해서도 여러 가지 설화가 전해오고 있다. 본래 선운사의 자리는 용이 살던 큰 못이었는데 검단선사가 이 용을 몰아내고 돌을 던져 연못을 메워나가던 무렵, 마을에 눈병이 심하게 돌았다. 그런데 못에 숯을 한 가마씩 갖다 부으면 눈병이 씻은 듯이 낫곤 하여, 이를 신이하게 여긴 마을 사람들이 너도나도 숯과 돌을 가져옴으로써 큰 못은 금방 메워지게 되었다. 이 자리에 절을 세우니 바로 선운사의 창건이다. 검단선사는 “오묘한 지혜의 경계인 구름(雲)에 머무르면서 갈고 닦아 선정(禪)의 경지를 얻는다.” 하여 절 이름을 ‘선운’이라 지었다고 전한다. 또한 이 지역에는 도적이 많았는데, 검단선사가 불법(佛法)으로 이들을 선량하게 교화시켜 소금을 구워서 살아갈 수 있는 방도를 가르쳐주었다. 마을 사람들은 검단선사의 은덕에 보답하기 위해 해마다 봄·가을이면 절에 소금을 갖다 바치면서 이를 보은염(報恩鹽)이라 불렀으며, 자신들이 사는 마을 이름도 검단리라 하였다. 577년 검단선사가 선운사를 창건한 뒤 통일 신라 때의 역사는 전하지 않으며, 1354년(공민왕 3)에 승려 효정(孝正)이 퇴락한 법당과 요사를 중수하였다. 이후 조선시대에 절을 크게 중창한 이는 승려 행호극유(幸浩克乳)로 알려져 있다.
활동사항
선운사에서는 대중에게 친근히 다가가기 위해서 밤샘 책읽기 문화행사, 시 낭송회, 작은 음악회 등과 같은 다양한 행사를 시도하고 있다. 또한 교도소 위문법회와 불교문화강좌 등을 지속적으로 개최함으로써 일반인들의 불교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이 외에도 선운사에서는 지역민과 일반 대중들이 참여할 수 있는 산사 체험형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다. 템플스테이 활동에 참여하는 일반인들은 사찰의 문화와 자연 환경을 활용하여 심신의 휴식을 얻을 수 있다. 주요 내용으로는 저녁 예불과 새벽 예불을 올리고 승려와 차담을 나누는 시간을 갖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함께 선운사 경내에는 고창 문화유산 해설사가 상주하여 선운사에 대해 일반인들에게 소개와 사찰 안내를 담당하고 있다.
현황
선운사는 성종 때에 재건하였으나 임진왜란에 폐허가 되었고, 1613년(광해군 5)에 원준대덕(元俊大德)이 화주(化主)가 되어 3년 동안 대웅전, 만세루, 영산전, 명부전 등을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선운사 도솔암 근처의 마애불에는 동학 농민 혁명과 관련하여 비기탈취 설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전성기의 선운사는 승려 3,000여 명에 거느린 암자만도 89개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2016년 현재 대웅보전·영산전·관음전·명부전·만세루·팔상전·사물각·산신각·천왕문 등 10여 동 건물과 참당암·도솔암·동운암·석상암 등 4개의 암자가 남아 있다. 2010년 말사는 내소사, 내장사, 개암사, 문수사를 포함하여 총 50개이다.
관련문화재
선운사 금동보살좌상은 보물 제279호이며,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은 보물 제1200호이고, 선운사 지장보살좌상은 보물 제280호이다. 선운사 영산전 목조삼존불상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8호이고, 고창 선운사 참당암 석조지장보살좌상은 보물 제2031호이며, 선운사 범종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31호이다. 선운사 대웅전은 보물 제290호이고, 선운사 참당암 대웅전은 보물 제803호이며, 선운사 만세루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53호이다. 선운사 도솔암 내원궁은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25호이고, 선운사 육층석탑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9호이다.
참고문헌
『고창군지』(고창군지편찬위원회, 1992)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백양사(白羊寺)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백암산(白巖山)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승려 여환이 창건한 사찰.
내용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이다. 632년(무왕 33) 여환(如幻)이 창건하여 백양사라고 하였으며, 1034년(덕종 3) 중연(中延)이 중창하면서 정토사(淨土寺)라 개칭하였고, 1350년(충정왕 2) 각진국사(覺眞國師)가 3창하였다. 15세기에 백암사(白巖寺)로 바뀌었다가 16∼19세기 중반에 다시 정토사로 고쳤다. 다시 백양사로 개액(改額)한 것은 1574년(선조 7) 환양(喚羊)이 중건하면서부터이다. 환양이 백양사에 주석하면서 매일 『법화경』을 독송하니 백양이 경을 읽는 소리를 듣고 몰려오는 일이 많아 절 이름을 백양사라 개칭하고 승려의 법명도 환양이라 하였다. 그 뒤 1786년(정조 10) 환성(喚惺)이 중건하였고 1864년(고종 1) 도암(道巖)이 중건하였으며, 1917년 송만암(宋曼庵)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만암은 45세 때부터 백양사 주지직을 맡아 30년 가까이 주석하면서 불사(佛事)에 진력하는 한편, 강원(講院)을 개설하고 중앙불교전문학교장을 겸임하면서 많은 인재를 길러냈다. 백양사는 일제강점기 31본산 중 하나 였으며, 현재 부속 말사 26개 소를 관장하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大雄殿)을 비롯하여 극락보전(極樂寶殿)·명부전(冥府殿)·칠성각(七星閣)·진영각(眞影閣)·천왕문(天王門)·선실(禪室)·요사채와 범종·법고·목어·운판 등의 사물(四物)을 소장하고 있는 범종각(梵鐘閣)이 있다. 이 가운데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43호인 백양사 대웅전은 1917년 송만암이 백양사를 중건할 때 건립한 것으로 내부에는 석가여래삼존불과 1979년 보각행(普覺行)이 조성하여 새로 모신 10척 높이의 불상, 그 왼편에 용두관음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또한 대웅전 내 오른쪽으로 바늘귀를 꿰는 모습, 등을 긁는 모습 등 해학적인 모습을 한 나한상 23체가 봉안되어 있다.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2호인 백양사 극락보전은 400여 년 전에 지은 것으로서 백양사 건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영·정조 대에 지은 건물인데, 건평 50㎡에 세워진 정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1973년 단청하였으며 1976년 보수하였다. 명부전은 1896년에 건립된 것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이며, 각 주두(柱頭)마다 공포가 장식되어 있다. 전내에는 흙으로 조성한 시왕(十王)과 목조 지장보살상(地藏菩薩像)이 봉안되어 있다.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44호인 백양사 사천왕문(四天王門)은 백양사의 정문으로 1917년 건립되었으며, 현재 문의 오른쪽에는 지국천왕(持國天王)과 증장천왕(增長天王), 왼쪽에는 광목천왕(廣目天王)과 다문천왕(多聞天王)이 봉안되어 있다. 이 밖에도 대웅전 뒤편의 팔정도(八正道)를 상징한 팔층탑(八層塔)에는 석가모니의 진신사리(眞身舍利) 3과가 안치되어 있으며, 부도전에는 백양사에서 배출, 주석하였던 휴정(休靜)·유정(惟政)·모운(慕雲)·태능(太能)·범해(梵海) 등 18승려의 사리와 유골을 모신 석종(石鐘) 모양의 탑과 비(碑)가 있다. 이 중 소요대사 부도(逍遙大師浮屠)는 백양사 재흥에 힘쓴 태능의 유업을 기념하기 위하여 건립한 탑으로, 그 둘레에는 용이 구름을 감고 하늘로 올라가는 듯한 조각이 되어 있고, 좌대에는 연잎들이 조각되어 있다.
이 부도는 석종형으로서 상대(上帶)·유곽(乳廓)·하대(下帶) 등에 양각으로 섬세하게 조각되었으며, 기단은 복련(覆蓮)으로 덮은 위에 2단의 몰딩을 두어 종신(鐘身)을 올려놓은 모습이다. 이 백양사 소요대사 부도는 2002년 9월에 보물 제1346호로 지정되었다. 백양사의 산내암자로는 약사암(藥師庵)과 영천굴(靈泉窟), 1351년에 창건한 청류암(淸流庵), 1981년에 지은 수도도량 물외암(物外庵), 천진암(天眞庵) 등이 있다. 그러나 고려시대부터 있어 온 운문암(雲門庵) 등 많은 암자들이 6·25전쟁 때 불타버렸다. 이 중 운문암은 6·25전쟁 전까지만 해도 백양사 8개 암자 중 대표암자였으며, 백양사 뒤 계곡을 끼고 3.5㎞ 위에 있다.
고려 때 각진이 창건했다는 운문암은 백양사 수도도량 중 전망이 가장 좋은 곳에 있으며, 조선시대의 신승 진묵(震默)의 일화가 전해 오고 있다. 진묵이 임진왜란 직전 이 암자에서 차를 달이는 소임을 맡고 있었는데, 어느 날 전체 대중이 차를 달이는 운문암 중을 조사(祖師)로 모시라는 현몽을 한 뒤 진묵을 조실(祖室)로 앉혔다.
어느날 진묵은 “내가 올 때까지는 이 불상을 도금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자취를 감추었으므로 지금도 그 불상은 거뭇한 그늘색을 띤 채 진묵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또 백양사 오른쪽 계곡 상부에 있는 국제기(國祭基)는 천신께 제사를 올리던 곳으로서 호남일대에 재난이 있을 때에는 나라의 명을 받아 이곳에서 천제(天祭)를 올렸다. 조선시대 영조 때 호남지방에 대유행병(大流行病)이 나돌아 호남 감사가 영조에게 상소를 올리자 영지를 택하여 크게 기도를 드리라고 하였으므로, 이곳 바위에다 ‘國祭基’를 음각(陰刻)하여 새기고 제사를 지내게 된 것이 그 유래이다. 또 영천굴은 20평 남짓한 천연석굴로 단칸의 영천암이 있는 곳이다. 굴 속의 바위틈에서 샘이 솟아나오는데 이를 영천이라 한다. 장마 때나 가뭄 때나 항상 일정한 물이 흐르는 이 샘에는 옛날 한 사람이 먹을 만큼의 쌀이 나왔는데, 하루는 어떤 손님이 와서 더 많이 나오라고 작대기로 쑤셨더니 그 뒤로는 쌀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또 백양십이경의 하나인 일광정(日光亭)에서는 해마다 사월초파일에 불가(佛家)의 시련법식(侍輦法食)이 거행되며, 백양사 뒤의 학바위는 고려 때부터 조선 중종 때까지 천제를 지낸 곳이라 한다. 절 일대의 비자나무는 천연기념물 제153호로 지정되어 있고 약 3만 그루가 밀집하고 있어 춘백양(春白羊) 추내장(秋內藏)이란 칭호를 얻고 있다. 이 밖에도 백암산의 학봉·상왕봉·사자봉·가인봉 등의 절경과 설경 등이 어울려 백양사일대는 예로부터 조선팔경의 하나로 유명했던 곳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전통사찰총서』 7-광주·전남의 전통사찰Ⅱ-(사찰문화연구원, 1996)
『명산고찰 따라』(이고운·박설산, 우진관광문화사, 1982)
『한국의 명산대찰』(국제불교도협의회, 1982)
『한국사찰전서』(권상로 편, 동국대학교 출판부, 1979)
『문화유적총람』(문화재관리국, 1976)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월출산 국화 축제(月出山菊花祝祭)
전라남도 영암군 월출산 기찬 랜드 일원에서 매년 가을에 개최되는 국화 축제.
개설
영암군에서는 군민들의 정서 함양과 관광 산업 육성, 농업 소득 창출을 위해 매년 월출산 국화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연원 및 개최 경위
가을 관광 시기에 영암군의 월출산 국립 공원, 월출산 기찬 랜드 등 관광 자원 홍보와 관광객 유치를 위해 2007년 제1회 왕인 국화 축제를 개최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14년까지 개최된 행사 내력은 다음과 같다.= 2007년 1회 왕인 국화 축제는 2007년 10월 29일~11월 8일에 열렸다. 전시 규모는 국화 13종, 4만 2700여 점이며, 전시 내용은 모형작·콘형·분재국·현애국·복조국 등이다. 2008년 2회 왕인 국화 축제는 2008년 10월 29일~11월 16일에 열렸다. 전시 규모는 국화 13종, 6만 2000여 점이며, 전시 내용은 팔각정·동물 모형작·꽃 벽·다륜 대작·현애국·분재국 등이다. 2009년 3회 왕인 국화 축제는 2009년 10월 29일~11월 22일에 열렸다. 전시 규모는 국화 13종, 8만여 점이며, 전시 내용은 왕인 문·대형 아치·모형작·팔각정·현애국·분재국·다륜작 등이다. 2010년 4회 왕인 국화 축제는 2010년 10월 29일~11월 21일에 열렸다. 전시 규모는 국화 13종, 10만여 점이며, 전시 내용은 왕인 문·시유 도기·국화 영월관·만화 캐릭터·현애국·분재국·다륜작 등이다. 2011년 5회 왕인 국화 축제는 2011년 10월 29일~11월 20일에 열렸다. 전시 규모는 국화 13종, 12만여 점이며, 전시 내용은 왕인 문·시유 도기·국화 영월관·만화 캐릭터·현수국·분재국·다륜 대작·입국·복조국·화단국·현대 삼호 중공업 찬조 작품 등이다.
2012년 6회 왕인 국화 축제는 2012년 10월 27일~11월 18일에 열렸다. 전시 규모는 국화 18종, 14만여 점이며, 전시 내용은 왕인 문·시유 도기·국화 영월관·도갑사·성풍사지 석탑 국화·국화 석장승·만화 캐릭터·현수국·분재국·다륜 대작·입국·복조국·화단국·현대 삼호 중공업 찬조 작품 등이다. 2013년 7회 왕인 국화 축제는 2013년 10월 29일~11월 24일에 열렸다. 전시 규모는 국화 18종, 14만여 점이며, 전시 내용은 왕인 문·시유 도기·국화 영월관·도갑사·성풍사지 석탑 국화·국화 석장승·승천하는 국화용·만화 캐릭터·동물모형작·현수국·분재국·다륜 대국·입국복조국·화단국·현대 삼호 중공업 찬조 작품 등이다. 2014년 8회 왕인 국화 축제는 2014년 10월 29일~11월 9일에 열렸다. 전시 규모는 국화 18종, 12만여 점이며, 전시 내용은 왕인 문·시유 도기·국화 영월관·도갑사·성풍사지 국화 석탑·국화 석장승·승천하는 국화용·만화 캐릭터·동물모형작·왕인박사 인물 조형물·현수국·분재국·다륜 대국·입국·복조국·화단국·현대 삼호 중공업 찬조 작품 등이다.
행사 내용
다양한 모양의 국화 전시를 중심으로 국향 콘서트, 농촌 사랑 시화전 등 연계 행사가 진행되며, 상설 행사로는 농·특산물 직거래 장터, 국화 동호회 작품 판매 등이 마련된다. 또한 체험 행사로 자전거 투어, 천연 염색 체험 및 제품 판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함께 진행된다.
현황
2015년에는 명칭을 영암 국화 축제로 변경하여 10월 24일~11월 15일까지 영암읍 동무지구 일원에서 개최하였으며 2016년부터 월출산 국화 축제로 명칭을 변경하여 매년 가을 10월 말에서 11월 초 사이에 월출산 기찬 랜드 일원에서 진행된다. 2019년에는 제12회 행사가 10월 중에 개최된다.
참고문헌
「영암 왕인 국화 축제 문화 행사까지 풍성」(『아시아 뉴스 통신』, 2012. 11. 8.)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땅끝우림정원
완도를 가다가 해남 땅끝을 벗어나기전 개인이 만든 정원치고는 꾀나 넓은 터에
"땅끝우림정원"이란 공원이 있는데 많은 식물이 식재되어 있고 비탈진 터를 고르고
물을 가둬 연밭을 만들어 재철이 아닌데도 연꽃송이가 드문드문 피어있고 곱게
쌓아올린 돌탑이 볼꺼리였습니다...
마량항은 광주에서 강진을 지나 우리나라 서남부 최남단에 위치해 있으며 완도 다도해 및 제주도를 연결하는 청정해역으로 돔, 농어, 우럭 등 바다낚시의 보고이다. 조선초기 태종조 1417년 마두진이 설치되어 만호절제도위가 관장하였고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겪을 당시 거북선 1척이 상시 대기하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유서깊은 만호성터가 남아있고, 까막섬이 수묵화처럼 떠있으며, 고금도와 약산도가 든든하게 풍랑을 막아주는 마량포구는 1종 어항으로서 천혜의 미항으로 손꼽히고 있다. 낮보다 밤의 정취가 아름다운 이곳 마량미항에서는 매주 토요일 아름다운 항구와 관광객이 하나되는 흥겨운 음악회가 열린다.
출처:(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2021-11-06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