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끊임없는 자아 탐구와 내적 성찰
류 재 엽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1
시인은 항상 자신이 언어로 진술하고자 하는 대상을 찾아 사고하고 탐구하며 발견한다. 이것이 시인의 인식이다. 시인의 인식은 자아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자연이나 우주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상(事象)들이 시의 테마이다. 이러한 시적 테마들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진실이다. 시인의 사명이 진실을 말하는 것임을 전제로 할 때, 진실은 인간 자체임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시인의 진실은 인간적 체취에서 근원한다. 인간의 진실과 시의 진실은 언어를 통해 동일하여야 한다.
임애월 시인의 『사막의 달』을 읽으면서 필자는 시인의 진실과 일치된 시의 진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지금껏 시인의 삶이 진실하였고, 끊임없이 자아를 찾고자 하는 태도를 견지하면서 시 창작에 임하였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시집은 『정박 혹은 출항』(월간문학 출판부, 2005)과 『어떤 혹성을 위하여』(도서출판 AJ, 2011)에 이은 세 번째 것이다. 여타 시집이 그러했듯 자유시와 정형시인 시조가 한데 묶여 있는 시집이다. 시인 임병호는 시와 시조를 동시에 창작하고, 한 시집에 두 장르를 모두 수록한 데 대해 “우리의 옛 정서와 현대의 이미지를 잘 조화”시켰다라고 평하였다. 이는 그의 시혼이 고정된 틀이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음을 뜻하는 동시에 시인의 자유혼을 보여주는 성과이다.
문학은 체험의 소산이다. 그것이 시이건 소설이건 작가는 자신의 기억을 바탕으로 하여 작품을 창작한다. 독자는 작품을 읽음으로써 작품 속에 은연중에 드러난 작가의 심리를 알아낸다. 시인 임애월의 시 속에는 시인의 삶과 사유, 그리고 철학이 들어 있다. 이번 시집에서 임 시인이 추구하는 시정신은 여러 갈래이다. 먼저 그의 시는 끊임없는 자아 탐구와 내적 성찰로 시인으로서의 존재인식을 표출하고 있다.
다음은 이번 시집의 표제작이다.
어디에나 길은 있지만
어디에도 빛은 보이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흐르던 물줄기들이
건조하게 말라붙어 그 바닥이 드러날 때
잃어버린 물줄기의 맥을 찾아
나는 타클라마칸의 사구로 떠난다
물기 하나 없이 서걱이는 모래산맥 너머로
오래 전 잃어버린 빛들을 모아
지상에서 가장 말갛게 떠오르는 사막의 달
비로소 작은 모래알들이 모여 거대한 바다로 출렁이고
놓쳐버린 길을 묻는 길손들의 발등을 적신다
- 「사막의 달」 부분
시인의 시적 모험은 모래의 땅 사막에서 시작된다. 사막은 모든 것이 말라붙어 버린 지역이다. 물이 마르고, 나무가 마르고 풍경마저 말라버린 불모의 땅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흐르던 물줄기”들이 건조하게 말라붙어 그 바닥이 드러날 때 시적 화자는 “잃어버린 물줄기의 맥을 찾아/나는 타클라마칸의 사구로” 떠난다. 모든 것이 단절된 철저한 절대고독의 사막, 그 모래언덕 너머 달이 떠오를 때 빛의 바다가 앞에 펼쳐진다. 우리에게 달을 푸근한 것이고 생명력을 가진 존재이다. 달은 여성적 이미지를 갖는다. 이지러졌다가 다시 차오르는 달은 여성의 생리주기처럼 생산을 상징한다. 달은 곧 여성이고 물과 상응하는 이미지를 지닌 풍요와 생산을 뜻하는 존재이다. 달빛이 강물처럼 흘러 ‘길손들의 발등’을 적실 때 시적 화자에게도 ‘길’과 ‘빛’이 보이게 되고 비로소 자아를 찾아가는 단계에 도달한다.
바람과 비에 젖으며
긴 산맥의 줄기를 세우던 아침
그 찬란하던 빗소리와 꽃들과
새들의 노래 모두
젊은 계절의 갈피에 접어두고
실핏줄 말리는 烹刑의 뜨거운 통증
이제는 스스로 감내하겠다
탯줄이 타는 갈증과
오장육부를 녹이는 바람의 기세 속에서
오히려 아늑하고 혼곤한 잠에 빠지면
숨골에서 서서히 빠져나가는
내 영혼의 실타래
더 이상 풀어낼 실마리도 없이
침묵의 대가로 남겨지는 올곧은 뼈대
순백의 舍利들
- 「소금」 부분
바다는 여름 내내 햇빛을 불러들이고 바람을 앞세워 침묵으로 하얀 꽃을 피워낸다. 파도 소리에 석양도 저물어 가면, 별빛 속에 짭짤한 소금이 영글어 간다. 염부의 땀방울에 비로소 하얀 소금의 결정체가 완성된다. ‘실핏줄 말리는 팽형’과 ‘탯줄이 타는 갈증’ 그리고 ‘오장육부를 녹이는 바람의 기세’를 거쳐야만 ‘순백의 사리들’이 우리 앞에 존재하게 된다. 그것은 올곧은 ‘침묵의 대가’이다. 무엇 하나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수양과 고행 끝에 얻어지는 고승의 사리처럼 세상사에 혼탁되지 않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음으로써 아름답고 영롱한 정신의 결정체를 얻을 수 있다. 시인은 여기에서 우리에게 어떤 자세의 삶이 과연 올바른가 하는가를 묵시적으로 보여준다.
단절된
고치의 시간
봄비의 꿈속에서
씨줄 날줄
직조해 보는
경계 밖 삶의 문양
날개는
침묵의 가치를
아는 자의 몫이다
- 「羽化」 전문
시인은 유난히 ‘침묵’이라는 언어를 좋아한다. 초여름의 어느 날 떠오르는 시상을 어렵게 엮어내는 시인의 모습에 공감이 간다. 말을 잊고 차라리 침묵에 몸과 마음을 던진다. 시심을 형상화하는 데는 ‘침묵’의 도움이 절대적이다. 침묵만이 시에다가 생명을 불어넣는다. 그래서 나비가 허물을 벗고 공중을 훨훨 날 수 있는 하나의 완성체가 된다. 시인은 시작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날개는/침묵의 가치를/아는 자의 몫이다”라고 노래하기도 한다. 시인이 스스로 만족하는 작품 한 편을 건지기 위해 오랜 침묵의 시간을 견디어 내야 한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하늘을 날 수 있는 날개를 갖게 된다.
2
시인의 작품 속에는 언제나 역사의식과 조국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깃들어 있다. 시인은 분단된 조국의 현실을 아파한다. 백령도에서는 북녘 땅 민요의 본 고장 장산곶과 심청의 효심이 녹아 있는 인당수가 지척이다. 눈에 빤히 보이지만 갈 수 없는 곳이다. 본디 한 땅이었지만 지금은 안타깝게도 이데올로기의 장벽으로 가로막히고 말았다. 그 장벽 위를 “길 잃은 가마우지만 시공을 넘나”들지만, 우리는 “놓쳐버린 길을 안고 칠십 년 아픈 뼈들이 경구처럼” 삐걱이는 소리를 낸다.
장산곶 새벽닭 우는 소리 바다를 건너왔다
인당수 해무 속엔 난류 한류 몸을 섞고
심청의 치맛자락은 꽃으로 피어났다
섬 머리를 때리는 두무진 파도소리
별빛 아래 주파수 잠 못 들어 뒤척이고
길 잃은 가마우지들만 時空을 넘나든다
산맥처럼 무성하게 웃자란 소문들은
섬 속의 떠도는 섬, 놓쳐버린 길을 안고
칠십 년 아픈 뼈들이 경구처럼 삐걱인다
- 「백령도의 밤」 전문
시인은 임진강이 흐르는 문산을 지나가면서 분단된 조국의 현실에 가슴 아프다. 임진강은 북녘으로부터 흘러와 한강과 만나기까지 남과 북의 국경 노릇을 하고 있는 강이다. 그곳에 가면 북녘의 산하가 손에 잡힐 듯하다. 그게 더욱 분단의 아픔을 한층 크게 한다.
문산을 지날 때는 들국화도 흔들렸다
손에 잡힐 듯한 남빛 깊은 북녘의 산하
아슴한 그 푸른 눈빛
가슴속을 물들이네
군용트럭 거친 숨결 일어서는 흙먼지
임진강 굽은 강변, 곧은 낚시 드리웠는가
짙푸른 강물을 타고
유영하는 불빛들
바람 불면 바스러질 지푸라기 허장성세
빛바랜 사상, 견고한 이념의 벽을 넘어
지상의 가장 어두운 곳에
피어라, 꽃이여
- 「임진강을 지나며」 전문
휴전선과 매우 가까운 문산에는 군부대도 많다. 언제나 긴장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곳이기도 하다. 군용 트럭이 지나가면서 일으키는 흙먼지 속에 분단의 현실이 있다. 가슴 아픈 분단 조국은 문산의 ‘들국화’도 흔들리며 피어 있는 듯하다. 그래도 화자는 “지상의 가장 어두운 곳에/피어라, 꽃이여” 라고 열망한다. 이것은 지금은 비록 어두운 현실 속에 놓여 있지만, 통일된 조국을 바라는 마음의 표현이다. 시인 정성수는 임애월을 “조국애와 역사의식”을 지닌 시인으로 평한 바 있다. 그것은 대마도를 여행하고 돌아온 다음 작품에 잘 드러나 있다.
물길로 백여 리, 선대의 발자취 따라왔다
조선통신사 흔적들은 시대의 유물 되어
퇴적된 제 안의 시간들 섬 끝에 나앉았네
면암 선생 혼이 서린 수선사 뜨락엔
어둠 딛고 피어나는 조선의 꽃 민들레
척박한 유배의 땅에 그 뿌리를 감았구나
비운의 덕혜옹주 가둬놓은 다다미방
아득한 난바다에 그리운 물결 일어
귓전을 넘고 또 나는 현해탄 바람소리
아리랑은 이곳에서도 그 여운이 길어서
가을마다 축제는 아리랑 일색이라니
조선인 질긴 근성으로 지켜야 할 민족혼
- 「대마도에서」 전문
대마도는 본래 노략질을 일삼는 왜구의 본거지였다. 조선 초기 세종에 의해 정벌되어 임진왜란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에게 조공을 받쳐온 섬나라이다. 그리고 조선통신사가 거쳐 가는 중간지점에 위치한다. 곳곳에 우리의 문화 유적이 남아 있다. 우리의 꽃인 민들레가 곳곳에 피어 있고, 우리의 가락인 아리랑의 그 여운이 남아 있기도 한 곳이다. 그러나 조선 말기 일본이 근대화되어 힘이 강대해지자 대마도는 민족에게 치욕의 한을 안겨준 땅으로 기억된다. 면암 최익현 선생이 이곳에 잡혀가 순사했다. 면암은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전국에 걸쳐 반일운동을 일으킬 것을 결심하고 이듬해 충청남도 노성에서 수백 명의 유림을 모아 시국의 절박함을 호소하고 일치단결하여 국권 회복에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이후 9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정읍, 순창, 곡성 등지에서 들어가 일제 관공서를 철거하고 세전과 양곡 등을 접수하기도 하였다. 그 후 전주관찰사에게 붙잡혀 서울을 거쳐 대마도에 유배되어 감금되었다. 그곳에서 단발을 강요당하자 단식하기로 결심하고, 단식 끝에 병을 얻어 순국했다.
한편 고종 황제의 막내딸인 덕혜옹주(德惠翁主)는 일본의 강압에 따라 유학이라는 명분으로 도쿄로 보내져 여자학습원에서 수학하다가 대마도 번주의 양자와 결혼하였다. 이후 정신분열증 증세를 보이다가 병세는 더욱 악화되었다. 해방 후 마쓰자와 도립 정신병원에 입원하였다가 1955년에 이혼하고 귀국 후 죽었다. 이처럼 대마도는 우리 국토를 침입하기 위한 일본의 전진기지였다. 이런 대마도를 여행하면서 화자는 “조선인 질긴 근성으로 지켜야 할 민족혼”을 새삼 되새긴다. 상흔을 치유하기 위한 몸짓이다.
3
그의 시에는 고향 제주에 대한 향수와 어머니를 생각하는 사모곡들로 가득하다. 이런 노래에는 제주 애월의 풍광과 정서, 친구와 더불어 가족에 대한 사랑이 가득하다. 다음 시에서도 제주와 어머니의 이미지는 애잔하다 못해 눈물겹다. 그건 작중 화자의 어린 시절의 체험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제주는 척박한 땅이다. 육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나름대로 독특한 문화와 생활환경이 만들어졌다. 제주 사람들은 평소 근면 절약하고 상부상조하는 삶을 이루어 왔다.
팽나무 밑을
지나
하귤이 서너 개
떨어져 뒹구는
나팔꽃 핀
올레 끝에
작은 등
걸어 놓으신
어머니
내 어머니
- 「우리집」 전문
‘팽나무’와 ‘하귤’과 ‘올레’는 제주와 고향을 상징한다. 단순한 고향이 아니라 제주 사람의 삶을 의미한다. 시인 김수영은 「고향」이라는 작품에서 “언덕을 지나고 시내를 건너고/봄은 노래 맞춰/고향으로 간다//고향은/아직도 내 마음에 너그럽다”라고 노래했다. 제주 애월은 시인에게 한없이 너그럽고 돌아가고픈 고장이다. “남쪽에서 온 새는 언제나 고향에 가까운 가지에 앉는다(越鳥巢南枝)”라는 고시가 있다. 시인의 고향 애월에 노모 홀로 살고 계신다. 남쪽 섬에서의 삶은 풍요롭지 못했다. 더욱이 제주 여인의 삶은 더욱 서럽다. 온갖 힘든 일은 여인의 몫이다. 시인의 어머니도 그런 삶을 살아오셨다. ‘작은 등’은 아직도 진행 중인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 또는 기다림을 의미한다.
척박한 변방의 땅
건천 지나 햇살 한 줌
허술한 목울대로
거친 바람 끌어안은
실핏줄
파랗게 돋던
젊은 날의 어머니
- 「쑥꽃」 전문
어머니는 젊은 날부터 “척박한 변방의 땅”에서 “허술한 목울대로/거친 바람 끌어안은” 채 살고 있었다. 이 땅의 어느 여인의 삶이 고단하지 않겠는가만 특히 제주 여인의 삶은 신산(辛酸)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그가 내 어머니일 때는 말할 필요가 없다. 남정네들은 고기잡이 나갔다가 난파 등의 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나고, 남은 여인들은 농사와 물질에 젊은 시절을 고통스럽게 버텨내야 했다.
어머니는 아직도 버선을 신으신다
알록달록 화려한 꽃무늬 버선을
산나리 장다리 함박꽃, 섬 끝엔 제주바람꽃
철을 가리지 않고 지천으로 피어나는
어머니의 꽃들이 거친 발등을 감싸 안는다
뒤축엔 한철 지난 꽃이 저 홀로 스러지고
덧대어 얼기설기 꿰맨 묵은 꽃이 질 즈음
이제 그만 버리세요, 새 버선도 많잖아요
지지리 청승맞다고 남들이 흉봐요
버리지 마라, 꿰매면 아직도 새것 같다
날 숭보는 사람들은, 나만 못한 사람들이다
여전히 어머니 꽃밭엔 사철 묵은 꽃이 피고
손끝에서 살아나온 재생의 시간들은
팔순을 넘기신 어머니의 돋보기 속에서
화안한 꽃길 만들며 저들끼리 즐겁다
- 「어머니의 버선」 전문
힘겨운 제주 여인의 삶과 함께 어머니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기워 신은 버선은 어머니의 꽃밭이다. 그것은 “알록달록 화려한 꽃무늬”가 “지천으로 피어” 어머니의 거친 발등을 감싸 안고 있기 때문이다. 팔십 노모에 대한 그리움과 서러움이 “화안한 꽃길 만들며 저들끼리 즐겁다”에서 보듯 아이러니의 기법을 통해 오히려 아름답게 채색되어 시적 효과를 높이고 있다. 아프리카에 “가정에서는 어머니의 사랑, 들에서는 태양의 빛”이라는 속담이 있다. 그만큼 어머니의 사랑은 우리를 양육시키는 힘의 원천이 된다. 임 시인의 어머니 사랑은 유난하다. 많은 작품이 고향 제주와 그곳에 계신 어머니를 제재로 하고 있다.
4
현대인은 소중한 것들을 잊고 산다. 다시 말해 가치 상실이고 가치전도이다. 무엇이 소중하고 귀한 줄을 모르고 산다.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경제적인 측면만을 강조한 나머지 소득은 크게 신장되었지만, 그밖에 생활방식이나 문화적 측면에서 전통은 어디론가 실종되고 말았다. 전통은 역사적 의식을 포함한다. 이 역사적 의식은 역사의 과거성뿐만 아니라 역사의 현재성에 대한 의식도 내포하여야 한다. 이는 문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역사의 통시적인 면과 공시적인 질서를 날카롭게 벼루어 언제나 역사에 대한 의식을 갖추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를 살고 있는 많은 이들이 역사의 통시적인 면을 간과하고 있고, 곧 전통성이 헐가의 취급을 받고 있다. 시인은 이런 현대인의 의식을 개탄한다.
대문도 없는 그 집엔
혼자 사는 바람이
마당의 이른 낙엽 이리저리 쓸어놓고
대숲을 흔들어보다
감나무에 걸렸다
따뜻한 웃음들이
문지방을 넘어갔을
구멍 난 창호지 바람벽은 폐렴을 앓는지
바람이 드나들 때마다
야위는 기침소리
미처 따라가지 못한
짝 잃은 외신발
사는 일이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다고
혼자서, 처서 지난 댓돌
달그림자 밟고 있다
- 「폐가」 전문
농촌은 도시화되어 고유의 문화도 사라졌다. 우리 것 대신에 서양의 것, 옛것 대신 새것이 우리 곁에 자리 잡았다. 농촌 사람들은 대도시로 몰려나가고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이 거주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대신에 농촌에는 폐가가 늘어갔다. ‘대숲’과 ‘감나무’, ‘문지방’, ‘댓돌’로 대변되는 농가만 덩그러니 “혼자서 처서 지난” 달그림자를 밟고 있다. 농촌의 공동화에 대한 시인의 낮은 탄식이 서려 있다. 그런 것들이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자산임을 잊어버린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하나의 경구와도 같다.
‘집’이라고 누군가 말했을 때
80평생 살아온 집의 형체는 사라지고
우울한 회빛 담장이 눈앞을 막아섰다
아들 손에 이끌려 S요양원에 입소하던 날
잠깐 뒤돌아 본 골목 어귀엔
노오란 은행잎이 첫눈처럼 살풋 흩날리고 있었는데
돌아갈 수 있을까
돌아가서 군불 내 나던 따스한 아랫목에
내 두 손 다시 묻을 수 있을까
요양원 뒷마당엔
첫서리 내려 마른 풀들 서걱대고
감나무의 까치밥 저 홀로 처연하다
마른 낙엽처럼 가벼워지는 머릿속
뇌세포들이 하나씩 죽어갈 때마다
서서히 사라지는 봄꽃 화사했던 기억들
평범하던 행복들이 아득해지는 계절
“어르신, 밖으로 나가시면 안 돼요”
찰칵 잠기는 문, 그 너머에
한 생애 따스한 이야기들
눈물겹다
- 「S요양원 실습일지」 전문
전국 곳곳에 노인요양소가 들어서고 있다. 소위 장사가 되기 때문이다. 노인의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치매와 뇌출혈로 인한 반신불수의 노인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이런 노인 문제가 각 가정의 골칫거리로 등장한 것이다. 자식 누구라도 병든 부모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 또한 핵가족 중심의 가족 형태가 빚은 비극이다. 가족은 가정의 구성원이다. 가정은 행복을 저축하는 곳이다. 사랑하는 가족이 죽거나 집을 떠나버리면 더 이상 저축할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다. 80노모가 아들의 손에 이끌려 요양원에 들어온다. “마른 낙엽처럼 가벼워지는 머릿속/뇌세포들이 하나씩 죽어갈 때마다”라는 표현으로 보아 노모는 아마 치매에 걸린 듯하다. 기억이 사라지면 슬프게 마련이다. “서서히 사라지는 봄꽃 화사한 기억들/평범한 행복들이” 아득해지는 것은 “노오란 은행잎이 첫눈처럼 살풋 흩날리”는 가을 무렵이다. 조락의 계절에 바람에 흩날려 떨어지는 은행잎처럼 80노모의 기억과 생명도 “찰칵 잠기는 문”처럼 아득하다. 오늘도 우리 이웃에서 일어나고 있는 야만의 모습이다. 시인은 그런 우리 모습에 눈물겨워한다.
5
그의 시에는 자연, 그 가운데에서도 계절을 특히 시의 제재로 삼는다. 프라이(N. Frye)는 그의 저서 『비평의 해부(Anatomy of Criticism)』에서 문학작품에 대한 비평을 크게 4가지로 나누고 있다. 첫 번째, 역사비평, 두 번째, 윤리 비평, 세 번째 원형비평, 네 번째 수사비평이 그것이다. 그리고 원형비평의 이론에서 봄의 미토스(Mythos)는 희극, 여름의 미토스는 낭만, 가을의 미토스는 비극, 겨울의 미토스는 아이러니, 풍자로 구분하였다.
다음에 각각 봄과 가을을 노래한 작품을 살펴보자.
아린 꽃향기에
몸이 먼저 달떠
잠 못 드는 밤에는
무한 고요 속
우주의 귀 하나
열려
애기나리
새 순에
봄물 오르는 소리도 들린다
- 「봄밤」 전문
시인은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다. 그것은 계절이 지닌 상징성 때문이다. 시인에게 “아린 꽃향기에/몸이 먼저 달떠/잠 못 드는 밤”이 되면 “우주의 귀 하나”가 열려 “봄물 오르는 소리”를 듣게 된다. 우리 인간에게는 외적 대상을 인식하는 감각기관의 지각, 내적 상태의 인식 원천인 내적 지각, 외적 대상의 내적 인식이라는 단계를 거쳐 감정이입이 일어나게 된다. ‘꽃향기’라는 외적 대상에 대한 감각기관의 인식은 마침내 ‘봄물 오르는 소리’ 내적 인식에 도달하게 된다. 외적 대상에 대한 인식은 예민한 감성을 소유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감성은 오성과 대립하며 신체가 받은 자극에 의해서 그에 대응한 감각을 말하는데, 인식에 없어서는 안 되는 능력이다. 감성은 시인의 전유물이다. 시인은 그만큼 예리한 감성을 지니고 있다. 시인의 감성은 봄이라는 계절이 주는 기쁨으로 미만되어 있다.
편편치 못한 잠 속에 피어나는 기억의 찔레송이들
이제 비는 내리는 게 아니라 흐른다
창문을 흐르고
내 눈가를 흐르고
먼 기억의 소용돌이 속을 돌아서
사유의 긴 강물 속으로 흘러든다
이 비 그치면 곧 겨울이 오겠지
겨울은 모든 것들의 무덤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것들의 잉태를 위한 양수이기도 하다
어제 양지쪽에 묻어준
발이 너무 작아서 슬픈 아기고양이
그 무덤 위에도 봄이면 누군가의 이름으로 새싹은 다시 돋아나겠지
나는 이제 그 무덤 위에 한줌의 눈물을 뿌리고
또 하나의 슬픔을 벗는다
- 「새벽비」 부분
프라이에 의하면 가을의 미토스는 비극이다. 우리는 누구나 가을이 되면 슬퍼진다. 만추의 새벽에 내리는 비는 시인에게도 잊었던 슬픔으로 다가온다. 시인은 그 슬픔을 딛고 다시 봄을 그리워한다. 봄은 죽은 것들이 되살아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극작가 손튼 와일더(T. N. Wilder)의 연극 『우리 읍네(Our Town)』에서 제3막은 무덤 속 죽은 자들의 대화로 시작된다. 그들 대화의 주제는 살아 있는 마을 사람들에 관한 것이었다. 이승에서의 삶이 저승에서 주검인지도 모른다. 시인은 “겨울은 모든 것들의 무덤이기도 하지만/새로운 것들의 잉태를 위한 양수”라고 정의한다. 그리하여 시인은 “또 하나의 슬픔을 벗는다”라고 노래한다.
6
시인은 지름길보다는 구부러진 길을 더욱 사랑한다. 빠른 속도감이 아니라 유장한 걸음으로 주변과 사위를 살피며 그러한 인생을 사랑한다. 그래야 비로소 세상의 이치가 마음에 잠기며, 탈속의 길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느림의 미학을 즐기고자 하회마을을 찾는다.
하회마을에 가면
가을햇살처럼 부드러운 길이 있다
한 발 늦더라도 둥글게
모서리를 돌아서 흐르면
유려한 곡선이 되는 길
감나무 까치밥 인심이나
들꽃들의 느슨한 몸짓처럼
꾸미지 않은 것들이 더 멋스러운 배경이 되는 길
물은 굽이치는 강물이 아름답고
길도 구불구불 오솔길이 정다운데
사람 사는 세상도
직선의 길만 고집하지 않는다면
한 번쯤 고개 숙여
낮은 강물의 속살도 들여다봐 준다면
탈속한 하회탈의 웃음처럼 편안해진다고
중심을 벗어난 낙동강의 지류 하나
제 물길 휘돌아 나가며 일러주고 있다
- 「하회마을에 가면」 전문
시인은 병산을 휘돌아 나가는 화천을 걸으면서 자연과 교감하며 비로소 정신적인 풍요를 얻는다. “물은 굽이치는 강물이 아름답고/길도 구불구불 오솔길이 정다운데”라는 여유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회마을은 낙동강이 마을을 감싸 돌고 있는 고장이고, 부용대 건너편 백사장의 소나무 숲길은 자연과 대화하며 걷기에 마땅한 장소이다. 훤소한 도시가 아닌 한적한 시골 마을과 시골 길을 좋아하는 시인의 몸가짐에서 우리는 시인의 관조의 자세를 볼 수 있다. 시인 정성수는 “대자연과의 교감 속에서 피어나는 달관의 세계, 이상과 현실에 대한 희구와 자아성찰”이라고 임 시인의 작품 특색을 평가했다.
다음은 두 번째 시집 「自序」(『어떤 혹성을 위하여』)의 부분이다.
나의 詩 쓰기는
내 안의 거울을 맑게 닦아
거기에 비친 나를 바로 보는 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늑골 안으로 모여드는 욕망의 무게들을
날마다 덜어내는 일,
그리하여 마침내는
해토머리 고산지대에 피어나는 상고대처럼
투명해지거나
혹은
바람처럼 가벼워지는 일이다.
시인의 문학적 태도가 잘 나타나 있다. 시 쓰는 일은 시인에게 있어 마음속의 거울을 맑게 닦는 일이면서 욕망의 무게를 덜어내는 일이거나 정신이 투명해지고 가벼워지는 일이다. 이는 시에 대한 절대적 신앙이다. 이런 신앙을 지니고 싶은 시인의 자세는 “사월의 해무가/낡은 선박처럼 정박해 있는 왕포리/이 작은 포구/어디쯤 고여 있을까/그 빛나는 언어들은”(「정박 혹은 출항」, 『정박 혹은 출항』)과 같은 구절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것은 “언어의 함축과 주제의 명징한 구현”이라고 말한 시인 김송배의 한 마디로도 알 수 있다.
시에 대한 끝없는 열정, 그러면서 진리를 찾아 헤매는 열망을 위해 사막을 떠도는 여정, 다시 돌아와 고향바다와 어머니를 향한 처절한 그리움의 표출,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시인 임애월은 결론적으로 말해 시와 인간을 사랑하는 휴머니즘의 시인이다. *
|
첫댓글 좋은 작품 기대되고 시집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사막의 달'을 보고 싶은데
사막까지는 너무 멀다
산에 사는 산짐승은 사막에 머무르지 못 한다
달 뜨지 않는 사막, 삭막 할 것이다
사막의 달 보고 싶은데
사막과 달을 보내 올 수 있을런지 !
임애월 시인님의 <사막의 달> 시집 간행을 감축하며, 그 열정을 찬양합니다.
"날개는 침묵의 가치를 아는 자의 몫이다." 시심을 대리만족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