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中國]
[옮긴 글] 첨부파일 (5)
https://blog.naver.com/knock001/220483498291
중국과 일본의 서울들을 살펴보면서 관중 關中 과 중원 中原, 기내 畿内 와 관동 關東 을 보며 든 생각입니다.
중국의 서울들
사실들
중국사, 나온곳 : 중국위키
중국위키는 위와 같이 중국의 나라들을 말합니다. 가장 큰 특징은 천하를 통일한 조 朝 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입니다. 중국 역사는 흔히 나눠졌다가 어지러운시대, 난세] 합쳐졌다가 [다스려지는시대, 치세] 하기를 반복하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중국사, 나온곳 : 중국위키
우선 논란의 여지가 많고 사실이라기엔 불명확한 초기와 왕조가 끝나는 후기를 빼고, 한나라 이름으로 그래도 묶을 수 있는 통일기 [빨간색] 와 여러 나라가 병존한다고 할 수 있는 분열기 [주황색] 로 나눠 보았습니다.
서울들, 나온곳 : 중국위키들
그리고 앞서 보신 중국위키의 각 나라들을 클릭하시면 각 나라의 서울과 그 기간이 뜹니다. 물론 서울의 구체적인 이름은 시대마다 달라도 같은 곳을 지칭한다면 같은곳으로 확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를 나눠보았습니다.
이를 보시면 처음에는 관중>낙양 의 도식이 자주 보입니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원, 명, 청 의 북경이 자주 또 길게 보이며 오늘날까지 이어집니다.
서울들
이를 그림으로 그리면 이렇습니다.
그분석
서울들
그리고 이를 둘로 나눠보면 이렇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앞에 관중>낙양 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가는 시기가 있고, 뒤에 북경을 중심으로 도는 비교적 안정적인 시기가 있고 사이에 위진남북조, 오대십국, 거란과 송처럼 분열기가 있습니다. 점 [시작점] 으로 되어 있어 관중, 낙양, 북경 이 잘 안 보이시는데, 선으로 되어 있다면, 보다 그 길이를 짐작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지키는산과 부유한바다
관중 과 중원
우선 중국은 관중과 중원이란 평야로 나눠집니다. 그리고 중원의 북쪽 북경, 남쪽 남경, 서쪽 낙양으로 나눠집니다. 그리고 작게는 관중의 안밖을 나누는 함곡관이 있고 크게는 중원의 안밖을 나누는 산해관이 있고 그 너머 만주가 있고 거기에 성경이 있습니다.
폴 케네디의 강대국의 흥망은 경제력이 군사력을 낳는다는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여러 지역들 가운데 관중은 드넓은 바다쪽이 아닌 좁은 산쪽에 있습니다. 그 이유는 관중 關中 [관문 가운데] 라는 말처럼 군사적 원인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이에 관한 내용은 사마천의 사기에 자주 나오며 약간 상관없지만 고구려, 백제의 서울이 선정되는 원인에대해 아래에 옮깁니다.
주몽은 마침내 그들의 능력을 헤아려 각각 일을 맡기고, 함께 졸본천(卒本川)[『위서』에서는 ‘흘승골성(紇升骨城)에 이르렀다.’고 이른다.]에 이르렀다. 그곳 토양이 기름지고 아름다우며, 산하가 험하고 견고한 것을 보고 마침내 도읍으로 정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궁실을 지을 겨를이 없었으므로 다만 비류수(沸流水)가에 초막을 짓고 살았다.
졸본 서울 이유, 나온곳 : 삼국사기
“신이 돼지를 쫓아 국내 위나암에 이르렀습니다. 그곳의 산수가 깊고 험한데다 땅이 오곡을 키우기에 알맞고, 게다가 고라니와 사슴, 물고기와 자라 등 산물이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임금께서 만약 그곳으로 도읍을 옮기시면 백성의 이익이 끝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전쟁의 걱정도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국내성 서울 이유, 나온곳 : 삼국사기
비류가 바닷가에 거처를 정하려고 하자 열 명의 신하가 말하였다. “이 하남의 땅은 북쪽으로는 한수(漢水, 한강)가 흐르고, 동쪽으로는 높은 산이 둘러있고, 남쪽으로는 비옥한 들판을 바라보고, 서쪽으로는 큰 바다로 가로막혀 있으니 얻기 어려운 요새라 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 도읍을 정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백제 서울 이유, 나온곳 : 삼국사기
모두 땅의 비옥함 + 산세의 험악함 을 이야기하여 경제 + 군사 로 보입니다.
중국은 서쪽 티벳을 중심으로 서고동저고, 우리는 백두산을 중심으로 동고서저로, 황해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산쪽으로 갈수록 산세가 험해지고 바다쪽으로 갈수록 땅이 비옥해집니다.
티벳과 백두산 그사이의 노란바다
이렇게 보시면 관중이 무슨 의미인지 아실 수 있습니다. 티벳에 서울을 세우면 산세가 험해서 방어엔 좋지만 경제적으로 어렵습니다. 반면 바닷가 상해에 서울을 세우면 경제적으론 장강 + 절강 + 바다 + 하류의땅 을 가지지만 지키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완전 산도 아니고 완전 바다도 아닌 그 사이쯤에 서울을 세우게 됩니다.
마치 영주의 성의 조건이 좋은영지와 가까이 높은성처럼 말입니다. 보통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곳으로 흐름으로, 상류는 오지고, 하류는 경제적 공간이고, 중류에 정치적 중심지를 놓을 수도 있습니다.
티벳은 산이요 지중해 는 바다다.
티벳의 가까이 서울들
인도의 뉴델리는 갠지스강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있지도 인더스강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있지도 있습니다. 물론 인더스 대부분과 갠지스하구는 오늘날 영국의 영향으로 이슬람의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의 땅입니다. 인도의 전통적인 서울을 보시면 그 이전에도 완전 바다인 인더스와 갠지의 하구가 아닌 티벳 고원과 데칸 고원 사이의 인더스와 갠지스 상류쪽 [정확히는 갠지스 중상류] 인 델리 근처인 경우가 많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의 카불이나 인더스에 자리한 파키스탄의 이슬라마바드, 미얀마의 네피도, 라오스의 비에티안 [이경우는 국토의 대부분이 산이라서 선택의 여지가 없지만], 캄보디아의 프놈펜, 베트남의 하노이 처럼 산과 바다 사이의, 대개 분지 안에서 산에 기대서 평야와 만나는 공간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즉 분지가 있다면 그 분지 정중앙의 논밭이나 바다와 만나는면의 가운데가 아닌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대개 분지의 둘레인 산에 기대서 평야와 접하게 서울을 씁니다. 물론 서울이 완전 강 상류 [산꼭대기] 나 강 하류 [항구 도시] 가 아닌 강 중류 [산과 평야 사이] 를 꼭 택하는 것은 아닙니다.
유럽의 서울들
티벳 동쪽에 티베이란 산이 있다면, 유럽에는 지중해란 바다가 있고, 산은 거의 없고 판판한 편입니다. 따라서 앞서와 같은 조건은 잘 맞지 않습니다.
국토의 2/3 정도는 산인 티벳동쪽과 이곳의 대부분이 평야입니다.
관중이 산을 둘렀다면 콘스탄티노플과 베네치아와 잉글랜드는 바다를 둘렀고 따라서 어차피 대부분이 평야니 그냥 물자를 실어 나르고 병력을 보내기 쉬운 나라 가운데나 아니면 아예 바닷가 항구나 절충점인 강 중하류나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자세한 논의는 이글과 관심을 벗어나니 마치도록 하겠으며 티벳 가까이와는 다르다는 점은 분명히 아실 수 있습니다.
성은 성벽과 해자로 구성됩니다. 그리고 성벽은 산으로, 해자는 강과 호수와 바다로 대체가 됩니다. 따라서 티벳동쪽은 산을 성벽으로 삼았고, 지중해는 바다를 강과 호수와 바다를 해자로 삼은 느낌으로, 다릅니다.
한양, 나온곳 : 우등생전과
오늘날과 굉장히 가까운 시기임에도 성벽이 있고, 산이 실제에 비해 굉장히 과장되게 그려져 있어, 그 중요성을 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콘스탄티노플, 나온곳 : 위키
느낌이 다릅니다. 강과 바다가 굉장히 과장되게 그려져 있고 마치 감싸듯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역시 성벽과 망루가 보입니다.
Star Fort, 나온곳 : 위키
대포가 나온뒤 성벽을 맞기 힘들게 낮추고, 뚫리기 힘들게 두껍게 하고, 대포를 쏘기 각이 잘 나오게 별 모양으로 만듭니다. 그림이 비교적 정확합니다. 즉 이런 후기까지도 성벽, 즉 도시의 방어적 역할은 중요시되었고, 역시 산은 안 보이고 해자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지중해 쪽 중세 도시들을 보실 수 있고, 위의 찾는말에서, city 대신에 원하는 도시를 넣어서 찾아보시면 대개 그림이 나옵니다.
바다로 바다로
중추원 학사 이직(李稷)이 말하였다. “도읍을 옮기고 나라를 세우는 곳에 대하여 지리책을 상고해 보니, 대개 말하기를, ‘만갈래의 물과 천봉의 산이 한 곳으로 향한 큰 산과 큰 물이 있는 곳에 왕도와 궁궐을 정할 수 있는 땅이라.’ 하였습니다. 이것은 산의 기맥이 모이고 조운이 통하는 곳을 말한 것입니다. ... 무악의 명당은 신도 역시 좁다고 생각합니다.”
한양이야기, 나온곳 : 조선왕조실록
물 + 산 으로 설명하고 있고, 반대하는 말이긴 하지만, 조운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첨서중추원사(僉書中樞院事) 하윤(河崙)이 말하였다. “우리 나라 옛 도읍으로 국가를 오래 유지한 것은 계림과 평양 뿐입니다. 무악의 국세(局勢)가 비록 낮고 좁다 하더라도, 계림과 평양에 비하여 궁궐의 터가 실로 넓고, 더구나 나라의 중앙에 있어 조운이 통하며, 안팎으로 둘러싸인 산과 물이 또한 증빙할 만하여, 우리 나라 전현(前賢)의 비기(秘記)에 대부분 서로 부합되는 것입니다. 또 중국의 지리에 대한 제가(諸家)들의 산과 물이 안으로 모여든다는 설과도 서로 가까우므로, 전일 면대하여 물으실 때에 자세히 말씀드렸습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임금이 일어남에는 스스로 천명(天命)을 갖고 있는 것이나, 도읍을 정하는 일은 경솔하게 논의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한때의 인심에 순응하여 민폐를 덜려면 송도에 그대로 있을 것이요, 전현(前賢)의 말씀에 의하여 만세의 터전을 세우려면 이보다 나은 곳이 없습니다.”
한양이야기, 나온곳 : 조선왕조실록
역시 천도에 따른 민폐를 기본적으로 말하지만, 1. 나라의 가운데 있음 2. 조운이 편함 3. 산세를 보고 있고, 조운의 중요성이 보입니다.
여기서 굉장히 중요한 점은 산세 [국세局勢] 가 낮다는 점입니다. 고구려의 첫도읍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드높은 백두산 쪽이나, 강력한 중원과 먼 동남쪽 산세 너머 계림 쪽에비해, 방어상으로만 보면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국세가 비록 낮고 [방어력 하락], 좁지만 [경제력 하락], 조운으로 날라 쓰면 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가져오면 됨, 경제력의 의미 변화]
즉 옛날엔 영주가 좋은 영지 가까이 높은성을 쌓고 그 농작물을 취했다면, 이제 전국적으로 여러 성들에서 날라오면 되고, 따라서 경제력의 의미가 땅 > 날라옴 으로 변하게 됩니다.
정당 문학(政堂文學) 정총(鄭摠)이 말하였다. “도읍을 정하는 것은 옛날부터 어려운 일입니다. 천하의 큰나라 〈중국 〉도 관중(關中)이니 변량(汴梁)이니 금릉(金陵)이니 하는 두어 곳 뿐인데, 어찌 우리 작은 나라로서 곳곳에 있겠습니까? 주나라가 관중(關中)에 도읍하였고, 진(秦)나라가 대신하여 관중(關中)에 도읍하였으며, 진 나라가 망하고 한 나라가 대신해도 역시 거기에 도읍하였으며, 변량은 5대(代)가 도읍하고 금릉은 6조(朝)가 도읍한 곳입니다. 도선(道詵)이 말하기를, ‘만약 부소에 도읍하면 세 나라 강토를 통일해 가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전조는 시조 왕건(王建) 이전 3국이 정립할 때부터 3국을 통일한 이후에 단지 개성에 도읍하였는데, 왕씨가 5백 년에 끝나는 것은 운수(運數)이며 지리에 관련시킬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주 나라·진 나라·한 나라가 서로 계속해 가면서 한 곳에 도읍한 것을 보면, 비록 개성이라도 해가 없을 것 같습니다. 구태여 여기를 버리고 다른 곳을 구하려면, 다시 널리 찾아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무악의 터는 명당이 심히 좁고 뒷 주룡(主龍)이 낮으며, 수구(水口)가 쌓이지 않았으니, 길지(吉地)라면 어찌 옛사람이 쓰지 않았겠습니까?
한양이야기, 나온곳 : 조선왕조실록
기본적으로 왕씨가 망한 것은 땅의 덕이 아닌 운수라는 생각으로 반대의견 입니다. (王氏之終於五百年, 以其運數, 而不必係於地德) 그럼에도 관중의 역사적 중요성에대해 언급하고 있으며 변량 [오대와 송나라의 낙양 옆 개봉] 과 6조
주룡에 낮다는 표현도 들어옵니다.
좁다는 표현도 반복됩니다.
임금이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송경 인들 어찌 부족한 점이 없겠는가? 이제 이곳의 형세를 보니, 왕도가 될 만한 곳이다. 더욱이 조운하는 배가 통하고 〈사방의〉 이수도 고르니, 백성들에게도 편리할 것이다.”
한양이야기, 나온곳 : 조선왕조실록
형세 + 조운 + 이수 가 고려되고 있습니다. 즉 방어에 좋고, 물자를 가져오기 쉬우며, 가운데 있음이 고려됩니다. 이렇게 태조 때 한양으로 정해지지만 옮기진 못합니다.
임금이 여러 재상들의 제시한 의논이 대개 천도(遷都)를 옳지 않다고 한 까닭에 언짢은 기색으로 말하였다.
한양이야기, 나온곳 : 조선왕조실록
천도는 왕은 좋아하고 신하들은 싫어하며 오늘날 노무현대통령의 천도와 헌재의 반대처럼 왕은 좋아하고 그 성 [도시] 에 살던 신하들은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계룡산
계룡산은 서울에서 입대할 때 논산육군훈련소를 가는 곳에 있습니다. 사비, 웅진, 계룡산, 전주 등은 모두 전라도 평야라는 드넓고 적도와 가까워 비옥한 평야를 영지로한 금강 등의 강 [길, 병력, 물자 이동] 을 따라 자리잡은 성으로 보입니다. 동남쪽 산 건너 계림과는 전혀 다릅니다.
참고로 북쪽에 사비, 웅진 등이 있다면 남쪽으로는 신라말 장보고의 청해진이나 왕건이 공략한 나주가 있습니다.
만약 서해안 평야의 물자나 중국과의 교역품이 계림으로 간다면 이곳 남쪽을 거치게 됩니다.
또 강력한 중원과도 산으로 겹겹히 감싸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전라도 평야란 영지와의 공급이 끊길 위험도 적습니다. [물론 해군이 강력하다면] 물론 차리리 외교적 방법이 훨씬 효과가 좋을 수도 있습니다.
한양
한양은 서북평야와 서남평야 모두와 가깝고 그곳의 물자를 나르기도 쉽고 병력을 보내기도 쉽습니다.
서북 [궁예, 묘청, 홍경래], 서남 [견훤, 동학] 같은 평야지대를 반란군이 차지해도, 가까워 가서 제압하기도 쉽고, 한쪽은 괜찮아서 서울로의 식량 공급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즉 계림에서 국내의 견훤[서남]이나 궁예[서북] 같은 서쪽평야에 기반한 반란을 토벌하긴 어렵지만, 한양에서 조기진화가 가능하며, 조운도 보다 거리상으로나 또 남북 두 길이 있어 더 안정적으로 보입니다.
도시화율과 1 인당GDP, 나온곳: 무르의 공방, 원래 나온곳 : 국가통계포털
아담 스미스는 일나누기를 말하며 한사람이 하는 일이 계절에따라 씨뿌리고, 잡초뽑고, 추수하는 식으로 바뀌는 농업보다 한 사람은 철사 늘이고, 한사람은 이를 자르고, 한사람은 핀 머리를 두드리고 하는 식으로 일나누기가 쉬운 상공업이 경제발전에 도움이 됨을 말합니다. 즉 일나누기가 경제발전의 원인이며 농업의 일나누기적이지 않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도시화율과 1 인당 GDP 를 그려보았는데 생각보다 상관있어 보입니다.
즉 지방의 농업이 발전하듯, 서울의 일나누기 [도시화] 가 진행되든, 중세 유럽의 자급자족 봉건적 장원 같은 느낌에서, 물자의 흐름이 있게 되며, 그것은 과거에는 쌍방의 교환의 형식보단 강제적인 세금의 형태가 많았습니다.
따라서 초기에는 좋은도시가 후기에는 좋지않은 도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수나라 대운하, 나온곳 : 위키
앞서 보신 중국의 역사에서 관중과 낙양에 서울을 둔 마지막 통일왕조가 수와 당입니다. 그리고 수와 당은 운하로 유명합니다. 즉 서울의 도시화가 진행될수록 그 운송이 중요해집니다.
함곡관으로 상징되는 중원과 관중을 나누는 관문을 만들어내는 산 사이 황하가 흐르는 좁은 공간은 과거에는 지키기 좋은 관문이었지만 이제는 사람의 목과 같이 됩니다.
즉 여기를 누르면 머리가 몸과 떨어져 나가듯 일나누기가 안되며 말라죽게 됩니다.
마치 성포위가 된 것과 같스니다.
즉 이제 관중은 중원과 떨어져 존재할 수 없게 얽혀 버리며 관문 밖이 아니라 한 몸이 됩니다.
실제로 수당대의 기록들을 찾아보시면 중원에서의 물자 공급이 끊어졌을 때의 끔찍한 기록들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중원은 기본적으로 판판하고 노란흙 [황토] 재질이라 운하를 만들기가 매우 쉽습니다.
다만 관중에 가까워질수록 산이 나오면서 산을 깎아 뱃길을 만드는 일이 됩니다.
즉 운하를 넓히기도 물자가 많아질수록 점점 어렵게 됩니다.
그리고 지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변주 卞州 [개봉] 만 장악해 버려도 물자 공급이 끊어지게 됩니다. 즉 이제 함곡관으로 상징되는 삼문협이 있는 공간만 지켜서는 안되고 그 너머 까지 지켜야 서울이 유지됩니다.
유방은 관중에 서울을 두자 각지의 부자들을 모으고, 도쿠가와 이에야쓰는 에도에 막부를 열자 참근교대제
즉 산 너머에서 배달을 받는 것이 아닌 그냥 산 건너 도시 가까운 곳으로 가서 살면서 배달을 받는 것입니다.
오대십국, 나온곳 : 위키
이제 조 朝 라고 하지 못하고 대 代 라고 합니다. 그리고 개봉 [카이펑] 에 서울을 둔 경우가 많고 아니면 그 옆 낙양인 경우가 많습니다.
방어력이 떨어지다
오대십국, 나온곳 : 위키
오대란 중심이 되는 다섯나라고 십국이란 작은 나라들을 말합니다. 그냥 보시면 다 비슷한 크기입니다. 그러나 앞서 지도와 연계해서 보시면 중원을 오대인 개봉에 서울을 둔 후량이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큐샨 제국, 나온곳 : 위키
이제 인도와 같은 모습이 됩니다. 인도는 북쪽의 티벳 고원과 남쪽의 데칸 고원 그리고 그 사이의 인더스와 갠지스 강이 있습니다. 중심지역은 인더스와 갠지스고 커지면 남쪽의 데칸을 공략합니다.
마치 중국에서 중원을 얻으면 남쪽의 초, 오, 월 로 상징되는 산이 많은 지역을 정복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서울이 관중關中을 떠나 방어력이 약화되자 서울을 비우고 군사를 움직이기도 어려워 져서 남쪽 산악지역에대한 지배력이 떨어지며 외부의 이민족의 침략이 보다 쉬워집니다.
앞서 중원의 처음 낙양에 서울을 두었던 진 晉 은 팔왕의난이란 내분과 영가의난이란 외분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이민족이 침략하는 오호십육국 시대가 열리며 장강을 두른 남쪽 남경에 서울을 둔 한족의 남조와 중원을 차지한 이민족의 북조로 나눠지게 됩니다.
그처럼 당나라 이후 관중을 버리는 오대십국부터는 요, 금, 원, 청 등의 이민족의 침략에 시달리게 됩니다.
낙양 과 개봉
게다가 황하는 왔다 갔다 합니다. 낙양만 해도 우리가 흔히 북망산 간다는 북서쪽 망산과 소림사가 있는 오악의 하나인 남동쪽 숭산 사이로 나름 그릇땅 [분지] 이고 황하의 가지인 이수와 낙수가 흐르지만 개봉은 황하의 본류가 산과 떨어져서 지멋대로 왔다리 갔다리 또 줄었다 불었다를 반복할 수도 있는 공간에 있게 됩니다. 조금만 개봉에대해 찾아보시면 수많은 수해를 입었다거나 여러 차례 그 위에 다시 지어졌다는 식의 이야기가 보입니다.
황하의 퇴적, 나온곳 : 무르의 공방, 원래 나온곳 : 앨런비
원래 글에서도 썼지만 황하가 퇴적되면서 마치가 나일강이 바다와 만나는 삼각지 [델타] 가 커지듯 중원도 커져왔습니다. 특히 연나라가 돋보이는데요. 이는 산해관을 너머 만주족과 거용관을 너머 몽골족의 침입을 유발할 수도 있습니다. [그 지도 들]
이상하게 만주족은 오랜 기간 중국 역사에서 생각만큼 중요시되지 않는데 이때쯤해서 굉장히 자주 나오게 됩니다.
그 한가지 원인으로 황하의 퇴적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안사의난, 황소의난
당나라는 안사의난과 황소의난으로 멸망합니다. 그리고 <안사의난>은 북경쪽에서 일어나며 <황소의난>은 남동부 해안가와 관련이 깊습니다. <안록산>은 아버지가 소고드인이고, 어머니가 돌궐인이며, 총애받는 절도사였고, <연燕>을 세웁니다. <황소>도 처음에는 뜻을 서울에 사는 관리에 두나 실패하고 소금장수를 했고, <제齐>를 세웁니다. 둘다 관중이나 낙양에 서울을 두는데 성공하지만 반란은 실패합니다.
바닷가가 크고 있었습니다.
중심이 관중에서 중원으로 이동해갑니다.
그리고 이제 관중을 가지고 있어도 나머지 지역을 다스리기가 쉽지가 않게 됩니다.
주나라가 처음 봉건제를 할 때는 다른 나라였고, 서한 시기에는 오초칠국의 난이 있을 정도로 중원을 이가 맞물리듯 분봉했고, <후한> 시기에도 "패국 초현 사람 조조"라는 말처럼 왕자들에게 군현 가운데 군을 나눠주어 국을 열도록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당대>에는 행정구역 상에 국國 이란 더 없어지고 황제의 발아래 하나되어 버립니다.
즉 주왕실이나 한조는 관중에 앉아 중원을 나눠서 다스렸다면 이제 중원이 하나가 된다면 작은 관중보다 커다란 중원이 압도하는 것은 시간 문제로 보입니다.
재미난 것은 당나라 행정구역을 보시면 지방을 도 道 [길] 라고 칭하는데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경기도나 일본의 훗카이도 처럼 이름이 됩니다. <더하여 이야기 : 오기칠도>
즉 1 + 1 = 2 입니다. 2 는 자신이 고유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1 - 1 = 0 입니다. 서울이 강해도 둘로 나눠져 싸움을 하면 공격력은 0 이 됩니다. 반면 0.1 + 0.1 = 0.2 로 아주 작은 지방이라도 하나가 되면 이제 0 인 서울을 압도하게 됩니다.
즉 지방의 힘의 차이가 커지고 동질화가 될수록 서울에서 한사람의 왕이 여러 여자들을 만나 여러 아들들을 낳고 생기는 상속싸움등에서 서울이 한번 나눠지기 시작하면 지방이 서울로 하나되어 [그것이 무력에의한 평화협정이란 합의든, 동맹이란 합의든, 합의에의해] 들어오면 서울을 쑥대밭이 될수도 있는 것입니다.
원래 기본질서란 굳건하지만 이런 가능성들이 점점 커지고 그것이 주, 한, 당 을 거치며 점점 관중에서의 지배기간이 짧아지는 하나의 원인이 되는 것 같습니다.
송 과 금, 나온곳 : 위키
앞서 오대를 통일한 개봉에 서울을 둔 송이 만주에 근거한 거란족의 금과 싸우는 모습입니다.
중원을 잃고 역시 장강을 두른 남경에 서울을 두고 남송이 되어 버립니다.
재미난 것은 금나라도 서울을 옮기지만 그 가운데 북경에 두었다는 점입니다.
대운하, 나온곳 :위키
이제 그길에 산이 없어 운하 놓기도 좋습니다.
원명청 의 서울들
요, 금 을 거쳐서 원, 명, 청에 이르게 됩니다.
원, 명, 청은 모두 서울을 북경에 오래 둡니다.
명나라는 남쪽에서 나와 순천부 [북경] 과 응천부 [남경] 을 왔다리 갔다리 하다가 북경에 둡니다. 주원장의 출생지는 장강 북쪽 산동 남쪽이지만 서울은 장강 아래 남경에 둡니다. 서울을 보시면 대략 그 근거지를 아실 수 있습니다.
청세조, 나온곳 : 위키
한족의 명나라 빼고 몽골족의 원, 만주족의 청은 앞서 세지역을 아우릅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만주족인 청세조가 [시황제가 만든 황제로 한족느낌의] 대청황제 면서도 몽골대칸 이라고 중국위키는 말합니다. 즉 한국인이 일본내각총리대신이며 영국수상인 느낌입니다. 이런 모습은 당나라 때부터 보입니다. 당나라는 민족은 하나다라는 식의 민족동화정책 [한족으로의] 을 하던 북위보다 성공적이었지만 관중에서의 장점이 한계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마리아 테레지아, 나온곳 : 위키
이는 이재용이 가족의 장남이며, 에버랜드란 법인의 주주고, 삼성전자란 법인의 주주인 느낌과 비슷합니다. 역시 커다란 평지에 있는 합스부르크의 마리아 테레지아가 신성로마제국여황 + 독일여왕 + 오스트리아 여대공 + 헝가리와 크로아티아 여왕 + 보헤미아 여왕 인 것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즉 여러 인접한 여러 법인들을 그 중심에서 중복적으로 지배합니다.
마리아 테레지아 법인들
마리아 테레지아는 여자로써 상속을 받았기에 상속 싸움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녀의 가장 기본적인 지위는 오스트리아 [게르만] 대공입니다. 마치 박근혜 대통령이 대구 < 경상북도 < 경상도 < 대한민국 으로 지지를 얻듯 말입니다. 마치 이재용이 장외주식인 에버랜드를 완전히 지배하고 점차 근 법인들을 이를 바탕으로 지배해서 커다란 삼성전자까지 느슨하게나마 지배하려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녀는 헝가리 [마자르족] + 보헤미아 [슬라브] + 오스트리아 [게르만] 이 만나는 곳인 빈에서 이들을 모두를 동시에 대표하며 다스립니다.
보헤미아 그릇땅 [보헤미아] + 헝가리 그릇땅 [헝가리] + 알프스동쪽과평야 [오스트리아] + 헝가리남쪽바닷가 [크로아티아] 를 지배하고 또한 커다란 선거제인 그러나 상속되던 신롬을 지배합니다.
그녀는 독일왕이지만, 헝가리왕이지만, 양쪽다 모두 대표합니다. 모두를 대표한다는 것은 아무도 대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를 그 중심에서 다스립니다.
즉 커다란 땅에 자리하면 여러 문화권들이 있고, 이런 무리들을 모두의 대표자를 자임하면서, 다스리는 세계적 지배를 하게 됩니다.
명나라의 행정구역을 보시면 명나라는 남경과 북경을 모두 중시한 것을 아실 수 있습니다. 원, 명, 청 모두 자신의 근거지를 중시합니다. 명의 영락제가 북경에서 군대를 가지고 있었던 것과 청나라가 북경에서 군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한족이 보기엔 달라보일 수 있어도 비슷한 바도 있습니다.
원래 국경선들엔 병력이 모이게 됩니다.
주나라가 관중에 앉아 중원을 나눠서 다스렸다면, 청나라는 보다 보다 넓은 중원으로 나와 중원, 몽골, 만주 가 만나는 점에서 모두를 대표하며 셋을 나눠서 다스립니다.
한줄요약 : 중국의 서울은 지키기 좋은 산에서 사람이 많은 바닷가로 옮겨 갔다.
*[내용이 너무 좋아 옮긴 글 입니다]
한국[韓國]
[옮긴 글] https://blog.naver.com/knock001/220579605198 첨부파일 (2)
우리나라에대해서 옛날 한자로는 한국 韓國 이라고 쓰고, 일본에선 한국 韓国 이라고 부르고, 중국에선 한국 韩国 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그냥 옛날 한자를 쓰고 있고 일본은 국 國 을 쉽게 쓰고 있고, 중국은 한 韓 과 국 國 모두를 쉽게 쓰고 있습니다. 즉 검색어를 조절하면 중국과 일본의 우리나라에대한 생각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중국과 일본은 우리나라를 어떻게 보는지 살펴 보고자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여성 女星 과 두발 短发 등에 관심이 많아서 티벳 동쪽의 밀라노 느낌을 느끼는지도 모릅니다.
韓国
일본의 우리나라에대한 첫번째 관심은 패션 ファッション 이었습니다.
2 위는 캐릭터 キャラクター 였습니다.
3위는 메이크업 メイク [화장] 이었습니다.
4 위는 지도 地図 였습니다.
5 위는 겨울 패션 冬 ファッション 이었습니다.
6 위는 얼짱 オルチャン 이었습니다.
7 위는 운동화 スニーカー 였습니다.
8 위는 앞머리 前髪 [전발] 이었습니다.
9 위는 2ch 였습니다.
10 위는 다이어트 ダイエット 였습니다.
韩国
중국에서 바라본 한국의 1 위는 街拍 가박 입니다. 일본말의 경우 구글 번역기가 거의 완벽해 보이게 번역했지만 중국말은 그렇지 않고 이런 말은 인터넷 중국어 사전에도 안나옵니다. 가 街 는 거리 가 이고, 박 拍 은 사진촬영으로 거리(패션)촬영 느낌인 것 같습니다.
2 위는 단발 短发 [짧은 머리] 입니다.
3 위는 서울 首尔 [수이] 입니다.
4 위는 소흘 小吃 [작을 소에 먹을 흘, 간단한 음식, 우리말로 치면 뜻은 다르지만 분식 정도] 입니다.
5 위는 Clara 였습니다. 우리나라 여성분 가운데 중국에서 오늘 가장 많이 한국과 관련해서 찾은 분은 클라라 인 것 같습니다. 이런 느낌이 통하는 것 같습니다.
6 위는 명동 明洞 이었습니다.
7 위는 여성 女星 이었습니다. 보통 우리가 흔히 쓰는 여성 女姓 과는 글자가 다릅니다. 말 그대로 여 女 자 스타 [별 성 星] 란 뜻이라 합니다.
8 위는 수신 手信 이었습니다. 수신 手信 에대해 <위키
9 위는 정용 整容 [성형] 이었습니다.
10 위는 제주도 济州岛 였습니다. 우리는 한국 제 2 의 도시로 노무현 대통령이 활동한 부산을 생각하지만 이웃 관광객 서 있는 곳에선 가장 큰 도시인 서울은 한번 왔다 갔다면 무언가 새로운 곳에 가 보고 싶을 것입니다. 중국의 인구가 밀집된 중원은 온통 노란 흙밭으로 우리나라에 흔한 산이나 바위나 숲과 이로인한 약수물 등이 드물며 바다도 드뭅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그들에겐 드문 산 [한라산] + 바다 + 외국 + 따듯함 등이 있는 제주도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여성분들의 옷입는 감각에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신롬과 프랑스 사이의 작고 독립적이며 활기찬 북부이탈리아 도시들처럼 자유와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이 있기를 바랍니다. 옷, 신발, 미용실 등의 번성이 기대됩니다.
창의성 VS 가위질
사람의 마음은 자유롭고, 그 말은 자유롭고, 그 행동은 남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자유롭고, 그것이 바로 우리의 합의인 헌법입니다.
히잡씌우듯 미니스커트 단속한다는 생각을 하고, 교과서도 권력을 쥔 이 입맛에 맛게 자기 가족을 빛내야 한다는 생각에, 어찌 창조 경제가 되겠습니까?
창조란 자유에서 나오고, 걸음마란 수 많은 넘어짐에서 나오며, 침대보다 길면 자르고 작으면 늘리는 사회에선, 모난돌이 정맞고 잘 자란 보리가 베어지듯 하여, 개성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게임 산업을 육성해야 된다며 게임은 마약이라는 말은 정신분열에 가깝습니다.
창조가 필요하다며 가위를 들어대는 것은 언어도단에 가깝습니다.
하드웨어 VS 소프트웨어
소득엔 임금 [일하고 번 돈], 이자 [돈 빌려주고 받는 돈], 지대 [땅 빌려주고 받는 돈] 이 있습니다. 경제학의 아버지 아담 스미스는 경제 발전의 원인을 일 나누기 [분업] 에서 찾습니다. 일이란 권력, 권한, 봉토, 신용, 자본, 관직 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정치인은 더 많은 권력을 가지고 싶어 하여 헌법을 고치고 재벌은 더 많은 자본을 가지고 싶어 하여 임금을 줄입니다.
예를 들면 대학을 보겠습니다. 대학의 핵심은 시간강사분들이 주축이되는 교수진입니다. 그러나 대학교는 시간강사의 재량이 되는 임금을 높이기보단 그 돈으로 땅을 사고 건물을 높입니다. 그렇게 일 [재량권, 권한, 돈] 이 나눠지는 임금보다는 일 [자본] 을 보유하는 건물이나 땅이 선호됩니다. 사실상 비영리 법인인 공적 교육업이 아니라 면세 가족 임대업자입니다. 그렇게 시간강사들을 소모품으로 빨려나가 버려지고 양심 있는 지방시가 나오기에 이르렀습니다.
파파이스 속 영화업자는 수백만원에도 이르는 비싼 의자를 선호하는 영화관 소유주를 비판합니다. 영화라는 말캉말캉한것 [소프트웨어] 보다 영화관이란 딱딱한거 [하드웨어] 를 좋아한다고 말합니다. 얼마전 네이버 의자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생각 [Contents] 이란 없고 질소로 가득찬 포장지만 있습니다.
딱딱한 반도체를 만들어내는 삼성을 물려 받은 이재용은 우리나라로 치면 싸이월드 같은 페이스북을 만든 말캉말캉한 저자본 저기술 저커 버그와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은 벌써 디즈니와 MS 를 낳은지 오랜데, 우리나라는 만화 보지 말고 공부해라든가, 게임은 마약이니 말하는 정치인들이 많습니다.
케케 묵은 사고의 일본 극우 정치인조차 자신의 만화 사랑을 피력합니다.
해리포터를 낳은 J. K. 롤링이 나올려면 사람들이 우선 책을 봐야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없습니다. 보통 근로시간은 1인당GDP 와 반비례합니다. 즉 개떼축구처럼 빨빨 거리며 모두 뛰어다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포지션이 있어 공격수는 공격수 답고 수비수는 수비수 다운 것이 즉 골키퍼는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일나누기가 훨씬 효율적입니다. 히딩크는 오자 마자 반말을 주문했습니다. 흔히 장인은 일나누기된 일을 하고 도제는 온갖 허드렛일을 하는 상하 구조가 끼어 들면 모래 덮힌 피라미드가 될 뿐입니다. 공격수는 공격수고 수비수는 수비수여야 합니다. 즉 서로 대체 가능한 단세포들의 빨빨 거림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시세포와 뇌세포로 이 글을 보고 있는 동안 다리의 근육세포들은 대기타고 있듯 일이 나눠지면 서로 대체할 수 없고 따라서 대기 시간이 늘어나 가동률이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즉 농사짓던 이들이 농사 짓던 도구인 쟁기 들고 엄청난 식량과 잠자리를 소모해 가며 농사를 팽개치고 전쟁터에 개떼처럼 공짜로 끌려 나오는 것이 아니라 평시에 고용되어 전투를 하지 않고 훈련만 하던 상비군이 육군, 해군, 공군으로 나눠져서 해군은 바다를 지키고 있고 공군은 육군을 지원하기 위해 짧은 비행 시간에 기름을 정확히 쓰고 폭격을 해주고 육군은 적은 보급으로 빠르게 진격하는 그림이 나오게 됩니다. 즉 로마 부자식으로 불 나면 거기 가서 흥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 소방대가 있고 항상 대기를 하다가 불이 나면 가서 바로 불을 꺼주는 것입니다. 이는 소방대원을 무슨 아랫사람으로 취급하여 일이 없다고 대통령 취임식 때 의자를 딲는다던가 하는 발상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가동률을 100 % 로 만드는 것이 효율이 아니라 일을 명확히 나누어 필요할 때 바로 꺼내 쓸 수 있게 하는 것이 경제발전의 원인인 일나누기가 만들어내는 현상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1/2 < 1 이란 생각으로 2 명분의 일을 1 사람에게 시키면 반값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식으로 계산합니다. 당근과 채찍 가운데 채찍뿐이 안남는다면 그나라의 본체라고 할 수 있는 일하는국민은 뼈만 남아 아무런 힘이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IMF 때나 오늘날 몇몇 신문이 그러하듯 해외로 떠나라 By Korea, 국제화, 해외진출 이라며 국부유출을 부추기면 재벌들은 그런 입장료와 법령 [규제] 이 없던 쓰레기 폐기장이 된 국립공원을 떠나서 새로운 곳으로 가면 될 뿐입니다.
그냥 산을 두면 법령을 없애고 입장료를 없애면 쓰레기 장이 될 수도 있지만 산을 함부로 하면 안된다는 법령 [노동법] 을 세우고 입장료 [세금]를 받으면 국립공원이 푸르게 푸르게 지켜집니다.
공유지의 비극입니다.
수익자 부담 원칙을 하면 됩니다. 이익을 거두는 즉 돈을 많이 버는 이에게 누진세를 물리면 됩니다. 즉 재벌들에게 돈을 걷으면 됩니다. 돈은 찍어 낼 수 있습니다. 땅은 그대로 있습니다. 즉 그들이 떠나도 재벌 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줄 서 있습니다. 한국인과 한국땅만 있다면 한국돈은 정부에서 찍어내면 됩니다.
즉 지대소득자와 이자소득자의 지대추구와 이자추구를 부동산대출규제완하라는 느낌으로 지원하다가 미국의 금리인상을 바라보기보는 현실보다는 창의성을 만드는 말캉말캉한것 [소프트웨어] 에 대한 지원정책을 하기 위해 임금을 높이고 공휴일을 대통령 명령 [시행령] 이 아닌 국민의 법률로 명시하고 노동법 등의 법률이 지켜지게 하는 등의 지원책이 나아 보입니다.
즉 삼성 반도체 물려 받는 이재용보다 저커버그류의 영웅을 찍어내는 것이 국민경제에 활력과 희망을 불어넣어줄 것입니다.
FTA 등으로 지적재산권의 강도가 강해지는 요즘 더이상 카피전자로는 힘들며 뽀통령처럼 디즈니류의 케릭터 산업이나 지금은 돌아가신 앙드레 김 같은 패션 산업을 길러야 할 것입니다.
즉 천재 디자이너처럼 무언가 많은 돈이 들지 않고 창조적으로 할 수 있는 곳에 돈을 빌려주는 것면 새로운 옷이 나오지만 명동 땅값 올리면 땅을 많이 상속 받아 일 안해도 되는 땅부자만 배불려주게 됩니다.
사람의 마음은 자유롭고 그 말은 자유로우며 그 행동이 남의 자유를 침해하기 전까지 그 행동은 자유롭습니다. 행동을 침해해도 저울을 달듯 비례의 원칙에 따라 적당히 비교해서 양을 재야 하며 그 손실만큼 돈으로 보상하면 됩니다. 굳이 3 자인 정부가 나서서 권력자의 입맛에 안 맞는다고 지원은 커녕 차가운 가위질을 하면 창의성은 나올 수 없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삐까 뻔쩍한 건물을 가진 상점은 아예 이런 것에 무관심한 태국의 건물보다 낫습니다. 그러나 인재를 양성하는 유럽이나 미국의 선진국만은 못해 보입니다. 가진 도구 [돈, 자본] 가 없는 이들 가운데 영웅이 나오게 법령을 정비해야지 돈이 돈을 낳게 법령을 시행하면 영웅은 없고 상속 다툼만 있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돌아가신 앙드레김 선생님만큼 양심적이고 더 창조적인 디자이너를 바래 봅니다.
한줄요약 : 중국과 일본은 우리나라에대해 머리, 패션, 화장 등에 관심이 많았다.
일본[日本]
https://blog.naver.com/knock001/220573272674 첨부파일 (2)
영국과 일본의 차이입니다.
지중해와 티벳고원
영국 과 일본
영국은 첫째큰땅의 서쪽끝, 일본은 첫째큰땅의 동쪽 끝 섬입니다. 가장 큰 내해인 지중해로 상징되는 판판한 서쪽 유럽 가까운 영국은 역시 판판합니다. 가장 높은곳인 티벳고원으로 상징되는 티벳 동쪽의 중원 가까운 일본은 역시 산이 많습니다.
영국은 바다라는 해자만을 둘렀다면 일본은 바다를 해자 뿐만 아니라 산이라는 성벽도 둘렀습니다.
따라서 일본은 마치 북한처럼 성문이 닫힌 [폐쇄적] 지키기 좋아 침략도 거의 받지 않아 왔고 북한 김정은 삼대세습처럼 만세일계를 자랑하며 한가족이 일본인을 계속 소유하고 상속했단 신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영국은 처음엔 사생아 윌리엄으로 불리던 프랑스의 노르망디 사람처럼 잉글랜드를 정복하고 정복왕 윌리엄으로 불리듯 약한 정통성 + 침략자 + 잦은 교체 등의 느낌이 강합니다.
따라서 일본은 보다 천황=천손 으로 지멋대로 할 수 있었지만 영국은 보다 영국인 Nation 을 만들어 해군으로 바다를 둘러 큰땅에서 오는 침략자를 막아낼 필요성이 강했습니다.
판판 유럽
영국
유럽은 보시듯 판판합니다. 유럽에서 제일 높은 산은 가운데 있는 알프스가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로 삼는 코카서스 산맥일 정도입니다. 로마 시대 부터 이어온 런던은 방어를 위해서건 교섭을 하기 위해서건 큰땅을 향해 있습니다.
울퉁 불퉁 티벳 동쪽
일본
티벳은 남쪽의 인도와 동쪽의 중국을 오늘날 가르는 기준이 됩니다. 티벳은 인도중국 [인도차이나] 반섬 [반도] 을 향해 가지가 뻣어 있는데 라오스를 따라 이어지며 그 동쪽의 하노이가 이는 분지의 베트남은 중화권의 영향을 보다 받았고 라오스 서쪽의 나머지 인도중국반섬은 인도의 영향을 보다 받은 느낌입니다. 백두산은 한국과 중국을 나누는 기준이 되며 대한 좁은 바다는 일본과 한국을 가르는 기준이 됩니다.
사람이 적은 산과 바다는 여전히 여러 나라를 나누는 기준이 됩니다.
드넓은 평원을 태행산으로 상징되는 울타리로친 중원은 비교적 왕조가 자주 교체되지만 백두산으로 상징되는 70 % 가 산지인 한반도는 천년신라와 조선왕조오백년처럼 비교적 안정적으로 정권유지가 되며 후지산으로 상징되는 80 % 가 산지라는 일본은 만세일계를 자랑하며 해 뜨는 곳의 천자가 해지는 곳의 천자에게 라는 말을 쓸 정도로 북한의 우리 정치인님의 짱이고 외세는 나빠라는 북한의 주체 사상과 맥을 같이 하는 바도 있습니다.
즉 영국에서 유럽과 같은 예수님의 태어남을 기준으로 한 AD 라는 연호를 썼다면, 바다 건너고 산으로 싸인 일본은 중원과 다른 독자적인 연호를 쓰며, 천황을 칭합니다.
즉 북한의 김일성이 가지는 솔방울로 수류탄 삼아 북조선을 해방시켰다는 이야기나 난닝구를 입는 [Running Shirt 의 일본적 표현] 박정희의 근검으로 대한민국을 발전시켰다는 이야기나 태양신의 자손 천황이 일본에 번영을 가져다 주었다는 이야기처럼 뛰어난 정치인 신화가 많습니다.
티벳 동쪽의 오랜 중심인 장안과 낙양과 먼 일본의 경우 그 정도가 심해서 영국의 서울이 큰땅과 가까운 템즈강을 따라 있는 런던인 것과 다르게, 만약 그렇다면 일본의 서울은 태재부 太宰府 [큰 재상 관청, 다이자후] 쯤이어야 할 텐데, 일본의 서울은 크게 보면 경도 京都 [교토] 에서 동경 東京 [도쿄] 로 옮겨갈 정도로 중원과 멀어져 갈 정도입니다.
그나마 쇼토쿠 태자나 무로마치 막부처럼 서쪽에 있을 때는 중원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시만 에도 [도쿄] 에 있을 때는 마치 미국을 무시하는 북한처럼 보다 독자성이 강해집니다.
자주 바뀐 영국 왕조
잉글랜드 왕조, 나온곳 : 위키
브리튼 왕조, 나온곳 : 위키
영국은 큰섬 브리튼과 작은섬 아일랜드로 나눠지고, 브리튼 섬 가운데서도 동남쪽 평야를 잉글랜드라고 합니다. 위키는 영국의 역사를 영국이 통일되기 전인 잉글랜드 시대와 영국이 Great Britain [대영제국] 으로 통일된 뒤로 나누고 있습니다. 영국의 왕조들은 고려, 조선 처럼 단순하게 바뀌는 것이 아닌 보다 자주 바뀌고 기간도 200 년이 넘는 경우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바다 건너 [해외] 덴마크, 노르망디, 앙쥬, 하노버 등에서 옵니다.
침략해 온 경우도 있고 결혼해서 온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배우자가 외국인 경우 [결혼 동맹] 도 많습니다.
만세 일계 일본 왕조
<천황일람 天皇の一覧, 위키>를 보시면 125 대의 천황이 1 대 신무천황 神武天皇 부터 125 대 현천황 [금상천황 今上天皇] 인 이름 [휘 諱] 은 아키히토 [명인 明仁] 까지 이어집니다.
유럽이 나눠지면 게르만과 로마처럼 나눠지고, 중원이 나눠지면 북조의 북위와 남조의 남제처럼 갈라진다면, 일본은 무슨 대립교황도 아니고 남북조 모두가 천황가를 내세웁니다.
참고로 일본의 천황은 대통령 번호판이 없듯 성 姓 [Family Name] 이 없습니다.
큰땅 가까운 런던
England, 나온곳 : 위키
영국의 핵심인 잉글랜드의 서울을 위키는 런던이라 말합니다.
브리타니아, 나온곳 : 위키
로마제국의 식민지 시절 서울로 Camulodunum 과 Londinium [오늘날 런던] 로 되어 있습니다.
Londinium 과 Camulodunum
둘 모두 동남쪽 바닷가로 큰땅 [대륙] 을 향해 있습니다.
위대한 크누드, 나온곳 : 위키
크누드 2 의 <소유물>도 보시면 서울이 덴마크 서쪽의 Ribe 로 되어 잇습니다. 이처럼 큰땅에서 온 경우 중심이 큰땅쪽으로 갈 수는 있어도 큰땅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든 큰땅과 경쟁해야 합니다.
정복자 윌리엄, 나온곳 : 위키
잉글랜드는 잦은 큰땅으로부터의 침략을 당했습니다.
큰땅과 멀어진 서울
일본 천황 황거
일본 천황이 사는 곳을 황거라고 하는데, <일본위키>에 나온 곳들을 순서대로 찍어보면 위와 같고, 많이 찍히는 곳이 있습니다.
오기
중심 지역은 이러한 그림으로 아스카 [빨간색] 에서 북쪽의 쿄토 [50 ~ 122] 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오기 -> 관동
오기는 관서지방의 핵이라고 할 수 있고 그곳에서 관동으로 옮겨갑니다. 천황이 옮겨간 것은 명치헌법 [일본제국헌법] 으로 상징되는 최근이지만, 막부가 관동으로 옮겨간 것은 가마쿠라 때부터 시작되며, 앞서 관동지방에 친왕임국이 있었습니다. 즉 기본적으로 산이 많은 이곳에서 평야가 세 개 있고 그 가운데 점점 큰 평야로 옮겨 갔지 중원 가까이에 계속 서울이 머문 것이 아닙니다.
좋게 보면 민족적 자긍심 고양이 될 수도 있지만, 북조선에서 하는 주체사상처럼, 사실 천황의 경쟁 없는 환경이란 말도 됩니다.
천황은 작게는 오기로 상징되는 관서지방의 크게는 전일본의 상징으로 신적 권위를 가져서 군대를 소유한 막부도 이를 없애고 스스로 천황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마치 진시황에의해 하나된 중원과 같습니다.
다른점은 중원은 훨씬 크기에 훨씬 다양한 지역성이 있었고 따라서 진승, 오광의 장초 長楚 가 보여주듯 초국 楚國 사람들은 진국 秦國 사람들을 조 朝 가 아닌 다른 나라 [국 國] 로 인식하는 등 전국 戰國 이나 삼국 三國 이나 16국 16國 등으로 보다 자주 나눠집니다. 일본의 전국시대나 중원의 전국시대나 조 朝 가 있었지만 중원의 삼국과 십육국은 조 朝 가 없습니다.
한줄요약 : 첫째큰땅 구석에 2 나라가 있었는데, 판판한 유럽의 영국은 왕조가 자주 바뀌는 경쟁 압력 속에 민주정이 먼저 나타났다면, 산이 많은 티벳 동쪽의 일본은 만세일계로 경쟁 압력이 없어 민주정이 늦었다.
독도만큼 중요한 7광구
이 협정 때문에 일본의 동의가 없으면 7광구를 개발할 수가 없다
2029년까지 공동개발이 되지 않으면 일본 것, 눈뜨고 코 베어가는 협정
1970년 6월,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7광구를 대한민국의 대륙붕이라고 선언했고, 그 동시에 일본은 강하게 반발했다
일본은 등거리 원칙에 의해 중간선으로 영유권을 나눠 가져야한다고 주장했고, 마지막에는 '경제원조 중단'까지 꺼내들며 한국 정부를 압박했다
당시 한국은 기술력도 자본도 없었기 때문에 결국 1974년 양국 정부는 '한.일 공동개발협정'을 체결했다
협정의 내용은
"7광구의 이름을 '한.일 공동개발구역(JDZ)'으로 바꾸고, 개발을 양국이 반드시 같이 해야한다." 였다
1984년 몇 차례의 공동 탐사 이후 2002년, 일본 측은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탐사를 중단했고 현재까지 하지않고있다
업계에서는 일본이 최대 이익을 얻기 위해 독자적인 영유권을 확보하기 전까지 시간끌기 전략을 쓰고 있다고 보고있다
2020년 현재는 체결하던 당시와 달리 지형이 아닌 거리를 기준으로 바다영역의 영유권을 가르고 있다
영유권 판단 기준이 바뀌면서 일본한테 유리해졌고 이대로면 2029년부터 일본 영토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중국까지 7광구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2009년 국제연합 대륙붕한계위원회(UN CLCS)에서 3년 시한 안에 자국의 대륙붕 관할을 주장할 수 있는 정식보고서 제출을 요구했다
중국과 일본은 바로 수백쪽의 대륙붕 보고서를 제출했다
우리나라는 100여 쪽 분량의 정식 보고서를 만들어 놓고도 8쪽의 예비보고서만 제출했다
2012년이 끝나갈 때 쯤 대륙붕 정식보고서를 제대로 제출했다
독도만큼 중요한 7광구
일본을 알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