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암산[龍岩山]과 수목원
李正訓엮음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용암리와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의정부시 민락동과 경계하여 있는 산이며 높이는 480m이다.
소리봉 또는 물푸레봉이라고도 한다. 광주산맥의 지맥으로, 수리봉(536.8m)과 능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용암산(龍岩山)이라는 이름은 산에 바위가 많고 산 모양이 용처럼 생겼다거나, 용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고 하여 생겨났다고 한다. 골짜기에 물푸레골이 있으며, 주봉에 있는 긴 등성이를 긴등이라 하고, 그 골짜기를 긴등골짜기라고 한다.
정상에는 산불감시초소가 있고 오른쪽으로 계속 내려가면 광릉 국립수목원의 전망대가 있는 임도(林道)에 닿는다.
광릉수목원이 자리 잡고 있으며, 주변에 광릉, 봉선사, 휘경원, 크낙새 서식지, 밤섬유원지 등의 관광지가 있다.
<1. 광릉수목원 (國立樹木園)>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광릉임업시험장 안에 있는 식물원으로 학술보존림 및 시험림이다. 연구 · 관상 · 학습용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각종 식물을 수집하여 세운 학술보존림 및 시험림이다. 광릉임업시험림의 약 23㎢ 중에서 5㎢에,
한국에 자생하는 1,900여 종과 외국에서 들여온 수종을 합하여 2,775종의 식물이 침엽·활엽·관목(灌木) 및 외국 수목원과, 약용 · 식용 · 지피(地被) · 고산 · 습지 · 수생(水生) · 관상 · 난대 · 맹인(盲人)의 식물원으로 나뉘어 식재되어 있다.
여기에는 광릉에서만 자라는 광릉물푸레나무 · 광릉갈퀴나무를 비롯하여 대전 이남에서만 자라는 금송(金松),
완도에서 옮겨온 300년 된 동백나무도 있고, 네덜란드 이북에서만 자라는 수종인 자작나무와 외국에서 들여온 대왕송
(大王松) · 귀갑죽(龜甲竹) · 자청목(紫靑木) · 망고 · 바닷고사리 등도 있다.
맹인들을 위하여 촉감과 맛과 냄새로 나무를 식별하여 알 수 있도록 마련된 맹인식물원에는 맛이 쓰고 독한 소태나무 ·
생강나무, 냄새가 고약한 노린재나무, 향기가 뛰어난 서양측백나무, 만지면 따끔한 노간주나무 등이 심어져 있다.
부속시설인 산림박물관에는 각종 식물과 산림동물(山林動物)의 표본을 비롯하여, 식림기술과 도구, 토양 · 암석 · 종이 ·
옷감 · 악기·합판 · 가구 등 나무의 용도를 보여주는 제품들이 1,500여 종 전시되어 있다. 주위의 임업시험림과 함께
학술연구의 장(場)으로 사용된다.
<2. 광릉 (光陵)>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산99-2번지에 있는 조선 제7대 왕 세조(世祖1417~1468, 재위 1455∼1468)와 정희왕후
(貞熹王后) 윤씨(尹氏)의 무덤이며, 면적은 105만 9,289㎡ 이다.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197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왕릉
최초로 왕과 왕비의 능을 서로 다른 언덕 위에 따로 만든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 형식을 취하였고, 두 능의 중간지역에
하나의 정자각(丁字閣)을 세웠다.
세조의 유언에 따라 봉분 내부에 돌방을 만들지 않고 회격(灰隔; 관을 구덩이 속에 내려놓고, 그 사이를 석회로 메워서
다짐)으로 처리하였다. 무덤 둘레에 병풍석을 세우지 않았으며, 이전에 병풍석에 새겼던 12 지신상은 난간석에 새겼다.
또 능역 아래쪽에는 홍살문에서 정자각에 이르는 길인 참도(參道)가 생략되어 있다.
이렇게 간소하게 능을 조성함으로써 부역인원과 조성비용을 감축하였는데 이는 조선 초기 능제(陵制)에 변혁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고, 이런 상설제도는 이후의 왕릉 조성에 모범이 되었다. 능 주위에는 문인석 · 무인석 · 상석 · 망주석 ·
석호(石虎) · 석양(石羊) 등의 석물이 배치되어 있다.
<3. 봉선사 (奉先寺)>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榛接邑) 부평리(富坪里)에 있는 절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이다. 969년 법인국사
(法印國師) 탄문(坦文)이 창건하여 운악사라 하였다. 그 후 1469년(예종 1) 정희왕후(貞熙王后) 윤씨가 광릉(光陵)의
세조를 추모하여 89칸으로 중창하고 봉선사라고 하였다.
1551년(명종 6)에는, 교종(敎宗)의 수사찰(首寺刹)로 지정되어 여기서 승과시(僧科試)를 치르기도 하고, 전국 승려와
신도에 대한 교학(敎學)진흥의 중추적 기관 역할을 하였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여러 번 수축했으나, 1951년 6 ·25전쟁 때
다시 법당과 함께 14동 150칸의 건물이 소실되었다. 화엄(華嚴)이 56년 범종각을, 1961~1963년에 운하당(雲霞堂)을 세우고, 1969년에는 주지 운허(耘虛)가 법당을 중건하고, 1977년에는 월운(月雲)이 영각(靈閣)을 세웠다. 절 종각에 보존되어 있는 동종(銅鐘)은 조선 전기의 것으로 보물 제397호로 지정되어 있다.
<4. 휘경원 (徽慶園)>
지정면적 15만 4262㎡이며, 1991년 10월 25일 사적 제360호로 지정되었다.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榛接邑) 부평리(富坪里) 267소재하여 있다.
수빈 박씨는 1770년(영조 46년) 5월 8일 돈령부판사(敦寧府判事) 박준원(朴準源)의 3녀로 태어나, 1787년 정조의 후궁으로 간택되어 숙선옹주(淑善翁主)를 낳고 수빈에 책봉되었으며 1790년 순조(純祖)를 출산한 후 1822년(순조 22년) 12월 22일
사망하여 1823년 2월 27일 이곳에 묻혔다. 1855년(철종 6년) 순조의 능인 인릉(仁陵)을 천장(遷葬)하면서 휘경원도 같은
진접읍의 내각리(內閣里)에 있는 순강원(順康園)으로 옮겼다가 풍수지리상 적당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다시 지금의 위치로 재천장하였으며, 그 위패는 서울 종로구 궁정동 칠궁 안에 있는 경우궁(景祐宮)에 봉안되어 있다.
묘시설은 봉분(封墳) · 곡장(曲墻) · 혼유석(魂遊石) · 장명등(長明燈) · 문인석(文人石) · 석마(石馬) · 석양(石羊) · 사초지(莎草地) 등이 있고, 정자각(丁字閣)과 비각(碑閣)을 갖추고 있다. 묘비를 정자각 앞에 세웠으며, 전면의 비명(碑名)은
‘유명조선국현목수빈휘경원(有明朝鮮國顯穆綏嬪徽慶園)’이라 새겼다.
첫댓글 좋은 자료 올려주셨네요.
하오런 형님과 함께 전에 함께 갔던 생각이 새록새록 나네요.
저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언젠가 시간이 되면 한번 더 가야지요.
함께 갔던 광릉 수목원 처음으로 가본 휘경원 앞등
그때 생각이 납니다. 훌륭한 자료조사 와 상세한
설명에 감탄을 금치못하겠습니다. 잘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