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도 마음에도 예쁜 복조리를
본사에서는 창간 40주년을 맞이하여 기획특집으로 전통 문화 둘러보기를 연재한다. 일상 생활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다양한 문화의 숨결을 느껴봄으로써 우리 것에 대한 소중함을 재발견하고 나아가 문화의 향기를 맡을 수 있도록 하는데 주안점을 뒀다.
복조리는 민족의 삶과 꿈
우리 민족을 일러 '한민족'이라 한다. 여기서 '한'은 '한(韓)'이 아니며 순수한 우리 말이다. 환인, 환웅, 단군 이래 '한'은 곧 우주(하늘)였으며, 우리에게는 우주의 삼라만상을 하나로 보는 '한사상'이 있어 왔다. 그리고 우리 한민족은 우주의 상징인 태양을 숭배해 왔다. 밝은 빛을 희구하는 민족이기에 우리 민족은 유난히 흰옷을 입어왔고, 지금도 집집마다 새해 첫 아침이면 밝고 건강한 삶을 염원하며 흰 떡국을 먹는다.
섣달 그믐부터 설날 아침 사이에 복조리 장수가 "복조리 사세요!" 하고 외치면 이 소리를 제일 먼저 들은 부인은 대문 바깥으로 나가지 않고 집 안에서 복조리 장수를 불러들인다. 이 때 1년 동안 사용할 조리를 사서 안방 들어가는 문 위나 부엌 또는 방구석에 매달아 놓는다. 그러나 현대인들의 삶 속에서 이런 복조리는 이미 기능을 상실한 존재가 되어 버렸고, 우리의 복조리 문화는 빠른 속도로 잊혀지고 있다. 과연 우리의 복조리 문화는 이렇게 쉽게 잊혀지면 그만인 과거의 한 풍속에 불과한 것인가?
60년대에 초등학교 시절을 보낸 나는 조리가 어떻게 왜 필요했는지를 잘 알고 있다. '키'로 키질을 하여 쭉정이나 티끌을 날려 보낸 쌀을 물속에 담그고, 물에 불은 쌀을 어머니들은 매일 열심히 일고 일었다. 밥을 하는 한 과정이거니 하고 무심히 보냈지만, 지금 추억해 보면 그게 얼마나 아름다운 정경이었나 실감한다.
쌀이 담겨 있는 물을 둥글게 휘휘 저으면 물에 불어난 쌀은 둥둥 일어서고, 그 둥둥 떠오르는 쌀은 어느새 하얀 눈처럼 소복하게 조리 안에 담기는 것이다. 제법 정교하게 손을 놀리면서 옛 여인들은 아마 힘들게 살아온 지난 시절도 떠올리고, 가족들의 생계 등 앞으로 해결해야 할 일들도 정리했을 것이다. 집안일을 힘겹게 꾸려가는 말 못할 아픔, 우리의 여인들은 조리를 일며 그 한(恨)들을 삭이곤 했을 것이다.
문화는 변화한다. 시대가 변하고, 주변 상황이 변하고, 그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 삶은 끝없는 강물처럼 변할 수밖에 없다. 자손 대대로 이어지던 농경문화 속에서 우리 민족은 쌀을 주식으로 해왔고, 그래서 쌀을 이는 조리는 바로 우리들의 삶 자체를 상징하는 물건이었다. 한미FTA에서 보듯이 농업은 이제 한갓 주변일로 하대받고 있으나, 우리 한민족의 뿌리는 이미 농경문화에 깊이 내려져 있다. 겉보기에 농사와 전혀 관계없는 듯 살아가는 우리네 대다수 사람들도 사실 그 핏줄에는 여전히 농민의 피가 흐르고 있다.
우주의 삼라만상을 하나로 보는 우리 민족의 한사상은 바로 불교의 화엄사상과 일맥상통한 바, 의상대사의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의 "하나가 곧 전체이고, 전체가 곧 하나이다.(一卽一切多卽一)"라는 표현은 이를 잘 보여준다. 태양의 밝은 빛을 소원하고, 우주를 포괄하는 사상을 밑바탕에 품으며 살아온 백의민족이기에 우리 민족은 수많은 내우외환을 극복하며 줄기차게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조리'에는 바로 우리 한민족의 삶과 꿈이 들어 있다. 쌀을 일 필요가 없어졌고, '조리'는 이제 그 기능을 잃어버린 도구가 되었다 해도, 한 해의 복을 기원하며 설날 아침에 걸어 놓는 '복조리'에는 우리의 얼과 피가 그대로 담겨 있는 것이다. 문화는 살아 있는 생명체이다. 어떻게 진화해 나가게 되는가는 오로지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에 달려 있는 것이다.
복조리 재료는 '산죽'
예전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복조리는 아직 만들어지고 있다.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 구메농사마을(신대마을)에서는 400여 년의 전통으로 세밑에 복조리를 만들어 오고 있다. 2004년 법무부와 결연을 맺은 이 마을에서는 2008년 12월 3일 제1회 호롱복조리축제를 열었고, 김경한 장관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는 등 흥겨운 축제를 이루었다 한다.
구메농사마을 외에도 전남 화순군 북면 송단2구 강계마을에서도 100년 넘게 복조리를 만들어 오고 있으며, 대한항공에서는 2008년 2월 설을 맞이하여 국내의 전 사업장에 복조리를 거는 행사를 열기도 했다. 이러한 일들은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복조리 문화를 새롭게 창조해 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도정 기술이 발달하여 쌀 속에 돌이 섞이지 않는 이 시대에도 조리는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복조리의 재료는 보통 '시누대'라고 부르는 산죽이다. 그 해에 새로 나온 산죽을 베어다 삶고, 하루쯤 햇볕에 말려 껍질을 벗긴다. 이것을 네 가닥으로 쪼개어 반나절 정도 물에 불린다. 물에 불려 부드러워진 댓살을 날줄과 씨줄로 엮어서 만드는데, 댓살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한쪽 무릎을 세워 시종 발로 눌러 줘야 한다.
마무리 작업은 힘들고 요령이 있어야 하는데, 힘든 마무리 작업은 남자가 하는 경우가 많다.
완성된 조리는 50개씩 꿰어지고, 이렇게 꿰어진 조리를 '한 저리'라고 한다. 그러나 요즘은 산죽 대신 합성수지를Ⅰ 재료로 하여 만들어지고 있으니, 복조리의 생산은 그마저도 힘들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예전과 같이 농가에서 농한기의 소득원으로 활발하게 만들어지고 있진 않지만, 아직도 몇 마을에서 조리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비록 쌀을 일어 정갈하고 소복한 복(福)을 건져 올리는 기능은 상실했다 해도, 신춘 새해를 맞이하여 복을 불러들이는 전통은 아직도 살아 있는 셈이다.
남보다 일찍 일어나서 가족들의 삶을 부지런히 챙기는 어머니의 헌신을 배우는 일이 그것이며, 하얀 쌀을 한 톨 한 톨 건져 올리며 농부들의 노고에 감사하던 그 마음도 우리들 가슴에 계속 살아 있어야 할 것이다.
복은 분수를 아는 것
새해가 되어 우리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은 바로 '복(福)'이란 단어일 것이다. 과연 복은 무엇이며, 복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오는 것일까? 로또 복권, 복주머니, 복음(福音), 복덕방, 복조리 등에서 보듯이 우리는 복을 좋아하고 복 받기를 열망한다. 내가 보기에 복(행복)은 분수(分數)를 아는 데서 오는 것이라 여긴다. 그런데 인간의 분수 중에 가장 기본적인 분수는, 태어난 자는 때가 되면 분명 죽게 된다는 것을 아는 분수라 생각한다. 그 다음으로 기본적인 분수를 든다면, 자신이 아무리 열심히 그리고 많이 번 돈이라 해도 죽으면 가져갈 수 없다는 것을 아는 분수라 생각한다.
이런 분수로 태어난 우리가 정말 복을 받고 싶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먼저 앞에서 말한 자신의 분수를 알아야 할 것이고, 그런 분수 속에서 더불어 살려는 마음을 가져야 복은 오는 것이 아닐까? 상부상조의 농경문화 속에서 씨줄 날줄 어울리며 엮어지는 복조리는 점점 자기중심적으로 변모해가는 현대의 우리들을 일깨우는 한 상징물이 되기에 충분하다. 좀더 작고 예쁘게 만들고, 새해를 맞이할 때 선물로 서로 주고받는 복조리 문화가 활성화된다면 더욱 따뜻한 풍경이 연출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 한민족에게는 반만 년 이전에 이미 홍익인간(弘益人間)을 개국 이념으로 삼고 살아온 자부심이 있다. 동원도리(同源道理), 동기연계(同氣連契), 동척사업(同拓事業)의 삼동정신으로 일원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원불교의 정신도 결국 홍익인간의 정신이 아니겠는가?
합성수지 말고 산죽으로 만든 한 쌍의 예쁜 복조리를 벽에도 마음에도 걸고 기축년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건져 올리고 싶다. 남을 배려하는 행동의 원천인 텅 빈 마음, 맑고 밝고 훈훈한 그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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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김광원 교도 ㆍ금암교당 ㆍ중앙여고 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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