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고 깊다. 첩첩산중을 이룬 산의 지세가 그러하며 내면 또한 그렇다. 인간의 세월 속에서 본 지리산은 불교의 성지이며, 무속의 고향이었다. 또 체제 저항세력의 중심이었으며 도가의 이상향이었다. 따지고 보면 제각각의 뜻을 품은 이들이 몰려드는 유토피아적 거점이었다. 이는 지리산이 워낙 넓고 깊은 특성을 지니고 있었던데 따른 결과다.
지금도 지리산 언저리에 터를 잡은 이들을 보면, 도시로 대변되는 현대 문화에 염증을 느껴 스스로 귀의한 이들이 많다. 그래서 「토지」의 작가 박경리는 지리산을 일러 “현실공간에서 살 수 없는 사람들의 유토피아이며 피신처”라고 했다.
내륙 최고의 높이와 웅장함을 가지고 있지만 육산의 부드러움을 띈 골 깊은 산은, 이렇듯 인간의 세월 속에서 보면 ‘어머니의 산’이란 말로 설명 할 수 있는 포용의 산이었다. 그러나 산이란 곳이 항상 따스하고 풍족한 곳은 아니다. 현실적인 터전의 산은 오히려 혹독함에 가깝다. 더불어 임진왜란, 동학혁명, 여순사건, 한국전쟁 등 사람의 역사가 만들어낸 소용돌이는 빼놓지 않고 지리산을 휘감아 돌았다.
그래서 지리에 드는 사람은 바깥에서 보다 더 냉철하고 부지런하며 산천지의 고독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강인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어리석은 이가 지리산에 머물면 지혜로워진다’는 말은 지리산을 도피처나 유토피아 삼아 입산한 이들의 이러한 변모과정을 말하는 것일 터다.
등산 인구 1000만을 넘어선 지금, 섣부른 감상만으로 주말에 지리산을 찾는 이들은 여전히 넘쳐난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의 대피소 관계자들 말에 따르면 그나마 청바지에 운동화는 양반이고 산행 중 “다리 아파서, 길이 헷갈려서, 배낭이 무거워서” 등의 긴급하지 않은 이유로 구조를 요청하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또 “산장에 1인실과 침대는 왜 없냐. TV를 시청할 환경이 왜 안 되어 있냐. 화장실에 비데는 왜 없냐. 대피소 직원이 상냥하게 표준어를 안 쓰고 왜 사투리를 쓰냐” 등의 어이없는 항의도 늘어났다. 산에서 도시와 같은 편안함을 누리려는 생각 때문인데, 지리산에 처음 와서 고생을 겪고 나면 다시 산을 찾을 땐 많은 부분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지리산은 너그러운 어머니가 아닌, 잘못을 용서치 않는 준엄한 어머니다.
화엄사에서 등산화 끈을 조여 맨다. 100리가 넘는 장거리 종주를 시작한다는 긴장감과 지리에 입산한다는 설레임이 교차한다. 먹을거리는 부족하지 않은지 GPS와 헤드랜턴 건전지는 충분한지 다 점검했지만, 무언가 빠뜨린 것처럼 조바심이 난다. 겨울철 장거리 산행은 차가운 칼바람만큼이나 곁에서 떨어지지 않는 긴장감이 있어 좋다. 도시에선 고개 숙이고 있던 도전의식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때문이다. 눈을 번득이게 만드는 기분 좋은 두근거림이다.
지난주에 눈이 왔었다. 이번 주엔 눈 소식은 없지만 산에서의 기상은 모르는 것. 동계 장거리 산행에선 인원이 어느 정도 있어야 짐을 분담하고 눈이 쌓였을 때 러셀하기도 좋다. 박정렬, 안성룡, 백승렬씨가 동참했다. 이들은 지리산 마니아들이며 지리산 산행 경험이 많은 이들이다. 큰 산답게 지리산은 마니아도 가장 많은 편이다. 산의 내력과 비법정등산로까지 훤히 꽤 뚫고 있는 지리산 박사들만 해도 헤아릴 수가 없다. 70~80년대에 주능선 종주 몇 십번 한 이가 있다면 화제가 되었겠지만 지금은 그 정도론 골수들 사이에서도 평범한 수준이다.
참샘 물맛이 좋다. 참샘은 위치상으론 화엄사 계곡의 중간쯤이지만 이후부터 코재로 이어진 길이 가팔라 시간은 배 이상 걸린다. 참샘에서 배낭을 등에 더 밀착 시키고 본격적인 오름길로 붙는다. 땅에 코가 닿을 듯 힘든 오름길이라 해서 코재다. 산행 초반 몸을 화끈하게 풀어주는 것이 어느새 추위와 긴장감까지 가져가 버렸다. 코재에 올라서자 땀과 거친 숨결만이 남아 있다. 화엄사의 고도가 236미터, 코재의 고도가 1272미터이니 1000미터 정도 고도를 올렸다.
노고단대피소는 새롭게 리모델링을 했다. 나무데크로 외관을 꾸민 것이 산뜻하다. 평일임에도 취사장엔 사람들이 제법 있다. 대피소를 만나고서야 지리산에 든 것이 실감난다. 국립공원 중에서도 산장 문화가 가장 정착된 곳이 지리산 아니던가. 야영이 금지된 국립공원에서 능선 종주를 하자면 대피소 신세를 질 수밖에 없다.
준엄한 어머니의 산
이른 새벽부터 서둘렀지만 일출을 보긴 글렀다. 흐린 날씨 탓에 하늘이 통째로 밝아온다. 쌓인 눈은 깊지 않아 아이젠만 착용한다. 많은 종주자들이 러셀 해 놓아 길은 잘 나있다. 허나 등산로 바로 옆은 30센티미터 이상 눈이 쌓였다. 키 작은 산죽들은 묻혔거나 겨우 잎사귀만 고개를 내밀었다. 설경 속으로 점점 빠져든다. 온 통 하얗다. 부득이하게 순백의 고요를 깬다. 숲을 나와 돼지령에 닿을 때면 시원한 풍경이 짠하고 나와야 제 맛이지만 흐린 하늘은 풍경을 밋밋하게 만들어 놓았다. 주능선에서 뻗은 왕시리봉 줄기가 남쪽으로 뻗어 있다. 산 아래에서 보았다면 이름처럼 묵직하게 보였겠지만 주능선에서 본 왕시리봉은 발아래다. 더 먼 산들은 희뿌연 안개구름 속에 파묻혔다. 지리산에선 날씨도 다 제 복인 것을…. 묵묵히 걸음을 옮긴다.
잠깐 쉴라치면 사람들이 추월해 간다. 보통 지리산에서 쉴만한 터는 정해져 있지만 속도 내어 그냥 통과하는 이들도 있다. 관리공단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종주자의 8할은 남쪽인 노고단에서 출발해 북쪽인 천왕봉으로 향한다. 그래서 주능선 종주를 시작하면 첫날 보았던 이들과 마지막 날까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계속 마주친다. 산행이 끝날 즘엔 생판 남이라 해도 스스럼없이 가까워진다. 이렇듯 지리산은 인연의 실타래를 연결해 주기도 한다.
취재진은 가야할 길도 멀고 사진도 찍어야 하기에 여유롭게 간다. 취재진에게 마저 추월 당하는 이들은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팀이다. 조망 좋은 쉼터 노루목에서 한숨 돌리고 삼도봉으로 간다. 노루목은 반야봉 갈림길이기도 하다. 산행 일정이 넉넉했다면 그 유명한 반야봉 낙조를 즐기겠지만 그러기엔 갈 길이 멀다.
삼도봉은 세 개 도의 경계가 나뉜다 해서 그 이름이 연유하지만 본 이름은 날라리봉이다. ‘날라리’는 표준어로는 좋은 의미가 아니지만 사투리로 ‘나란히’란 뜻을 가지고 있다. 치밭목대피소 관리인 민병태씨의 말에 따르면 서울에서 온 이들이 불순하다 하여 멋대로 본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등 뒤로는 반야봉이 특유의 곰 같은 거대한 덩치로 무뚝뚝하게 서있고 시야가 트인 남쪽엔 불무장등이 산세를 풀어 놓았다. 눈 내린 후 며칠 지났기에 산의 윤곽은 흑백이 공존한다. 화개재로 이어진 내리막길엔 관리공단이 목제계단을 설치했다. 건축학과 교수를 역임한 박 선생이 “다 세어보니 535갠데”라며 일행을 살짝 놀라게 한다. 토끼봉 오름길은 힘들다. 비탈이 끝날 만도 한데 지치지도 않고 꾸역꾸역 된비알을 계속 내어준다. 그래서 토끼봉을 오를 땐 종주자들도 말이 없다. 거친 숨소리만 울릴 뿐.
산국 한 가운데서의 침묵
명선봉을 우회해 연하천대피소로 가는 길도 제법 길다. 길다고 느껴지는 곳은 항상 오르막이 있다. 힘들다 해서 가지 않을 수 없다. 힘들어도 일단 대피소가 있는 곳까지 가야하고, 대피소에서 쉬고 다시 가야한다. 지리산 주능선의 단순한 산행 방식이다. 허나 그 단순한 논리는 인내와 땀방울을 요한다. 그래도 지리산 산행은 편하다. 물이 없는 다른 능선과 달리 곳곳에 물 있고, 대피소 있고, 위험한 암릉 구간 없이 길도 순탄하다.
벽소령을 뒤에 두고 아침 일찍 덕평봉으로 향한다. 입산 후 가장 화창하다. 선비샘에서 물을 채운다. 선비샘 위의 덕평봉 사면엔 무덤 한 기가 있다. 이 무덤은 노비의 무덤이라 전하는데 양반에게 맺힌 것이 많았던 이 노비는 샘 위에 묘를 써 이곳을 지나는 선비들이 샘에서 물을 뜨기 위해 허리를 숙이며 자연스레 절을 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망바위는 이름답게 조망이 확 트였다. 중봉과 천왕봉은 물론 남쪽의 첩첩산중도 한 눈에 든다. 눈 쌓인 겨울 풍경은 흰색의 여백과 검은 묵으로 그 깊이를 풀어내는 한 폭의 수묵화다. 단순하지만 장엄한 능선의 윤곽이 깊다. 실로 산국(山國)이다. 이럴 땐 침묵이 가장 정확한 감탄사다. 지리의 장엄한 풍경 앞에서 쉴 새 없이 떠들고 촐삭 대는 모양새는 어울리지 않는다. 침묵의 겸손으로 지리산 속에 파묻히는 것이 합당한 감상법이다.
천왕봉 일출을 맞으러 새벽부터 장터목대피소를 나선다. 일행들 모두 잠을 충분히 못자 피곤이 남아 있다. 소등시간 이후에도 침상에서 술 마시고 떠드는 이들 때문에 잠을 설쳤기 때문이다. 지리산이라 하면 대피소에서의 추억이 누구나 있다. 좋은 추억도 많겠지만, 꼭 밤에 술 먹고 남들 잠 못 자게 훼방 놓는 이들에 대한 기억도 있다. 언제부턴가 대피소는 지리산의 장엄한 침묵과는 달리 번잡하고 시끄러운 곳으로 변했다. 지나친 음주문화로 인해 골머리를 썩고 있으며 등산인들 끼리 싸움도 예사가 되었다. 워낙 많은 사람이 찾는 산이다 보니 어쩔 수 없다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지킬 것은 지켜 가며 성숙한 산행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 진정 산을 아끼는 사람의 도리일 것이다.
구름을 헤치고 천왕봉에 햇살이 닿는다. 일출을 기다리며 새벽 칼바람의 쌀쌀함에 발을 동동 구르던 등산 인파도 덩달아 감탄사를 연발한다. 구름을 한 꺼풀씩 헤치고 의미심장하게 떠오른다. 쾌청한 날이 많지 않아 위로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왕봉 일출. 한해의 소망을 빌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가 연출된다. 주능선 산행의 클라이맥스다. 해가 완전히 떠오르자 등산 인파는 금세 퇴장했다. 내륙 최고봉의 새벽 칼바람은 오래 버티기 어렵다. 대부분 장터목과 중산리 방면으로 향하고 중봉 가는 길은 취재진뿐이다. 산에선 산을 보지 못한다 했는데, 중봉에 오니 천왕봉이 똑똑히 보인다. 정상에 선 사람까지도 선명하다. 두 번째로 높은 중봉은 한적하고 풍치가 뛰어나다. 천왕봉에서 볼 수 없었던 것이 있다며 중봉은 나지막이 속삭인다.
써리봉 능선은 한적하여 생태 보존이 잘 되어 있다. 마루금이 요동쳐 오르내림은 많지만 지리산의 숨겨진 모습을 보는 것 마냥 신선한 풍경이 연이어 펼쳐진다. 더불어 소박하고 정적이 감도는 등산로도 사람을 끄는 묘한 매력이 있다. 걷는 사람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다. 법정등산로로 길을 잡았을 때, 제대로 된 주능선 종주는 유평리에서 끝난다는 말은 여기서 위력을 발휘한다. 천왕봉 클라이맥스의 여운을 느낄 사이도 없이 바로 하강하는 중산리는 산을 제대로 감상하기엔 성급하다.
반면 유평리로 이어진 길은 촌스럽지만 정 많은 두메 사람이다. 내내 천왕과 중봉, 반야의 엉덩이를 한 번 더 보고 가라며 발길을 잡아끈다. 치밭목을 지난 후에도 서두르지 말고 조심해서 가라며 완만한 하산길을 끝없이 내어주며 배웅 나온다.
저 멀리 천왕봉 꼭대기의 마고여신이 손 흔든다.
출처 사람과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