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례 가는 길

“막사발” 찾아 떠난 길, 초속 30m의 강풍에 겸손해진 허리로 만경강을 넘는다. 전북 내륙 만경평야 한 복판쯤 있는 춘포春浦를 지날 때 들판을 뒤덮는 국수발 같은 소나기. 순식간에 흙탕물로 변한 대형 수로水路 만경강. 황해黃海를 향해 뒤틀며 들달려 가는 물줄기가 꼭 새끼무동 어깨위에 얹은 것처럼 불안하다. 삼례 하늘은 태풍이 퍼부은 먹물로 농담濃淡 가누기 바쁘다. 하늘을 화폭畵幅 삼아 초대형 수묵화를 제멋대로 휘 젓고 있다. 예향藝鄕이 어디 애초 정해졌던가. 먹물 흥건하면 예향이지. 익산역부터 따라붙은 야사하夜思何 리듬이 줄 소나기로 온 몸을 때린다.

야사하(夜思何)
蕭寥月夜思何事(소요월야사하사)
달 밝은 밤에 그대는 무슨 생각하세요
寢宵轉輾夢似樣(침소전전몽사양)
잠이 들면 그대는 무슨 꿈 꾸시나요
問君有時錄忘言(문군유시녹망언)
때로는 일기장에 내 얘기도 쓰시나요
此世緣分果信良(차세연분과신량)
나를 만나 행복했나요 나의 사랑을 믿나요
悠悠憶君疑未盡(유유억군의미진)
그대 생각 하다보면 모든 게 궁금해요
日日念我畿許量(일일염아기허량)
하루 중에서 내 생각 얼마만큼 많이 하나요
忙中要顧煩或喜(망중요고번혹희)
바쁠 때 생각해도 제 생각이 즐겁나요
暄喧如雀情如常(훤훤여작정여상)
참새처럼 떠들어도 여전히 정겨운가요
* 야사하(夜思何) 자료제공 : 익산역 홍보관 담당 조인천씨
(익산문화재단 : 063)843-8811)
* 삼례 : 완주군, 익산과 전주 사이 위치, 우석대 분교
* 춘포(春浦 : ‘춘포驛舍’-1914년 전라선 개통, 현재 남아있는 역사 중 가장 오래된 건물, 등록문화재 210호)
* 야사하(夜思何) : 황진이黃眞伊가 소세양蘇世讓을 그리워하며 읊픈 시조. 가수 이선희의 노래 ‘알고 싶어요’
* 황진이(黃眞伊, 松都三絶)
* 소세양(蘇世讓, 조선 전기 문인, 이조판서 우찬성 역임, 왕궁면 용화리에 신도비,
지방유형문화재 159호)






삼례문화예술촌
일제저항기! 군산, 익산, 김제와 더불어 양곡수탈의 중심지였던 삼례. 삼례문화예술촌은 일제저항기! 왜인 대지주 ‘시라세이’가 1926년 식민농업회사를 만들 때 양곡창고 자리. 이 자리를 해방 후 2010년까지 농협창고로 사용해 오다 용도폐기 지경에 이르렀는데~ 폐허가 되고 만 창고 건물과 그 공간에 완주군이 새 생명을 불어넣는다. 커다란 곡물창고 여섯 개 동을 각각 1.VM아트미술관, 2.디자인박물관, 3.책박물관, 4.책공방북아트센타, 5.김상림목공소, 6.문화카페오스 등으로 나누어 6개 장르로 장착시킨 삼례문화예술촌. “삼삼예예미미(samsam yeye mimi)” 캐치프레이즈가 방문객의 관심을 이끈다. “역사와 현대를 어우르는 문화예술의 중심!”. ‘중심’이거나 ‘센타’거나 아님 또 다른 용어거나 지금은 따지지 말자. 완주는 이제 첫걸음을 시작했다. 보살피고 격려 해줘야하는 유아기라는 말이다.
건물 벽면에는 ‘농협’ 등 페인트 글자가 얼룩덜룩한 그대로이고, ‘종합세미나실’ 외벽은 널판을 이어댄 ‘왜식건물’의 재현건물이다. 전시장은 속이 뻥 뚫린 높은 천장 창고건물. 한 눈에 봐도, 허름한 창고를 솜씨 좋게 활용하고 있지 아니한가! 조선총독부 건물 헐듯 재개발 대상에 불과했던 근대 건축물들. 특히 일제 잔재라는 이유로, 단지 낡고 헐었다는 이유로 헐리던 건축물이 완주 삼례 땅에서는 고귀한 새 생명을 부여받는다.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미륵사지, 왕궁리사적, 2015년 7월)에 선정된 백제의 역사와 문화. 그 권역을 품은 완주군의 문화예술 감각을 삼례에서 체감한다. 지나가버리고 흘러가버린 옛 사건에 정면으로 맞서는 당당한 태도. 아픈 기억의 편린片鱗 조차 보듬는 아우름. 역사歷史는 연민憐憫일지도 모른다. 쓰다 깨지면 미련없이 내동댕이치던 막사발이 귀중품 대접을 받게 된 오늘날, 철도 전철화로 신역사를 마련한 삼례역. 그 옆 철도부지 구,삼례역사 자리에 날아갈 듯 한옥 추녀선을 리모델링한 ‘세계막사발미술관’이 자리 잡았다.
* 삼례문화예술촌 : 2013년 6월 5일 완주군에서 문화공간으로 조성.
(565-805 전북 완주군 삼례읍 삼례역로 81-13, 070-8915-8121~2, www.srartvil.kr, 매주 월요일 휴관 10:00~18:00, 입장료 2천원, 학생 1천원).
* 세계막사발미술관 : 전북 완주군 삼례읍 삼례역로 85,
(macsabal333@naver.com, 063)290-2162).
* 세계막사발미술관 관장 김용문 : 홍익미대공예과 동대학원 졸업, 세계막사발장작가마축제 조직위원장, 중국산동이공대, 산동경공업대학교 객좌교수, 터키국립하제테페 미술대학 초 빙교수, 著書:《나는 막사발이다》2010, 《막사발 실크로드》2012, 《세계막사발미술관 가는 길》, 詩集:《마음하나 다스리기가》,
(565-805 전북 완주군 삼례읍 후정리 283-13 삼례역로 83 세계막사발미술관-구,삼례역 사, macsabal21@naver.com, blog.naver.com/macsabal21).
* 다선향 : 전문사범 박순자, 차문화 전통문화교육공동체 운영
(nsi6364@hanmail.nbet/ 063)291-9792/ 010-2657-9792
세계막사발미술관
2015년 5월 1일부터 7월 31일까지 ‘세계막사발미술관’이 주관한 <2015삼례문화기행전>이 열렸다. 전북지역 도예가 8인이 참여한 행사에서 청자, 백자, 분청사기, 옹기, 막사발, 흙으로 만든 조형물과 토템 등 한국은 물론 동북, 동남아를 훌쩍 너머 형제국 터키, 우방국 미국도 참여했다. 막사발도 한 때 한류였나 보다.
막사발은 애당초 막 쓸려고 만든 물건. 만들 때부터 합목적적으로 거칠게 만든 질그릇. 막 쓰다가 이 빠지거나 하면 “개밥그릇”으로 용도변경 되곤 하던 흔한 그릇이 막사발이었다. 그런 막사발이 지금, 미술관에서 보호받는 귀중품으로 팔자가 바뀌었다.
막사발은 아무래도 茶문화와 관련이 깊다. 한중일 삼국이 차문화 원조를 주장하고 차나무 재배 및 원산지를 자국영토 안에 두려고 주장하는 것 모두 전통문화의 중요성을 인지한 결과이다. 전통이 정통성으로 정착된 삶의 공동체는 안정적이고 단단하다. 기초질서 정도는 가정에서부터 지켜진다. 전통문화교육공동체 <다선향>이 세계막사발미술관 안에 있다. “다도茶道는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몸과 마음을 정화시켜가는 과정”으로 정의한다. ‘다례 지도’, ‘다식 만들기’, ‘찻자리 운영’, ‘다도 체험행사’ 등 삼례의 다도는 주민과 학생을 대상으로 완주 삼례의 품격을 이끌고 있다.

나그네 길 끝에는
한 세대 전, 마을 공동체 안에 ‘바보’, ‘엉터리’, ‘과부’가 어울려 살던 시절. 이빨 빠지고 귀 떨어진 것들도 그런대로 그렇게 뒤섞여 살아도 별로 불편하지 않던 그 시절. 5일마다 마을 어귀쯤 장이 서면 오방색 깃발처럼 북적거리던 장터거리. 파시波市가 되면, 썰물처럼 빠져나간 텅 빈 장터마당 한 옆에 바보주점, 엉터리집, 과부집이 못난이 삼형제처럼 있었다.
이른 봄 날 저녁녘, 스며들듯 주막에 들어선 낯 선 나그네. 바보주점 한 구석에서 막사발 잔을 기울인다. 무릎 땟국물 자국 아직 남은 소녀가 나그네에게 다가선다. 한 마디 말도 없이 막걸리를 따라주는 소녀.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낯이 익은 얼굴들. 소녀는 과부집 딸내미다.
“바보주점/ 막걸리 잔에/ 입술 뜯긴 날// 시큼한 기억/ 따라주던/ 과부 딸내미// 매화 꽃봉오리/ 터지는 봄 날/ 아련한 통증// 어서, 일어나세요/ 다신, 오지 마세요.” -『막사발』全文, 권녕하 作詩.
그 길로 나그네는 마을을 떠나갔다. 고개를 꺾은 채. 배반은 젊을 때 겪을수록 이롭다. 그리하여, 버릴 때는 재활용이 가능할 때 빨리 버려야 한다. 그것이 배려다. 건물도 막사발도 같다. 태풍 ‘찬홈’이 하루 종일토록 삼례 마을을 휘젓는 날, 다시는 못 올 길을 떠난 나그네처럼, 결코 해갈되지 않을 인간의 욕망(Desire)을 되새김질 한다.<글,사진 권녕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