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 묘향에서 한라 무등까지 이 땅의 산길
이영록 책 <인터넷 교보문고>
우리가 어느 길을 가든 미련과 회한은 남기 마련일 것이다. 만약 그 선택지에서
멈추어 설 수 있다면, 그때는 가지 않았음에 대한 미련이 남을까?
산 따로 길 따로 없는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므로 등산으로서의 산길은 아마도 대학 시절
제주도 한라산의 답사길이 처음이 아니었던가 싶다. 장비도 변변치 못했지만 젊은 날의 낭만과 희망만으로
동무들과 어깨를 기대면서 즐겁게 한라산을 오르내리며 겪었던 것들이 지금껏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는다.
2000년 9월 남북한 백두산·한라산 교차관광 행사에 운 좋게 남쪽 100인 대표단에 끼어 그곳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러다 2018년 가을 남북 두 정상의 천지 회동을 목도하면서 문득 내가 지금껏 지나온 산길을 더듬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기록이 있는 것을 중심으로 그동안의 족적을 정리해 봤다.
그러나 세월에 장사 없다는 옛말을 증명이나 하듯 이제는 높은 산이 아니어도 오르는데 숨이 차서
한 번 쉬던 길을 두 번, 세 번 쉬던 것을 네댓 번을 나누어 쉬면서 오르고 있다. 또한 산은 올랐으되 기록으로
남기지 못한 지리산과 설악산을 더 힘이 빠지기 전에 한 번이라도 올라서 산 이야기에 보태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체력의 한계나 시기상의 제약으로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쉽다.
‘길 위의 사람, 그가 지나온 이 땅의 산길’이던가.
이영록 책 ‘백두 묘향에서 한라 무등까지’에서 <인터넷 교보문고>
이영록은 1945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광주고, 서울대 문리대, 연세대 경영대학원(경제학)을 졸업했다.
1969년부터 동아일보 기자로 일하다가 1975년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의 ‘동아 광고 탄압 사태’로 해직되었다.
이후 대한상공회의소 상무이사, 사무국장, 상의역(고문) 등을 지낸 후 2005년 봄 은퇴하였다.
백두산 둘러보기를 주제로 『백두고원에서 만난 희망의 돋을 풍경』이란 북한 관광기를
책자로 펴냈다. 남북 분단 이후 남쪽 인사가 직접 보고 들은 최초의 백두산 이야기인 셈이다.
그 후 방송위원회 심의위원, KBS 경영평가위원(2004, 2005), 한국토지공사
사외이사(2005~2008) 등을 지냈으며, 현재는 다산연구소 자문위원으로 있다.
- 맛보기 -
<백두산> 정말 장관이었다. 며칠 전 초대소 매대에서 이발소 그림처럼 촌스럽고 호들갑스럽다고 느껴졌던
백두산 해돋이 그림의 색깔이 전혀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 붉은색, 노란색 등 원색들이 어우러져 빨갛게 빛을
발하는 천지의 일출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용광로에서 이글거리는 쇳물의 빛깔처럼 붉은 놀이
천지 주위에 널리 번져 나가고 그 놀빛을 받은 연봉들이 같은 색깔로 붉게 물들고 있었다.
<묘향산> 다소 과장된 이야기겠지만 폭포의 숫자가 1만 개나 된다고 해서 붙여진 만폭동. 향로봉 남쪽 비탈면
계곡 사이로 등산로가 잘 닦여져 있었다. … 실로 천만 가지 물의 조화가 이곳에 모두 모여 있는 듯했고,
낙수 소리에 귀만 잠깐 기울여도 저절로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울울창창한 소나무 숲을 끼고 흘러내리는
세찬 물줄기, 그리고 그 옆에 널려 있는 너럭바위들이 어우러져 묘향 계곡은 거대한 하나의 심포니를 연주하고 있었다.
<무등산> 광주의 남동쪽에 우뚝 솟아 있는 무등산은 해발 1,187미터. 평야 지대에 자리한 산치고는 결코 낮지 않다.
무등산은 이 지역의 진산으로 삼국 시대 이래 백성의 숭배와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만큼
이름도 많고 해석도 분분하다. … 우리는 꼬막재 쪽으로 내려가야 했기 때문에 서석대 쪽 길을 취했다. 그곳에서
서석대까지는 500여 미터. 햇살에 반짝거리는 주상절리(柱狀節理. 암괴나 지층에 있는 기둥 모양의 절리가
지표에 수직으로 형성되어 있는 형태) 지대가 병풍처럼 늘어선 풍광에 저절로 탄성이 나온다.
<관악산> 평소 같으면 밋밋하기 짝이 없을 산길이었을 텐데, 쌓인 눈 덕분에 전후좌우가 온통 전인미답의 눈밭이어서
실크로드는 저리 가라였다. 다들 나이를 잊은 듯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소년인 듯 소녀인 듯 째지는 기분을 백설부
(白雪賦)로 담아 냈다. 아직 눈길이 얼어붙지 않아 올라가는 동안에는 굳이 아이젠을 차지 않아도 될 듯 싶었다.
바위 능선이 끝나는 야영장 길로 접어들어 마당바위에서 호흡을 한 번 조절하고 삼막산 능선길로 접어들었다.
<오봉산> 오봉산의 산색은 춘삼월이라고는 하나 봄 날씨와는 아직 거리가 멀었다. 파릇파릇 연두색으로 돋아나는
새잎 대신 골짜기에 남은 잔설들에 섞인 숲의 나무들은 무채색 톤 일색이었다. 오봉 오르는 능선 양쪽으로는
낭떠러지가 무명 치마폭처럼 강퍅하게 펼쳐져 있어 약간의 현기증이 날 듯했지만 예전에 비해 로프와
난간 등으로 등산로 정비가 비교적 잘 돼 있어서 큰 어려움 없이 암릉 산행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