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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당시에 건달세계는 춘추정국시대였다. 한때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대대적으로 깡패소탕작전이 있었지만 그것도 그때뿐이였다.
지금시대에는 참으로 우스운 이야기지만 그시절에는 법보다 주먹이였고
주먹보다 깡패가 우선시 되는 시대였다.
상대편 조직에게 습격을 받고 난자가되도 경찰에 일절 신고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잔혹하게 보복을 했을뿐... 그시절에는 신고자체를 하는것만으로
양아치 3류건달 족보없는 건달로 불려지었다.
업주 사장들도 금전적으로는 피해를 봤지만 그만큼 막강한 힘을
행사해왔고 조직에 보스와 거의 동급으로 동생들에게 형님소리를
들었다. 흔히 말하는 빽이 생긴 것이다.
그때 당시에 전쟁이라고 해봤자 패싸움 개념이 아닌 상대편 구역에서
잠복해있다가 표적이 되는 조직원을 골라서 칼침을 넣고 게릴라 작전처럼
치고 빠지는 전쟁이였다.
습격을 받은 OB파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먼저 칠성파가 습격을 해올지는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였다. 하지만 양은이파와 칠성파가 공조한 습격을
알아차린 OB파 보스 이동재씨는 더욱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OB파 보스 이동재씨도 서울로 진출을 여러번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걸림돌은 양은이파였다. 전쟁을 해서라도 서울로 올라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쉽사리 결정을 짓지 못하고 세월을 보냈다.
부하 4명이 칼침을 맞고 광주에 병원에 입원을 했다.
소식을 들은 담당구역 형사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부하들은 산에서 놀다가 멧돼지에게 당했다는 거짓말을 했다.
눈치를 챈 형사들은 비상사태에 들어갔다.
조양은 김태촌씨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이동재씨도
경찰서에 가는 날이면 경찰서장실에서 조사를 받는다.
그만큼 막강한 파워가 있었다. 지금은 참 웃긴 얘기지만
군사정권시절에는 주먹이 곧 힘이되는 시대였다.
범죄를 저질러 교도서에 들어가는 날이면 교도소 한동을 통째를 주었다.
거물급 보스가 교도소에 온다는 소식은 보통 3~5일전에 미리 연락을 받는다.
교도소도 바짝 긴장하고 그안에 수감된 조폭들도 바짝 긴장을 하고 있었다.
뉴스에서 황제 교도소 수감자 라고 보도되었던 조양은씨와 김태촌씨는
교도소에 수감될 당시 핸드폰이며 담배며 술이며 마음대로 누리고 다녔다.
지금 인터넷을 뒤져봐도 그사건이 나올것이다. 이건 한치에 거짓없는
실화이다.
OB파는 전면전에 돌입한 상태였다. 무조건 5인1조로 다니기, 연장은 화장실에
갈때도 차고 다니기 수상한 냄새가 나는 놈들은 무조건 박살내기
나름 지침을 내렸다.
그렇게 기회를 엿보고 있던중 조양은이 이동재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 내용은 이제 슬슬 여기서 끝내자라는 내용이였다.
하지만 이동재는 우리가 당한만큼 복수하기 전에는 절대 이싸움은
끝나지 않을거라고 엄포를 했다. 조양은은 자서전 어둠속에서.....에서
그당시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동재가 많이 유명해졌지만 그건 나와 태촌이가
교도소에 수감될때 그렇게 된거야..내가 광주에 일있어서 내려가면
형님하고 달려오던 놈이 너무 건방져 진거야...교도서에 있다가 출소해보니
완전히 동재천하더라고...그리고 내가 2년 선배고...나를 형님으로 불르던 놈이
그렇게 싸가지가 없어져서........이번참에 혼한번 내줄라고 한거지"
천하를 호령할것 같던 이동재도 이시절에 지금도 80년대 조폭사에서
빠지지않고 나오는 사건중 하나가 이동재 은퇴사건이다.
조양은은 특공대 5명을 광주로 보내 자고 있던 이동재를 난자했다.
그 일로 이동재는 은퇴아닌 은퇴를 하고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이동재가 없어진 OB파는 그야말로 고삐풀린 망아지였다.
서로 눈에 보이지 않는 세력두툼을 벌이고 있던 것이다.
결국 OB파는 구OB파 신OB파 광주 무등산파로 나누어졌다.
3대패밀리에 한축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일이 지나고 몇년후 이른바 3년전쟁이라는 큰사건이 터졌다.
조양은이 형님으로 모시고 있던 번개 오종철을 김태촌이 불구로 만들어
버린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둘은 숙명처럼 3년간 치열하게 전쟁을 치렀다.
야인시대에도 나왔던 천안불곰 조일환씨가 여러번 중재에 나섰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양은이파와 서방파는 3년동안 치열하게 전쟁을 했다.
어느 호텔에 서방파 조직원들이 있다는 첩보가 들어오면 양은이파
조직원들이 달려가 칼침을 놓았고 반대로 양은이파가 어느 호텔에 있다는
첩보를 들으면 서방파가 칼침을 놓았다.
조양은이나 김태촌이나 전국구 보스이지만 교도소 생활도 오랜기간 했다.
청송교도소에 있을때에는 같이 수감 생활을 했다.
그때 조양은과 김태촌은 화해를 했고 먼저출소하는 사람이 뒷바라지를
해주기로 약속을 했었다. 먼저 출소한 조양은은 약속을 어기고
서방파 본거지를 여러번 습격을했다. 조양은 자서전에서 "아무리
용서를 할려고 해도 내가 어릴적 부터 형님으로 모시던 형님을
그렇게 만들었으니 용서가 안돼지"라고 심경을 말했다.
뒤늦게 출소한 김태촌도 약속을 어긴 조양은에 양은이파를 습격하고
3년동안 치열하게 전쟁을 했다. 그당시에 조일환은 자서전 불의아들에서
한참 동생들이지만 솔직히 무섭기도 했다고 말했다.
용팔이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용팔이 김용남씨는
김태촌씨와 고교시절 화신 8인조라는 써클활동을 했었다.
다방을 본거지로 두고 매일 싸움을 하러 다녔다고 한다.
그당시에 김태촌은 깡으로는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처음은 같이 시작했지만 김태촌은 서울로 상경을 하고 용팔이 김용남씨는
전주파를 결성 전주파 보스가 된다.
영등포를 지배하던 대호파가 있다. 뉴스에도 나왔던 유명한 이상훈씨가 보스로
있던 영등포 사창가를 중심으로 활동한 유명한 조직이였다.
이조직만큼은 서방파와 양은이파도 쉽게 건드리지 못하는 조직이였다.
하지만 대호파도 한순간에 무너지는 사건이 있었다.
조양은과 김태촌보다도 족보로 따지면 선배인 이상훈은 두명을
자기보다 윗급으로 인정해주지않았었다.
조직원 20명과 이태원 캐피탈호텔 나이트 클럽에서 술을 먹고 있던중
반대편 룸에서 술을먹던 양은이파 조직원들과 시비가 붙게 된것이다.
그호텔을 관리하던 곳은 양은이파가 봐주고 있던 정남이파가 관리하던
곳이였다. 조직원들과 조직원들에 사소한 말다툼이 생겼고
그 현장을 본 이상훈은 양은이파 조직원들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했다.
양은이파 조직원들도 대호파 보스 이상훈에 얼굴을 안것이다.
족보로 따지면 대선배인 사람에게 대들수도 없던 것이다.
몇일후 그이야기를 들은 조양은은 이상훈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 그때 때린 동생들에게 사과를 하라고 말했고
이를 거절한 이상훈에게 앞으로 조심하라고 말했다.
조양은은 부하들을 시켜 이상훈을 혼내주라고 말했다
이상훈은 이동을 할때나 어디를 갈때 부하들 10명을 대동하고 다녔다.
종로호텔에서 고향후배인 안토니파 보스 안상민과 만나고 있을때였다.
종로에 이상훈이 있다는 첩보를 들은 양은이파 조직원들은 종로호텔로
달려갔다. 안상민과 얘기를 끝내고 이상훈은 먼저 자리를 일어섰고
안상민은 동생들과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양은이파 조직원들은
얼굴을 햇갈려했고 안토니파 보스 안상민씨를 공격한것이다.
하지만 종로호텔은 안토니파 본거지 였고 로비를 지키고 있던
안토니파 조직원들에게 제압을 당했다.
양은이파 조직원들은 안상민씨를 제압당한순간까지도 이상훈씨로
착각을 햇다. 안토니파 조직원들이 배후를 묻자 양은이파라 말했고
분노한 안토니파는 양은이파와 전쟁을 선포했다.
제압당한 양은이파 조직원들은 순순히 풀어주었다.
안상민은 조양은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당장 종로호텔에서 사과하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말했다.
사건에 내용을 모르던 조양은은 한참후배뻘인 안상민에게 오히려
역성냈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안토니파는 서방파와 연계해
양은이파 본거지인 무교동 엠파이어 호텔로 쳐들어갔다.
이 사건이 그당시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외제차를 타고 도피하는 전국구 보스 사건에 시작이였다.
3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