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했던 2012년의 여름 이야기(1)>
◎휴식 끝 , 반전 (反轉 ) 시작 ...
구리 토평으로 이사 온지 17 개월, 그 사이 내 나이 70이 되었다. 앞의 글 ’내 인생‘에서 언급했던, 내가 좀 편해 질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바로 그 나이에 도달해 있었다.
이리로 이사 와서 그 동안 꿈같은 시간들을 보냈었다. 물론 어머님을 모시는 데서 오는 작고 큰 어려움은 상존하고 있었지만 어머님을 주간보호센타로 보내 드리게 되면서부터 낮 시간 만이라도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을 감지덕지 하면서 지냈다.
어느 날 아침 , 커피 한잔을 식탁에 올려놓고, KBS FM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느긋하고 평화로운 기분에 젖어 있는데 문득 ‘너무 오래 쉬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이렇게 편한 날들이 계속 될 리가 없는데 ‘하느님은 나를 위해 어떤 반전 (反轉)을 준비하고 계신 걸까?’ 하는 일말의 불안이 스쳤다. 잠시 숨 고르기를 하고 난 운동선수처럼 다음 경기를 위한 준비 운동이라도 해 두어야 할 것 같았는데, 드디어 한꺼번에 일이 터졌다.
남편이 치근낭 (잇몸 물혹 ) 수술로 아산 병원에 입원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옆에 살고 있는 아들네 식구의 여름휴가 겸 대만에 계신 처외삼촌 신부님을 방문할 날짜가 남편 입원기간과 겹치게 되었다. 치과에서 하는 수술이 뭐 별거이겠냐고, 큰 수술이 아니니 걱정 말고 다녀오라고, 아들 며느리를 안심시켜 7월 13일에 떠나보낸 후, 남편은 15일에 입원하여 16일에 수술을 받았다.
간단할 줄 알았던 수술은 예상외로 컸다. 오랜 시간 자라온 물혹으로 잇몸 뼈의 손상 범위가 너무 넓어 골반 뼈를 잘라내어 이식을 하였다. 골반 수술 부위에는 무거운 것을 올려놓고, 턱 부위는 아이스팩 찜질을 하고, 두 입술은 움직이지 못하게 집게로 찝어 놓고 병실로 올라온 그의 모습은 만신창이었다.
남편이 퇴원을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주 일 후 어머님까지 응급실로 실려 가는 사태가 벌어졌다.
어머님이 기침을 하기 시작하신 지는 열흘도 더 되었었다. 심한 것은 아니고 아주 가끔 약하게 하셨다. 10년 이상을 감기라는 것에 걸려보지 않으신 분이라 조금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여전히 활기차며, 식사 잘 하시고 ,주간보호센터에도 잘 다니시기에 크게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
그런데 지난 토요일 점심 때 어지럽다 하시며 식사를 거부하시기에 이마를 만져 보니 열이 있었다. 대만으로 휴가를 간 아들네 식구는 저녁 늦게 도착할 예정이었고, 나 혼자서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 해열제만 드렸더니 열이 떨어졌다. 일요일인 다음날, 열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가운데 한 나절을 견디셨는데 오후부터 기침 소리가 더 깊어지고 가래가 섞여있었다. 폐렴이 의심 되었다.
아무래도 이 밤을 그냥 집에서 버티기에는 무리일 것 같아 저녁 식사 후, 아들네 식구를 오라고 하여 119 를 불렀다. 구급대원이 접이 식 침대를 갖고 방으로 들어서고, 병원에 가셔야 된다는 말씀을 드리자 난리가 났다.
“아프지도 않은데 왜 병원에 가냐 ? 내가 밥을 못먹냐? 내가 오줌을 싸냐? 똥을 싸냐? 혼자서 변소도 잘 다니는 사람을 왜 병원에 가라고 하느냐? 왜 멀쩡한 사람을 갖고 그러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팔을 붙들어 모시려고 하는 손자 내외를 막무가내로 떠다미시는데 힘이 장사였다. 승강이 하는 것을 지켜보던 구급대원이 포기하고 돌아갔고 아들네도 집으로 갔다 .
사고는 그 후에 일어났다 .
11 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었는데 잠결에 쿠당탕 소리와 함께 ‘아이고! 나 죽는다.’ 하는 벽력같은 소리에 잠이 깼다. 후들후들 떨리는 몸으로 일어나 나가 보니 어머님이 화장실 문턱에 발을 걸치고 머리는 타일 바닥에 대고 누워계셨다. 상체를 일으켜 겨우 앉게는 해드릴 수 있었지만 허리가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셨다. 그런 상태에서 침대 위로 올려 놔 달라고 고집을 부리시는데 나 혼자 힘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아들 프란체스코네 집으로 다시 전화를 걸어 여행 후 잔뜩 피곤해 잠든 아들 내외를 깨워 불렀다. 새벽 1시 30분 경이였다.
그래서 다시 119 구급차를 불렀고, 2 시가 넘어서야 집에서 가까운 한양대 구리 병원 응급실로 어머님을 모셨다 .
흉부 X-Ray 와 척추 CT 촬영결과 우측 폐에 폐렴이 있고, 척추 12 번 뼈의 압박골절로 진단이 나와 입원치료에 들어가게 된 것이 어제 오늘 있었던 일이다 .
담당 교수의 말에 의하면 고령에, 폐렴도 위험한 일인데 척추 골절로 가래 배출이 안 돼 아무리 항생제를 투여해도 점점 나빠질 가능성이 많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며 자녀들을 전부 모이게 하라 하였다. 자식들을 모이게 한 이유는 위독한 상황이 갑자기 왔을 때 ‘심장마사지’나 ‘기계호흡’등 연명치료에 관해 자식들 전부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직 충분히 더 살 수 있는 나이에도 연명치료를 하지 말아달라고 유언을 하는 마당에 102살이나 되신 분에게야 말 할 것도 없었기에 우리 형제들은 모두 연명치료를 거부한다는 동의서에 서명을 했다.
어머님 계신 곳에도 간병인을 썼고, 남편도 혼자 있게 할 수는 없어 간병인을 불렀다. 그 때부터 나는 오전에는 구리 한양대 병원을, 오후에는 아산 병원으로 달려가는 일이 시작되었다.
느릿느릿 여유 만만하던 삶의 속도가 갑자기 빠른 템포로 가기 시작하였다 .안단테로 흐르던 음악이 갑자기 알레그로로 바뀌었으니 아직은 정신이 어지럽다. 이 새로운 악장이 어떤 식으로 마무리 될지는 아직 모른다. 만약을 위해 병원에서 집에 오는 길에 검정색 여름 옷 몇 벌을 사기는 했다.
입원 이틀째가 되는 날 어머님의 폐렴증세는 호전되고 있다고 했다. 의사가 한 가지 모르는 게 있었다. 그는 위험 인자 중의 하나로 어머님의 고령을 꼽고 있지만 우리 어머님이 얼마나 체력이 좋은 분이신 가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