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교구/ 11처
죽산 순교성지
-‘두들기’와 ‘이진 터’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장암로 276-44
성지 연락처 031-676-6701
내가 어릴 때도 그랬었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때 아버지가 붙들려 갈까봐 밖에서 불빛만 어른거려도 누가 아버지 잡으러 왔다고 까무러치게 놀란 적이 있었다. 우리 같은 아이들은 놀라움 속에 벽장 속으로 숨으러 힘들게 올라가시는 아버지 엉덩이를 받쳐 주며 애를 태우던 때가 있었다. 식구가 많아 늘 배고파하던 그때, 참으로 모진 세월이었다. 그렇게 온 가족의 정성에도 아버지는 결국 일제강점기 강제노동에 붙들려 가셨다고 하고 그 후 6․25 전쟁 전후에도 늘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나는 자랐다.
수원교구 내의 순교성지는 모두 열한 곳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순교성지를 가진 교구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죽산 순교성지에 첫발을 내디뎠다. 죽산 순교성지는 천주교 4대 박해 중 하나인 병인박해(1866년) 때 수많은 순교자들이 주님을 증거하며 생명을 봉헌한 곳이다. 충청, 전라, 경상도로 갈라지는 주요 길목인 죽산에는 이러한 지리적 조건 때문에 조선시대에 일찍이 도호부가 설치되어 있었고, 인근 교우들이 붙잡혀 오면 이곳에서 참담한 고문 끝에 처형되었다.
죽산성지는 ‘이진 터’라고도 불렸다. 고려시대 때 몽골인들이 진을 쳤기 때문에 오랑캐들의 진터라고 불린 것이다. 이전까지 고려는 여기 이진 터만 빼놓고는 몽골인들에게 전투에서 제대로 승리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죽주산성을 지키고 있었던 송문주 장군이 있었다. 송문주 장군은 몽골인들과 전투를 벌인 경험이 있어 전술을 꿰뚫고 있었으니 다른 모든 성城은 쉽게 함락되었지만 송문주 장군이 지키는 성은 무사했다고 한다.
이러한 이름의 유래와 더불어 박해시대에는 ‘이진 터’에 끌려가면 죽은 사람과 같으니 잊으라고 하여 ‘잊은 터’란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이곳은 순교의 처절함이 서린 장소로 교우들의 가슴에 새겨졌다.
애절한 사연을 지닌 ‘두들기 마을’도 있다. 체포당한 교우들에게 돈을 주면 풀어 준다 하여 두들겨 팼던 곳이다. 돈이 나올 때까지 몽둥이로 팼다. 죽산 성지는 ‘잊은 터’와 ‘두들기’에서 느껴지듯 주님을 향한 아픈 사랑을 잘 대변해 주고 있는 곳이다. 이 아픔을 가슴에 품고 다시 천진암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