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나는 신경성 위장염으로 인해 체중이 8kg이나 빠지고 고생한 후 겨우 치료가 되었다 싶을 때
테니스 경기 중 허리까지 다쳐 무덥던 여름 지독하게 고생하고 겨우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니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그러나 예 처럼 산을 마음대로 갈 수 있을지 테니스를 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주위에서는 9수를 한다고 하여 슬기롭게 넘기라고 조언을 해준다. 그 와중에 멀쩡하든 동기 친구들과
성당 친구등 일곱명이나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 세상을 하직했다. 분명 인생 길에는 고비가 있는가 보다.
그런데 이틀전 가끔은 연락을하고 지내는 동갑내기 만년 문학청년 최인호 (베드로)의 죽음은 뜻 밖이다.
치료가 잘 되어 호전되어 간다고 좋아하더니. 20년전 천주교 행사에 우연히 만나 일년에 몇 번은 서로의
안부를 묻고, 또 2008년 암 발생 전 내가 주선해서 내가 다니는 월성성당(대구에서 규모가 제일크다)에서
초청 특강을 한적이 있다. 대부분 참석자가 중년 이상이라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100분의 시간이
짧을 정도로 동서양를 넘나들며 그의 박학다식한 재주를 마음껏 끄집어 내어 참가자들을 울고 웃게 만들고
끝에는 귀감이 될 만한 결말까지 만들어 뿌듯한 특강이였다고 이구동성으로 그를 환호한 기억도 있다.
그런 그가 병마를 이겨 내지 못하고 하느님 품 안에 갔다.한국 문학계에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병 중에도 그는 글 쓰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천주교 서울대교구에서 발행하는 서울 주보에 그의 고정난
"말씀의 이삭"을 만들어 매 주 한편의 칼럼을 씃다.그 중 재미있는 두편을 소개해 보면 먼저 성모님을 향한 베드로의
기도 (막무가내 때쓰기 기도)는 "아이고 어머니,엄마, 저 글 쓰게 해주세요.앙앙앙앙. 아드님 예수께 글 좀
쓰게 해 달라고 일러 주세요. 엄마, 오마니,때가 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아드님은 오마니의 부탁을 거절하지는
못하실 것입니다.앵앵앵앵. 오마니, 저를 포도주로 만들게 해 주세요." 또다른 한편은 "주님, 이 몸은 목판 속에
놓인 엿가락 입니다. 그러하오니 저를 가위로 자르시든 엿치기를 하시든 엿장수이신 주님의 뜻대로 하십시오.
우리 주 엿장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또 샘터에 인기리에 연재된 "가족"에서는 "아아, 나는 돌아가고 싶다.
갈 수만 있다면 가난이 릴케의 시처럼 위대한 장미꽃이 되는불쌍한 가난뱅이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중략)
그리고 참말로 일.어.나.고.싶.다."고 했다.최인호(베드로)는 그기가 어디든 지금도 계속 글을 쓰고 있는 듯 하다.
그는 글 못 쓰는 배고픔을 가장 두려워 했다.도회적인 단편과 이야기가 풍부한 장편을아우른 작가이며 삶을 통찷하는
혜안과 인간읋 향한 애정이 녹은 글을 써 많은 국민의 사랑을받은 이 시대 최고의 작가였다.
최인호(베드로,반석) 당신의 세례명대로 하느님 나라에 먼저 가셨으니 나중에 갈 해방둥이의반석이 되리라 믿고
고인의 영혼에 그리스도의 부활이 함께하기를 빕니다. 대구의 최영식 보나벤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