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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 앞서 계산에 대해 쓴 글
바이오클락연구소 | 계산이란 무엇인가 - Daum 카페
바이오클락연구소 | 지혜를 가지면 반드시 기회가 온다 - IBM이 3번 증명하였다 - Daum 카페
무슨 말이라도 듣거든 그 말의 원인을 의심하고, 그 말을 하는 목적이 무엇일까 의심하고, 무슨 물건을 보거든 그 물건이 왜 만들어졌나 의심해야 한다. 일이나 현상이나 사물의 근본(根本 : 뿌리와 잔뿌리)을 들여다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무엇이 처음 생길 때는 그 이유가 또렷하다. 하지만 발전을 거듭하고 변화가 거듭 일어나면 처음에 시작한 원인, 근본, 배경을 곧잘 잊는다.
커다란 실뭉치의 끝자락만 붙잡고 실이 뭉쳐진 그 시작이 무엇인지, 왜 실뭉치가 여기 있는지 모르면 안된다.
그 사물의 근본이 무엇인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 어떻게 변해왔는가,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변할 것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근본>을 알아야 된다.
지금 미국이 전세계 창의 기술을 독점하는 이유는, 그들에게는 근본 근원을 찾아 깊이 들어가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1776년에 유럽 여러 나라에서 몰려간 사람들이 독립된 나라를 세웠는데, 이들은 영국,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이들에게는 영국인이다, 프랑스인이다, 스페인인이다 하는 민족 개념이 사라지고 오로지 사람과 사람들이 만든 나라 미합중국 시민이라는 개념만 있었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것의 근본을 의심하는 문화가 널리 퍼졌다. 당연히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렸다. 새로운 나라 미국에는 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조선조 500년 동안 성리학 이념에 갇혀 부부 사이에도 대화를 자유로이 할 수 없고 부자지간에도 안 되고 스승과 제자 간에도 안되고 임금과 신하 간에도 대화가 없었다. 오로지 지시와 명령만 있고, 그 지시를 따르는 하인 노비들만 있었다. 대화가 없었다. 당연히 토론도 없었다. 감히 말을 걸 수도 없었다. 조선조 500년은 칸이 또렷하고 벽이 두터운 딱딱한 사회였다. 인구 겨우 천만 명이 안되는 나라에서 토론이 가능하고, 대화가 가능한 인구는 불과 3%(남성만)에 지나지 않고, 그나마도 계급과 서열에 따라 지시와 명령만 내려졌다. 그러니 머리를 모을 수가 없었다. 왕이나 벼슬아치 개인이 똑똑하면 잠시 지혜롭게 살 수 있을 수는 잇지만 하나라도 이상한 독재자나 미치광이, 못난이가 나오면 사회는 금세 무너져내렸다.
다시 강조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뿌리라고 할 수 있는 큰 뿌리와 잔 뿌리(근본)를 찾아 들어가는 것이다. 근본을 찾지 않으면, 이처럼 세상과 대화를 하지 않으면 이 길이 바른 길인지, 어디로 가는 길인지, 일의 결과(結果)는 어떻게 맺어질지 모른다. 그러나 그 근본을 알면 줄기를 지나 가지 끝에서 어떤 꽃이 피고 어떤 열매가 맺힐지 추측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로 최초로 발명한 금속활자를 비유를 들어보자.
우리가 아무리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발명해서 어떤 책이든지 마음껏 찍어낼 수 있는 기술은 개발했다 치자. 하지만 우리 선조들은 이 뛰어난 발명품이자 신기술인 금속활자의 가치에 대해서 그 근본을 잊어버렸다.
왜 금속활자를 만들었는가, 이 기초 질문을 잊었다. 그래놓고 조선을 망친 성리학 관련 책이나 찍어 몇 안되는 사대부들만 읽었다.
금속활자는 본디 승려들이 불경을 찍어돌리기 위해 만든 발명품이다. 목판보다 금속판이 더 오래 가고, 책을 많이 찍을 수 있다 해서 승려들이 발명한 것이다. 그래서 최초의 금속활자로 찍은 책이 직지심체요절인데, 불경이다.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승려들이 만들었는데, 발명 15년만인 1392년에 불교국가이던 고려가 덜컥 망하고 성리학을 국교로 삼는 <성리학 탈레반>의 나라 조선이 세워진다. 이때부터 승려들은 천민으로 취급되고, 모든 것은 성리학자들을 중심으로 바뀌었다. 결국 왕실이나 사대부들은 이 기술로 기껏 성리학 책이나 찍어 자기들끼리(조선의 양반은 국민의 3%이고, 그것도 여자는 서당이나 서원에 갈 수 없고, 따라서 과거에 응시할 자격이 없어 제외된다) 필요한 성리학 책과 사서삼경만 찍어내고 만다.
이에 비하면 독일인 쿠텐베르크가 만든 금속활자는 1455년에 구텐베르크 성경을 찍어 유럽에 팔기 시작했다. 그뒤로 숱한 책이 인쇄되어 유럽의 문예부흥을 이끌었다. 최초의 금속활자를 발명한 우리는 여기서 독일에 뒤처지고 말았다. 이것이 훗날 일제에 강점당하는 비극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근본을 다시 생각해 보자.
쿠텐베르크가 금속활자로 성경을 찍어 판매하기 9년 전, 조선은 훈민정음을 발명했다. 그러고서는 기껏 왕권 찬양하는 용비어천가 같은 어용서나 찍어냈다. 이어서 훈민정음 발명자인 세종 이도 역시 먼저 죽은 소헌왕후를 위해 불교노래인 월인천강지곡을 인쇄하고, 석보상절을 한글로 옮겨 책을 찍었다. 제사의식의 하나인 천도재 지내는 개념이었을 뿐이다. 그뒤에도 이런 식이었다.
만약에 훈민정음을 만들어 내고 나서 목판활자든 금속활자든 생활에 꼭 필요한 한글 도서를 널리 찍어 전 국민에게 읽혔더라면 우리나라는 어쩌면 15세기나 혹은 16세기에 이미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문화 강국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금속활자로 기껏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유교 경전, 불교 경전이나 찍어냈다.
그러고는 끝이었다. 만약 이때 금속활자와 한글이 만나 인쇄산업을 일으켰더라면 우리나라는 전혀 다른 길을 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적어도 성리학에 찌든 조선에서는 어떤 혁명도 일어날 수가 없었다.
세종 이도 본인도 왜 훈민정음을 만들었는지 헷갈렸다. 그는 중국 한자의 발음을 표기하기 위해 만들었을 뿐이었다. 이 한글로 얼마든지 시를 짓고 글을 짓고, 백성들을 가르칠 수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만들어 놓기만 했지 쓸모를 모른 것이다.
더구나 세종 이도는, 그가 발명한 훈민정음 즉 한글이 음소문자( 더 이상 작게 나눌 수 없는 음운론상의 최소 단위. 하나 이상의 음소가 모여서 음절을 이룬다)로서 세상에서 가장 읽기 쉽고, 빨리 읽고, 이해하기 쉬운 문자라는 걸 알지 못했다. 한글은 초성, 중성, 종성이라는 3가지 음소로 만들어지므로 한자처럼 한 눈에 바로 보인다. 다만 한자는 너무 획수가 많아 바탕이 어둡고 복잡하여 변별이 어렵다. 이에 비해 알파벳은 가로로 길게 늘어놓기만 하기 때문에 철자가 많이 들어간 긴 단어는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현대 영어는 현대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철자가 긴 단어가 많이 생겨나는데, 일반인들은 잘 읽어내지 못한다.
인민일보, 뉴욕타임스, 한겨레신문 1면을 비교해보자.
이 말을 잘 이해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래 글을 읽어보라. 뒤죽박죽 엉망진창이지만 대강 그 뜻을 알 수 있다.
- 이을말 이해 잘 하못는 람사도 있을이다것.
심지어 한글로 쓴 우리말은 띄어쓰기를 틀려도, 맞춤법을 틀려도 이해하는 데 불편함이 없다.
아래 글을 보라.
이렇게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문자를 만들어 놓고도 우린 400년간 이 보물을 버려두었다.
이처럼 한글은 창고에 깊숙이 버려두고는, 농사 기술도 아니고 건축기술도 아니고 양잠기술도 아니고, 다리를 놓는 기술도 아니고 오로지 양반 사대부들끼리 히히덕거리며 노는 수준에 지나지 않는 성리학에 그 귀한 금속활자를 써버리고, 붓다의 말씀조차 아닌 대승경전(붓다가 실제 말한 게 아니라 대승 승려들이 가짜로 지어낸 위경이다)을 인쇄하는데 썼다. 세계 최고의 음소문자 한글을 우리는 이렇게 400년이나 썩혔다. 그러도록 한글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조차 드물었다.
한글이 우리 문자가 된 것은 우리들의 결정이 아니다. 한국이 가장 싫어하는 일본 덕분이다. 청일전쟁에 이긴 일본의 요구로 개화파 중심의 억지 개혁인 <갑오경장>이 일어나고, 여기에 한글을 쓰고, 양력을 쓰는 기본 개혁이 포함된 것이다. 일본이 먼저 한글의 중요성을 깨닫고 그들이 한글을 쓰라고 요구해서 할 수 없이 쓰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세상에나' 아닌가.
교과서마다 나오는 소설가 박지원은, 1737년에 태어나 1805년에 죽은 사람이다. 이때 유럽에서는 문예부흥과 더불어 과학기술 문명이 폭발하던 때였지만, 그는 한문으로 소설을 쓰고 끝났다. 한글은 일절 쓰지 않았다. 이런 사람이 당시 국민작가였다. 얼마나 많은 시인 묵객들이 한문으로 소설을 쓰고, 한문으로 시를 썼던가. 언어라는 게 무엇인지 문자라는 게 무엇인지, 글을 쓴다는 사람이 글의 근본에 대해서는 막상 아무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글은 그렇게 힘을 쓰지 못하고 묻혀 있었다.
여기서 잠깐.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카나라는 아주 쉬운 문자를 8세기경에 만들었다. 하지만 일본은 지금도 한자 투성이로 글을 쓴다. 조사만 카나로 쓸 뿐이다. 게다가 음소가 아니라 음절 문자다. 그것도 우리 한글처럼 한자를 읽기 위해 만들었는데 중국어 발음만 읽으면 되므로 카나의 숫자를 확 줄여 막상 소리가 몇 가지 되지 않는다. 모양도 초서에서 따와 단순하다. 발음의 종류는 너무 적어서 외래어를 옮겨적을 수가 적다. 한글이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다 표기할 수 있도록 '正音'으로 만든 데 비해 카나는 그저 한자만 읽으면 되는 문자다. 그래서 카나든 한자든 영어 단어를 제대로 옮기지 못한다. 만약에 카나를 한글 만들듯이 했다면 일본은 진작에 문자혁명을 이뤘을 테지만 그들은 여전히 한자 한문의 숲에 갇혀 헤어나오질 못한다. 문자로서의 구실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일본도 중국도 자신들의 문자 때문에 엄청난 손해를 보고 있다. 하지만 우리 한글은 AI 시대에 가장 알맞은 문자지만, 사대모화주의자들이 써대는 한자어와 친일파들이 써대는 일본한자어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엄청난 벽을 마주하고 있다.
다른 예를 보자.
전신기의 근본은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 데 있다. 이쪽 소식을 저쪽으로, 저쪽 소식을 이쪽으로 받는다. 모르스 부호로 정확하게 주고받을 수 있다. 그런데 전신을 독점하던 유니온전신기의 연구직원원이던 엘리샤 그레이가 모르스 부호 대신 사람 목소리를 주고받을 수 있는 전화기를 발명했다. 뭐, 사람 목소리가 지금 전화처럼 또렷하고 맑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쨌거나 사람의 목소리를 주고받을 수 있는 전화기를 자기네 회사 직원이 발명했지만, 이미 전 세계 전신 시장을 꽉 쥐고 있던 대기업 유니온전신기는 사람의 목소리를 주고받을 수 있는 이 전화기를 창고에 가둬 놓았다. 결국은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뒤늦게, 그것도 아주 어렵게 만든 전화기를 특허 등록한 뒤에야 “우리도 그런 기술 있는데?” 했지만 뒷북이었다.
정보를 주고받는다는 전신기의 근본을 잊지 않았다면 사람의 진짜 목소리를 주고받을 수 있는 전화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성공하여 제품은 공장에서 그냥 찍혀나오고, 돈은 통장을 물들어오듯 들어오니 경영자들은 전신사업이 정보를 주고받는 사업이라는 사실을 깜빡 잊었던 것이다.
결국 유니온 전신기는 사라지고 벨의 전화기 회사가 전 세계 통신을 틀어쥔다. 전신기는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버렸다.
스마트폰도 그렇다. 노키아가 이미 스마트폰을 발명해 놨지만 경영진은 이미 핸드폰(전화와 문자만 되는)이 수억 대씩 잘 팔리는데 전 세계 2억대 3억대씩 팔려 가지고 천문학적인 이익을 벌어들이는데 굳이 스마트폰을 만들 이유가 어디 있느냐 그러면서 창고에 집어넣어 놨습니다. 벽이 생긴 겁니다. 칸막이를 친 겁니다. 그걸 노키아 직원도 아니고 노키아의 주주도 아니고 노키아하고 아무 상관도 없는 스티브 잡스가 그 스마트폰 기술을 이용해서 오늘의 통신 혁명을 이루어냈습니다.
지금 삼성전자가 HBM에서 하이닉스에 밀리고 있다. 그러면서 경영 위기를 맞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HBM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고 "HBM 기술은 필요 없다, 시기상조다"고 판단한 경영진 때문이다. 삼성도 1992년부터 D램 시장에서 일본을 제치고 세계 1등을 계속 해오다 보니까, 이게 무려 30년이나 되다 보니까 자기네들끼리 벽을 치고, 담을 쌓고, 내부 소통이 칸칸이 막혀 의사 소통이 안된다. 이미 윗사람은 명령만 하고(上命) 아랫사람은 지시만 받는(下達) 딱딱한 공무원 조직이 돼 버렸다. 그러면 어떤 연구원이 아무리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도 이 벽과 담과 칸을 넘어 의사결정권자에게 다가갈 수가 없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사다리를 타고 높이 올라갈 수가 없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2019년에 HBM 연구개발팀을 해체해버렸다. 그 사이 최고경영자인 이재용은 2017년 2월 17일에 구속되고, 2021년 1월 18일에도 구속되었다.
결국 누군가는 HBM을 주장했겠지만 이 리포트는 이재용의 책상(감옥에 있는데 무슨 책상씩이나)까지 가지 못하고, 그 중간의 고리타분한 공무원스런 관리자가 잘라버린 것이다. 당시 반도체부문 부회장은 김기남(1958.4.18. 1020)으로 반도체 사업을 총괄했다. 1020이므로 산뜻한 아이디어를 많이 내기도 했겠지만, 충코드는 딱 한 번 벼락을 맞든지 폭탄을 터뜨리는데, 그가 HBM에서 폭탄을 터뜨렸다. 그때는 HBM이 그토록 중요한 건지도 몰라서 그는 퇴직금 130억원을 받아챙기고 유유히 삼성을 떠났다. 2024년 현재 책임자는 정현호(1960.3.6. 1215) 부회장이다. 1020이든 1215든 반도체 관점에서 보자면 하품 나오는 사람들이다. 1215코드는 S15가 너무 흔들려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하이닉스는 삼성전자에 늘 밀리는 수십 년 패자이기 때문에 말의 통로가 열려 있었다. 특히 1205인 최태원 SK회장의 뚝심있는 HBM 투자도 단단히 한몫을 했다. 1205가 삼성을 좀 한번이라도 이겨보자, 이런 마음이 오죽했겠는가.
사실을 요약하면, 반도체라는 게 계산하는 도구인데, 삼성은 그 사실을 잠깐 잊었고, 하이닉스는 더 계산 잘하는 HBM을 개발한 것이다. 반면 삼성은 아직은 그런 고사양은 필요없다고 있던 개발팀조차 해체해버린 것이다. 코닥이 그렇게 자기들의 디지털카메라 기술을 무시하여 스스로 죽고, 노키아가 그렇게 스마트폰을 무시하여 스스로 죽듯이 삼성도 그렇게 휘청거린 것이다. 지금 전세계가 AI열품으로 얼마나 많은 계산 수요가 폭발하고 있는지, 삼성전자의 눈에만 안보인 것이다.
그동안 AI, 빅데이터, 딥러닝, 블록체인, 메타버스 등 숱한 말로 계산의 양이 폭발한다는 신호가 여러 번 있었다. 그걸 하이닉스가 보고 고사양의 D램이라고 할 수 있는 HBM을 개발하고, 엔비디아의 0310 젠슨황이 그러잖아도 계산 수요가 큰 게임시장용 GPU를 만들다가 AI 시대가 올 것을 보고 고사양의 A100, H100 제품을 만들고, 곧 반도체 2080억개가 들어가는 블랙웰까지 내놓는다. 반도체가 2080억개라니, 이게 바로 오늘의 세상이 원하는 계산의 양을 가리킨다. 이런 블랙웰을 수만 개, 수십 만 개씩 주문한다잖는가. 오픈AI의 0120 샘 올트먼이 쏘아올린 AI의 계산수요가 이렇게 핵폭발하듯이 터진 것이다.
이렇듯, 지금 우리 사회는 근본을 따지지 않는, 지금 당장의 현실 이익만 따지고 누리려는 사람들 때문에 소통과 교류의 문이 꽉 닫혀 있다. 그들이 바로 0405 대원군 이하응처럼 척화비 때려박으며 벽을 쌓고, 담을 치고, 칸을 막는 걳이다. HBM도 결국은 D램이고, 반도체인데, 맨 처음 반도체가 왜 필요했느냐라는 이 근원을 깜빡 잊은 것이다.
반도체는, 미국인구가 늘어나면서 수도값, 전기료 등을 징수하기 위해, 주판을 대신하는 IBM의 천공카드가 나오고, 이 천공카드로는 전 세계와 전쟁, 경제 등 계산 수요가 너무 많아지자 그제야 반도체가 나온 것이다. 주판이든 천공카드든 반도체든 컴퓨터든 AI든 계산을 하는 도구다. 쉽게 말해 주판을 대신한 것이 반도체다. 이 사실을 잊으면 금세 길을 잃어버린다.
처음에는 반도체 하나 가지고도 큰돈을 벌었다. 반도체 발명가인 1010 윌리엄 쇼클리는 2개를 붙여가지고도 큰돈을 벌었다. 인텔은 이런 반도체를 수천 개, 수만 개 붙여가지고 IC라는 걸 만든 회사다. 여기서도 기적이 일어났다. 그래서 인텔은 세계 계산 시장을 오래도록 장악할 수 있었다. 뒤를 이어 삼성전자가 세계 계산 시장의 정상에 설 수 있었고, 지금은 하이닉스와 엔비디아와 오픈AI가 그 자리에 서 있다.
바이오클락연구소 | 제2차 반도체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있다 - Daum 카페
계산의 전쟁은 지금도 치열하다.
이미 계산 용량은 넘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무기 분야에서 엄청난 계산 수요가 새로 나오고 있다.
3000킬로미터 날아가 표적지 5미터 안에 정확하게 내리꽂히는 벙커버스터 같은 유도미사일은 자체에도 엄청난 반도체가 실려 있겠지만, 명령을 내리는 사령부의 수퍼컴에는 헤아릴 수 없는 반도체가 있다.
세계 인구는 반도체가 나오던 1947년에 25억 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무려 85억 명이다. 60억명이 늘었다. 그러면 그만큼 계산량의 요구가 늘어난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D램 가지고 안 되는 건 뻔하다. 앞으로도 계산 수요는 점점 더 늘어나는데, 산술급수로 늘지 않고 기하급수로 늘어나게 돼 있다.
1개로 시작된 반도체는, 1970년대에 2300개로 늘어난 인텔 4004가 나왔다.
1985년에는 나온 인텔 80386은 27만 5천 개가 들어갔다.
1995년에 나온 인텔 펜티엄에는 5백만 5천만 개가 들어갔다.
2012년의 인텔 아이비 브릿지는 14억 개가 들어갔다.
2020년의 엔비디아 GPU는 540억 개가 들어갔다. 이때 알파고가 이걸 썼다.
그런데 2024년 말에 나올 예정인 엔비디아의 블랙웰에는 무려 2020억 개가 들어가는 것이다. 계산량이 이처럼 놀라운 폭발력을 보인다는 게 지금 눈에 보이는가.
아마 반도체 1경 개가 들어갈 날도 그리 멀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사실을 삼성이 깜빡하고, 인텔이 깜빡하고, 특히 계산의 명가인 IBM도 아차하는 사이에 이 타이밍을 잃었다.
앞으로도 이렇게 계산의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것이다. 우리는 우주의 우리 은하와, 이웃은하와 나아가 우주의 모든 은하와 별을 계산해야 하니까.
이렇게 보면 반도체의 길은 그 미래가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반도체가 뭔지 그 근본을 모르다보니까, 그냥 스마트폰이나 뒤적거리고 있으니까 반도체가 계산의 수요에 반응하는 물건이라는 사실을 깜빡 잊은 것이다. 그러니까 뒤집힐 수밖에 없다.
우리는 모든 것의 근본(뿌리), 근원(샘)을 찾아가야 한다.
흑백 요리사라는 넷플릭스 프로그램에서 수많은 요리사들이 엄청나게 다양하고 맛있는 요리를 많이 만들어냈다. 감동적이다.
하지만 왜 음식을 먹느냐는 근원적인 질문을 하는 사람이 그중에 단 1명도 없다.
우리는 왜 음식을 먹어야 되나? 음식 재료가 어떤 분자 화합물인지, 우리 몸에 들어가 어떤 작용을 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 사람들이 사용하는 기름이 높은 온도에서 발암물질을 만든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도 없고, 따지는 사람도 없었다. 지방의 양이 얼마이고 단백질의 양이 얼마이고 미네랄이 얼마이고, 그래서 두뇌 영양소는 무엇이고, 심장에 좋은 식품, 부담을 주는 식품은 무엇이냐, 이런 의문조차 있질 않았다.
나 같은 경우 소설가로 거의 30년을 살아왔지만 소설의 근본을 잊은 적이 없다. 소설이라는 것은, 옛날 폐쇄적인 신분 사회였을 때, 서로 교통이 나쁘고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 다른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살까 궁금해서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 남의 이야기를 알고 싶었던 데서 나타난 장르다. 연극으로 소설로 이야기로 시조로 시로 이렇게 전달했다.
남들은 어떻게 사나, 뭐하며 사나, 다 행복한가, 다른 사람도 나처럼 힘든가, 이런 게 궁금했던 거다.
인간은 무리 동물이다. 그래서 무리와 전체가 어디로 향하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남들은 뭐하나, 어떡하나,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주제다.
우리가 그런 포유류의 본능을 가지고 있는 한, 편도체에 새겨진 포유류의 이 본능이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는 남에게 계속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래서 패거리를 이루어 같은 주장을 퍼뜨리고, 진영을 이루어 싸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이라는 것은 외부 정보를 받아 널리 퍼뜨리는 도구이지 그 자체가 흥미가 되거나 그 자체가 목표인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영화나 드라마의 소설에 밀려서, 휴대폰에 나오는 그 조그만 짤이라는 것에 빠지고, 만화나 SNS 외마디에 밀려 숨을 못 쉬고 있다. 당연한 것이다.
소설은 남에 대한 정보를 알기 위해서 시작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문학이라니, 그게 어째 학문인가. 그냥 이야기다. 그러면 지금도 소설은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로써 가야만 한다. 소설이란 장르가 적절하지 않다면 그 틀을 버리고 다른 틀을 개발하면 된다. 그게 영화, 만화, 드리마일 수도 있다. 변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밀린다. 영상이든 문자든 음악이든 정보를 전달하는 수준으로써 그 기능을 착실히 해낼 때 소설이 가졌던 그 근본 정신, 근원 정신은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이처럼 모든 일의 근본을 따져봐야 된다. 사람은 왜 사람인가, 사람 이전엔 무엇이었는가, 그 이전의 이전은 무엇이었는가? 그러면 바이러스까지 간다. 분자화합물로, 원자로, 소립자로 갈 것이다. 암흑물질로도 간다. 이처럼 소립자, 암흑물질까지 가야 은하를 알고, 우주를 알게 된다.
생각이 여기에 미칠 때 사람의 모습이, 자기 자신의 모습이 제대로 보인다. 다시 강조하지만 우리는 근본을 찾아가야 한다. 무엇이든지 그 근본을 찾아가야 한다. 경제의 근본, 정치의 근본, 사회의 근본... 그러면 그 중간도 보이고 마지막도 보인다. 이것이 브레인 리퍼블릭의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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