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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리 한 켤레 - 원이 아버지에게
권 예 자
월영정(月映亭)*에 앉아 사백이십삼 년 전 원이엄마의 편지를 읽는다.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이렇게 시작되는 그녀의 편지는 언제 읽어도 가슴을 아프게 한다. 서른한 살 젊디젊은 나이에 어린 아들과 유복자를 남기고 이승을 떠나는 남편에게 쓴 아내의 마지막 연서다. 그것은 사백년의 세월을 건너 띄어 우리에게 왔으며, 그들 부부의 사랑을 순간에서 영원으로 이어지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편지는 1998년 그녀 남편의 미라와 함께 발굴되었으며, 얇은 한지에 언문으로 쓰인 것으로, 먼저 간 남편의 가슴을 덮고 있는 채 온전하게 발견되었다.
처음 그 편지가 발견 될 때부터 나는 그 원본을 보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오늘에야 안동대학 박물관을 찾았다. ‘이응태 묘 출토유물’ 앞에서 가슴이 콱 막히는 전율을 느끼는 것은 나만은 아닐성싶다. 고인이 입었음직한 군데군데 푸르게 변질된 커다란 웃옷, 형 이몽태가 망자에게 보내는 부채와 화선지에 쓴 만시(輓詩)**. 그리고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에 남편에게 하고 싶은 말이 넘쳤던지 쓰던 편지지의 여백까지 가로로 채워서 마음을 전한 아내의 마지막 연서. 그 뿐인가. 어린 아들의 것으로 보이는 적삼과, 병든 남편을 위하여 자신의 머리카락과 삼 줄기를 엮어서 삼은 미투리 한 켤레를 차마 마주하기 어려웠다. 어찌 보면 여름용 샌들 같은 그 단아한 미투리 한 켤레는 삼 줄기보다 많아 보이는 검은 머리카락으로 하여 더욱 처연한 아픔을 전하고 있었다.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을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요? <중략>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 하시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는 거지요?
그녀가 인용한 대화로 보아 그들 부부의 사랑이 각별했던 것을 한눈에 느끼게 된다. 뜻밖의 사별 속에서 잠시 자신이 혼자 키워야할 어린 자식과 태중의 아이에 대한 염려도 보인다. 그런데도 그녀가 남편에게 보내는 마지막 말은 그리움으로 가득하여 보는 이를 안타깝게 한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주시고 또 말해주세요. 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 주세요. 하고 싶은 말 끝없어 이만 적습니다.
나는 그녀의 편지와 미투리를 보고 또 보며 오랫동안 그곳에 서 있었다. 남편의 회복을 바라며 고운 손끝에 정성을 담아 짰을 미투리. 꾸밈없는 마음을 진솔하게 드러낸 그 편지는 가엽고 슬프다는 생각을 넘어 가슴이 뜨거워지게 하였다.
월영교(月映橋)***, 안동댐과 보조댐 사이 안동호에 놓여있는 이 다리는 국내에서 가장 긴 목책 인도교다. 아름답기도 하지만 모양이 독특한 이 다리에는 이응태 부부의 사랑이 전설처럼 애틋하게 담겨 있기도 하다. 안동시민들은 많은 시간을 어둠속에서 견뎌내고 우리에게 온 이응태 부부의 사랑을 기억하기 위해 원이엄마가 삼은 미투리 모양으로 다리를 설계하였단다. 그래서 다리 중앙의 월영정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미투리 모양을 담고 있다. 난간의 진한 갈색 나뭇결을 자세히 드려다 보노라면 그녀의 머리카락이 손에 잡힐 듯한 착각도 일어난다. 달그림자가 아름답다는 인도교 위, 어여쁜 정자에서 이조 여인의 피맺힌 편지를 읽으며 나는 생각한다. 그 젊은 여인은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그 후 어떻게 살다 갔을까? 망자의 한이 얼마나 깊었으면 아내의 마지막 연서를 오래오래 가슴에 품었다 내어놓은 것일까? 그 못다 이룬 한을 풀기나 하듯 원이엄마의 절절한 편지는 안동을 울리고, 한국을 울렸으며, 나아가 2007년에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게재되어 전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이렇게 그들의 사랑은 월영교와 소설 능소화(06.조두진)로, 아카페 동상으로, 편지비와 창작국악을 통하여 영원으로 승화되었다.
요즘은 가정의 의미가 축소되면서 가족 간의 사랑에도 이해타산이 생기고, 부부사이에서도 재산권 분쟁이 생기는 시대다. 그런데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라고 물어 보았다는 그들 부부의 사랑이 참으로 곱게 느껴진다. 그들의 안타까운 사랑을 생각한다면 남편이, 혹은 아내가 저문 나이까지 서로의 곁에 있어주는 것 만해도 더 할 수 없이 고마운 일인 것을….
음력 유월, 습기를 머금은 더운 바람이 휘돌아 불자, 안동호 초록물결에 잠긴 월영교가 위, 아래로 조응하듯 출렁댄다. 그녀가 병술년(1586) 유월 초하룻날 사부곡을 쓰며 흘린 눈물 탓인지, 한 켤레의 미투리가 둘이 되고, 셋이 되더니, 수많은 미투리들이 슬픈 몸짓으로 아른아른 흘러간다. 나는 갑자기 남편의 음성이 듣고 싶어 손전화로 그를 찾았다. “자기, 내 곁에 건강하게 있어줘서 정말 고마워요.” (2009.8.15. 15매, 문학시대 23호 송고)
* 월영정: 월영교 위에 있는 정자로, 댐건설로 물에 잠기게 된 것을 원형을 보존하여 다리 가운데 올려놓았다. ** 만시 : 돌아가신 분을 애도하는 시. *** 월영교 : 2003년 건설된 길이 387m, 너비 3.6m의 다리로, 경북 안동시 안동호에 놓인 목책 인도교.
월영교 입니다. 멀리 산속에 월영대가 보입니다.
'월영대'에서 내려다본 월영교입니다. 양쪽으로 미투리 모양이...
이응태 묘 출토품. 위에 있는 것이 이응태의 옷입니다 왼쪽에 아기 웃옷과 원이엄마의 편지, 가운데 미투리, 오른쪽에 만시.
병든 남편을 위해 머리카락을 넣어 삼았지만 신어보지도 못하고...
편지는 언문으로 썼으며 위 여백까지 채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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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멋있군요. 선생님 덕분에 가 볼곳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여행을 좋아하시는 선생님, 그쪽에 가시면 연계하여 보실 곳이 많답니다. 일직면 조탑리에 '권정생님 살던 5평짜리 오두막집' '봉정사' '이육사문학관' '병산서원' '도산서원' 가슴아픈 '신세동 칠층전탑' '퇴계종책' 학봉고택' 상업성으로 변질된 '하회마을' 까지.
이 미투리는 "사랑의 머리카락(Locks of Love)"으로 내셔날 지오그래픽에 실렸지요, 영어, 불어 등 23개 언어로 28개국에서 동시발행되는 세계적인 인문지리 잡지이지요, 4 백년 너머의 사부곡에 세게가 감동하여 소설로 춤으로 오페라로 탄생되고 있지요, 여인의 깊고 깊은 사랑은 끝이 없나봅니다. 우리나라의 모든 부부가 원이 엄마 부부와 같은 사랑이었으면 좋겟습니다.
선생님도 보셨군요. 이런 미투리를 짜는 여인이 있는 나라가 다른 곳에도 있을런지요. 그런데 참 특별한 것은 당시에 원이엄마의 편지를 보면 남편을 '자네'라고 호칭을 하였더군요. 놀라웠습니다.
여린 마음이 이 사연을 읽고 유물을 직접 보셨으니...그 시대에도 모든 여인들이 원이 엄마 같지는 않았겠지요? 고로 현대에도 원이 엄마 같은 여인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슴 뭉클한 글 잘 읽었습니다. 아름다운 '월영교'를 기억해 두겠습니다.
그럼요. 현대에도 그런 여인이 있을겁니다. 지난 수요일에도 갔었는데, 자꾸만 그 다리에 정이 듭니다. 그 앞이 식당가인데 단체로 밥 먹고 빨리 차타기 바빠서 사람들이 그냥 가기도 합니다. 해설사들도 다른 곳에만 열을 올리지요. 우리 언제 안동에 가서 고택 체험하면서 달 뜨는 밤에 그 다리를 보고 옵시다.
사실, 어제 아침 접촉수 '0'으로 표시되었던 선생님의 글 '미투리 한컬레'를 읽으면서 제목부터 생소한 단어에 어리등절하였습니다. 그리고 퇴근하면서 읽어보고 생각하고 다니다가, 오늘 아침에 댓글을 답니다. 안동 月映亭에 앉아서 423년전 젊은 나이에 두 아이(한 아이는 유복자)를 두고 타계한 남편에 대한 젊은 청상의 애절한 사연의 이승에서 저승에 보내는 戀書를 보시고 선생님의 생각을 담은 수필이군요. 오늘 아침에야 완전히 이해가 되었습니다. 400년 세월 미이라와 함께 보존되었음도 경이롭습니다. 그리고 끝부분에 부군께 드리는 선생님의 손전화의 사연도 평범한 한마디지만 그 여인 못지 않았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보잘것 없는 글을 깊히 읽어주신 지존님 감사합니다. 미이라와 함께 발견된 편지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편지는 처음 읽었을 때부터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머리카락으로 미투리를 삼은 사연은 글에서나 보았지 실물을 본것은 처음이어서 말할수 없는 감동이 밀려 왔었습니다. 그 감동을 참을 수가 없어서 수필로 엮은 것입니다.
처음 이 편지 기사를 읽었을 적의 감동과 감탄이 되살아 납니다. 봄비님의 글로, 원이 엄마는 안타까운 그리움을 조금은 위로 받았을것 같습니다.
안동에 가시는 길이 있으시면 '안동대 박물관'에 한번 들러보셔요. 안동사람들도 그 펀지 원본이 어디 있는지 잘 모르더군요. 직접 미투리를 보시면 편지보다 큰 감동을 받으실 것 같아요. 제가 그곳에서 출토 당시의 동영상 일부를 복사해 왔지만 카페에 올리기는 좀 그래서 안 올리는데 작은 박물관에서 그것을 보는 감동도 남달랐습니다.
햇살 환한 대낮에 제 마음을 이리도 흔들고 계시는 님은 누구십니까? 400여 년 전 부부의 지극한 사랑을 이처럼 글로 옮겨 마음을 나눠주시는 봄비 선생님, 고맙습니다. 살다가 살아내다가 보면 사연 많은 사람 참 많지요. 한결같은 마음으로 부부 의 사랑이 극진했슴에 놀랍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짚신을 삼은 그 여인의 애절함이 뼛속까지 흐느끼게 합니다. 온라인 사이트에서 오래전에 읽은 적 있지만 이리 상세한 이야기를 대면함은 감동 그 자체입니다. 전율이 일 정도 이군요. 아마 오늘은 아무일도 못 할 것 같습니다.
후리지아님의 표현이 수필보다 더 깊은 감동을 줍니다. 제가 감성이 무딘것이 스스로 느껴지네요. 이럴 때 저는 나이를 실감합니다. 안 그러려고 하여도... 따뜻한 말씀 감사합니다.
지극한 사랑의 힘으로 수 세기를 거쳐 저희에게 까지 그 모습을 드러내는가 봅니다. 좀 숙연한 마음이 드는군요.
그렇습니다. 발에 신어야할 미투리를 보고, 또 누구나 쓰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 부부사이의 연서를 보고 숙연해 지는 마음은 그 진솔함 때문인 듯 싶습니다.
언젠가 안동에 들렸다가 찍으신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그걸 주제로 삼아 글을 쓰셨군요. 사랑! 아무나 하나요? 앞으로는 사랑이란 단어를 쓰기가 힘들 것 같네요. 글의 말미를 좀더 멋있게 끝을 냈으면......
알겠습니다. 좀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실은 이 수필은 그 마지막 한 문장이 보통의 산문을 수필답게 하는 것이라 여기는데 어렵네요. 하여 그날 한일을 일단 그대로... 조언 감사합니다.
참으로 애틋하고 절절합니다. 바쁜 중에 읽고는 이제 댓글을 답니다. 이집트 박물관의 어마어마한 유물과 미이라와는 너무 다르네요. 한 줄 한 줄 풀어내는 글 속에서 두 사람의 사랑이 완성되는 것 같습니다. 놀라운 수필의 힘입니다.
그래요. 마야님. 큰 것은 큰 것대로의 놀라움이 있지만 작은 것에도 따스하고 깊은 것이 있답니다. 우리민족은 원래가 크고 동적인 것보다는 작고 정적인 것에 마음이 끌리는 감성적인 민족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