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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과학사적 업적]
[삼국시대]
◇ 뛰어난 금속기술의 발달 :
○ 성덕대왕 신종(聖德大王神鐘, 국보29호)
-높이3.78m 아래지름2.27m, 경덕왕이 아버지(聖德王)를 위해 구리12만근을 써서 만들었음.
-일본으로 전파되기도 함.
○ 첨성대(瞻星臺, 국보31호) : 신라 27대 선덕여왕 대 약 633년에 세워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관측시설로 꼽힘.
전체적으로 보아 호리병 모양이며, 기단부, 원통부, 정(井)자형의 상단부 등 세 부분으로 되어있음.
원통부는 총27단으로 되어있으며 높이는 8.05m 호리병모양으로 아래는 넓고 위는 좁다.
제13-5단에 걸쳐 정남에서 동쪽으로 16o의 방향으로 창이 나 있다.
창밑의 내부는 돌멩이로 채워져 있으며 그 위는 비어 있다.
창문 하단 평평한 판석에는 사다리를 걸쳤다고 생각되는 홈이 창문 양단에 파여 있고, 맨 위 27단에는 내부 동쪽에 평평한 판석이 걸쳐 있으며 서쪽에는 목판을 얹어 놓을 수 있을 정도의 홈이 파여져 있다.
상단부는 상하 2단으로 정자형(井字形)으로 짜여진 길다란 바위가 얹혀 있다.
높이는 64cm, 내부는 220x220cm의 공간을 이룬다.
위쪽은 원모양이고 아래쪽은 모난 모양이 동양특유의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우주관을 상징한다는 설, 원통부 27단이 선덕여왕이 신라 27대 왕임을 뜻하고, 그 중에서 중앙 창문 부분을 뺀 24단은 24절기를 상징하며 석재의 총수 365개가 1년의 일수와 맞는다는 설, 또 술병형의 모양이 사인(sine)곡선과 일치하고 계절에 따른 태양고도에 맞추어서 축조되었다는 설 등 여러 가지 흥미있는 해석들이 있다.
그러나 가운데 뚫린 공간으로 사람이 오르내리며 천문관측을 하였다는 옛 문헌의 기록과 현재의 구조로 보아서 소박한 천문관측대였을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
-삼국사기에 수백개의 천문 기상 관계 기록이 남아 있다.
◇ 건축기술의 발달 :
○황룡사 9층탑-80m 정도의 나무 탑
○ 석굴암-산기슭에 돌을 쌓아 인공적으로 만든 특이한 것. 돔 모양의 주실
○ 불국사의 석가탑, 다보탑
◇ 인쇄술 :
○ 경주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다라니경(국보 126호)
-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8세기 전반의 것으로 추측
[고려시대]
○ 고려시대에도 첨성대가 있었음: 개성 만월대 서쪽에 남아 있는 이 첨성대는 약 3m 평방의 돌로 만든 건조물로만 남아 있음.
-고려는 삼국시대에 이룩하지 못했던 천문학적인 자립을 이룩한 것이 확실.
-남아 있는 유적은 없으나 [고려사]등에 남아 있는 기록을 보면 그 당시 천문학적 수준을 엿 볼 수 있다.
-일식예보
○ 曆法의 발달: 고려역법은 그 기본적인 틀이 822년 당이 만들어 사용했던 宣明曆이었다. 1343년에 수시력 계산에 필요한 수표가 완성.
-천문역산의 놀라운 발달이 고려말에 있었기 때문에 조선초의 [七政算]등이 나오게 된 것.
◇ 인쇄술
- 13세기 세계에서 처음으로 금속활자 인쇄기술을 창안하여 사용하기 시작.
○ 목판인쇄기술-해인사의 국보 제23호인 대장경판:81,258판, 목판하나는 가로 65cm, 세로 24cm, 두께 4cm 이며 양쪽에 각목을 끼우고 네 귀퉁이를 청동판으로 둘러 못 박은 모양으로 되어 있다.
각 판의 무게는 약 3kg 전후이고, 한 면에는 한 줄에 14자씩 모두 23줄이 새겨져 있고 양면이 모두 그렇다: 700년 이상 변함 없는 목판을 만드는 기술과 해인사의 경판고 또한 통풍이 잘되어 습기를 자동 조절하게 되는 합리적 구조를 갖고 있는 보물스런 건축
○ 1234년(고종21년) 강화도에서 [古今詳定禮文]28부를 인쇄: 금속활자 인쇄의 세계최초
-서양보다 2세기 앞선 것.
○ 1377년 청주 덕흥사에서 찍은 [直指心經]이 지금 남아있는 최고의 금속활자 인쇄본.
◇ 요업기술
○ 최무선의 화약발명: 고려 기술사의 뛰어난 업적.
-그 당시 원나라에서 화약이 사용되고 있었으나, 그 제조법은 철저한 비밀로 감추어져 있었다. 최무선은 그런 비밀에 감추어져 있던 화약 제조법을 스스로 연구하여 터득.
-고려의 무기를 화약무기화하는 작업.
[조선시대의 전통과학기술]
-과학기술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조선시대를 보면, 17세기이전의 완전히 전통적인 과학기술의 시기인 전반기와, 그 후 서양의 과학기술이 조금씩 이 땅에 스며들기 시작해서, 특히 19세기에 그것이 상당히 깊은 영향을 주면서 근대과학기술로 옮겨가기 시작한 후반기로 나누어 생각.
-전통적 과학기술에서 가장 눈부신 업적을 남긴 시대 : 세종(재위 1418-1450) : 천문역산분야-천문관계 기구들, 천문도, 시계, 측우기 등
◇ 천문도
○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地圖)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돌에 새긴 천문도.(중국의 [淳祐天文圖, 1247]가 최초). 가로 1m, 세로 2m 가량의 돌에 새겨 져 있음: 1395년(태조4년) 권근이 쓴 발문이 들어있음.
-원안에 적도와 황도, 그리고 1천4백65개의 별을 새기고, 그 주위에 절기마다 남하하는 별 이름을 기록.
-이 천문도가 닳아 희미해지자 이를 흉내내어 다시 만든 석각 천문도가 1687(숙종 13년)년의 것.
-법주사 신법천문도;1742년(영조18년) 8폭 짜리 병풍
-현재 영국 케임브리지 위플과학사 박물관에 소장된 천문도.
- 18세기 초 조선의 관상감 학자들이 만든 것으로 추정.
○ 칠정산(七政算)
- 1442년 세종24년 완성
- 서울을 기준으로 천체운동을 계산해낼 수 있는 체계를 완성해냄으로써 조선의 학자들은 그로부터 모든 천문 계산을 독자적으로 해 낼 수 있었다.
- 세종실록 부록으로 붙어있음-->조선초기 우리조상들은 일식과 월식쯤은 아주 간단하고도 정확하게 예보하는 등 당시 세계에서 가장 수준 높은 천문학을 성취.
- 2세기가 지나서야 이 천문계산술이 일본에 전해짐.
○ 세종은 경복궁의 경회루 둘레에 온갖 천문시설을 갖춰 놓고 매일 5명씩의 천문관이 밤을 새워 천상을 관측하게 했다: 여러 기구 개발-簡儀(천체위치를 정확하게 관측할 수 있는 장치), 簡儀臺(지름이 2m인 큰 간의를 세우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 높이 31尺, 가로47尺. 세로32尺의 큰 규모, 그 위에는 水準장치인 正方案을 설치하여 방향을 바로잡게 해줌.) 圭表(銅表, 태양의 높이를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한 시설)
○ 물시계(自擊漏), 해시계(앙부일구)
○ 측우기(測雨器); 1441년 세종23년에 발명된 세계 최초의 것.--서양의 측우기는 세종의 측우기에 비해서 2백년이나 뒤에 만들어졌음.
--> 중국 것으로 오해!
-측우기에 적혀있는 연도 표시 때문
-현재 이 측우기는 1770년에 제작된 것으로, 현재 보존되어있는 가장 오래된 측우기 임. 연도 추정 시 '乾隆 庚寅五月造'라는 글에서 중국 청나라 연호인 건륭이 있어서 중국 것으로 추정-->서양학자들이 그렇게 인정!
○ 1441년 청계산과 한강에 水標를 세워 흐르는 물의 양을 재게 했음.
○ 지도의 작성: 세계지도, 인문지도(동국여지승람), 측량장치도 개발
◇ 의학의 발달
- 고려시대부터 시작한 한국에 맞는 의학체계의 개발
- 세종때 집대성, [鄕藥集成方]
- 1610년 허준의 [東醫寶鑑]; 당시의 의학을 내경, 외형, 잡병, 탕액, 침구 등으로 분류하여 아주 요령있게 정리.
- 조선말기 李濟馬의 [東醫壽世保元]: 사상의학제시.
◇ 정조 때의 화성의 건축; 정약용의 거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