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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강해(48)
열매 맺는 신앙인
본문 : 마가복음11:12-19
<인간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 - 배가 고프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시기 위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
사람들은 ‘호산나’를 외치며
예수님을 환영하였습니다.
그날 예수님은 가장 먼저 성전을 둘러보셨습니다.
날이 저물자 다시 성문밖 베다니로
나가 쉬셨습니다.
예수님은 왜 다시 성문 밖으로 나오셨을까 ?
예루살렘성 안에서는
예수님의 일행이 마땅히 쉬실 곳이 없었을 것이고.....
성문밖 베다니에는
나사로(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혹자는 베다니에서 빌린 나귀 새끼를
돌려줄 겸해서 다시 나왔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날 밤 예수님은 편히 쉬시지
못했을 것입니다.
밤새 뒤척이셨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낮에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보았던 것들이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밤새 고민하시다가 내일 아침
성전청결 작업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셨을 것입니다.
이튿날 아침 예수님은 아침 식사도 거르신 채
일찍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출발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몸을
입으신지라 배가 고프셨습니다.
시장기를 느끼셨습니다(12절).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신성) 동시에
완전한 인간의 몸을 입고(인성)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인간의 몸의 조건과 한계를 몸소 체험하셨습니다.
피곤하여 주무셨고, 배가 고프셨고,
아파하시고 슬퍼하시고 눈물을
흘리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대변자(변호사)가
되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나무를 저주하신 예수님>....
시장하신 예수님의 눈에 멀리
무성한 무화과나무 한 그루가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물론 그 때는 무화과의 때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모르실 리가 없습니다.
대체로 무화과나무는 5-6월이 되어야
열매가 열립니다.
그러나 3월에도 이른 무화과나무는
열매를 맺을 수 있고.....
늦은 무화과나무는 9월이나 10월에도
무화과열매가 맺힙니다.
오늘 분문에 보면 예수님이 무화과나무의 열매를
찾았을 때가 유월절 전이니까
아마 3, 4월이었을 것입니다.
정상적인 열매는 앞으로도
약 두 달 정도는 더 기다려야 했지만.....
예수님은 잎이 무성한
그 무화과나무를 보고는 열매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13절).
잎이 무성한 것을 보니 ‘혹시 열매가 있을까’ 하여
다가가신 것입니다.
그런데 가서 보니까 무화과 열매가 없었습니다.
잎은 있는데 열매가 없다는 것은 비정상적이라는 말입니다.
당연히 있어야 할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주님은
아주 이례적으로 저주하셨습니다.
14절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이 말씀은 우리를 조금 당황스럽게 합니다.
그 동안 우리가 예수님의 기적을
죽 살펴보아 왔지만 .....
한 번도 예수님의 능력을 저주하거나
죽이는 일에 사용하신 적이 없습니다.
치유하거나 살리는 일에 사용하셨습니다.
저주하고 죽이는 일에 예수님의 기적이
사용된 것은 오늘 본문이 유일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왜 주님께서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할 정도로
그토록 마음이 상하셨을까요?
저는 예수님께서 이 무화과나무에게서 .....
이스라엘의 현주소,
곧 예루살렘 성전의 지도자들을
연상하셨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화과나무와 예루살렘 성전>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무엇을 기대하셨습니까?....
아마 성전에 들어가셔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얼마나 믿음의 열매가 있는지를 찾아보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아무리 성전을 둘러봐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당연히 있어야
할 믿음의 열매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성전 안에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는 없었고,
눈물로 기도하는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온통 장사하는 사람들만 가득했습니다.
돈 바꾸는 사람들, 비둘기를 사고파는
사람들로 북적되었습니다.
주님은 그런 모습을 보자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주님은 내어 쫓았습니다.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17절).
물론 당시 성전에서의 매매 행위는
제사장들의 묵인 하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이 집에서부터 제물들,....
양이나 비둘기를 가지고 성전에 올라와야 하는데....
그런 번거로움을 없애기 위해 배려한 것이지요.
특히 흠 없는 제물을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데,.....
아예 제사장이 공인한 제물을
성전 안에서 두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성전에서 구입하여 제사를 드리게 했습니다.
또한 외국에서 오는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기 위해
외국돈을 바꾸어야 했습니다.
성경에서는 오직 ‘세겔’로만
헌금을 드릴 수 있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전 안에는 돈을 환전할 수 있도록
돈 바꾸는 곳, 환전소가 있었습니다.
아마 이런 과정에서 제사장들과
상인들 사이에 어떤 금전적인
거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말처럼 .....
성전이 이런 장사하는 분위기로 인해
진정한 예배의 모습이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의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곳이 되어야합니다.
장사하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경배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예배하다가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고
삶이 변화되어야 하는 곳이 바로 성전입니다.
그런데 지금 예루살렘 성전에는
장사꾼들만 득실거립니다.
마치 잎사귀는 무성한데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와 같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고.....
하나님의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찾았습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주님은 성전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믿음의 열매를 찾았습니다.
본문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건과
성전을 정결케 한 사건을 동일선상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들이 분문 말씀을 주의해서 읽어보면,
본문이 마치 샌드위치 식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 이야기 한 가운데에
성전을 청결케 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샌드위치는 중간에 있는 내용물이 중요합니다.
중간에 있는 내용물에 따라
샌드위치의 이름과 그 값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무화과나무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무화과나무 한그루가 말라죽었다는 것이
무슨 대단하겠습니까?
본문은 지금 이 무화과나무 이야기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을 건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잎만 무성하고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처럼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 듯한데.....
사실은 믿음의 열매가 없는
이스라엘을 문제 삼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열매, 삶의 열매가 있어야>
사랑하는 성도님들 !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무겁게
다가오는 주제입니다.
무화과나무를 향해 심판하시던
그 분이 바로 저와 성도님들들도 심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저와 성도님들이 창조주 하나님의 의도대로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창조주의 의도대로 살지 못한다면......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엄숙한 경고를
우리는 본문을 통해 잘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전에 어떤 스님이 이 말씀을 읽고
비판하기를 ‘예수는 죄 없는 나무를
저주하여 죽게 하면서 사랑을
얘기하고 있으나 부처는 대자 대비하여
결코 벌레 한 마리도 죽이는 것을
금하였으니 이것이
전정한 사랑이 아닌가?’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이에 대해 어느 목사님이 글을 쓰기를....
‘예수님은 창조주이시기에 죽이기도 하고
살리시기도 하시지만 부처는
무화과나무를 아무리 저주하여도
결코 죽일 수가 없다.’ 라고
맞받아쳤다고 합니다.
마땅히 맺어야 할 열매가 없으면
존재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무화과나무에서
다른 것이 아니라 열매를 원했습니다.
사실 무화과나무는 관상용이 아닙니다.
땔감이나 재목용, 건축용으로도 적당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꽃이 아름다운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이 무화과나무를 찾는 것은
바로 열매 때문입니다.
무화과 열매는 참 달고 맛있습니다.
그 열매가 사람들을 배부르게 하고,
기쁘게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주님께서 찾은
그 무화과나무에는 열매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창조주가 열매가 필요하다고 찾았는데,
열매를 주지 못한 것입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는
마치 그 존재목적을 잃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예> 요새 마땅히 맺어야 할 열매를
맺지 못해 수난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공무원을 포함한 소위 사회지도층 인사들에게서는
청렴이라고 하는 열매가 열려야 합니다.
그런데 청렴한 사람을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며칠 전에 당진 군수가 비리가 적발되자
위조여권으로 해외로 도망하려다 결국 구속되었습니다.
또 건설업자로부터 수 십 년간 부정한 돈을 받아 챙기고
성접대도 받아 온, 소위 스폰서 검사들이 적발되었습니다.
검사에게 요구되는 열매는 정의입니다.
마땅히 맺어야 할 열매를 맺지 못하니..
국민들로부터 ‘떡검’, ‘성검’이라고 불리며
조롱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누구를 수사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면
그 존재 이유도 함께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하는 성도님들 !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교회에
바라시는 열매는 무엇입니까?
시대의 양심이 되어 ‘빛과 소금’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오늘 한국교회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겉으로 어떻게 보이는가?
얼마나 크고 화려한가? ..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이는가?’
에만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닙니까?
교회들은 크고 화려하게 지어놓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데....
그런데 참으로 있어야 할
변화된 삶의 열매,
사랑의 열매는 없어서...
주님이 외면하는 교회가 되어가고
있지 않을까요? ......
교회 안에 있어야 할 하나님의 임재.........,
정말 교회 안에 있어야 할
십자가 복음은 없고,
탐욕스런 기복신앙과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지는 않습니까? ....
교회 안에 참으로 있어야할 용서와 화해,
사랑은 없고, 갈등과 분열로만
가득하지는 않습니까?
저와 성도님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
혹시 잎은 무성한데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처럼 “말로만 주여 주여”
하는 자는 아닙니까?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이 아닙니까?(딤후3:5).
사랑하는 성도님들 !
오늘 우리는 진지하게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혹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와 같이 열매 없는
형적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처럼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정한 은사는 덕을 세우는 은사입니다.
변화된 삶이 없는,
즉 열매가 없는 은사는 오히려
사탄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이천에 있는 어느 교회 한 청년이
20일 금식을 했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야 한다고
금식하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금식하고 난 다음 기도원에서 내려와서
교회 안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고 합니다.
자신은 20일 금식 기도했는데,
목사님이 능력이 없다느니,
설교가 형편없다느니....
어느 장로님은 기도도 안한다느니...
그렇게 떠들고 다니는 바람에 .....
그만 많은 교인들이 상처를 받고
교회가 쑥대밭이 되었다는 것이다.
참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열매가 없는 은사는
오히려 교회를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역할을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양하고
신비한 은사들을 주십니다.
그것들을 사모하십시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참으로 주님께서 주시는 은사라면
반드시 열매가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갈5:22-23>
22절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절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예수님은 외적 능력보다
변화된 삶의 열매를 찾는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들,
손해 보더라도 주님을 위해 양보하고 사랑하는 사람들,
힘들어도 소망 중에 인내하는
그런 믿음의 사람을 주님은 찾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7장에 보면.....
그날에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찾아와서
‘제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했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좇아냈고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였습니다’라고
말하겠지만....
그 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니
이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순종의 삶입니다.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님들 !
오늘 말씀을 통해 저와 성도님들이 믿음의 열매가
있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맺어야 할......
‘믿음의 열매’, ‘성령의 열매’, ‘변화된 삶의 열매’를
맺어가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원하실 때
드릴 수 있는 준비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