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주말인가 EBS 에서 '고교 얄개'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운이 좋게도 채널을 돌리다가 발견을 하게 돼서,첨부터 보았죠...
근데 거기에 얄개로 나오는 분이랑,그분의 친구(병원집 아들),
또 '근대화 연쇄점'의 딸로 나오던 그분들에 대해 알고 싶어요... 요즘 근황도...
'아기다리 고기다리 던데이트'라는 가사의 노래도 인상이 남네요...
얼마전 노이즈에 있던 분이 만든 그룹의 신곡에,그 가사를 넣어서 부르기도 하던데......
암튼,그 3명의 인물들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주시길... (__)
영화가 끝나고 나서 김홍준 선생님이 세 주인공의 근황에 대해 얘기해주셨는데 그건 못 보신 모양이네요.....
일단 영화에 대한 정보부터 간단히 올리자면....
(이건 필름스에서 퍼온 겁니다....)
고교 얄개
제작년도 1976년
제작국가 한국
관람등급 12
상영시간 90분
@감독 및 출연
감독: 석래명
출연: 이승현, 김정훈, 하명중, 정윤희, 강주희
@영화 해설
조흔파의 베스트셀러 <얄개전> 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70년대 얄개 시리즈의 선풍을 몰고 온 원조격인 영화. 이 작품을 필두로 얄개 시리즈는 80년대 초의 <대학얄개>(82), <신입사원얄개>(83) 등 많은 아류작들이 만들어졌고, 비슷한 고교 영화나 하이틴 영화들도 제작되었다. 주연을 한 이승현, 김정훈, 강주희 등은 당시 청소년들의 우상이었던 고교생 배우들이다. 빵집 벽에 <밴지>의 포스터가 걸려있는 모습이 시대를 알 수 있어 재미있다.
@영화 내용
누구에게나 한창 부풀어 있을 시기. 고교시절 자신들의 이상과 포부를 마음껏 앞길에 놓여진 시간 속으로 나타낼 수 있는 젊음의 시기. 나두수는 고교 이년생으로 온갖 사건을 일으키는 말썽꾸러기다. 하지만 그뒤에 흐르는 따뜻한 우정도 있다. 급우 호철의 어려움을 보고 자신이 직접 나서서 그의 병원비를 대려다 다쳐서 치료를 받는다. 한편 얄개 한창의 푸르름으로 낭만이 있고 실수가 있고 용서가 있다. 아름다운 고교시절을 헛되이 보내지 않는 얄개 나두수. 여자친구를 사귀면서 밝은 웃음을 짓는 그를 보며 또한 우리의 마음도 푸르름에 젖어든다.
@[고교얄개]의 세 주인공은 실제 고교생이었고 당시의 청춘스타였다고 합니다.
얄개 역의 이승현씨는 당시에 이름보다도 '얄개'로 알려졌다고 하구요..많은 청춘영화에 출연하기도 했습니다...필모그래피가 엄청나네요.....꾸준히 영화에 출연하다가 90년대 들어 주춤했지만 최근 들어 다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한국영화산책의 설명에서 듣기로는 감독 데뷔를 준비하신다고 하던데요...곧 개봉할 <신라의 달밤>에도 출연도 하시고 또...의상도 담당하셨더군요....
필모그래피는 아래주소로
http://films.hitel.net/v2/name.php?name=이승현
다리가 부러졌던 호철이로 나오는 김정훈씨는 60년대으 대히트작 [미워도 다시 한번]에서 아역을 맡아 이미 유명한 스타였습니다...그래서 무척이나 자존심이 쎄서 (나중에 방송 끝에 보면 나오지만) 주인공이 아닌 역할에 캐스팅하느라 석래명 감독님이 무척이나 힘드셨었다고 합니다....
김정훈씨는 홍콩에서 사업가로 계신다고 들은 듯 하네요...
김정훈씨의 필모그래피는
http://films.hitel.net/v2/name.php?name=김정훈
그리고 선생님 역은 후일에 [떙볕]을 감독한 하명중 감독이구요...나두수의 누나 역할은 정윤희 씨가 맡았지요...
쩝...EBS [한국영화걸작선]에서 좋은 한국영화 많이 한답니다..
자주 보세요....한국영화들은 비디오로 거의 출시되지 않았고 출시됐다 하더라도 희귀본이기 때문에 이런 프로그램이 아니면 정말 만나기 어렵죠...
그리고 50~60년대의 한국영화들을 보면 정말 요즘 봐도 뛰어난 작품들도 많답니다....^^정말이에요...
[답변] 고교얄개
kkiya@d 님이 2001-06-11 18:02 작성
'아기다기 고기다리 던데이트'~~~~
맞아요 그 대사로 유명한... 노이즈 뿐만 아니라,
예전에 DJ Doc 노래 가사에도 나왔었더랬죠.
제가 태어나기도 전의 영화지만,
어릴 때 TV에서 나오는 걸 본 거 같기두 하구...
암튼 추억의 영화지요.
고교얄개는 1976년 작이구요,
주연은 이승현, 하명종, 김정훈, 정윤희 등
이 영화기 히트를 치자 이후 '얄개 행진곡', '여고얄개' 등
얄개 씨리즈로 후속편이 나오기도 했지요.
<고교얄개>는 말썽꾸러기인 고교 2년생 나두수가 벌이는
온갖 사건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영화입니다.
학급친구인 호철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다치기도 하고
여자친구를 사귀기 위해 동분서주하기도 합니다.
조흔파의 베스트셀러인 <얄개전>을 영화화한 것으로
장난꾸러기이지만 마음씨가 따뜻한 고교생을 통해서
하이틴영화의 전성기를 만들었던 영화였습니다.
<고교얄개>의 대히트는 청춘영화의 유형을 하이틴 무비의 전형으로
만들었습니다.
세대 갈등보다는 천방지축 고교생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었으며
주인공들을 통해서 청춘스타의 아이콘을 생산해 냈습니다.
"얄개"시리즈의 대표적인 스타 이승현과 김정훈을 비롯해서
전영록, 임예진, 이덕화, 송승환이 청춘스타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주목할 만한 사항은 주류에 있던 이야기 중심의 영화들을
껄렁한 고교생이라는 해학과 기지의 캐릭터가 중심이 된
영화들로 전환했다는 것이죠. <고교얄개>의 석래명 감독은
청춘영화의 대표적인 감독으로 자리잡았으며
김응천, 문여송, 이형표, 김인수 감독도 그 반열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고교 얄개>, <고교 우량아>, <에너지 선생>, <여고 얄개>,
<남궁 동자> 등등은 그의 대표작입니다
주인공들의 이후 이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승현>
하이틴 스타로서 한계성을 지닌 이승현은 더 이상의 성인배우로서
성장하지 못한 채 서서히 우리들의 기억속으로 잊혀진 배우가 되었습니다.
결혼 후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기도 했던 이승현은 최근 대전에 정착하여,
전주예술고등학교 연기 강사로 출강하며 연기활동을 재개하기도 하였습니다.
<여고졸업반>에서 별명이 "독사"인 수학선생 역을 맡아 기존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캐릭터로 열연을 펼쳤습니다.
<김정훈>
본명이 김일명인 꼬마신랑 김정훈.
아마도 3,40대 이상은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70년 초 그가 출연한 <꼬마신랑>(1970)은 대단한 히트를 기록하며
그는 최고의 아역스타로 당시 청룡상, 대종상, 아시아 영화제 등
안 탄 상이 없을 정도로인기를 얻었습니다.
또한 <이세상 끝까지>(1964)에서의 이혼한 엄마를 애타게 찾는
눈물나는 연기는 영화팬들의 눈물을 쏙 빼놓기도 했죠.
이러던 그가 조금씩 성장하면서 그에게 작은 핸디캡이 생겼다.
바로 귀엽고 예쁜 용모에도 불구하고 키가 자라질 않는 것입니다.
사실 그는 고등학교이후 160cm를 간신히 넘긴 키가 더 이상 크지 않았던 것이죠.
그에게는 이 핸디캡이 연예활동에 있어 큰 지장을 줍니다.
아역 최고의 스타가 키로 인해 더 이상 좋은 배역을 맡질 못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한 영화<고교얄개>(1976)
에서 동갑내기 아역스타였던 이승현이 최고의 학생스타로 인기를 얻었을 때
그는 예전의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이승현을 도와 <고교얄개>(1976)를
최고의 흥행영화로 만들었습니다.
김정훈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또 한번의 변화를 가졌습니다.
대만으로 건너가 중국학 역사를 공부하며 박사과정까지 이수하기도 합니다.
대만에서 귀국해 드라마 <3일의 약속>(1990), <카루나>(1996)에서
예전의 녹록지 않은 연기를 선보인 그는 요즘 사업을 하며
틈틈이 연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는 약 40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벌였죠.
<하명중>
1947년 생으로 경희대 독문과를 졸업하고 영화계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는 최초 연기자로 활동하기 시작하였고, 하길종 감독의 동생으로서
더욱 이름을 날리며 많은 활동을 하였습니다.
하명중이 주로 맡는 역할은 고뇌하는 지식인으로 <족보>(1978),
<깃발없는 기수>(1979), <불꽃>(1975), <사람의 아들>(1980) 등
임권택 감독이나 유현목감독의 영화에 단골로 캐스팅 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하길종 감독이 유학을 마치고 국내로 귀국하여 만든 두번째 영화
<수절>에서는 하명중 감독이 직접 연기도 하고 제작비를 조달하기도 하는 등
그의 형에 대한 지지도 아끼지 않았었습니다.
마치 형의 죽음이 그에게 많은 변화를 불러일으켰다는 듯 1983년
< X>란 작품으로 감독에 데뷔하였고, 이후 부터 자신의
작품 활동을 꾸준히 이어갔습니다.
두번째 작품 <땡볕>(1984)은 일제시대 한 마을을 무대로 집안은
돌보지 않고 술, 노름에 빠져있는 남편, 그를 헌신적으로 섬기는 어린 아내,
폐병에 걸린 남편을 위해 몸을 파는 마을 술집여자가 엮어가는 관계들을
통해서 당시의 시대상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작품은 대종상 영화제에서 촬영상, 신인상 등 6개부문을 수상했고
베를린 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하였죠. 산과 계곡 등 자연을 말끔하게 처리해 낸
촬영장면과 신인 조용원을 발굴해 내는 등 완성도가 꽤 높은 한국영화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후 <태>(1985) <혼자 도는 바람개비>(1990)를 감독하지만 그리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80년대 후반부터 "하명중영화 제작소"를 차려
<시네마 천국>(1988) 등을 수입하거나 극장을 운영하기도 하였고
<전갈군단>(1991), <유리>(1996) 등을 제작하였습니다.
<정윤희>
1980년대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활약을 하면서 한때 여배우 트로이카
의 하나로 불리도 했는데 80년대 중반 이후 결혼을 한 뒤
기정주부로 조용히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대표작
안개마을 1982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1981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1981
고교얄개 1976