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 1. 24. 21:09
▲마우리아 왕조의 창시자, 찬드라 굽타(Candra Gupta)의 동상
인도의 대부분을 하나로 통일한 첫번째 황제(BC 321경~297경 재위)이다.
잘못된 국정운영에서 나라를 구하고 외국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함으로써 백성들의 신뢰를 받았고 기근으로 고생하는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 단식하다 죽었다. 찬드라 굽타는 이주한 마우리아족의 수장인 아버지가 국경전투에서 전사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외삼촌은 그를 소치는 사람에게 맡겼는데 이 사람은 찬드라 굽타를 자기 아들같이 키웠다. 뒤에 그는 가축을 길들이는 사냥꾼에게 팔려갔다. 브라만 계급의 정치가 차나키아(카우틸리아라고도 함)에게 다시 팔린 그는 탁실라(지금의 파키스탄에 있음)로 가서 그곳에서 군사전술과 미학교육을 받았다.
전승에 의하면 그가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만난 후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사자 한 마리가 그의 몸을 핥으면서 그가 간직하고 있던 왕권 장악의 소망을 실현하도록 용기를 북돋워주었다고 한다. 그는 차나키아의 충고를 받아들여 용병들을 모으고 대중적 지지를 확보하여 난다 왕조의 총사령관 바다살라가 지휘하는 군대에 대항해 유혈의 전투를 치른 끝에 이 왕조의 전제정치를 종식시켰다.
BC 325년경 지금의 비하르에 있던 마가다 왕국의 왕위에 오른 찬드라 굽타는 난다 정권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비밀결사대까지 포함한 잘 짜여진 행정기구를 통해 반대자들을 숙청했다. BC 323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자 인도에 있던 알렉산드로스의 마지막 2명의 대리 통치자들이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갔다. 찬드라 굽타는 이 기회를 이용해 BC 322년경에 펀자브 지방을 장악했다.
마가다의 황제이며 펀자브의 지배자로서 그는 다음해 마우리아 왕조를 창건했다. 그는 페르시아 국경지역까지 제국을 확대했고, BC 305년경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점령했던 아시아 제국의 통치권을 주장하는 셀레우코스 1세 니카토르의 침략을 막아냈다.
그리고 나서 찬드라 굽타는 60만 대군으로 인도 전역을 정복하면서 남쪽으로 빈디아의 국경지역 너머까지 제국을 확대했다.
히말라야 산맥과 카불 계곡(지금의 아프가니스탄에 있음)에서 인도 남단에 이르는 찬드라 굽타의 인도 제국은 역사상 가장 넓은 제국의 하나였다.
적어도 2세대 동안 이 제국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부분적으로는 그가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BC 559~330)의 행정제도와 차나키아의 정치학 교과서 〈아르타사스트라 Arthaśāstra〉를 본떠 뛰어난 행정제도를 만들었던 데서 기인한다.
전승에 의하면 찬드라 굽타는 현자 바드라바후의 영향으로 자이나교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바드라바후는 12년간에 걸친 기근의 시작을 예견했고 기근이 닥쳤을 때 찬드라 굽타는 이를 막으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으나 비관적인 상황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절망에 빠졌다.
그는 자신의 남은 생애를 인도 남서부에 있는 유명한 종교유적지 슈라바나 벨리골리아에서 바드라바후를 봉양하면서 보냈고 이곳에서 단식중 죽었다. <끝>
이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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