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368년 전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1596~1650)의 명언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와 캐나다 퀘벡주 퀘벡시(불어권)의 자동차 번호판에 적혀있다는 ''나는 기억한다''는 말은 평범하게 살아가는 범인(凡人)에게도 철리(哲理)의 말들이다. 현재 이 순간 숨쉬고 살아있음에 자아(自我)를 찾아(느끼고, 확립:確立) 존재하는 것이다. 두 발과 다리가 튼튼한(건강한) 존재이기에 유람도 하는 것이다.
2017.9.18(월) 선산의 직계 선조 묘소 벌초와 성묘를 마치고 지리산을 한 번 형제와 조카 숙질간에 등산하자고 의논하여, 사전 준비한 계획대로 9.24(일)~9.26(화), 2박3일 일정으로 중산리 소재 산청 지리산수련원에서 서울 정창영(75) 형님, 나(69), 함안 정태영(66) 동생, 조카들 인천 정병권(65), 김해 정승표(60), 울산 정황부(51) 외 형수님(83), 제수씨, 질부 등 9명으로 지리산 산청 시천면 일대 관광과 천왕봉 등정(천왕봉 등정은 개인 일정 혹은 체력 등으로 5명만 참여)을 하였다.
지난해 고향 함안군 군북면 유현리 평촌 경충재(景忠齋)를 출발하여 지리산 천왕봉까지 올랐다. 승용차 3대에 분승하여 지나가는 길도의 명승지와 문화 유적지를 탐방한 사진이 이런 저런 일로 미루어져 6개월간 스마트 갤러리에 보관되어 오다가 코스별로 정리하여 추억을 반추하며 게재한다.
《1》정구룡(鄭九龍)의 경충재(景忠齋) ; 임진왜란 때 정기룡(鄭起龍)장군의 수하장으로 싸우마다 최선봉이 되어 혁혁한 무공을 세우고 왜란 말기 토적 중 장렬히 순절(1598.9.28)한 선무원종일등공신 첨정(僉正) 수재공(壽齋公) 정구룡(鄭九龍) ; 1563(명종 18)~1598(선조 31)을 추모하는 재실이다. 함안군 군북면 유현리에 소재한다.
《2》어계(魚溪) 조려(趙旅)의 묘소 ; 1420(세종 2)∼1489(성종 20).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단종을 위하여 수절한 생육신의 한 사람이다. 묘소는 함안군 법수면 강주리 매바위마을에 소재한다. 지리산으로 가는 첫 길도에서 만난다.
《3》 정암루(鼎岩樓)와 솥바위(鼎岩) ; 정암루는 조선 중기 취원루가 있었던 자리로 소실되어 없어졌고, 1935년 의령 유림과 유지들이 정암루를 지었다 한다. 이 정암루 아래 남강에는 정암나루가 있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곽재우 장군이 이끄는 의병들이 진격하는 왜군을 격퇴시킨 전적지이다. 의령군 의령읍 정암리에 소재한다.
《4》충익사(忠翼祠) ; 임진왜란(1592)때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지켰던 홍의장군 곽재우(郭再祐) 의병장과 그 휘하 17 장수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의령읍 충익로 1(의령읍 중동리)에 소재한다.
《5》현감 정현석(鄭顯奭)의 삼가군 송덕비 ; 정현석 1817(순조 17)~1899(고종 36:광무 3)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보여(保汝), 호는 박원(璞園)이다. 그는 1865(고종 2)~1867(고종 4) 기간 삼가 현감으로 재임했다.
비석의 전면은 '行懸監鄭侯顯奭善政不忘碑(행 현감 정후 현석 선정불망비)'로 되어 있고, 후면은 '同治六年丁卯六月日(동치6년 정묘 6월 일)'로 동치(同治 ; 청나라 목종:穆宗 연호) 6년은 1867년(고종 4) 6월이 된다. 한 고을에서 선정비가 3곳이나 세워진 이는 조선 27대 왕 519년 조선 역사의 지방 관료 중에서 조선 후기 어지러웠던 시대에 청백리(淸白吏)로 애민사상(愛民思想)이 투철했던 지방 수령(이칭 ; 員님) 목민관(牧民官)인 박원 정현석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그가 진주목사(晉州牧使)로 재임한 1867년(고종 4)부터 1870년(고종 7)까지 진주교방에서 연행된 가무(歌舞)와 정재(呈才), 연희(演戲)종목을 정리하여 1872년(고종 9)에 편찬한 책 『교방가요(敎坊歌謠)』는 수십권의 저서 중 하나이다.
정현석의 선정불망비는 의령군 대의면 마쌍리에서 합천군 삼가면 외토리 남명 조식선생의 용암서원과 뇌룡정으로 가는 양천강 다리 인근 도로변 언덕에 위치한다.
《6》뇌룡정(雷龍亭)과 용암서원(龍巖書院) ;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연산군 7)~1572(선조 5) 선생의 생가지이다. 단성현감사직소 거대 비석(8톤), 남명선생 흉상, 용암서원 묘정비 등이 있다. 합천군 삼가면 외토리에 소재한다.
《7》도전리마애불상군(道田里磨崖佛像群 ; 경남 유형문화재 제209호) ; 봉황산(鳳凰山, 241.5m) 기슭 야산 비탈에 27기의 크고 작은 불상들이 벼랑의 한 바위면에 새겨져 있다. 옛날에 불상군 아래 사찰이 있었는지 학술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수수께끼의 불상군이다. 불상군 바로 코 앞에는 남강의 지류인 양천강이 흐른다. 풍광 경치도 좋은 곳이다. 산청군 생비량면 소재지에서 신안면 소재지로 가는 도로변 야산 언덕의 바위면에 있다. 생비량면 도전리(道田里) 소재이다.
《8》삼우당 문익점 목면시배지 ; 목화 시배(始培)의 터전으로 알려진 이곳은 배양(培養)마을로 불리며 『三憂堂先生棉花始培事蹟碑』라는 비석이 있다. 사적 제108호이다.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에 소재한다.
《9》성철 대종사 생가 겁외사 ; 성철(性徹 1912~1993. 11. 4)스님의 생가터에 세운 사찰이다.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에 소재한다.
《10》남사 예담촌(남사고가마을) ; 고즈넉한 담장 너머 우리 전통 한옥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어 '옛 담 마을'이라는 의미로 담장 너머의 고가와 그 옛날 선비들의 기상과 예절을 닮아가자는 뜻을 가진 마을이다. 산청군 단성면 남사리에 소재한다.
《11》입석리(立石里)의 유래 ; 산청군 단성면 입석리에는 지명의 유래가 된 자연적인 입석(立石)이 2군데 있다. 산청선비학당(옛 입석초등교, 폐교) 울타리와 농경지 논바닥에 서 있다.
《12》단속사지(斷俗寺址) ; 통일신라시대의 절터이다. 정유재란으로 화재로 소실되고 현재는 단속사지동삼층석탑(斷俗寺址東三層石塔 ; 보물 제72호)과 단속사지서삼층석탑(斷俗寺址西三層石塔 ; 보물 제73호)이 남아있다. 산청군 단성면 운리에 소재한다.
《13》웅석봉(1099m) 산록 청계계곡, 청계저수지와 이갑열미술관(야외 조각) ; 계곡의 막다른 기슭에 정원에 조각품이 조성되어 있다. 산청군 단성면 청계리에 소재한다.
《14》광제암문(廣濟巖門) ; 단속사지 아래 협소한 계곡의 목에 해당되는 개울 석벽에는 수구막이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문창후 고운 최치원(崔致遠)이 쓴 ‘廣濟嵒門(광제암문)’ 각석(刻石)이라고 한다.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 ; 1464~1498 ; 스승 김종직을 닮아 사장:詞章에 능했으나 연산군의 무오사화로 아까운 나이 35세로 화를 입었다)의 529년 전인 1489년(성종 20) 4월의 『두류기행록』에 의하면, ''글자의 획이 힘차고 예스러웠다. 세상에서는 최고운(崔孤雲)의 친필이라고 전한다''로 기록되어 있다. 이번 기회에 문화재 지정을 촉구한다. 산청군 단성면 입석리 용두마을과 단성면 운리 아랫진자마을 사이에 소재한다.
《15》덕천서원(德川書院) 산천재(山天齋) ; 덕천서원은 남명 조식선생의 학덕을 기리는 서원이다. 산천재(별칭 ; 남명조식유적지)는 만년에 평생 갈고 닦은 학문과 정신을 제자들에게 전수한 곳이다. 사적 제305호이다. 산청군 시천면 원리와 사리에 각각 소재한다.
《16》지리산 천왕사(天王寺) ; 천왕(天王), 마고할매, 마야부인 등으로 불린 지리산 수호신인 성모상이 있다.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의 1489년(성종 20) 4월의 『두류기행록』에 의하면, ''정상(천왕봉:天王峰)에는 한 칸의 판자집이 겨우 들어앉은 돌무더기(강풍을 막아주는 돌담장을 지칭)가 있었다. 판자집 안에는 돌로 된 부인상(婦人像)이 있는데, 이른바 천왕(天王 ; 천왕성모를 지칭)이었다. 그 판자집 들보에는 지전(紙錢 ; 엽전 대용의 한지 엽전 꾸러미)이 어지러이 걸려 있었다'' 당시 지리산을 찾는 사람들이 마야부인(성모:聖母), 고려 태조 왕건의 모(母) 위숙왕후(威肅王后)라 믿었던 그 석상이다.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에 소재한다. 경상남도 민속자료 제14호이다.
《17》지리산 거림계곡 길상사(吉祥寺) ; 촛대봉(1704m)에서 발원하는 도장골과 영신봉(1652m) 세석평전에서 발원하는 거림골의 두 계곡물이 합류하는 명승지에 위치하는 절로 1997.12.14 개원한 새 절이다. 대원각 옛 주인 길상화(吉祥華) 법명(法名)의 김영한(金英韓) 할머니가 시주한 서울 성북동 삼각산(三角山) 길상사(吉祥寺)의 수행과 휴양의 지리산 거림 분원(말사?)이다.
《18》지리산 청학동(靑鶴洞)과 고운동(孤雲洞) 양수발전소 상부댐 고운호(孤雲湖) ; 고운동은 문창후(文昌候)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이 이상향 청학을 찾아 오른 데서 유래된 지명이라고 한다.
《19》지리산 법게사(法界寺 ; 지리산 표고 1450m로 국내에서 가장 높다)와 천왕봉(天王峰) 등정 ; 5명(정창영, 정봉영, 정병권, 정승표, 정황부)만 올랐다.
《20》천년 고찰 대원사(大源寺)와 내원사(內院寺) ; 산청군 삼장면 유평리 소재 대원사와 삼장면 내원리 소재 내원사는 2박 3일 일정이 빡빡하여 안내하지 못했다. 나는 옛날에 3회차 탐방한 곳이다.
함안군 군북면 유현리 경충재에서 출발하여 3일간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정보통신부 산청지리산수련원에서 2박하면서 19곳 외 지리산 일대의 명소를 탐방하고, 이틀날인 9.25에는 지리산 천왕봉을 등정하였다. 지리산 청학동과 지리산 법계사 천왕봉 등정기는 기 게재하였기에 기술을 생략한다.
탐방 일시 ; 2017.9.24(일)~9.26(화)
뇌룡정의 숨은 이야기(스토리텔링 제공자 : 합천군 삼가면 문송리 정수영, 1941년생, 독립운동가 남강 정방호의 증손자가 된다)
합천군 쌍백면 죽전리 귀바위마을의 이암재(耳巖齋, 이칭 ; 龜巖齋)는 초계정씨의 시조 정배걸(鄭倍傑)의 18세손 되는 정춘경(鄭春卿), 정이경(鄭頤이卿) 형제의 재실이다.
옛 삼가읍성 수정천(水晶川:水晶池) 앞의 정금당(淨襟堂)의 훼철 목재는 1923년(계해년) 옮겨져서 이암재를 고쳐 짓는데 사용하였다.
특이하게 정이경(鄭頤경)의 손자 정세승(鄭世升), 증손 정도연(鄭道淵), 현손 정사묵(鄭師默) 5대손 정동박(鄭東璞)ᆞ정동일(鄭東馹)ᆞ정동댁(鄭東宅)ᆞ정동벽(鄭東闢)ᆞ정동균(鄭東均) 5형제 대(代)까지는 쌍백면에서 천석꾼이었다. 그 다음대부터는 가세가 기울었다.
정동벽의 손자 號가 남강(南崗)인 정방호(鄭邦鎬)는 중국에 피신하여 안창제(安昌濟)ᆞ정사숙(鄭士淑)과 함께 독립운동을 했다. 묘는 심양성 뒷편 탑 앞에 있다. 나머지 조상은 쌍백면 일원에 천석꾼답게 묘소마다 지석이 남아 있다.
천석꾼의 사랑채 5칸 목재는 1900년대 초 허유《許愈, 1833(순조 33)~1904(고종 41), 72세 몰》등이 합천군 삼가면 외토리 소재 뇌룡정(雷龍亭)을 고쳐 지을 때 사용되었다 한다. 뇌룡정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29호(지정일 : 1985.1.23)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