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관여 했을 것이다. 당연히 왕권에 있다기 보다. 외척에 손에 있었다고 봐야한다. 이렇게 안장왕과 만원왕의 죽음, 그리고 양원왕의 즉위 과정을 통해 볼때 고구려는 당시 몹시 혼란한 시기에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혼란의 이유는 귀족 세력의 등장과 함께 왕권이 약화 되었기 때문이다. 고대 국가에서 나라의 혼란이 가중되는 시기는 틀림없이 왕권이 흔들리는 시기와 일치하게 된다. 공동의 목표를 향해 힘을 합쳤던 귀족 세력들이 건국이념이 달성됨과 동시에 중앙정치의 한가운데로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고 왕권은 상대적으로 약해 졌던 것이다.
고구려는 전쟁의 운명을 타고난 국가였고 귀족으로 부터 일반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고구려인들은 국가적인 비상상황에서 언제든 전장으로 나가 목숨걸고 싸울수 있는 상무정신으로 무장되어 있었으며그들의 사고와 행동을 전쟁에 적합하도록 맞추어져 있었다.
* 고구려 인들의 상무 정신 *
“고구려인들은 남녀가 결혼하면 먼저 자신이 죽을 때 입을 수의를 만들어 놓는다”고 중국의 역사서 ‘위지동이전’은 전하고 있다.
고구려의 이러한 특이한 풍습은 잦은 이민족의 침략으로 언제 어디서 죽음을 맞을지 모를 정도로 긴박한 삶 속에서 나왔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 의연하게 죽을 각오가 항시 돼 있는 것이 고구려인의 상무정신이다.
광활한 대륙을 호령하던 초강대국 고구려의 힘은 강인한 전사를 만들기 위해 평소 교육과 훈련에 심혈을 기울였던 상무정신에서 비롯됐다.
상무정신의 실천이란 곧 살신성인을 의미한다.
우리 민족은 5000여 년의 역사 속에 930여 회의 외침을 받았다.
그중 고려시대 이후 지금까지 1000여 년 동안 거란의 3차 침입, 몽골의 7차 침입, 임진왜란, 정유재란, 병자호란, 청·일전쟁, 태평양전쟁, 6·25전쟁 등 민족 생사가 위급했던 큰 외침만 30여 회 겪었지만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면면히 이어올 수 있었다.
그것은 불의한 침략에 항거해 기필코 나라를 지켜내고자 한 선조들의 민족혼과 얼이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상무정신이란 자신과 가족, 나아가 조국을 스스로의 힘으로 지키겠다는 자위정신이다.
외침을 항시 대비하기 위해 진취적 기상을 기르고 교육 훈련으로 고난과 역경 하에서 자기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저력을 배양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상무정신이 기초가 됐을 때 비로소 국방력이 강했고 어떠한 외침도 극복할 수 있었다.
고구려인들은 수나라 100만 대군을 살수대첩으로 궤멸했으며 당 태종의 30만 대군을 안시성에서 물리쳤다.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엄청난 일이었다.
고구려인들은 ‘하늘의 자손’이라는 강한 선민의식을 바탕으로 고구려가 세상의 중심임을 표방하는 엄청난 민족의식을 갖고 있었다. 우리의 선조는 결코 나약하지 않았다.
우리 군의 정신적 뿌리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고구려를 빼놓을 수 없다.
고구려는 우리 민족 초유의 막강한 상무정신을 가진 대국이었다.
고구려는 시조 주몽의 건국 신화에서부터 상무적 기상을 보였고 그 정신을 이어왔다.
이러한 고구려인의 상무정신을 대표하는 인물이 바로 살수대첩의 영웅, 을지문덕 장군이다.
서기 612년 수나라의 113만 대군이 고구려를 침공했을 때 고구려는 절대 굽힘 없이 맞서 싸웠다.
이때 동아시아 최강인 수나라 군대는 을지문덕 장군의 작전에 말려 청천강에서 궤멸됐다.
살수대첩이 바로 그 싸움이다.
우리 민족이 치른 대외 전쟁 중에서 살수대첩은 일선 지휘관인 을지문덕 장군을 중심으로 고구려 전 장병이 똘똘 뭉쳐 대륙 세력을 물리친 민족적 승리였다. 이 싸움의 패배로 결국 중국의 수나라는 멸망하고 말았다.
또 고구려 광개토왕은 역사상 가장 광활한 영역을 통치했다.
중국 지린성 지안현에는 고구려 광개토왕릉비가 당시의 위용을 자랑하며 늠름하게 서 있다.
오죽하면 중국이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인이 자신들의 선조이자 중국사의 일부라고 우기려 했겠는가.
그만큼 고구려의 역사는 세계사에서 자랑스럽고 그 중심에 상무정신이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국민 개개인의 상무정신이 강했을 때는 국가가 흥성했지만 상무정신이 해이해졌을 때는 국력이 쇠약해지고 영원히 역사 속에서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상무정신을 고양, 강력한 국가를 건설한 나라로 이스라엘을 들 수 있다.
이스라엘의 상무정신은 시오니즘에 기초한 민족정신, 국가·민족에 대한 변함 없는 충성심, 생존에 대한 강한 책임감이다.
그 결과 세계 도처에서 2000년 동안 유랑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이스라엘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이다.
스위스는 영세중립국이지만 주변 군사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생존하기 위해 국방에 대비하는 상무정신이 어떤 나라보다 투철하다.
평시 스위스 정규군은 약 3500명에 불과하지만 우수한 동원 능력으로 48시간 이내에 110만 명의 동원이 가능한 세계 최고 수준의 동원 태세를 갖추고 있다.
이러한 예에서 보듯 상무정신을 바탕으로 강력한 힘을 가진 민족은 역사의 주인이 되고 힘 없는 민족은 역사의 제물이 됐다.
그동안 연재한 ‘전사속 살신성인’은 바로 그러한 것을 사례로 보여 주었다.
우리에게는 말발굽 소리 드높이며 광활한 만주 대륙을 호령하던 고구려의 기상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고구려인의 상무정신이야말로 우리 군이 조국 수호를 위해 꼭 간직해야 할 자세라 할 것이다. ***
그들의 사고와 행동은 전쟁에 적합하도록 맞추어져 있었다.
고구려인들은 전쟁이란 상황에서 더욱 단단하게 결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장수왕이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고 난 이후 중국이나 북방민족과의 전쟁은
확연하게 줄어 들었고 점차 자신들의 건국이념에 대해 무감각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장수왕 이후에도 전쟁은 꾸준히 이어졌으나, 그이전에 비해 전쟁의 횟수가 확연하면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장수왕에 이어 왕위에 오른 문자명 왕은 주변의 나라들과 전쟁을 하는 대신 중립적 입장에서 외교 관계를 맺었고 전쟁을 멀리 하였다.
그렇게 평화 유재하게 되자 장수왕 시절에 바닥에 납작 업드려 반격 시기만 엿보다
귀족 세력들이 다시 독버섯 처럼 고개를 돌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세력을 안으로 키워 나갔던 것이다. 문자명왕에 이어 왕위에 모든 안장왕 역시 마찬가지로 중립 노선을 유지하며 전쟁을 널리 하고자 하였고 밖으로 힘을 쓸곳이 없던 귀족 세력들은 그들의 힘을 내부에서 왕권 찬탈을 위한 힘겨루기에 활용한 것이다. 고구려에는 오늘날의 국무총리 처럼 국정을 총괄 하는 최고 관직이 '대대로'가 있었는데 왕이 그 책임자를 선임하는것이 아니라 귀족들 자신이 책임자를 선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