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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강해(47)
‘엔학고레’의 은혜
본문 : 삿15:14-20
삼손으로부터 큰 피해를 본
블레셋은 군대를 일으켜
삼손을 잡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직접 잡지 않고
이이제이의 전술을 펼쳤습니다.
곧 최대 지파인 유다 지파를 위협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삼손을 잡아
오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작전은 잘 먹혔습니다.
블레셋 군대를 두려워 한 유다 지파는
무려 삼천 명의 사람들이 일어나
삼손을 잡으러 (삼손이 숨어 있던)
에담 바위까지 왔습니다.
그들이 삼손을 찾아와서 하는 말이 가관입니다.
“너는 블레셋 사람이
우리를 다스리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11절).
이스라엘의 대표 지파로서
참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우리는 왜 하나님이 가장 큰 지파인
유다 지파를 들어 쓰시지 않고,
가장 작은 단 지파에서 ‘삼손’ 한 사람을
들어 쓰시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노예근성에 사로잡힌 유다 지파를
하나님이 사용하실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잡으러 온 3천 명의
유다 지파 사람을 본 삼손은
단 한 가지 부탁을 했습니다.
자신을 공격하지 말아 달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공격하면 어쩔 수 없이
자신도 공격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타락했더라도...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여
싸울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삼손은 그 약속을 받은 후
스스로 그들에게 붙잡혔습니다.
유다 지파 사람들은 그를 새 밧줄
둘로 단단히 묶은 뒤
블레셋의 손에 넘겼습니다.
그 후의 일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14-17절>
14절 “삼손이 레히에 이르매
블레셋 사람들이 그에게로 마주 나가며
소리 지를 때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
그의 팔 위의 밧줄이 불탄 삼과 같이
그의 결박되었던 손에서 떨어진지라
15절 삼손이 나귀의 새 턱뼈를 보고
손을 내밀어 집어들고 그것으로 천 명을 죽이고
16절 이르되 나귀의 턱뼈로 한 더미,
두 더미를 쌓았음이여 나귀의 턱뼈로
내가 천 명을 죽였도다 하니라
17절 그가 말을 마치고 턱뼈를
자기 손에서 내던지고
그 곳을 라맛 레히라 이름하였더라.”
<몇 가지 교훈>......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아주 중요한 교훈 몇 가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악인의 기쁨은
잠깐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삼손이 붙잡혀 오는 것을 본
블레셋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합니까?
14절a “삼손이 레히에 이르매
블레셋 사람들이 그에게로 마주 나가며
소리 지를 때...”
삼손이 밧줄에 단단히 묶인 채
잡혀 오자 블레셋 사람들은
‘와~!’하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손 안 대고 코 푼 격이었으니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이렇게 쉽게 잡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14절 후반절부터 16절까지를 보면 .....
그들의 승리의 함성은 이내 신음과
고통의 울부짖음으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중요한 영적 원리를 깨닫게 됩니다.
악인들은 그들의 악행으로 인해
잠시 기쁨을 누리는 듯 보이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 기쁨은 이내 바뀌어 슬픔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악인들이 누리는 기쁨의 실체입니다.
전7:6 “우매한 자들의 웃음소리는
솥 밑에서 가시나무가 타는 소리 같으니
이것도 헛되니라.”
우리는 악인들이 잠시 얻는 기쁨을
부러워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보십시오.
그 부자는 곳간에 쌓아둘 곳이 부족할 만큼
소출이 많게 되자 곳간을 더 크게 짖기로
작정하고는 속으로 말하되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두었으니 편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밤에
그의 영혼을 도로 찾아가셨습니다.
그 재물이 그에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눅12:16-21).
이것이 바로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는
세상 악인들의 말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님들 !
악인들이 세상에서 잠시 누리는
연락과 즐거움을 보고 부러워하거나
마음 상하여 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들로 인해 의기 소침해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악인들이 누리는 즐거움이나
세상의 인기는 잠시 있다 사라져 버릴
안개와 같은 것입니다.
저와 성도님들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잠시 있다가 없어질 헛된 세상의 즐거움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영원하고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하늘의 기쁨을
추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아주 중요한 교훈 몇 가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악인의 기쁨은
잠깐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성령이 임할 때
자유함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삼손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넘겨지기 직전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게 됩니다.
14절b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 그의 팔 위의 밧줄이
불탄 삼과 같이
그의 결박되었던 손에서 떨어진지라.”
그때 삼손을 묶고 있던
싱싱한 새 밧줄 둘이
불탄 삼처럼 우두둑 떨어졌습니다.
마치 불에 탄 재처럼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하고 스스로 떨어져 나갔습니다.
이것은 초인적인 힘이 삼손에게
작용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이 특별한 사람,
특별한 때에만 임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아주 중요한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요14:16-17>
16절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행1:4-5>
4절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절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이 약속은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현실화되었습니다(행 2:1-4).
120명의 성도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에 힘쓸 때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나고,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각 사람 위에 임하였습니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놀라운 경험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보혜사 성령은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떠나지 아니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이렇듯 성령이 임할 때
참 자유함을 누리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롬8:1-2>
1절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120명의 성도들이 두려움을 떨쳐 버리고
밖으로 나가 담대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훗날 성령을 경험했던
사도 바울은 참 자유를 맛보았습니다.
롬8:31b “```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사랑하는 성도님들 !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성도님들을 묶고 있던
밧줄로부터 자유롭게 되기를 바랍니다.
죽음의 공포, 질병의 공포, 온갖 염려와 근심,
과거의 잘못된 미신(점, 길일)과 습관 등,....
성도님들의 삶을 옭아매고 있던
사단의 궤계의 사슬이 풀리기를 원합니다.
불탄 삼처럼 끊어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과 동행함으로
참 자유를 누리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아주 중요한 교훈 몇 가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악인의 기쁨은 잠깐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성령이 임할 때 자유함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이 쓰시면 보잘것없는 것도 귀하게 쓰입니다.
<15-17절>
15절 “삼손이 나귀의 새 턱뼈를 보고
손을 내밀어 집어 들고 그것으로 천 명을 죽이고
16절 이르되 나귀의 턱뼈로 한 더미,
두 더미를 쌓았음이여 나귀의 턱뼈로
내가 천 명을 죽였도다 하니라
17절 그가 말을 마치고 턱뼈를
자기 손에서 내던지고
그 곳을 라맛 레히라 이름하였더라.”
그 순간 나귀 턱뼈 한 조각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것을 손에 들고 블레셋 군대
1천 명을 그 자리에서 모조리 죽입니다.
그리고는 턱뼈를 자기 손에서 내던지고
그 곳을 ‘라맛 레히’라 이름하였습니다.
라맛이라는 말은 높은 곳 또는
산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레히라는 말은 턱뼈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라맛 레히’은
‘턱뼈의 산’이라는 뜻입니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삼손이 사용한 무기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나귀 뼈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정식무기가 아닙니다.
아무도 그것이 그토록 강력한 무기가
되리라고 상상하지 못했던 무기입니다.
당시 블레셋 사람들이 사용하던 무기는
세계 최고의 수준이었습니다.
당시 블레셋 민족은 철제무기를
마음대로 생산해서 사용하는
몇 안 되는 민족이었습니다.
이런 군대를 상대로 나귀 턱뼈를 이용하여
그들을 일천 명씩이나 죽였다는 것은
놀라움 그 자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닙니다.
우리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이 중요합니다.
사람만 하나님께 사로잡히면
그 다음은 하나님께 맡기면 됩니다.
내가 가진 것이 아무리 보잘것없는 것이라도
하나님은 능히 사용하십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친 무기는
다름 아닌 ‘물맷돌’ 다섯 개였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어린아이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나귀 턱뼈 한 조각도
성령이 임한 삼손의 손에 들렸을 때...
진노의 칼로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들어 쓰시고자 하면
아무리 보잘것없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귀하게 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음을 탄식하지 말고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엔학고레의 은혜>...........
이후 삼손은 목이 말라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18-19절>
18절 “삼손이 심히 목이 말라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께서 종의 손을 통하여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
떨어지겠나이다 하니
19절 하나님이 레히에서 한 우묵한 곳을 터뜨리시니
거기서 물이 솟아나오는지라
삼손이 그것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하니 그러므로 그 샘 이름을
엔학고레라 불렀으며
그 샘이 오늘까지 레히에 있더라.”
혼자서 천명을 상대해서
치열한 전투를 벌일 때는
목마른 줄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기고 나니
소위 탈진이 온 것입니다.
얼마나 갈증이 났겠습니까?
물을 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봐도 주변에 물이 없습니다.
이 목마름이 탈진을 가중시켜서
죽을 것 같은 고통에 삼손은
하나님께 “주께서 종의 손을 통하여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
떨어지겠나이다”하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은 삼손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한 우묵한 것을 터뜨리시니
그곳에서 물이 솟아 나왔습니다.
삼손은 그 물을 먹고 정신과
기운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곳 이름을
‘엔학고레’라 이름을 붙여
하나님의 응답을 기념하였습니다.
‘엔’과 ‘학고레’가 합해진 말입니다.
여기서 엔이라는 말은 솟아나는 우물
곧 샘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학고레는 부르짖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엔학고레’라는 말은
‘부르짖는 자의 샘’이라는 말입니다.
삼손이 그 은혜를 힘입고 다시 일어섭니다.
그 증거가 20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20절 “블레셋 사람의 때에 삼손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이십 년 동안 지냈더라.”
삼손이 회복되어 이스라엘의 사사로
이십 년 동안 사역을 수행할 수
있었다는 증언입니다.
비슷한 이야기가 왕상 19장에 나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혼자서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과 갈멜산에서 ....
영적 전쟁을 벌여서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엘리야는 혼자서 850명을 상대해서 기도하고
영적 싸움을 싸우느라 탈진했습니다.
마침 그 때에 악한 왕비 이세벨로부터
죽이겠다는 협박을 받게 됩니다.
이 협박이 탈진을 가중시켜
견딜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혼비백산하여 도망을 쳤고,
광야 로뎀나무 아래에서 하나님 앞에
죽기를 청하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이 천사를 통하여
그에게 숯불에 구운 떡과 물을
대접하게 하심으로 원기를 회복시키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오늘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큰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주의 일을 하는 목회자와 성도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주의 일을
감당한 후 탈진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주의 일은 한다고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역을
최선을 다해 감당하는 사이에
영적인 기력이 소진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때 사탄의 공격이 날아듭니다.
때로는 건강 악화로,,,,
때로는 오해의 험담으로...,
때로는 관계의 갈등으로,...
때로는 여러 가지 걱정거리로
탈진이 극에 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
다 내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납니다.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는
두려움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육신을 입고 있는
연약한 인간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사정을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알고 계십니다.
회복의 은혜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힘들면 힘들다고 고백하세요.
우리가 하나님께 탄식 소리만 내도....,
신음 소리만 내도,.....
부르짖기만 해도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십니다.
우리가 힘들어 주저앉아있을 때,
탈진하여 울고 있을 때....
죽을 것 같은 고통 속에서 울부짖을 때
주님은 찾아오셔서 우리의 손을 잡아주십니다.
은혜의 샘물을 터뜨리셔서 우리를
다시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엔학고레’의 은혜입니다.
오늘 성도님들이 이런 ‘엔학고레’의 은혜,
회복의 은혜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님들 !
오늘 본문을 통하여 받은 교훈을
꼭 되새기시기를 바랍니다.
악인들이 잠시 얻는 기쁨을
부러워하지 말고 오히려 주님 안에 있는 것으로
만족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하실 때
새 줄도 불탄 삼처럼 끊어지는데,
날마다 성령 충만하여 자유로운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쓰시고자 하면
쓰시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내게 주어진 작은 은사라도
부끄러워하지 말고 주를 위해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힘들고 지칠 때라도
하나님께 부르짖어
‘엔학고레’의 은혜를 경험하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