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제 돌아가야겠어...." 로 시작되는 '서울의 달' 드라마에는 한 석규 최 민식이 삼양동 달동네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달이 자주 나온다. 나도 어렸을 적에 가끔씩 보았던 달이었고..그러다 언제부턴가 서울에서는 달 보는 것을 잊어버렸었다.
오랫만에 잊었던 서울의 달을 밤새 볼 수 있었다. 아직 보름이 한 이틀 남아 아랫부분이 다 차지 않은... 오른쪽으로 두어뼘쯤 떨어진 곳에 금성을 달고, 밤이 깊어갈수록 점점 더 노랗게 변해가는 옛날 그대로의 달을 여섯시간 이상 보며 제대로 추억에 젖어 있었던 지난 금요일 밤 북한산 야간 등산은 또 하나의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가슴에 깊이 고이 간직되었다.
구기동에서 밤 9시 반에 시작된 북한산 야등은 승가사 입구 약수터에서 처음 쉬면서 나무사이로 달이 보이더니 승가봉으로 올라 사모바위 능선에 다다르니 사위는 온통 달빛으로 밝다. 오히려 헤드랜턴을 끄니 그 교교함이 더욱 아릅답다. 사모바위엘 한 두번 간게 아닌데 이렇게 한 밤중에 와보니...발밑으로는 불야성 서울의 야경이 보이고 오른편에 비봉이 실루엣으로 보이는데 낮에 백번 보아도 귀기서린 비봉의 진짜 실루엣을 어찌 알겠는가. 마찬가지로 왼편으로 올려다 보이는 문수봉 보현봉의 진정한 실루엣은 컬러로 보는 낮의 풍경과는 완벽히 다른 흑백의 아름다움으로 마음에 다가 온다.
낮에보는 여러가지 색상이 완벽히 배제된 흑백의 아름다움으로 북한산의 진정한 실루엣이 그대로 자태를 드러낸다. 컬러 사진이 주지 못하는 감동을 흑백사진이 주듯이...
능선을 타고 문수봉을 향해 깔딱고개를 넘어 도착한 청수동암문에서 모두 랜턴을 끄고 제대로 된 한여름 바람골의 시원함에 젖어본다. 공기가 다르다. 산밑에서 느끼던 끈적하고 후덥지근하던 공기는 다 어디로 가고 맑고 시원한 바람만이 젖은 등산복을 투과해 지나가는데 거기에 나는 없고 내 영혼만 남아 바람에 동화되어 같이 흔들릴뿐...정말 시원하다.
대남문에서 자리를 펴고 가져온 술을 먹기 시작하는데...막걸리, 맥주, 소주, 양주까지 준비해 온 술도 참 가지가지다. 술 종류는 달라도 맛은 하나다. 달빛이 교교하니 머리위를 비추고...들리느니 바람 소리뿐이니...황진이만 없을뿐...세상 풍류에 이보다 더 으뜸이 어디에 있겠는가..."나~는 행복 합니다~"가 저절로 나온다.
산성을 따라 대성문 대동문 보국문으로 해서 하산으로 방향을 잡을때까지 왼편의 삼각산 봉우리의 실루엣과 오른편 발아래의 서울의 야경은 기가막히게 조화롭다. 고개를 왼편으로 돌리면 순간 신선의 선계이고 오른편으로 돌리는 순간 인간세상의 아수라이니...선계와 아수라가 나를 경계로 갈린다.
험한 등산로를 따라 내려오니 계곡의 물소리가 들린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땀젖은 등산복을 훌러덩 벗어던지고 계곡물에 알을 담구니 이것이 반금련이 치마속 보다 더 좋다는 북한산 계곡의 여름 알탕...
우이동 아카데미로 내려오니 새벽 네시...인간세상은 벌써 부지런한 민초들의 출근 시간이구나. 세상에는 새벽 네시에 먹고 살기위해 일터로 향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산등성이에서 푹 젖어있던 풍류는 한방에 풍지박살이 나고...버스를 타고 종로 청진동으로 가는 동안 버스안에 술냄새를 진동 시키며...
청진동 해장국으로 이른 아침을 먹으며 소주를 반주 삼는데...같은 술이라도 이렇게 맛이 다를 수 있구나. 산에서 마시던 소주는 아마 참이슬이나 처음처럼이 아닌 신선이 마시다 남긴 이슬주가 아니었을까...?
서울 종로의 토요일 아침 다섯시는 여명이 밝아오는 그렇고 그런 서울의 일상이 그렇게 펼쳐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